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06월 2023-05-30   845

[회원 인터뷰] “참여연대 회원을 만나 버틸 힘을 얻었어요”

이은주 회원
이은주 회원 ©박영록

모든 회원이 소중하지만, 특히 이은주 회원은 참여연대에 각별한 사람이다. 그는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강좌 20여 개를 섭렵한 열혈 수강생이자 급기야 직접 강좌까지 맡은 강사이다. 그뿐만 아니라 ‘참여사회 읽기모임’을 이끈 진행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약 2년간 《참여사회》를 통해 19차례에 걸쳐 회원들의 이야기를 전해준 고정 필진이다. 아쉽게도 이제 본업에 더 충실하기 위해 《참여사회》 필진을 그만두는 이은주 회원을 만나보았다. 그동안 질문을 던지는 자리에 있다가 이제 답을 하는 자리에 앉은 그는 조금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늘 그랬듯이 차분하게 조용조용 대화를 이어 나갔다.

– 2009년에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어떤 계기였을까요?

2008년에 첫 회사에 들어가고 다음 해에 가입했어요. 사회 초년생으로 회사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히면서 스스로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지곤 했고요. 또 그때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사회 이슈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했죠. 그래서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를 듣고 참여연대 회원가입도 했어요. 그리고 참여연대는 제 선배나 교수님들이 활동하는 곳이기도 했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 학생인권운동을 했는데, 여러 사회단체를 만나면서 ‘진보적 학풍인 성공회대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성공회대에 가보니 졸업생 중에 참여연대에 있는 분이 많았거든요. 저는 시민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는데요. 참여연대 회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20여 개 강좌를 듣고 나중에는 직접 진행까지 했지요.

1년에 20개 듣는 분도 꽤 많아요(웃음). 저는 직장 다니면서 저녁에 많이 들었고요. 특히 매력을 느낀 것은 ‘느티나무지기’ 활동이었어요. 수강생이 직접 강좌 모니터링도 하고 시민교육 기획도 하는 일종의 운영위원회 같은 역할이에요. 저는 이전에도 성인문해교육이나 인권교육 기획을 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중단했거든요. 느티나무지기가 되어서 다시 기회를 만난 거죠. 그때 참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어요.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워크숍 형태로 강좌를 진행해 수강생들이 함께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많이 냈어요. 마침 제가 평화교육 워크숍을 하는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져서 느티나무에서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죠.

– 강좌도 여럿 진행했는데 어떤 순간이 기억에 남으셔요?

기억 나는 순간이 정말 많은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워크숍을 기획하는 워크숍’이에요. 실무자·느티나무지기·강사진이 함께 3차례 워크숍을 했어요. 사람 몸을 크게 그린 다음 ‘민주주의 시민에게 필요한 말과 행동, 태도’를 포스트잇에 적어서 연관된 각 신체 부위에 붙였어요. 그러고는 느티나무에 이미 관련 강좌가 있으면 해당 포스트잇을 떼어냈어요. 그러고 나니까 머리와 가슴의 연결, 즉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과제가 남은 거예요. 그때 워크숍 참가자들이 모두 전율했어요. ‘시민에게 이런 교육이 필요하구나. 지식이나 정보를 삶에서 실천하고 성찰하는 경험이 필요하구나’ 싶었죠. 그 순간의 짜릿함이 종종 생각나요.

– 2018년에는 ‘참여사회 읽기모임’도 진행했는데 어떠셨나요?

《참여사회》는 워낙 시의성도 있고 숙고할 만한 콘텐츠도 많잖아요. 글에 담긴 내용을 자기 삶과 연결해 성찰하고 각자의 언어로 표현하면서 실천 아이디어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진행은 제가 하지만 《참여사회》 내용을 설명하는 모임은 아니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많은 것을 나누고 배웠던 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정말 감사했어요.

– 2021년부터는 《참여사회》 회원인터뷰도 맡았어요. 정말 많은 일을 함께했네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고 누굴 만나도 인터뷰하듯이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 진행을 제안받았을 때 너무 신이 났어요. 이렇게 회원들을 한명 한명 가까이 만나는 기회가 흔치 않으니까요.

– 인터뷰를 통해 만난 회원의 이야기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인터뷰 글이 나오면 독자는 텍스트만 읽는데 저는 말하는 분의 호흡도 느끼고 표정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듣잖아요. 실은 개인적으로 제가 좀 침울했던 시기에 인터뷰를 시작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대면 워크숍도 줄어들고 사회적으로 안 좋은 사건도 너무 많았죠. 그런데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시민, 특히 참여연대 회원들을 만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어떤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늘 물어봤고 그 대화가 저를 버티게 해주었어요. 진짜 한 분 한 분 다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글을 정리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모든 이야기가 다 중요한데 지면에는 다 넣을 수가 없잖아요. 그럴 정도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이은주 회원
이은주 회원 ©박영록

이은주 회원은 “참여연대 회원이 되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지만, 본업을 통해서도 이미 치열하게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그는 2012년에 평화교육 워크숍을 진행하는 비영리단체 ‘비폭력평화물결’의 활동가가 되었고 2018년에는 ‘와이즈서클’을 만들었다. 와이즈서클은 ‘지혜로운 협력대화 모델’을 지향하면서 시민사회단체, 시민모임 등 다양한 그룹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한다.

– 어떻게 평화교육 활동가가 되었을까요? 진로를 바꾸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닐 텐데요.

저는 11살 때부터 ‘투사’로 살았어요. 당시에 집이 굉장히 어려웠는데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학교에 가면 어른들은 그렇게 폭력적일 수가 없었어요. ‘왜 이렇게 세상이 망가져 있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어른이 잘못된 행동을 할 때마다 따져서 사과를 받아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의무감으로 그렇게 했어요. 선생님하고도 싸우고 선배들하고도 싸우고 아빠와도 싸우고. 그런데 22살쯤 되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저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24살 때 우연히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와 ‘마음비추기 피정’ 워크숍에 참여했는데요. ‘평화와 정의로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지금 내가 평화로워야 하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정말 많이 울고 많이 반성했죠. 그때 삶이 변했어요. 그러다가 단체의 제안을 받고 활동가가 되었죠.

– 그 뒤 와이즈서클을 만들면서 새로운 도전을 했지요.

어떻게 보면 참여연대 덕분에 와이즈서클이 시작된 거 같아요. 참여연대를 통해 여러 시민과 활동가를 만나면서 제가 배운 민주적 대화와 변화·학습 모델을 시민사회단체에 나누고 싶어졌어요. 시민사회단체 조직을 평화롭게 만들고 구성원들과 민주적으로 의견을 조율할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고 생각했죠. 협력대화를 하려면 개인만 대화를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과 프로세스, 문화가 필요해요. 그래서 와이즈서클은 모임 안의 대화를 진행하고 워크숍을 통해 소통 기술을 훈련하면서 조직 안에서 진행 역할을 맡은 분들을 위해 강좌도 열어요.

– 지혜로운 협력대화는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요? 너도나도 소통이 중요하다고는 하는데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소통이 안 되는 걸까요?

소통 기술도 필요하겠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존재 방식’이에요. 우리는 계속 찬반 토론만 배운 것 같아요. 이기고 지고, 맞고 틀리고, 잃고 얻고,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이런 토대에서 대화하려다 보니 만족스러운 대화를 경험하기 어려워요. 일단 상대방을 ‘싸워서 이겨야 하는 존재’로 보기보다 ‘나와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하는 파트너’로 여겨야죠. 열린 마음으로 판단을 유보한 채 개방적인 자세로 대하는 것이 중요해요. 요즘엔 아예 소통을 시작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보면 소통은 불편한 게 당연해요. 사람들은 서로 생각도 다르고 입장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르잖아요. 소통하려면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죠. 그런 불편을 인내하지 않고 회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 비영리단체 대상의 워크숍도 많이 진행했죠. 단체들은 협력대화를 잘하고 있나요?

비영리단체는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모였다는 정체성이 강하다 보니까 자칫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공격적일 수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옳음과 상대방이 생각하는 옳음이 다를 수 있는데, 이런 차이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시도가 부족해서 서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물론 모든 단체가 그런 건 아니죠. 정기적으로 ‘가치의 날’을 만들어서, 예를 들면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대해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식으로 대화의 자리를 이어가는 경우도 보았어요.

– 참여연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고 또 여러 비영리단체를 만나보셨는데요. 참여연대에 바라는 점이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없는지 궁금해요.

구체적 아이디어는 아닌데…. 일단 큰 방향성만 이야기할게요. 에너지에는 위력force이 있고 힘power이 있는데요. 위력은 저항을 불러오는 에너지이지만, 힘은 모든 걸 흡수하는 중력 같은 에너지예요. “당신은 이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위력의 힘으로는 자발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려워요. 사람들은 지적을 듣는다고 당장 “바꾸겠습니다”라고 답하지 않거든요. 변화는 원래 불편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자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게 바로 힘이죠. 어떻게 하면 위력이 아닌 힘의 방식으로 시민운동이 가능할까. 저에게는 늘 물음표이고 또 실현하고 싶은 주제이기도 해요.

– 마지막 질문입니다. 회원님이 그동안 인터뷰에서 많이 던진 질문이죠(웃음). 나에게 참여연대란?

참여연대는 저에게 고목이에요. 한 오백 년, 천 년 된 나무 있잖아요. 긴 세월 동안 그 자리에 뿌리박고 생명을 유지하는 고목이요.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어도 참여연대가 계속 고목 같은 존재로 함께 해주길 바랍니다.


박효원 미디어홍보팀 활동가 

사진 박영록 

녹취 조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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