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시행 앞둔 집단소송제, 재계 반발 여전

재벌개혁 연재② – 법조계, 학계, 시민단체는 '대상 확대 시행' 한목소리

 

(편집자주)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는 공동기획으로 '재벌개혁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재벌개혁 연재① – 그 법 통과되면 전 보험해약할 겁니다

98년 5월 대형 금융기관 펀드매니저들과 대규모 작전세력이 결탁한 대한방직 주가조작 사건이 적발됐다. 당시 주가 폭락으로 큰 투자손실을 본 대한방직 소액주주 21명은 작전에 참여한 펀드매니저들의 소속사인 LG화재, 제일은행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은 소액주주들의 손을 들어줬다.

2심에서 법원이 판결한 배상금은 2억1200여만원. 결국 소송을 제기한 21명의 소액주주가 평균 1000여만원의 손실을 인정받은 셈이다. 하지만 내년 4월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소송을 건 당사자뿐 아니라 주가조작사건 당시 손실을 입은 모든 소액주주들도 함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소액주주수가 1만명이고 평균 1000만원의 손실을 입었을 경우 회사측은 무려 1000억원대에 이르는 배상금을 물게 된다.

"불투명한 기업 생존 불가"

집단소송제란 이처럼 1인의 소송 제기로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까지 판결의 효력을 미치게 하는 제도로, 주로 주가 조작이나 환경, 소비자 문제 등과 같이 피해 대상이 광범위하면서도 개개인의 피해규모가 작은 경우에 적용된다.

미국에서는 이미 1940년대부터 광범위하게 적용해 왔지만, 우리나라에서 집단소송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건 80년대 후반. 하지만 90년대 들어 정부에 의해 수차례 입법이 추진됐지만 재계의 끈질긴 반발에 부딪혀 지금까지 연기돼 왔다. 집단소송에 제소될 경우 수백, 수천억원대의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감수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이를 반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증권 관련 피해에 대해서는 피해자 개인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거나 피해를 입은 일부 투자자들이 공동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 밖에 없어 소송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내부자거래, 주가조작, 분식결산, 부실공시 등 기업의 각종 불법행위에 따른 피해자가 수천, 수만명에 이르지만 피해자들이 힘을 모아 소송을 제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95년 한국강관 부도로 투자손실을 본 소액투자자 16명이 회사와 외부감사인인 청운회계법인을 상대로 분식결산과 부실감사 책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해 배상금 2억3100만원을 받고 소송을 취하시킨 것과, 92년엔 6명의 투자자가 역시 부도를 낸 (주)흥양과 경원회계사무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73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97년 IMF 사태 이후 부실기업들의 분식회계, 허위공시, 주가조작 등 각종 위법 행위들이 무더기로 드러나면서 소액 투자자 보호와 기업 활동의 투명성 강화 차원에서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무게를 얻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달 법무부는 내년 4월1일 시행을 목표로 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정 시안을 마련했고, 지난 2일 공청회까지 개최했다.

재계 빼고 '적용대상 확대' 한 목소리

 

 

 

▲ 집단소송법 도입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재계. 사진은 공청회에 참석한 전경련 김석중 상무(왼쪽)와 삼성전자 이경훈 상무 ⓒ 오마이뉴스 김시연

2일 오후 2시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정 공청회'에서도 시민단체와 재계의 입장은 팽팽히 맞섰다. 재계를 제외한 법조계, 학계, 시민단체 대표들은 모두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도입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소송 제기 활성화를 위해 대상 기업, 대상 행위 등 적용범위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법무부 시안에 대해서는 주가조작을 제외한 분식회계와 허위공시에 대한 대상기업을 자산 2조원 이상인 기업으로 한정시키고 대상 행위에서 수시공시를 제외시켜 집단소송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실련을 대표한 함시창 상명대 경상행정학부 교수는 "현재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인 기업은 상장기업 11%(80개), 코스닥기업 1%(8개)에 불과한 반면 최근 허위공시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들은 대부분이 자산 2조원 미만"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을 대표해 나온 대법원 이태종 재판연구원(판사) 역시 "남용되는 경우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집단소송이 제기될 수 있는 길을 원천 봉쇄한다면 과거 주주대표소송처럼 법전상의 사문화된 장식품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재계는 집단소송이 빈발하게 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돼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집단소송제 도입을 유보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대한상공회의소를 대표해 나온 삼성전자 법무실 이경훈 상무이사(변호사)는 "집단소송법을 부득이 도입할 경우 철저한 소송남발 방지책이 필요하다"면서 "형사유죄판결이 확정되거나 형사 소추된 이후에 증권집단소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는 미국과 같은 부작용 없을 것"

 

 

 

 

▲ 참여연대 대표로 나온 김주영 변호사 ⓒ 오마이뉴스 김시연

양측의 입장이 가장 크게 엇갈린 부분은 집단소송제 도입이 기업과 소액투자자에게 미칠 파급 효과에 관한 부분이다.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미국의 경우 집단소송이 제기된 회사는 회사 가치 하락과 주식 투매로 주가가 30% 이상 폭락했다"면서 "소액투자자들도 기업의 주가 하락으로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집단소송법 위해론'을 제기했다.

이에 참여연대 대표로 나온 김주영(한누리 법률법인) 변호사는 "집단소송은 기업의 불법행위가 적발돼 주가가 떨어진 상태에서 제기되는 것인데 소송 때문에 주가가 하락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반박했다.

이태종 판사 역시 "미국과 사회구조나 국민정서가 다른 국내에서도 소송이 남용된다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우리나라에선 대표소송제도 지금까지 10회 남짓 이용된 것이 고작"이라고 밝혔다.

내년 4월 시행…국회 통과가 고비

증권관련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려면 아직도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우선 공청회에서 문제가 제기됐듯이 소송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현 시안대로라면 집단소송이 활성화될 수 있을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또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재계 입장을 옹호하고 있어 집단소송제 도입이 유보될 가능성도 크다.

일단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가 정착될 경우 국내 경제에 미칠 파장은 크다. 이는 곧 환경문제, 담배, 자동차 등 소비자 문제 관련 집단소송제 도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청회에 참석한 삼성전자 이경훈 상무는 "사익 실현에 가까운 주식투자자들을 구제하는 것보다 환경 피해자나 제조물 소비자들을 위한 집단소송제를 먼저 도입하는 것이 순서"라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김시연 기자 sean@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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