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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제일은행 주주총회 참석 이후 주주대표소송에 필요한 82만 주를 모으기 위한 신문광고

1997년 제일은행 주주총회 참석 이후 주주대표소송 제기에 필요한 82만 주를 모으기 위해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 배경과 문제의식 ┃

 

참여연대는 창립 초기부터 재벌개혁을 주요 과제로 삼고, 정책위원회 산하에 경제력집중대책위원회를 두어 재벌체제의 문제점과 개혁방안을 연구했다. 총수일가의 지배체제, 문어발식 사업확장 등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와 경제력집중의 실태를 살펴보고, 이를 규제하기 위한 정책수단들을 검토했다. 그러나, 재벌규제 정책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경실련이 재벌개혁을 위한 정책과제들을 정리해서 내놓았지만 현실화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촉구하는 것 외에 시민운동 차원에서 재벌개혁운동을 효과적으로 벌이기 위한 방법론에 더 많은 고민이 집중되었다. 참여연대는 무엇보다 재벌기업들의 이해관계자가 당사자로 나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노동조합이 직접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방안이나 소비자 불매운동 등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회사 주식을 보유한 우리사주조합은 경영진의 영향력 하에 있고,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법제화하는 것은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재벌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높은 상황에서 불매운동 역시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던 중 참여연대는 기업의 또 다른 이해관계자인 소액주주들을 주목하게 되었다. 1996년 4월 당시 김영삼 정부는 신(新)대기업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주도한 신 대기업 정책은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 방안이 그 핵심으로, 소수주주권 행사요건 완화, 외부감사제도 정비, 기업공시 강화 등이 포함되었는데, 참여연대는 이 중 소수주주권에 관심을 가졌다. 불법 경영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주주대표소송, 회사의 회계 장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장부열람권 등은 재벌의 불법경영 실태를 파헤치고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수단으로 보였다. 당시 상법상 이러한 소수주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회사 발행주식의 5%를 확보해야 했는데, 신 대기업 정책은 이를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이었다. 참여연대는 곧바로 소주주주권 연구팀을 구성하고 관련 사례와 판례를 조사했다. 그 때까지 소수주주권이 행사된 사례는 십여 건에 불과했는데, 2대 주주나 기관투자자에 의한 경우가 많았다. 참여연대는 재벌개혁과 소액주주들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 소수주주권을 행사하는 새로운 시민운동을 기획한 것이다. 1996년 12월 16일, 상장회사에 한해 소수주주권 행사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증권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대표적인 소수주주권인 주주대표소송의 제기 요건은 회사 주식의 1% (자본금 1천억원 이상인 대규모 회사의 경우 0.5%)로 완화되었다.

 

1997년 1월, 재벌순위 14위인 한보그룹이 부도를 냈다.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고 한보그룹 계열사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큰 충격을 주었다. 한보그룹이 특혜대출로 몸집을 불려왔고 여기에 뇌물, 비자금, 횡령 등 총수일가의 불법행위가 얽혀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한보그룹에 거액을 대출한 은행들도 위기에 처했고,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가장 큰 타격을 입어 급격히 부실해졌다.

 

참여연대는 한보 계열사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것을 검토했다. 그러나 한보 계열사들은 대부분 비상장이고 소액주주들의 비중이 크지 않아 소수주주권 행사에 필요한 지분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한보그룹에 불법대출하여 부실해진 제일은행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소액주주들이 많았다. 80년대 시중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국민주 방식이 활용되어 소유가 분산되어 있고, 일반 국민들도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제일은행을 상대로 소액주주들을 규합하여 소수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 주요 활동 경과 ┃

 

참여연대는 먼저 3월로 예정된 제일은행 주주총회에 참석하여 부실경영 책임을 묻기로 했다. 주주총회에 참석할 권한을 위임받기 위해 2월 5일부터 명동 증권가에서 제일은행 소액주주를 모집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 날 현장에서 12명의 주주로부터 6천주를 모집한 것을 시작으로,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접한 소액주주주들이 자발적으로 주주권한을 위임해주어 3월 6일까지 총 20명으로부터 14만 1, 471주를 모집하였다.

 

참여연대는 주주총회에 대비하여 영업보고서를 꼼꼼히 검토하고 문제점을 분석하여 질문지를 만들고 발언을 준비했다. 또 주주총회장에서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제일은행 노동조합에 협조를 구하고 은행 측에도 미리 질문지를 보냈다. 1997년 3월 7일, 참여연대 소속 전문가와 간사들은 주주들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아 다른 주주들과 함께 제일은행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당시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장하성 교수, 박원순 사무처장, 김칠준 변호사, 주주 이내영 씨, 이승희 간사 등 12명이었다.

 

당시 주주총회는 경영진이 안건을 상정하면 형식적인 동의와 재청에 따라 박수로 통과시켜 20분 내로 끝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진행발언을 하고 총회장을 채우기 위해 직원들이 동원되었다. 제일은행 주주총회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은행 직원들로 가득찬 총회장에서 참여연대 주주들은 발언권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은행 측은 부실경영 책임을 묻는 참여연대 주주들의 질의에 제대로 답변도 하지 않고 발언권조차 주지 않았다. 공들여 준비한 질문은 거의 하지 못했고, 발언 중에 직원들에 의해 강제로 앉혀지기도 했다. 대신 ‘총회꾼’으로 보이는 일부 주주들이 일방적으로 경영진을 옹호하면서 발언권을 독점했다. 의안 심의와 의결을 위한 정당한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참여연대 주주들이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는 가운데 은행 측은 표결절차도 없이 의결을 강행하여 주주총회는 1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참여연대는 주주들의 권한을 묵살한 책임을 묻기 위해 주주총회 직후 주주총회결의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또 주주들의 발언을 막기 위해 은행 측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의안 통과를 재촉하는 등 다른 주주들의 주권행사를 방해한 총회꾼 3명을 업무방해죄로 고발하였다.

 

주주총회는 제일은행 소액주주운동의 시작일 뿐이었다. 참여연대는 제일은행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기로 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주주대표소송을 위해서는 82만 주가 필요했다. 증권가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주주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소송에 참여할 주주들을 모았다. 3월 21일자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에 “벙어리 냉가슴…, 소액주주도 이제 목소리를 냅시다” 라는 제목으로 제일은행 주주들을 찾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드디어 1997년 6월 3일, 참여연대는 61명의 주주들로부터 제일은행 총주식의 0.5%가 약간 넘는 84만 주를 모아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 등 4명의 이사들을 상대로 400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대표소송을 제기했다.

 

 

┃ 성과와 의미 ┃

 

1997년 12월 12일 서울지방법원 민사 22부는 참여연대가 제일은행 주주 이내영 씨를 원고로 제기한 주주총회결의취소소송 선고심에서 주주총회의 모든 결의사항을 취소하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주주총회가 요식절차로 전락한데다, 금품을 요구하며 총회 진행을 방해하는 총회꾼의 폐해가 심했기 때문에,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주주로서 주주총회에 참석한 것은 매우 획기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고, 일부 언론에서는 ‘민주 총회꾼’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주주총회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주들이 모여 1년 동안의 경영을 평가하고 이사를 선출하는 등 주주로서의 기본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소액주주 권리 보호와 기업 감시의 출발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주들의 발언권과 의결권을 묵살하는 주주총회의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할 필요가 있었다. 재판부 역시 이러한 문제제기를 수용하여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무시하고 강행된 주주총회는 무효라고 판결하였다. 이 소송은 은행의 항소로 2심이 진행되었다. 1998년 8월 25일 서울고등법원은, 비록 주주총회 결의에 하자가 있어 취소함이 마땅하나 이로 인한 경제적 파장을 고려하여 재량기각하였다.

 

참여연대는 주주대표소송에서도 승소하였다. 1998년 7월 24일 서울지방법원 민사 17부는 원고 측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여 이철수 전 행장 등 4명의 피고들에게 총 400억 원을 은행에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 2심과 대법원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다만, 1999년 6월 제일은행 주식의 전량소각으로 원고 주주들의 지분이 모두 없어져 소송이 각하될 위기에 처하자 참여연대는 은행 측에 공동소송참가인 참여를 요청하였고, 소액주주들의 청구가 각하되는 대신 은행 측의 청구가 인정되었다. 제일은행이 공동소송참가인으로 참여하면서 배상액을 10억 원으로 낮춤에 따라 최종 배상액은 10억 원으로 결정되었다.

 

주주대표소송은 주주들이 회사를 대신해서 제기하는 것으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이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회사에 끼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주주들이 아닌 회사에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익 목적의 소송이며, 불법 경영에 대해 금전적인 책임을 지움으로써 이사들의 책임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제일은행 주주대표소송은 국내 사법사상 최초로 소액주주에 의한 주주대표소송이었고, 당시 부실경영 기업주와 경영진의 책임문제와 관련하여 귀추가 매우 주목되었다. 이후 참여연대는 본격적으로 재벌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액주주운동에 돌입하였고, 기업의 대주주와 경영자들은 소수주주권을 무기로 감시자로서 행동하는 시민단체와 소액주주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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