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05월 2023-04-26   1547

[이슈] 학교는 더 ‘난장판’이 되어야 한다

조영선 서울지역 고교 교사,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

학생 간 폭력 문제를 ‘학교폭력’으로 정의하고 국가적인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1996년도이다. 앞서 1995년도 말에는 학교폭력 가담자로 2만 9,000여 명을 적발하고 9,068명을 구속1하기도 했다. 가해자를 엄벌해 학교폭력 해결책을 모색하는 관행은 이미 약 25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미성년자도 구속할 정도로 강력했다.

학교폭력이 다시 크게 사회 문제가 된 것은 2012년이다. 이때의 대책 역시 1995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쿨폴리스2, 일진경보제3를 도입하고 CCTV를 설치하는 등 공권력을 강화해서 학교폭력을 해결하거나 억제하려고 했다. 마치 간첩 신고 같은 원스톱 신고체계 ‘학교폭력117’이 도입되면서 학생 간 폭력은 이제 학교가 아니라 경찰이 관할하는 사안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강화된 정책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조치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재하는 시스템이다.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과 함께 입시에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가해자 엄벌주의에서 학교폭력 해결은 ‘피해 학생의 회복’이 아니라 ‘가해 학생의 징벌’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폭력을 신고한 피해 학생은 오히려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는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무엇보다도 생기부 기재 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학교폭력자치위원회는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자치적 결정을 하는 곳’이 아니라 마치 사법기관처럼 되어버렸다. 당사자들은 위원회 결정에 불복했고, 학교는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쟁송爭訟의 장이 되었다.

쟁송 과정에서 얼마나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는지는 학생의 가정 배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학교폭력 분야는 변호사계의 블루오션이 되었다. 입시에 불이익이 될까 두려워하는 학부모들이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조치사항에 대해 재심 청구 및 항소를 하거나 아예 학교폭력자치위원회 단계에서부터 변호사를 선임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학교 역시 부모의 배경에 따라 다르게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부모의 조력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나는 부모가 힘이 없어서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즉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은 가해자에게 준사법적 조치를 내리고 입시에 불이익을 안겨줄 정도로 강력하지만, 만인에게 평등하지는 않은 것이다.

잘못된 행위에 대한 처벌이 평등하지 않을 때,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감각은 더 무뎌진다. 가해 행위에 대해서도 ‘미안하지만 내 미래에 영향을 줄 만큼 큰 문제는 아니다. 폭력은 일시적 행동인데 그 책임이 영원히 주홍글씨로 남는 것은 불공평하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해자 앞에서 피해자는 더 큰 분노와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피해자에게는 가해자의 사과와 관계 회복이 필요한데, 이 기본적인 과정이 작동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학교폭력 조치사항을 생기부에 기재하는 것은 이렇듯 사건 당사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학교폭력예방교육은 어떨까? 학교폭력예방교육은 학생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해서 협박하거나 ‘잠재적 피해자’로 간주해서 “신고하라”고 주문하는 2가지 내용을 위주로 진행된다. 교육 내용은 ▲학교폭력의 정의와 유형 ▲학교폭력에 따른 조치사항 등으로 구성되며, 중심 내용은 “조금이라도 학교폭력에 연루되면 생기부에 기재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 학생들은 타자화되어 신고와 처벌 외에 다른 방법을 주체적으로 모색할 수 없게 된다

가해자로 지목받은 학생은 자기 행동이 어떤 면에서 폭력적인지 성찰할 겨를도 없이 가해를 부인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큰 불이익인지 저울질한다. 즉, 가해 혐의를 받는 학생들은 미안해서가 아니라 ‘신고당할까 봐’ 사과한다. 결국 피해자인 학생은 신고하든 안 하든 피해를 인정받고 공감받기가 어려워진다.

학생들에게는 피해를 목격하면 신고할 권리만 있을 뿐,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거나 해결방안을 실천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통해서는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얻지 못하고 괜히 시끄러워지기 때문에 신고할 권리도 행사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폭력이 발생해도 외면하게 되고 무력감을 느낀다.

차별과 폭력에 대항하는 힘

그렇기에 학교폭력의 새로운 해결방안을 다시 고민하는 지금 학생인권조례가 제시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5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 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사람은 누구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고 인간답게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는 공적인 선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학생인권조례의 차별금지 조항에 성소수자를 명시하는 것 역시 종교적 신념의 문제가 아니다. 성소수자 학생들을 폭력에서 보호할 대상으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이다. 실제 ‘여성적인 남학생’은 쉽게 차별의 대상이자 폭력의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차별은 이렇게 폭력을 낳는다.

내가 못나서 차별을 겪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못났다”는 생각은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만든 허상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깨닫게 해야 한다. 그랬을 때 학생들은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차별적인 구조를 성찰하는 것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상황을 드러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피해를 말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해당 사건을 그저 ‘내가 찌질해서 당한 일,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차별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한다면, 피해를 드러내는 일은 ‘개인적 치부를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 문제에 대한 용감한 증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인식이 달라지면 학생들은 자신의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게 되고 힘 있는 사람에게 위축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힘을 외면하면 결국 그 힘이 자신에게도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타인의 고통에 오지랖 넓게 끼어들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인권교육에서도 다루는 내용이지만, ‘인권에 대한 교육’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교실에서 인권교육을 해도 현실에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학생들의 비웃음만 살 것이다.

나아가 학생들이 인권을 침해당했을 때 그 상대가 누구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인권침해를 구제받도록 하는 기구가 설치되어야 한다. 더불어 권력이 있는 사람의 폭력에 대해 더욱 단호하게 대응하는 분위기도 자리 잡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폭력을 사용해서 내린 결정이 무효가 되고 폭력을 쓴 주체가 권력을 잃을 때, 폭력이 자리 잡을 여지도 사라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나 관리자에 의해 학생이 폭력을 당했을 때 가해 당사자뿐 아니라 학교장 등에게도 책임을 묻고 학교 전체에 인권 연수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학교 공동체가 폭력에 대해 공론화하고 함께 성찰하면 학생들도 경각심을 가질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자신에게 문제를 제기했을 때, 교사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교사의 사과를 통해 학생들은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배우고 교사에 대한 인간적 신뢰도 갖게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폭력적 행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평화는 조용하지 않다

흔히들 평화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조용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조용한 상태를 숙주 삼아 정작 힘 있는 사람들의 폭력이 용인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학생인권조례는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든다’는 이유로 혐오 세력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학교는 지금보다 더 시끄러워야 한다.

권력 있는 사람들이 남용한 힘에 맞서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문제 제기할 수 있을 때, 그로 인한 ‘시끄러움’이 힘의 균형을 새롭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힘이 균형을 찾을 때 학교폭력이 숨 쉴 토양을 잃게 되지 않을까?

1  “학교폭력 9,068명 구속”, 동아일보, 1995.12.14.
2  전·현직 경찰, 퇴직 교사 등으로 이루어진 일정한 인력을 학교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제도
3  학교에 일진이 발견되면 경찰에 신고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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