월간참여사회 2000년 09월 2000-09-01   2409

롯데호텔 비정규직 150명이 파업에 동참한 까닭

열심히 노력해도 상사에게 밉보이면 낙제등급

롯데호텔 파업이 74일만에 끝났다. 찻잔 하나 깰세라 조심하던 농성장이 유혈이 낭자한 전쟁터로 바뀐 특1급 호텔 롯데. 파업 이후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좇아가면서 롯데호텔의 기나긴 투쟁을 조명해본다.

요즘은 이산가족 상봉, 남북언론인 교류, 육로를 통한 개성관광 등 자고 일어나면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국민들을 들뜨게 만들고 있다. 세계적으로 냉전이 끝난 뒤에도 유일하게 냉전체제가 지배했던 한반도는 해빙이 무섭게 여름으로 치닫는 듯하다. 긴장과 대결로 대표되던 한반도는 평화와 대화의 시대로 눈부실 만큼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기가 막힌 역설이다. 지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엄청난 남북 정상회담을 전세계로 방송했던 장소인 롯데호텔에 테러진압부대가 투입돼 찻잔 하나 파손하지 않고 파업중이던 1,000여 명의 노동자들에게 군사독재시절처럼 쇠몽둥이로 때려 기절시키는 사태가 일어나다니 말이다. 게다가 이들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독하게 풍겼다. 장애인과 임산부를 가리지 않고 폭행을 저지른 것을 그대로 믿자니 대한민국은 더 이상 발붙이고 살아가기 무서운 땅이고, 애써 모른 척하자니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당한 엄연한 현실이 존재한다. 한반도에 감도는 대화와 평화 분위기는 정작 서울 소공동에 있는 ‘꿈의 궁전’은 비껴간 것이다.

객관적 평가 상실한 인사고과

이후 작열하는 뙤약볕과 아스팔트에서 뿜어 나오는 폭염 속에서 민주노총과 롯데호텔 노조 조합원들은 서울 도심을 집회물결로 수놓고 있다. 21세기 첫해, 역사의 전환점에서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긴 벌거벗은 경찰의 폭력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다. 또한 돈 많고 빚 없다고 하루가 멀다고 자랑을 늘어놓던 최고급 호텔이 직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세상에 분명히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롯데호텔이 파업에 돌입한 6월 9일부터 따지면 두 달, 6월 29일 끔찍한 경찰력 투입이 있은 뒤 45일이 지나가고 있다. 1,000명 넘게 흔들림 없이 투쟁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는 정규직원이 아닌 연봉계약직 노동자들도 150여 명이나 된다. 1년마다 새로 고용계약을 갱신하는 이들은 이른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정규직과는 달리 회사 쪽에서 고용계약 해지를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파업에 참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해고를 각오한 싸움일 수밖에 없다. 이미 회사 쪽은 파업 직후 지난 4월에 입사한 계약직 노동자들 대다수를 해고했다. 그럼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파업에 참가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것’을 바라는 노동자들이 있다. 도대체 어떤 차별이 있길래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투쟁에 나섰을까. 지난 8월 11일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중인 비정규직모임 대표 박지숙 씨를 만났다.

그녀는 97년 7월 롯데호텔 소공동 면세점 소속으로 입사했다. 롯데호텔은 그녀에게 첫 직장이기도 하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관광과 조교가 권유해서 ‘좀 빠르다’ 싶었지만 경험삼아 취업원서를 내게 됐다. 별반 기대는 안 했지만 출근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고, 내로라 하는 대기업에 취직하게 되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같은 관광과 학생들 중 그 해 제일 먼저 취직했다는 점도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같은 해 입사한 동기들 가운데서도 그녀는 제일 막내였다. 인천 집에서 소공동까지 출퇴근하랴, 하루 12시간 많게는 14시간 이상 서서 일하랴, 남은 마지막 학기 때문에 학교 공부하랴 정신없었지만 재미있게 보냈다. 꽉 막힌 사무실에서 늘 보는 사람들끼리 일하는 것보다 선배 언니들과 함께 외국어 실력도 늘려가며 일을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회사 쪽과 세 번째 고용계약을 체결하던 99년 5월말께 처음으로 허울뿐인 연봉계약직 신세를 깨닫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1년마다 고용계약을 다시 체결하는 이들은 계약 직전에 외국어, 영업·판매와 관련된 시험을 치른다. 이 성적과 인사고과 결과를 더해 총점을 매긴다. 그 결과 소공동 호텔에 있는 350여 명의 연봉계약직 노동자들은 A, B, C 중 한 등급을 얻게 된다. 등급에 따라 임금 인상분이 다르다. A와 C를 얻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 B등급을 받는다. 그러나 97년 입사자들이 3년째에 들어가는 99년 계약에서는 이상하게 C등급이 크게 늘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3년차인 99년도 계약 때 A등급은 연봉 1,600만 원 정도였고, 등급마다 70∼80만원 정도 격차가 있었다. 게다가 그녀가 일하는 면세점은 임금이 제일 낮았다. C등급을 받고도 계속 다니고 싶으면 다니고, 불만 있으면 그만두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아주 기분이 나빴다. 장시간 노동 뒤에도 일어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는데 억울하기도 했다. 이 때 그녀는 시험 성적보다는 인사고과 결과가 뜻밖에도 나쁘게 나왔다고 한다. 물론 인사고과란 그녀의 능력 바깥에 있는 일이다.

“나를 담당하고 있는 과장과 부장이 점수를 매기는데 과장이나 부장은 사실 1년이 지나도록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구경도 못했던 사람들이에요. 나와 같이 일하는 바로 위 담당 선배와 사이가 안 좋았는데 이것이 그대로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친 것이죠. 한마디로 인사고과에서 객관성이란 찾기 어렵다는 얘기예요”라고 그녀는 또박또박 얘기했다. 이번 파업과정에서 밝혀졌지만 이 비싼 호텔에 다니고 있는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승진 때 상사가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듣던 터였다.

집구석에서 애나 볼 일이지…

연봉계약직 노동자들은 임금에서 우선 차별을 받는다. 이들의 임금명세서에는 기본급만 표시돼 나온다. 가족수당, 교통비 등등 정규직원들이 받는 온갖 수당을 받지 못한다. 반면 4대 사회보험을 비롯해 뗄 것은 다 뗀다. 우리나라에는 IMF이후 전체 노동자 가운데 53%가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이들의 임금은 같은 직장에 있는 정규직에 견주어 60∼70%에 그친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서양에서는 연봉계약직이 정규직과 별 차별이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한국에서는 똑같이 일하고도 임금 덜 받는 신세가 연봉계약직인 것이다. 입사했던 첫해에는 서로 월급봉투를 보여주고 재잘대던 동기들도 이듬해부터 월급봉투와 관련돼서는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4년차인 올해 A등급이 나오면 계속 다니고 그게 아니면 미련없이 그만두겠다는 각오를 하고 정말 눈코빠지게 열심히 공부했다.

4년차 계약날짜는 지난 6월 7일이었다. 바로 이틀 뒤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의 주요 요구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 △적정인력 확보 등이었다.

그녀가 외국어 학원 다니며 정신없이 공부하던 와중에 노사간 갈등은 증폭되고 있었다. 지난 해 겨울, 민주적인 집행부가 들어선 뒤 노조는 올해 3월부터 회사측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측이 이를 거부로 일관하는 바람에 5월 12일에 가서야 겨우 상견례가 이루어졌다. 심지어 회사측 교섭위원들은 노조측 교섭위원들이 교섭석상에서 노동가를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퇴장했다. 또 6월 9일 파업에 들어간 뒤에야 롯데호텔에 정상회담 프레스센터가 설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조는 사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다시 교섭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교섭 도중에 정회하고 잠적해 버렸다. 경찰이 투입되기 전날인 6월 28일 밤 10시로 예정된 교섭에서도 회사측은 약속시간 5분 전에 전화로 “교섭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여섯 시간 뒤 술 냄새 풍기는 경찰병력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눈에는 뵈는 게 없었다. 임산부의 배를 걷어차고 장애인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한 임산부는 “아이가 위험해요”라고 호소했으며, 4급 장애인인 변명수(30세) 씨는 장애인카드를 보여줬고, 배희백(54) 씨는 목발을 짚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테러진압부대의 쇠몽둥이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예순이 넘은 여인에게 “집구석에서 애나 보지, 이런 데 와서 지랄이냐”는 폭언을 퍼부었다. 남성 조합원들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졸도한 채 구급차에 실려갔다. 한 여성조합원은 연막탄이 터지는 바람에 다리에 큰 화상을 입었다. “여자라고 봐줄 줄 아냐? 고개 들면 죽여버린다”는 고함과 거친 욕설, 쏟아지는 곤봉과 군화발. 밀폐된 공간에서 연막탄과 섬광탄이 펑펑 터지면서 숨은 막혀오고, 커튼과 카펫에 섬광탄 불꽃이 옮겨 붙자 스프링쿨러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고….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대한민국 최고를 자랑하는 특1급 롯데호텔에서 평화롭게 파업을 벌이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무자비한 경찰특공대는 살인적인 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방송사 카메라가 도착해 진압장면을 찍기 시작하자 현장 지휘자는 “카메라 떴다, 그만 때려!”라고 소리쳤다. 문화방송에 방영된, 군화발로 내리찍고 곤봉으로 후려치던 섬뜩한 장면마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던 셈이다. 수백여 노동자가 마치 ‘전쟁포로’처럼 맨바닥에 엎드린 가운데 한 중년의 여성조합원이 울부짖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개, 짐승취급이냐…”고.

박지숙 씨도 경찰이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 들어오던 바로 그 시각 그 현장인 롯데호텔 36층에 있었다. 원래 잘 우는 편이었지만 경찰이 들어와 닭장차로 연행해가던 5시간 내내 정말 멈추지 않고 울었다. 그날 아침 출근길에 엄마가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집에 있으라”고 했지만 ‘설마 별일 있겠나’ 싶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노조도 마찬가지였다. ‘경찰 병력이 들어오면 모두 어깨를 걸고 바닥에 누우라’는 게 대응방침이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여러 번 봤던 것처럼 예전에 대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시위하다 누우면 경찰이 끌어내려 시도하는 것이 ‘진압’의 전부인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나마도 남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동료들이 쇠몽둥이로 퍽퍽 소리가 나도록 얻어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공포에 질려 고개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개를 들었다가 혹시 경찰의 눈과 마주치지나 않을까 겁났다.

그녀는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꾀죄죄한 얼굴로 나온 뒤 엄마가 인천으로 데려가 외출금지 상태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러나 집에 있는 며칠간은 불안과 초조 그 자체였다. 1,000여 명이 넘는 동료들이 모두 힘들게 고생하고 있는데 편안하게 잠이 올 리 없었다. 태어나서 24년 만에 뒷골이 당기도록 아픈 게 어떤 것인지 경험했다.

해고위협 있으나 투쟁을 멈출 수 없다

명동성당 어귀에는 이미 천막이 여러 개 늘어서 있었다. 천막 앞, 그리고 파이프로 만든 계단 난간에는 ‘섬뜩한’ 사진들이 내걸려 있다. 지나던 사람들이 이따금 발길을 멈춘 채 ‘대학살’이라 이름 붙여진 사진벽보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 사진은 롯데호텔노조를 짓밟은 경찰이 무슨 짓을 했는지, 국민의 정부가 파업이라는 정당한 사회권을 행사한 노동자들을 어떻게 다뤘는지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천막의 주인은 대부분 부당하게 체포영장이 떨어져 오갈 곳 없는 파업노동자들이거나 정치수배자들이다. 성당 어귀 맨 앞에 자리잡은 게 롯데호텔노조 천막이며 그 뒤를 이어 민주노총과 매향리 폐쇄·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전면개정 범국민대책위, 보건의료노조, 한총련 정치수배해제 농성단, 롯데호텔에 이어 이틀 뒤 경찰이 폭력으로 진압한 사회보험노조 천막이 나란히 어깨를 걸고 있다.

그녀가 속한 면세점 파트는 사실 맨 나중에 파업에 동참하게 됐다. 호텔 영업 이익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노조쪽에서 심사숙고한 끝에 파업동참을 결정했다. 그녀는 이 때 김포공항 면세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면세점 소속 노동자들은 1년 6개월에 한 번씩 소공동 호텔과 공항 면세점을 돌아가며 일한다. 공항 쪽이 훨씬 힘들다. 회사측의 버티기에 맞서 6월말께 노조가 면세점까지 파업확대를 결정하게 되자 공항에서 일하던 동료들 20여 명은 서로 손잡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당장 해고되는 것은 아닌지, 혹시 호적에 빨간 줄이라도 그어지는 건 아닌지, 회사에서 우리에게 영업손실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데 어떡하나 겁이 났어요.”

그러던 그녀는 지금 별로 “겁나는 게 없다”고 한다. 그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경찰병력 침탈을 겪은 뒤, 파업에 참여하는 게 처음에는 겁나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과정이라면 잘 선택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다가 ‘잘 하는 짓인가’ 불안하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차별을 없애 앞으로 후배들이 걱정없이 호텔에 들어올 수 있다면 계속해서 노조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난 7월 10일 전투경찰이 주둔하고 있는 호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투쟁이 명동대로에서 벌어졌을 때 확연하게 드러났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집회를 마무리하고 철수하려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즉각 해산하라”는 방송과 함께 곧바로 폭력을 휘둘렀다. 경찰은 방송차 위로 뛰어올라 마무리 연설중이던 민주관광연맹 조철 위원장을 땅바닥으로 밀어버린 뒤 집회 참가자들에게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며 강제로 연행했다. 경찰은 특히 단병호 위원장의 멱살을 잡고, 발로 차며 민주노총 간부 등 30여 명과 함께 경찰버스로 연행했다. 경찰버스 안에서도 서울시경 제2기동대 소속 박성욱 경장이 단 위원장의 머리와 온몸을 구타하는 등 계속 폭력을 휘두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전쟁 아닌 전쟁터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경찰들을 똑바로 노려보며 ‘대통령 사과’ ‘이무영 경찰청장 해임’을 소리 높여 외쳤던 것이다.

7월 17일 장성원 사장이 명동성당 천막에 찾아와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겠다”고 말한 뒤 협상이 다시 열렸다. 드디어 회사도 마음을 바꿨나 싶었지만, 한순간의 꿈이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사태해결’을 촉구하며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단식투쟁을 전개한 지도 20일을 넘어서고 있는데 롯데호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핵심적인 쟁점 중 하나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회사측은 완강하기만 할 뿐이다. 회사측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징계를 남발해 지금까지 20여 명이 해고통지서를 받은 것을 포함해 징계에 회부된 이들이 자그마치 100명에 이른다.

회사는 이 기회에 민주노조의 싹을 잘라버리겠다고 결심한 듯하다. 애초 회사는 의도적으로 교섭을 미뤄 타결을 지연시킴으로써 노조의 파업을 부추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파업 뒤 경찰병력 요청과 노조간부 대량구속은 민주노조 무력화라는 시나리오가 아니냐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부와 회사 쪽의 오판이었다. 1,000여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이렇게 오랜 기간 투쟁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먼 훗날 딸이 ‘엄마는 그 때 뭐했어?’라고 물었을 때 ‘회사 안에서 일했다’는 대답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 될 것 같아요. 집에 있는 언니는 ‘단결투쟁’이라 적힌 머리띠를 남겨뒀다 자식에게 보여주라고도 해요. 그래서 ‘해고통지서가 언제 날아올까’ 걱정하면서도 투쟁에 빠질 수가 없어요.” 8월 10일께 회사 쪽으로부터 인사위원회 회부 통지서를 받았다는 그녀는 커다란 눈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정경은 『노동과 세계』편집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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