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5 2015-10-10   2241

[동향1] 전 국민 마루타 만들기, 임상시험 확대 및 규제완화 정책

전 국민 마루타 만들기, 임상시험 확대 및 규제완화 정책

이수정l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부장

1996년 아프리카 서부 나이지리아의 카노(Kano)라는 작은 도시에서 뇌수막염 유행이 발생했다. 의료환경이 열악한 이 도시는 국경없는 의사회 등의 국제 의료지원 단체의 무료진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6살 소녀 아나스(Anas mustapha)도 뇌수막염에 걸려 밤새 열이 펄펄 끓었고 아나스의 부모는 백인 의사들이 무료로 진료한다는 텐트를 찾아갔다. 일련번호가 쓰인 진료카드를 받고 들어간 텐트에는 아나스와 같은 병에 걸린 아이들이 많았고, 그 곳에서 아나스 또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정체모를 약을 투여 받았다. 아나스의 부모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나스의 뇌수막염은 나았다. 여기까지였으면 여느 아프리카의 미담사례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뇌수막염은 나았을지 모르나 아나스는 이후 무릎을 움직일 때마다 찌르는 듯한 아픔과 함께 딸깍딸깍 소리가 나게 되었고, 또래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지도 못하게 되었다. 아나스를 진료했던 의사들은 화이자(Pfizer)라는 세계 최대규모의 제약회사에서 파견한 의사들이었다. 그들은 나이지리아에 뇌수막염이 돌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화이자에서 새로 개발한 뇌수막염 치료제 트로반(Trovan)을 실험할 어린이들을 찾기 위해 건너왔다. 아나스가 앓게 된 관절염은 트로반의 대표적 부작용으로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아무 동의나 설명 없이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그나마 아나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소아 200여명에게 진행된 이 임상시험의 결과 11명의 어린이가 사망했고, 수십 명의 어린이가 시력을 잃거나 뇌, 폐 등 장기에 손상을 입었다.1)  화이자는 이 임상시험을 코나 ‘실험’이라고 불렀고, 카노 주정부와 피해자들이 미국까지 건너가 소송을 하면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코나실험이 하나의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코나실험’은 수많은 비윤리적인 글로벌 임상시험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많은 제약회사들이 제3세계의 빈곤층을 대상으로 비윤리적인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우리가 접하는 의약품의 대부분은, 그리고 그를 통해 제약회사가 벌어들인 돈은 누군가의 목숨을 헐값으로 사고팔며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일들은 아프리카의 이름 모를 어느 소도시에서만 일어나고 있을까? 서울은 전 세계에서 임상시험을 가장 많이 하는 도시로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국가별로 보아도 한국은 전 세계 7위라고 한다.2)  임상시험 승인건수는 해마다 늘어나 연 500건을 웃돌고 있다. 언론은 임상실험 순위가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되는 듯 유치를 장려해야한다고들 한다. 어떻게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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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제공 ⓒ참여연대 회원 박은국님

제약회사 입장에서 한국은 임상시험의 천국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의 대형 병원들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엄청난 수의 병상에, 질환별로 전국에서 몰려든 환자들을 대거 수용하고 있어 시험 대상을 모으기 쉽다. 반면 규제는 가장 약한 편이다. 또한 임상시험은 제약회사뿐 아니라 병원에서도 환영한다. 임상시험은 장례식장 등의 부대사업과 함께 병원의 수익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즉, 한국의 임상시험 유치 증가는 의학기술향상의 증거라기보다는 제약회사와 병원의 편의와 이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임상시험들은 안전하게 시행되고 있을까? 한국에서는 임상시험 숫자가 많은 만큼 그로 인한 부작용 및 사망사례 또한 적지 않다. 반면, 임상시험 피해자에 대한 구제 제도는 미비하다. 2013년에 와서야 식약처가 「임상시험 피해자 보상에 대한 규약 및 절차 마련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고, 다른 의료분쟁과 그렇듯이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인정받기 어렵다. 그에 더해, 임상시험 수행기관들은 그나마 있는 규정조차 잘 지키지 않는다. 2013년 남윤인순 의원실의 국정감사 보도자료에 따르면, 임상시험 승인건수가 현저히 높은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 병원 등 대형병원들조차 피험자 동의위반, 시험계획서 미준수 등 임상시험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 행정처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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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은 불완전한 약을 가지고 사람에게 ‘실험’을 하는 것이므로, 강력한 규제와 실험윤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비지니스 프렌들리’ 정책은 점점 ‘전국민 마루타 만들기’ 정책에 가까워지고 있다. 복지부가 지난 8월 31일 발표한 ‘임상시험 글로벌 경쟁력 강화방안’은 한국을 2020년까지 세계 5대 임상시험 강국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선진국에서는 안전성과 윤리성을 문제로 임상시험이 점차 감소하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는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더 많은 실험을 유치하여 수익을 내겠다는 것이다. 발상 자체도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지만 이 방안의 각 내용들이 가지는 문제점 또한 크다.

우선, 임상시험 관련 기관들이 가진 정보들을 한데 모아 임상시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의 건강정보 빅데이터도 이용해 제약회사에 공유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개인의 질병정보는 제외시키겠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리 익명화 시킨 정보라도 현대 디지털 기술로 얼마든지 다시 개인을 식별해 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질병 정보와 같은 민감한 정보가 휴대폰 번호가 유출되듯이 아무데나 돌아다닌다면 귀찮은 정도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당신의 비뇨기과 진찰기록, 산부인과의 출산과 유산기록, 정신과 진찰기록도 국민의 동의 없이 사기업에게 모조리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제약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이라는 것을 실시하고 있다. 매년 한국에서 실험하는 제약회사에 수천억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것도 모자라 국민의 혈세로 임상시험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3)  임상시험 홍보관을 짓고, 전 세계를 돌며 임상시험을 유치하는 임상시험 사절단까지 구성해 가면서까지 세금을 낭비하려 든다. 또한 제약회사들의 임상시험 진료비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정부는 밝히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건강보험을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은 현행법을 위반한 위법한 일이다. 건강보험은 오롯이 국민의 건강을 더욱 보장하고 보호하기 위해 쓰여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여기에 저소득층 또는 난치성 질환자들의 임상시험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계획까지 있다. 지금도 가난한 학생들과 약값을 대기 힘든 환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에게 금전적 대가나 신약을 미끼로 던지는 것은, 가난하고 아픈 이들의 절박함을 악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힘들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제3세계까지 건너가 임상시험을 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즉, 이 계획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저지르는 비윤리적인 일들을 한국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유도하는 것이다.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임상시험을 많이 할수록 일자리 창출과 경제에 도움이 되고, 신약을 국민들이 더 빨리,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임상시험을 통해 생겨나는 일자리는 고학력 전문분야에 숫자도 미미한 불확실한 일자리들이며, 임상실험 수익은 병원과 제약회사에 대부분 돌아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 해도 국민경제에 도움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국민이 새로운 의약품에 접근하지 못하는 건 임상시험을 적게 해서가 아니다. 새로운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가로막는 진짜 장벽은 높은 약값과 이를 뒷받침하는 특허법, 그리고 이 특허기간의 연장이다. 이윤을 챙기려는 제약회사들이 건강보험공단과의 협상에서 자신들이 원하던 높은 약값을 책정 받지 못하면 약의 판매를 거부하고 철수해 버리는 일은 이미 드문 일이 아니다. 제약회사들은 신약의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이유로 높은 약값과 특허기간을 정당화한다.

정부는 국민들의 건강보험 개인질병정보까지 넘겨주고 임상시험을 쉽게 하기 위해 온갖 규제를 완화해주겠다고 한다. 국민을 마루타로 내세우는 것이 창조경제란 말인가? 정부가 경제논리를 내세워 진행하고 있는 의료 영리화․상업화 정책의 본질은 정부와 기업의 배를 불리기 위해 국민 호주머니를 털겠다는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마련해 놓지 않고 임상시험을 유치하지 못해 야단인 이 정부가 얻고자 하는 것은 병원과 제약회사,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임상시험 규제완화와 확대계획은 철회되어야 한다.

1) Abdullahi v. Pfizer, Inc. 소송, 다잉 포 드럭(Dying for drug)(트루비전, 2005), 그 외 가디언지의 2011.8.12 일자 기사 등 참고.
2) http://www.konect.or.kr/index.htm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
   전세계 임상시험 프로토콜의 숫자를 파악할 수 있는 www.ClinicalTrials.gov 사이트의 분석 내용을 토대로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에서 만든 자료이다. 
3) CRO 이용비용 일부 보조 계획.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 신약개발 단계에서 제약기업의 의뢰를 받아 임상시험 진행설계, 컨설팅, 데이터 관리, 허가 대행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

월간 <복지동향> 2015년 10월호(제2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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