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2월 2014-02-07   1254

[특집] 느리고 지겹지만 꼭 이끌어내야 하는 새누리당의 변화

참여사회 2014-02월호 @atopy

한국의 정당들,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나라 걱정 좀 하는 사람들이 정당에 제언합니다. 

 

특집 정당의 실종

느리고 지겹지만 꼭 이끌어내야 하는 새누리당의 변화 이준석
민주당, 버리는 게 답인가? 이철희
민주당을 대체하려는 신당의 꿈과 현실 이대근
시민정치와 고민을 함께하는 진보정당을 향하여  김만권

 

 

[특집] 정당의 실종

느리고 지겹지만
꼭 이끌어내야 하는 새누리당의 변화

바꾼 것과 바꾸지 못한 것, 그리고 준비해야 할 것

 

이준석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 

 

 

한국 정치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는 지금까지 많이 있어왔고, 구체적으로 새누리당을 위시한 범보수 진영을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항상 그 핵심이었다. 김문수, 이재오부터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까지, 세대를 뛰어넘어 항상 소장·개혁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그 사람들의 노력이 언론의 주목을 받지만, 그 변화의 과정이 매우 느리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새누리당은 기본적으로 그 자체로 과거의 한나라당에 비해 진일보한 형태의 정당이다.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탈바꿈 시켰던 비상대책위원회는 디도스 사건과 돈봉투 사건으로 존폐 위기에 몰린 당을 개혁하기 위해 당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정강정책부터 수정했고, 그로 인해 반값 등록금 및 고교 무상화 등 전향적인 경제민주화 정책들이 보수의 아성과도 같은 새누리당의 기본 정책이 된 것이다. 유의미한 변화였다.

 

새누리당에 없는 것

 

정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 변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벤처기업가 이준석의 입장에서 새누리당이라는 정당의 가장 먼저 눈에 띈 답답함은 굼뜬 정당이라는 점이었다. 삼척동자도 알만한 사안에 대해서 당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신중론을 빌미로 지구전을 펼치는 스타일은 어떤 정보든 빠르게 접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에게 매우 지루했다. 벤처기업가라는 사람들은 60~70%의 확신만 있어도 매우 높은 성공 확률로 판단하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데 익숙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95% 이상의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어서, 더 이상 어떤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지도 않을 정도의 무위험 상황이 되어서야 움직임을 보여주곤 했다. 국민을 위해 남보다 앞서서 고민해보고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필요하지만, 그런 패기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또한 나와 같이 비대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종인 박사는 지난 대선 과정 중 사석에서 종종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이 헌법에 대한 이해가 박한 것을 지적했다. 보수가 내세워야 할 법치의 근본은 시민들이 집시법을 위반하거나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것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이 아니라, 바로 위정자가 법과 원칙에 맞게 나라를 이끄는 것에 있다는 점을 지적했던 것이다. 

 

법과 원칙을 전가의 보도처럼 언급했던 대통령들도, 사실은 헌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지적인데, 나는 새누리당의 지도부도 현재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의 지방선거 정당공천 문제에 대해 지도부가 원리 원칙에 입각해서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보면, 그렇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수정하여 당원들의 동의로 통과된 정강정책 ‘국민과의 약속’ 전문을 읽어보면 9조 2항에서 진정한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 최대한의 분권화와 예산 독립성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연 현재의 지도부는 이 조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까? 정강정책을 존중한다면, 지방선거 공천권이 사실상 국회의원들의 가장 큰 기득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개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구청장과 시의원, 구의원의 공천을 사실상 국회의원이 맡아서 하는 상황에서, 정강정책에서 규정한 지방자치의 실현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참여사회 2014-02월호

 

새누리당의 선택

 

속도감이나 전가의 보도가 되어버린 ‘법과 원칙’이라는 용어에 대한 안타까움은 부차적일 수 있지만, 새누리당을 개혁하는 과정에 1년여 참여하고 나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최근의 새누리당이 다양성의 장려보다는 획일화를 선택했다는 점에 있다. 2012년 짧은 기간이나마 비상대책위원회가 가동되던 때에는, 외부 출신 비상대책위원들이 본인들에게 주어진 언론의 자유를 때로는 과도하게 사용한다 싶을 정도로 이용하면서 다원화된 정당의 장점을 확인시켰었다.

 

비상대책위 시절 새누리당이 어렴풋하게 정립했던 방식이, A라는 아이디어와 그 반론인 ~A의 공존이었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라는 중재자를 가운데에 두고, 어떤 정책 사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모두 여당에서 주도권을 잡아 토론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뛰어난 전략이었다기 보다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원칙적 보장의 결과물이었다. 

 

경제민주화 담론을 놓고 벌어진 김종인 전 장관과 이한구 원내대표 간의 언론전은 그러한 방식의 하이라이트였다. 경제민주화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후퇴시킬지에 대한 두 코끼리 간의 논쟁은 어느새 대중에게 경제민주화가 여야 간의 갈등 사안이 아니라 여당 내의 토론 과정으로 인식되어 갔고, 박근혜 대통령이 중재자의 입장에서 어떤 판단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실속을 가져갈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졌었다. 

 

다른 예로 문대성 논문 표절 사건과 그 처리도 당시 젊은 비대위원이었던 나에게도 사실상의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젊은 20대의 정치적 판단, 즉 “원내 과반을 무너뜨려서라도 국민의 지탄을 받는 사안에 대해서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판단이 새누리당의 아이디어로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고, 과거에 보여준 굼뜬 모습과 달리 빠르게 결말을 낼 수 있었던 그 과정, 그리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의 기성 정당이 오히려 원내 과반이라는 큰 기득권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모습에서 국민들에게 진정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개혁은 절박함에서 나온다 

 

새누리당은 150석을 상회하는 과반 의석을 보유한 정당이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155명의 의견은 차치하고, 어떤 사안에 대해 4~5가지의 의견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선 불복을 표현한 장하나 의원에 대한 제명결의안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새누리당 소속 의원 전원의 동의로 제출되었다는 사실에 새누리당의 다양성이 무너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장하나 의원의 행동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불쾌한 것은 대통령의 선거를 도왔던 내 입장에서도 다르지 않지만, 해당 발언을 통해 국회의원의 품위 유지를 근거로 제명결의안을 내는 방식은 현재 트위터 공간에서 고소 고발을 입에 담으며 상대 진영의 입막음을 하려는 모 논객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의 여유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나는 설마 이것이 과잉 징계라는 의견을 가진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 머릿속에 자리한 더 무서운 가능성은, 이견이 있는 의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본질적으로 최근 두각을 드러내는 강경보수와 상대적으로 위축된 온건보수의 연립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대연합이라는 기치 아래 사실상의 진영 단일화를 통해 집권했기에,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보수가 가지는 매우 넓은 저변을 모두 대변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굳이 과거를 상기해 보자면, 중도실용 노선을 견지하겠다고 했던 이명박 정부, 경제민주화를 제1공약으로 삼았던 박근혜 정부의 선거 전략처럼, 새누리당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강경보수의 가치만을 내세워서 선거에서 승리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최근의 강경일변도의 모습을 띤 상태로 새누리당이 지방선거에 돌입하게 된다면, 2010년의 지방선거처럼 새누리당이 참패를 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유의미한 정치개혁들은 국민들의 질타에 직면한 주류 정치 세력의 절박함 속에서 비롯된 기억이 있다. 줄여서 ‘오세훈 정치자금법’이라고 통칭되는 정치자금에 대한 법률안이 2000년대 초 이후 약 10년 간의 대한민국 정치 질서를 규정했던 것처럼, 여당인 새누리당이 느끼는 개혁의 절박함이 정치 발전을 이뤄내는 하나의 중요한 축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정치를 바꾸려면 여당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서 뛰어들었던 한 젊은 청년 비상대책위원의 노력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준석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
노원구 상계동에서 태어나, 나랏돈으로 미국 유학까지 갔다온 뒤, 교육봉사단체 <배움을나누는사람들>을 만들어 즐겁게 사회 참여를 하다, 벤쳐 창업하고, 1년 정도 정치 나들이를 하고 이제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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