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5월 2014-05-02   1169

[만남]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 김남선 회원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cafe ‘oso’에서 김남선 회원

호모아줌마데스

사진 Nina Ahn

참여사회 2014-05월호

16세기 프랑스의 점성가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을 지구멸망의 해로 예언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땐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하기만 했다. 특정 년도를 넘어 친절하게 날짜(9월 9일)까지 지정해준 종말론도 있었다. 바로 ‘휴거(종말이 닥치면 예수가 재림하고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하늘로 들려올려짐)’다.

그뿐인가. 세기의 마지막 해를 맞은 세상은 다가오는 새로운 천년에 대한 공포로 또 한 번 경기를 일으킨다. 밀레니엄 버그, 일명 Y2K. 컴퓨터에선 년도를 뒤의 두 자리만 표기한다는 이유로 2000년이 오면 세상의 모든 컴퓨터가 이를 1900년으로 오인할 것이고 그러면 컴퓨터로 작동하는 모든 시스템들에 대혼란이 올 것이라는 섬뜩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태초의 카오스를 방불케 하는 이 혼돈 속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은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가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한 날은 바로 ‘1999년 9월 9일’이었다.

cafe oso

차량용 내비게이션, 스마트폰의 길 찾기 어플 등 현대문명을 총동원해서 어렵게 찾아간 카페 ‘oso’. 흰 셔츠에 검은 앞치마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김남선 회원의 얼굴을 마주하자 그제야 안도감에 맥이 탁 풀렸다. 4년 전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함께 강의를 들었던 사이라 그런지 반가운 마음에 여러 질문들이 한꺼번에 목구멍으로 쏠린다. 그러다 그의 얼굴을 다시 찬찬히 바라보는 순간, 불현듯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쳤다.

“카페를 차린 건 올 3월이지만 사실 2년 전에 가게를 열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몸이 좀 안 좋은 느낌이 들어 병원에 갔는데 종양이 있다고 하더군요. 암은 아니구요, 그때부터 건강에 신경을 더 쓰게 됐죠. 운동하고 식단관리 하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네요.”

그의 별칭은 큰곰대장. 살이 빠지기 전 그의 넉넉한 풍채가 그 이름과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카페의 로고 디자인 또한 희고 커다란 곰이 커피 잔을 든 모습이다. oso란 이름도 스페인어로 곰이라고. 이제 큰곰은 아니네요, 하고 농담을 던졌지만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현실이 나의 늙어감을 증명하는 것만 같아 씁쓸했다.

“요즘 일상은 아침에 가게 나오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고, 무척 단조롭죠. 빵을 구워야하는 날은 미리 나와야 하니까 보통 12시간에서 14시간 정도 가게에 있어요.”

빵은 그가 직접 반죽하고 굽는다. 재료도 엄선해선지 주 메뉴인 커피와 음료보다 더 반응이 좋아 가끔 빵을 팔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는 생각까지 든다고.

“사실 제가 하고 싶은 건 카페가 아니라 술집이었어요. 근데 집 근처로 장소를 알아보다 보니 술집을 할 만한 공간을 찾는 게 힘들더라구요. 창업을 준비할 때 음식점, 술집, 카페 등 모든 분야를 생각했었는데, 결국 이 자리에 카페를 열게 되었네요.”

중소상인으로서 겪는 어려움 같은 건 없나요? 

“전 오히려 혜택을 받은 케이스죠. 창업하면서 ‘서울시창업스쿨’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거기서 오프라인으로 100시간 교육을 들으면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심사를 통해 창업자금 대출을 해주는데, 대출이자도 2%정도 서울시에서 같이 부담해주고 담보 없이 최대 5천만 원까지 빌릴 수 있어요. 교육내용도 분야별로 갖춰져 있고 창업하기 전엔 마케팅이나 입지 선정하는 법 등과 관련해서 전문가가 상담도 해주는 사후지원 서비스도 운영해요.”

근처에 사는 회원들이 있다면 와서 차 한 잔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는, 작지만 정감어린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게 oso 주인장의 소박한 바람이다.

eat & cook

그가 카페를 열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의문 하나. 술집이 아니라 카페? 그가 한창 참여연대를 드나들던 무렵 그와 술을 마셨다는 사람들이 주위에 무척이나 많았다. 하도 간사들에게 술을 잘 사주어서 그런 그를 두고 ‘간사 서포터스’라고 농담도 자주 했었다. 그가 참여연대에서 처음 들은 강좌 또한 ‘맥주 강의’였다.

“지금도 그 꿈을 갖고 있어요.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전만 해도 진짜 기본을 안 지키는 술집들이 너무 많았어요. 심지어 쉰 맥주를 갖다 주는 데도 있었으니까. 일본 긴자거리에 가면 120년 역사를 가진 ‘라이언 비어홀’이란 맥주집이 있어요. 그곳에 맥주를 따르는 ‘에비하라’라는 장인이 있는데 이 분이 따르는 맥주 맛이 일품이에요. 저도 맥주 맛이 좋은, 기본에 충실한 그런 술집을 내고 싶어요.”

술에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맛집들을 순례하며 그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고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 ‘eat & cook’에도 가입했다. “맛집과 관련해서 국가대표급은 아니더라도 상비군쯤은 된다고 봐요. 그 분야에선 일 세대에 속하죠. 돈과 시간이 많아서 그러는 건 아니구요, 사실 저 같은 사람들은 대단한 미식가나 식도락을 즐기는 자들이 아니라 단지 밥 먹는 것에 좀 더 신경을 쓰는 사람들일 뿐이에요.”

혹시 맛집을 찾아내는 자신만의 비법 같은 게 있나요?

“맛이 있다 없다의 기준은 지극히 개인 취향의 문제예요. 예전엔 줄 서는 집에 가라, 관공서 근처의 식당을 가라 등등 맛집 찾는 노하우에 대해서 떠들기도 했는데 요즘은 정보가 너무 넘쳐나서 신뢰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왔어요. 굳이 말하자면 ‘단순한 메뉴를 가진 집으로 가라’ 이 정도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분들에게 선배로서 한 말씀 부탁드려요. 

“남의 말에 기대면 안 돼요. 창업을 하려는 분들이 쉽게 카페나 음식점, 치킨집 이런 쪽을 생각하는 이유가 만만해 보이기 때문인데, 남들이 하는 이야기만 듣고 시작했다가는 바로 그만 두고 싶어 질 겁니다. 정말 많이 준비하고 성실히 노력해야 해요.”

참여사회 2014-05월호

1999년 9월 9일

회원가입 날짜가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혹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지 무척 궁금했다. 

“참여연대 활동 중 소액주주운동이 매우 인상 깊었어요. 삼성전자 주총에 참석해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 사회의 시민운동은 저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광대한 목표, 큰 틀 중심으로 움직이던 운동에서 벗어나 바꿀 수 있는 건 바꿔나가는 길을 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그래서 가입했습니다.”

그는 카페통인이 처음 문을 연 날부터 시작해서 6개월 동안 카페지기로 활동했고 날개 후원도 여러 번 했다. 그런 사항에 대해 추가 질문을 하니,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알려지는 게 쑥스럽다며 대답을 피한다. 카페통인에서 쓸 에스프레소 머신 구입비용으로 100만원이나 후원해 놓고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보니 그의 마음은 여전히 ‘큰곰’인가 보다.

“참여연대에서 하는 소모임이나 자원활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다가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구요. 느티나무에 강의를 들으러 가는 것도 첨엔 많은 용기가 필요했죠(그에게 크나큰 용기를 준 건 회원에게 제공되는 반값 수강료였다). 근데 그렇게 자꾸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참여연대 돌아가는 소식들도 알게 되고 카페지기로 활동하면서 간사들, 회원들 하고도 인연이 생기고, 그러다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돕게 되고, 그렇게 된 거에요.” 

카페지기 활동은 어떠셨어요?

“처음에 ‘커피공방’의 박철우씨한테 교육을 받았어요. 근데 그 내용이 거의 카페 창업 정도의 수준이었어요. ‘카페를 한다하면 고상해 보이죠? 앉아서 책이나 읽고 음악이나 듣고, 근데 그렇게 하면 가게 망합니다. 청소하고 정리하고 준비하고, 앉아 있을 틈이 없어야 해요!’라고 말씀하셔서 첨에 저와 같이 카페지기를 시작했던 분들 모두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때 경험이 지금 카페를 경영하는데 도움이 많이 돼요.”

참여연대 안에 카페를 만들기로 한 이유 중에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교류도 있었던 만큼 참여연대 건물 앞을 지나던 낯선 행인들이 카페통인을 찾아든 날 유독 기분이 좋았다고 그는 기억했다. 

“‘참여사회’를 열심히 보는 편인데, ‘날개를 달아주세요’코너에 매달 A4용지 후원 바란다는 내용을 볼 때마다 여러 생각이 교차해요. 규모나 영향력을 고려해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참여연대 정도면 종이 정도는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것도 아는데, 어쨌든 이 모든 게 우리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하는 것 같아 영 답답합니다.”

올해로 참여연대가 생긴 지 20년. 그 긴 세월동안 우리는, 우리 단체는, 우리 사회는 여전히 ‘종이’조차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가 느끼는 답답함에 2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가만히 더해본다. 카페 유리창 너머의 먼지 가득한 하늘. 우리들의 세상은 오늘도 부옇기만 하다.

참여사회 2014-05월호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그는 대학을 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지역문화단체 ‘희망세상’이라는 곳에서 청소년모임에 참여하고 노래패 활동도 했다. 새벽에 전교조 신문을 교실마다 돌렸던 날은 학교가 발칵 뒤집혔었다. 그 후 그의 행적들은 딸 둘을 둔 가장으로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여러 일들을 했지만 집에 따박따박 월급을 가져다주는 생활은 아니었다. 카페를 창업해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처가 어른들이 이제는 사위가 하는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했던 그. 그 대답을 듣고서야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세상이 정해 놓은 달력대로 살아내지 못했던 이유들에 대해서 나 또한 그에게 추궁하듯이 물었던 것은 아닌가.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저 보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았겠거니 할 수 도 있겠지만 사실 저도 온갖 핑계를 대며 그렇게 못 하고 살았어요. 그래서 지난해 큰 맘 먹고 저만을 위한 여행을 다녀왔죠. 그 중에서 라오스가 제일 좋았는데, 가난하지만 여유롭고 자신들만의 정체성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빈과 부. 그것은 행복의 유일한 기준점도 아니고 삶이 도달해야할 최고점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긴 칸을 채워주는 학력과 그럴싸한 이름의 직장이 충만한 삶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20년 넘게 맥주만 따르는 사람.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에비하라 맥주.’ 단순한 일일지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긴 세월을 묵묵히 지켜낸 사람 앞에 경의를 표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새삼 그의 목에 걸린 검정색 앞치마에 눈길이 갔다. 나랑 동갑이니 그의 나이도 이제 마흔둘. 젊었을 땐 인생 마흔이면 스스로 세상의 스승인 양 알고 살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나이가 되어 세상을 둘러보니 우리 앞에 놓인 건 또 다시 건너가야 하는 생의 바다뿐이다. 생의 반을 지나 다시 자신만의 바다 앞에선 한 남자. 그리고 그 바다 위에 띄워진 ‘oso’라는 작은 배 한 척.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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