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2년 12월 2022-11-30   487

[회원인터뷰] 쌍둥이의 탄생으로 시작된 한 시민의 현명한 참여 이야기 – 소재학 회원

소재학 회원

늘 자신을 ‘쌍둥이 아빠’라고 소개하는 회원이 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회원모니터단으로, 2019년부터는 운영위원으로 적극 활동하고 있는 소재학 회원이다. 본인에겐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다가도 막상 질문을 하면 진지한 눈빛으로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 참여연대 활동가들을 볼 때면 두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온다는데… 눈으로 하트를 보낸다는 건 어떤 것일까? 기대에 찬 마음으로 두 눈을 살피며 이야기를 청했다.

– 회원 모임이나 행사에서 ‘인천에 사는 쌍둥이 아빠’로 소개한다고 들었어요. 다양한 정체성 중에 유독 쌍둥이 아빠로 소개하는 이유는요?

쌍둥이의 탄생으로 회원이 되어서요. 2010년에 쌍둥이 출산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쌍둥이를 자연분만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어요. 역사적으로 쌍둥이가 얼마나 많았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 싶었죠. 관련 내용을 알아보다가 ‘돈이 되는 곳’으로만 인력이 몰리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만나게 됐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를 찾다가 결국 자연분만 성공률 1위인 한 개인병원을 만나고, 그 덕에 제 두 손 모아 ‘이렇게’ 직접 두 아이를 받아드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답니다. 손바닥 안에 다 들어올 정도로 작은 아이들이 눈도 안 보일 텐데, 세상 구경하듯 두리번 두리번 하더라고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으로 이만큼 커서 잘살고 있는데, 이걸 나 혼자만 다 누리고 떠나선 안 된다. 아이들도 잘살아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참여연대 문을 두드린 겁니다.

– 쌍둥이 육아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아이가 태어난 다음 날, 눈이 정말 많이 왔어요. 전부 다 하얗게 덮인 그날 하늘을 보며 느낀 그 환희를 잊지 못해요. 그런데 다음엔 ‘애를 키우는 게 장난이 아니’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직시했어요. (저는 ‘여친’이라 부르길 좋아하는) 제 배우자에 대한 어마어마한 미안함도 생겼고요. 아이 둘이 동시에 태어나니 정말 ‘24시간’을 쉬지 못하고 밤을 많이 새운 것 같아요. 그렇지만 만 3살이 되면서부터 만족감이 급상승했어요. 아이 둘이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하면서 엄마 아빠를 찾는 횟수가 확 줄어버리는 거예요. 아이 계획이 있는 가정에 쌍둥이를 적극 추천할 정도로 육아의 달콤함이 엄청 컸어요.

– 쌍둥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번 10.29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심경을 듣고 싶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 8년 만에 다시 참사를 겪으면서 말을 상실했어요. 2016년 촛불혁명 이후 ‘우리가 사회를 바꿀 수 있어, 이 정도로 해낸 사람들이야.’라는 자긍심이 있었는데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마음이 침울해지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주변까지 다 무겁게 가라앉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게 자칫 무력감과 냉소로 흐를까 봐 걱정입니다. ‘핼러윈’이라는 게 아일랜드 지역 켈트인들의 오래된 문화로 알고 있어요. 저도 아이들이 조금만 더 컸다면 다른 나라의 문화가 우리나라에 어떤 방식으로 변형되어 들어왔는지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 거예요. 참사 이후 돌아가는 상황이 세월호 때랑 겹쳐 보여서 너무 무서웠습니다.

– 삼풍백화점 붕괴부터 세월호 참사 이후까지 참여연대는 ‘안전사회 만들기’를 주요 모토 중 하나로 활동해왔는데요, 지금 참여연대가 어떤 역할을 더 해 나가면 좋을까요?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건데?’라는 냉소가 흐를 수 있는 지금,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해도 어려운 순간에 시민들이 붙잡을 수 있는 역할을 했으면 해요. 평소에는 불필요해 보이지만 태풍이 불 때는 배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배의 앵커anchor처럼요. 산산이 부서진 그 마음들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참여연대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고, 앞으로도 잘해 나갈 것이라 생각해요.

– 최근 아카데미느티나무 강좌에서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 인간의 권리, 인간 너머의 권리〉 수강 중인데 어떤 메시지를 얻고 있나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기술과 과학이 등장할수록 저는 인간적 영역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방서 안전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남을 돕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이 셀프레스큐self rescue, 자기구조다’라는 말이 아주 인상 깊었어요.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지구 환경 위기로 동물권, 식물권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많은 걸 논의하기 위해서 사람이 먼저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인간의 내 모습이 제대로 서 있는지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은행에서 가계 대출 업무를 맡고 계신다고요. 보람을 느낀 순간들이 궁금합니다.

은행권에 있으면서 잘된 금융은 복지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 저를 찾아오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대출을 드릴 수 있는 조건을 찾기 위해 질문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요즘 집값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할 정도로 너무 많이 올랐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신혼부부 등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대출을 찾아드리면 기분이 좋아요. 늘 마지막에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인사를 드리고요.

자녀들에게 버림받고 파지를 주우며 월세를 내던 노인 한 분도 기억납니다. 제가 계산해보니 나라에서 지원하는 저소득 가구 대출로 집 보증금을 올리면 월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거주하실 수 있겠더라고요. 사연이 많으셨던 분이라 대출 과정에서 노인분 자녀들에게 전화도 하고, 3개월 동안 진짜 그분 손 잡고 다녔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 얘기를 들으니 금융도 의료와 같은 하나의 ‘공공서비스’같아요,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심을 두었으면 하는 금융업 이슈를 꼽는다면요?

금융사는 엄밀히 말해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예요. 그런데 우리는 금융‘기관’이라고 말하잖아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회사를 기관이라 부르는 건, 사채 같은 약탈적 금융이 아닌 공공성을 지닌 사회적 역할을 하라는 요구라 생각합니다. 최근 모바일 뱅킹이 발달하면서 정부의 허가로 영업점 없는 제1금융권이 생겼고, 코로나19 이후로 비대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영업점 폐쇄가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죠. 이 과정에서 제가 느끼는 건 사회적 약자가 점점 더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있는 사람은 괜찮아요. 그게 아닌 사람들에게 금융기관의 문턱은 높게 느껴져요. ‘대면 서비스가 줄어들면 금융 서비스의 공공성은 어디로 가지?’라는 생각을 해요. 대단히 큰 구멍이죠. 모든 사람의 생김새가 다른 만큼 금융 서비스도 그 사람에 맞추어서 이루어져야 하거든요. 금융 서비스가 점점 더 돈 많은 분들한테만 제공되는 것 같아요.

금융도 일종의 ‘무형 서비스’라 사람에 의존하는 영역이 큽니다. 저는 정직하지 못한 금융인과 금융회사를 만나는 것은 개인에겐 평생의 재난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요. 저는 금융 소비자의 이익과 금융 산업 종사자와 기업의 평가가 함께 가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금융 소비자에게 손실이 나면 서비스 제공자도 손실이 나게끔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것이죠. 그게 없으니 금융 종사자들이 무책임하게 사람들에게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거거든요. 최근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들어서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금융사들은 금융 당국에 어떻게 하면 처벌받지 않을까만 몰두하는 형태에요. 금융 종사자와 소비자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고 신뢰를 구축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소재학 회원

– ‘정치적 무력감’ 혹은 ‘냉소’에 빠질 때, 무력감을 다루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정치적 상실감이 들 때 저는 우선 말을 잃는 것 같아요. 그 시간이 조금 지나면 역사책을 들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수많은 문제를 과거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고민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답은 없더라도 실마리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과거를 찾아보죠.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 그냥 분노로, 냉소로만 있을 수 없잖아요. 요즘 염려하는 건 두 가지, 전쟁과 핵발전소에요. 아이들과 같이 밥 먹을 때마다, 일상적인 행복이 얘네들에게도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에 역사에서 뭐라도 찾고 배우려고 합니다.

– 마지막으로, ‘나에게 참여연대란’?

참여연대는 저에게 ‘자부심’입니다.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사회적 관계에서 ‘나는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제가 고민하여 내린 결론이 바로 참여연대의 회원이 되는 거였던 만큼, 우리 모두 포기하지 않고 항상 힘냈으면 좋겠습니다.

힘들고 아픈 이야기를 꺼낼 때 눈물이 그렁하고, 기쁘고 환희에 찬 이야기를 할 때 그 눈물이 찬란한 보석처럼 빛나는 것을 보면서, 처음 소개받은 두 눈의 하트는 절망과 슬픔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강한 의지의 표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같은 회원으로서 참 많이 배우고 위안이 되는 시간이었다.


이은주
사진 편집팀
녹취 조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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