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06월 2023-05-30   1554

[이슈] ‘밥값’ 못하는 쌀 정책의 역사

김태호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1990년대 초까지도 식량정책, 줄여서 양정糧政은 우선순위가 무척 높았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주곡인 쌀의 생산 수요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양정의 핵심 과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급을 맞추는 것이었다. 40대 중반 이상의 나이라면 도시락 검사나 강제적인 혼분식 장려 운동 등을 기억할 것이다. 모두 당시로서는 절박한 양정 시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농정農政은 양정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농민의 편에서 정책을 생각하는 행정가나 정치인도 별로 없었고, 농민이 정책의 주체로 고려되지도 못했다. 농민은 국가에서 정한 쌀 생산 목표를 채우는 수단처럼 인식되어왔다. 국가는 농민이 어떤 작물을 얼마나 생산할지도 사실상 감시하고 처벌했다. 농민은 심지어 생산된 쌀을 원하는 대로 처분하기도 쉽지 않았다.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가의 의무 매입 조항으로 논란이 된 것과 정반대로 한때는 국가가 농민의 쌀을 강제 매입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재정 누수, 농민의 도덕적 해이’ 등을 명분으로 양곡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들 중 누구도 과거의 강제 매입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농민을 종속적으로 동원한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갑자기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시장경제의 기본질서’를 내세우며 농민을 비난하는 것이다.

쌀값 폭락을 비판하는 집회에 참여하고자 나락을 실은 트럭을 타고 상경 중인 농민
쌀값 폭락을 비판하는 집회에 참여하고자 나락을 실은 트럭을 타고 상경 중인 농민 © 민중의소리

일제 공출에서 시작된 쌀 수매

쌀 수매제도의 기원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쌀 수급이 긴박해지자 조선총독부는 1939년 ‘미곡米穀배급통제법’을 제정하여 쌀의 시장 유통을 금지하고, 쌀은 강제 공출하면서 농민에게는 만주에서 들여온 콩과 피 등 잡곡을 배급하였다. 이어서 1943년 식량관리법을 제정하고 공출 대상을 40여 종의 곡물과 채소류로 확대하였다. 쌀 수요가 높던 시절이므로 국가가 사들이는 가격은 시장가격보다 낮았고, 사실상 쌀을 헐값에 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공출은 미 군정기와 대한민국 초기까지도 이어졌다. 정치 사회적 불안이 이어지면서 쌀 시장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둔 직후 쌀 시장 자유화를 선언했던 미군정은 시장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자 부랴부랴 1946년 미곡수집령을 발동하여 다시 통제의 고삐를 조였다. 1

하지만 당시 공출이 순수하게 국내 쌀 시장 안정을 위한 것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수출 상품을 고민하던 이승만 정부는 국제 쌀 시세 차익을 노리고 일본 쌀 수출을 기획했고 미국의 비료 원조까지 활용해 가며 1950년 10만 톤의 쌀을 생산해 수출했다. 국내 수요도 충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행한 기아飢餓수출이었다. 당장 쌀을 팔아야 버틸 수 있던 영세 농민들은 시장가격보다 한참 낮은 가격이라도 공출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2

추곡수매 제도는 1960년대 말까지 농민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쌀을 시장에 내다 파는 편이 더 비싼 값을 받기 때문이다. 이 추세가 바뀐 계기는 바로 통일벼를 앞세운 1970년대 녹색혁명이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의 허문회 교수는 아열대 품종인 IR8과 온대 품종을 교배한 IR667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한국 농촌진흥청은 이 쌀을 ‘통일’로 명명하고 전국에 보급했다.

여러 조건이 잘 맞으면 통일벼는 월등히 많은 수확을 보장했다. 하지만 추위에 약했던 탓에 재배 방법도 다소 복잡하여 노동력과 영농 비용이 많이 들었다. 또한 인디카 품종(아열대 벼)과 자포니카 품종(온대 벼)의 잡종이었으므로 소비자에게는 찰기가 부족하고 맛이 낯설었다. 그래서 기존 자포니카 품종에 비해 시장가격이 낮게 형성되었다. 통일벼를 심어 어렵게 생산량을 늘리더라도 가격이 내려가 총수입은 그다지 늘지 않는 허탈한 상황도 일어나곤 했다. 3

이 상황에서 추곡수매 제도는 통일벼 재배를 유도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통일벼를 추곡수매할 경우 쌀 등급을 1단계 상향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추곡수매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쌀을 나라에 파는 것이 유리해졌다. 정부는 통일벼를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여 시세에 가깝게 도시 소비자들에게 팔았으므로 상당한 재정을 소모하게 되었고, 이는 ‘이중곡가제’라고 불리게 되었다.

정부의 쌀 수매량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쌀 생산량의 10%를 밑돌았고, 배정된 추곡수매 예산도 다 쓰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추곡수매를 기대하고 통일벼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늘어나면서 1977년 무렵에는 추곡수매 비중이 약 25%에 이르렀다. 통일벼와 추곡수매를 매개로 농민과 정부가 일종의 계약재배 관계를 맺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일방적으로 파기되는 사회계약

하지만 언제까지나 적자재정을 감수하면서 이중곡가제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각종 당근과 채찍을 동원하여 농민들을 통일벼 재배로 몰고 간 것도 정부였지만, 쌀 자급의 전망이 구체화하자 발을 뺀 것도 정부였다. 쌀 자급을 달성한 1977년 가을에는 흥겨운 분위기가 무르익었지만, 농정의 방향은 이미 바뀌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78년부터 정부는 고미가 정책을 포기하고, 쌀 이외의 과채류와 축산물에 대한 수입 개방 폭을 늘리는 등 농정의 기조를 전면적으로 바꾸었다.

농민들은 농정 기조의 급선회에 반발했지만 1970년대 내내 관 주도의 농정에 길들어 버렸기 때문에 그 패러다임을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 농업에서 쌀이 지닌 대표성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다층적이고 복잡한 농정의 과제들이 ‘쌀 수매량과 수매가’라는 하나의 과제에 매몰되었고 쌀값 협상이 되풀이되는 와중에 다른 작물의 생산 기반은 허물어졌다. 그럴수록 농민은 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한국인의 쌀 소비량(1년에 약 60㎏)은 1980년대 초(1년에 약 140㎏)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쌀 생산 과잉은 한두 해 묵은 문제가 아니고 휴경이나 작목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들도 이미 여러 가지 시도되어왔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매입은 여러 대책 중의 하나일 뿐이고 다른 정책들과 어울려 시행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에도 매입 의무화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하게 날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민망하기까지 하다. 한편으로는 여야의 진정한 목적이 농촌의 구조 개혁인지 정치적 우위 확보인지 의심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 소비자들이 농촌 문제에 대해 그만큼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대한민국 역사를 돌아보면, 광복 직후의 농지개혁과 1970년대 추곡수매 제도는 농정을 지탱해 온 2개의 사회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농민은 마냥 혜택을 입기만 한 것도 아니고 희생을 감내해 가면서 국가적 목표 달성에 동참했다.

하지만 이 사회계약은 이제 일방적으로 파기되고 있다. 수매 제도는 30여 년간 누더기가 되어 이제는 정쟁 소재로 이용되는 처지가 되었고, 사회 일각에서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파기하고 대기업의 농지 소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농민들은 “시장경제의 원칙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가스라이팅까지 당하고 있다. 5

모든 제도는 역사의 산물이고, 역사의 소임을 다하면 사라지거나 바뀌는 것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제도의 변화를 논하려면 현재 드러나는 제도의 장단점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안에서 그 의의를 따지고, 꼬인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인정하고 결자해지하는 일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출’ (유광호 집필) (2023. 5. 22 접속)

2  허은 ‘제5장 분단과 근대화 그리고 쌀의 의미: 2. 일본 제국 지배의 유산, 쌀 기아 수출’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한국문화사 26)》
우리역사넷
(2023. 5. 21 접속)

3  통일벼의 역사에 대해서는 김태호 《근현대 한국 쌀의 사회사》 들녘, 2017 참조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추곡수매제도’ (주종환 집필) (2023. 5. 22 접속)

5  이오성 ‘양곡법 거부,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농민을 걷어찼다’ 시사인 814호, 2023. 4. 25.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