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2년 05월 2002-04-28   2467

교수야 내가 니 시다바리가?

서원대 조교노조 강훈 위원장

“화분관리는 기본 아닌가요?”

서원대 조교노조 강훈 위원장은 조교들이 연구나 행정보조보다 교수 화분에 물 주는 시간만 신경쓰며 사는가 하면, 교수 강아지 밥 주느라 추석 연휴에 집에도 못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대한민국 교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고 한다. 왜냐면 조교가 있으니까. 조교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표적인 3D업종이다. 논문 통과 때문에 교수에게 말 한마디 크게 못하고 연구보다 비서 노릇에 바쁘다. 연구도 수업준비도 대신 해주니 비서도 그런 비서가 없다. 박노자 교수(오슬로국립대학 한국어과)가 2000년에 쓴 ‘조교들이여 일어나라’라는 글이 그토록 화제가 된 이유도 어떤 조교도 할 수 없던 말을 교수가 대신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시켜 보고자 몇몇 대학들이 조교노조를 만들었지만 흐지부지 되다 이름도 없이 사라지곤 했으며 최근까지 꾸준한 활동을 보이는 곳은 서원대학교뿐이다. 조교라는 직업 특성상 몇 년 이상 근무하지 않기 때문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라는 논란이 많은 시점에서 서원대학의 활동은 많은 시사를 준다.

이력서에 한 줄 넣지도 못해

“일본의 경우 교수마다 비서와 조교가 따로 있습니다. 조교는 그야말로 행정 일만 하거나 연구를 돕는 거죠. 그러나 우리는 대학원생들이 비서 노릇을 합니다. 교수의 일정체크는 물론이고 강의를 할 경우 자료를 모아주고 모은 자료에 강의하기 좋게 형광펜으로 표시하기도 합니다. 시험감독도 대신 들어가죠. 물론 감독수당은 조교에게 가지 않습니다. 그게 일반적입니다. 국립대와 사립대는 또 달라요. 국립대의 조교는 하나의 행정직원이죠. 교수는 추천만 해줄 뿐 어떤 개입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립대의 조교는 교수 눈에서 벗어나면 바로 관둬야 합니다. 어느 날 다른 조교를 뽑아 내 자리에서 일하고 있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더구나 조교는 이력서에 한 줄 넣지도 못합니다. 경력인정이 안 되기 때문이죠.”

깊숙이 들어가면 이 문제는 비단 교수가 조교를 심부름꾼 취급하는 천박한 지식인의 횡포에 그치지 않는다. 신분이 모호하기 때문에 학교와의 관계도 원만치 않다. 일을 시킬 때만 교직원으로 취급할 뿐 어떤 보장도 복지도 없다. 이것이 조교들이 앓는 또 다른 고통이다.

강 위원장은 교직원의 입장에서 조교들이 받고 있는 불합리한 처사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증언했다.

“우리의 소속은 교무과에 있어요. 거기서 명령하는 것에 수동적으로 일합니다. 학교는 신규를 선호합니다. 학교 돌아가는 걸 잘 모르기 때문이죠. 조교가 업무파악 안된 틈을 타 일을 부여합니다. 사학연금과 의료보험을 신청하려고 해도 학교는 무조건 안 된다고 해요. 연금을 책정하는 사람조차도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냐를 묻습니다. 사학연금을 신청하기 위해 학교를 통해 행정실에 협조 요청했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 조교 중에서 유일하게 제가 연금을 신청한 사람일 겁니다. 학교가 조교에게 이런 것을 유도하면 정규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안 하려고 하죠.”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조교의 업무규정을 명확하게 하고 신분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학교에서조차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조교의 업무인지 모르고 있다. 일을 교직원보다 많이 시키지만 휴가를 안정적으로 쓰게 하는 일 등은 없다.

“개인 관리비, 신용카드비 납부까지 시키는 교수들이 많았으나 단체교섭 때 부당행위 하지 말라고 노조가 말한 후 많이 사라졌어요. 업무상 부당하게 일하는 게 있으면 위원장이 알아보고 교무과에 항의합니다. 한 명의 조교는 학교가 우습게 보지만 노조차원에서 항의하면 쉽게 거부하지 못해요. 최근 들어 조교의 권익이 서고 있습니다. 처음 노조가 만들어진 이유는 재단비리가 발생했을 때 재단과 싸우기 위해서 였죠. 조교실 문을 닫으면 학교 업무가 마비돼요. 파워를 발휘해 비리재단이나 박쥐같은 교수를 내쫓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 조교노조에서는 월급인상이나 조교업무 규정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권리찾기 나서야

어떤 교수들이 조교를 가장 피곤하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위원장을 비롯해 주변 조교들이 그동안 쌓였던 것을 말한 뒤 서로 맞장구 친다.

“저는 못들은 척하는 교수들이 제일 싫어요. 예를 들어 모임이 있다는 보고를 조교가 해도 그 모임에 마음에 안 드는 교수가 있다면 못 들은 척 하는 거예요. 그런 후 나중에 조교 핑계를 대죠. 토요일에 근무하게 하는 교수도 정말 싫어요. 조교는 원래 토요일에 근무하지 않지만 교수들이 토요일에 나올 경우 혼자 일을 못하니 나오게 하는 거죠. 물론 특별근무 수당은 받지 못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출근하는 교수도 없어요. 수업시간이 있을 때만 나와요. 그러면서 출근 안 할 때 해야 하는 모든 일을 조교에게 떠넘기죠. 청주는 서울이랑 가까우니까 교수들이 대부분 서울에서만 활동해요. 연구를 하고자 하는 교수라면 지역사회에 가까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동문제로 수업준비 못하니까 더 조교에게 떠넘겨 버려요.”

이처럼 조교들은 학교와 교수라는 두 가지 굴레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노조는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과제들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분명히 해주고 있었다. 임금부분에도 차이가 난다. 현재 서원대의 경우 조교 연봉이 1200만 원 이상인데 이만큼 온 것도 노조덕분이었다. 원래의 월급 수준에서 두 배 이상 오른 것. 조교가 권리를 찾는 방법은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고 요구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위원장은 충고한다.

“예를 들어 휴가문제가 있죠. 생리휴가 쓰는 조교를 본적이 없어요. 그러면 찍힌다고 대부분 포기해요. 그나마 한 과에 조교가 2명이면 괜찮지만 혼자일 경우엔 자리를 비우지도 못하게 해요. 교수들은 조교들이 사무실 비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교수들은 개인업무를 다 떠넘기면서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를 다 받으라고 우겨요. 휴가나 월차도 가지 못하죠. 전화 받을 학생을 구하고 휴가를 가라고 하는 데 그건 사실 조교가 구할 일이 아니에요. 근로 학생을 활용해서 학교가 배치해야 하는 문제죠. 노조가 있으면 단체교섭 때 이를 제시할 수 있어요. 우리가 권리를 찾지 못하면 학교는 이렇게 대우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싸울 때는 근거가 있어야 해요. 그냥 말로 해서는 소용이 없어요. 인터넷을 뒤져서 각종 법을 찾고, 그런 후 왜 지켜지지 않느냐고 요구하며 대화를 시작해야 해요. 그러니까 생리휴가·월차 제발 좀 쓰세요. 그래야 학교가 변한다니까요.”

변화는 한 단계씩 온다.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없다. 심부름꾼 노릇만 했던 조교는 교수가 되어 조교를 심부름꾼 취급할 수밖에 없다. 조교들에게 일어나라고 말하는 교수가 더 늘어야 한다. 행동은 학습되는 것이니까. 익숙해지면 무엇이 상식이고 진리인지 헷갈리게 마련이다. 교수와 학교의 비합리적인 행동들에 대해 뒤에서 쓴웃음만 짓기 보다 이제 조교도 하나의 직업인이라고 스스로 인식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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