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_일자리
정준영 l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이번에는 저출산 대책인가?
정부는 작년 12월 발표된「제3차 저출산 ․ 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대해 정책방향의 근본적 전환을 꾀했다고 밝혔다. 저출산 문제에 있어 만혼 ․ 비혼 추세의 심화를 핵심 원인으로 진단하고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을 주요 대책으로 제시한 것이 골자다. 실로 대단한 전환 아닌가? 박수 받을 일이다.
저출산 현상은 사회체제의 산물이다.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음이라는 개인의 선택을 헤아리다보면 결국 사회현실 전체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말하는 거처럼 그간의 미시적이고 현상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종합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을 해야 마땅하다. 특히 안정된 노동과 주거의 확보 여부는 결혼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고려하게 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것은 사실 저출산 대책 버전의 노동개혁 추진계획과 다를 바 없다. 같은 해 7월에 발표된「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이 청년고용 대책 버전의 노동개혁 추진계획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본말이 전도되어 기승전노동개혁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 저출산 대책 본연의 치열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냉정하게 말하면, 청년들의 입장에서 이에 대해 공을 들여 논평할 이유조차 없다고 본다. 그것은 지난 일 년 내내 지겹게 봐왔던, 청와대가 국회 의장을 압박하여 헌정 질서를 문란하면서까지 강행하고 있는 노동개혁의 되풀이다. 시쳇말로 그것은 복붙(Crtl C+V, Copy & Paste)이다. 정부가 내놓은 것은 정책이 아니라 편집기술인 셈이다.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은 청년일자리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는가?
백 번 양보하자. 노동개혁의 내용이 정말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을 저출산 대책으로 홍보하든 청년고용 대책으로 선전하든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애초에 청년일자리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는 내용이며, 오히려 노동시장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노동개악 계획이다.
작년 9월 16일 새누리당이 「노동개혁 5대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는 데 이르기까지, 정부와 여당은 임금피크제와 해고 요건 완화를 청년일자리 대책으로 둔갑시켰다. 내용이야 어찌됐건 청년만 들먹이면 된다는 식의 영리한 상술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에 정말 청년을 위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모든 과정은 청년을 위한 것으로 포장되었다. 결국 본질은 사라지고 허상뿐인 구호만 남았다. 정부와 기업에게 물어야 할 잘못과 책임은 사라지고 세대 사이의 갈등과 노동자 사이의 갈등만이 효과적으로 조장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이 그대로 강행되면, 정작 명분으로 쓰였던 청년고용 대책은 실종되고, 불안정 장시간 노동은 더욱 확대될 것이며, 고용보험의 문턱이 높아짐에 따라 청년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다. 국회에서 예정대로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지자, 고용노동부는 2015년을 하루 남겨둔 12월 30일,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행정지침을 발표했다. 노동개악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 글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청년을 볼모로 삼아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의 내용 중에서 청년고용 활성화, 일반해고 요건 완화, 사회안전망 강화의 세 가지 내용을 청년의 입장에서 좀 더 자세히 평가해보고자 한다. 과연 저출산 대책이 될 만한 것들인가?
진짜 대책은 하나도 없는 청년고용 대책, 노동시간 단축은 오히려 역행
청년고용 대책은 청년이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청년유니온은 그를 위한 여섯 가지의 개혁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더 나은 일자리 만들기 개혁과제 요구안 (청년유니온)
1)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공정한 거래환경을 만들고 중소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괜찮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경제 ․ 산업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2) 저임금 노동을 양산하는 저숙련․저부가가치 산업을 고숙련 고부가가치 모델로 전환해나가면서 산업 종사자들의 숙련과 기술을 향상시키고 합당한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
3)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여 가장 아래에서부터 임금 수준을 충분히 높여야 한다.
4)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실현함으로써 공정한 임금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5) 잔업특근 등으로 점철된 장시간의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 나누기를 실현해야 한다.
6) 위법과 폭력이 만연하여 청년의 삶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블랙기업을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과제들은 「노사정합의문」에서 빠지거나 추상적 선언에 그치고 말았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지금의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고, 새누리당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진짜 상생고용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에 역행하는 법안이다.
일반해고의 도입, 청년노동약자에게 더 큰 위협
쉬운 해고 혹은 일상적 해고로 일컬어지는 일반해고 도입 문제에 대하여 「노사정합의문」에는 근로계약 해지 등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근로계약 전반에 대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문구가 있다.
노동조합을 통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이미 노출되어 있는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쉬운 해고로 불리는 일반해고는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아직 숙련수준이 낮고 노동시장에서의 지위가 취약한 청년에겐 더욱 그러하다. 한국은 개별 직무와 성과에 대한 평가가 제도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 현재로선 저성과와 근무태도 불량을 판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사장 마음이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저성과자는 일을 못하는 사원이 아니라, 상사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는 사원이라는 웃지 못 할 우려가 들려온다.
또한 노사정위원회 논의과정에서 사회통념상 합리적이라 인정되는 경우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노동자 대표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이 도출되었다.
청년을 비롯한 대다수 노동약자들은 취업규칙이 무엇이고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본 적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취업규칙 열람을 요구했다가 해고되는 사례도 있다. 이미 취약한 조건에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이 완화될 경우 노동조합 없는 노사관계, 즉 사장님 마음대로와 다를 바 없는 상태에 있는 90%의 노동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더 받기 어려워지는 실업급여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여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회안전망, 특히 고용보험의 개선을 약속했다. 한마디로 쉬운 해고의 도입과 사회안전망의 강화를 교환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미 일상적 고용불안에 노출되어 있는 노동약자에게는 사회안전망의 강화가 절실하기도 하다.
「노사정합의문」에는 실업급여 제도를 개선한다는 사항으로 실업급여 지급 기간 연장, 수준 인상, 대상 확대 등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문구가 포함되었다. 그것은「노동개혁 5대 법안」의 하나로 김무성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용보험법」개정안의 핵심 내용에 반영되었다. 겉으로는 충분히 고용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며 단기고용과 실업을 반복하는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보장성이 약화되고 문턱만 크게 높아져 사각지대가 늘어난다.
법안에 따르면 효율화를 빙자하여 실업급여를 받기가 더 어려워졌다. 180일 이상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되었던 것이 270일 이상으로 진입장벽이 높아져 있다. 실제 일하는 날을 기준으로 하니 일주일 5일 근무로 따져 1년 정도 재직상태를 유지하며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수급 자격이 생긴다. 그 이하의 단기계약 일자리이거나, 조기 퇴사 혹은 해고로 실업상태에 빠지는 경우 급여 자체를 받지 못한다. 지급기간이 30일씩 늘어봐야 소용이 없다. 더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자들이 놓이게 될 사각지대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이라는 제도가 있음에도 사각지대가 넓고 수급 요건이 까다로워 보장을 누리지 못하는 대다수 저임금 불안정 주변부 노동자의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와 여당의 계획은 분명 개악이다.
20대 희망퇴직의 시대, 노동개악은 절망을 키울 뿐
2015년 말 두산 그룹 계열의 대기업에서 20대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의 대상이 되며 논란이 일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한 20~30대부터 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 되묻고 싶다. 이래서야 청년들이 결혼하고 출산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청년에게 출산과 육아의 실질적인 자유가 있는가? 대다수의 청년들은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될 형편이다. 정규직으로 취업했더라도 당장 내일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조건이다. 결혼과 출산은커녕 자기 한 사람 생존하기에도 버거운 현실이다. 쉬운 해고와 비참한 노동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정부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저출산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자기모순일 뿐이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는 모든 아이들과 가족이 소중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이 기쁨이 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인식과 문화의 개선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정부 대책의 내용에도 사회 각 분야별 저출산 인식 개선을 위한 실천운동 확산이 포함되어 있다. 하루하루 생존을 걸고 분투를 벌이고 있는 청년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한가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삶이 안정되고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보장되면, 결혼하고 출산할 사람들은 누가 말려도 다 할 것이다. 반대로 삶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불안정해지면 아무리 인식이 개선되고 분위기가 좋아져도 정부가 바라는 결과는 절대 나올 수 없다. 여기에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할 정부 노동개혁까지 더해진다면, 예정된 절망만 키울 것이다.
청년(그중에서도 여성)을 그저 인구재생산의 국가적 수단으로 생각할 뿐, 청년의 삶과 권리를 외면한 채 청년수당 등 새로운 사회정책의 도입은 오히려 가로막고 있는, 오로지 경제성장에 종속된 변수로 인구 걱정에 빠져있는 박근혜 정부에게 고한다. 청년은 출산기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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