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11월 2023-10-27   517

[회원 인터뷰] 역사와 현재가 이어진 길 위에서 10년째 굴렁굴렁

김영미 회원
김영미 회원 ©박상환

김영미 회원은 배우는 데 두려움과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다. 새로운 걸 알아가는 게 가장 즐겁다. 2011년 참여연대 회원이 된 것도 참여연대 부설 시민교육기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인문학·철학·역사 등의 여러 강의를 들으면서다. 현재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김영미 회원은 아카데미느티나무의 역사답사 소모임 ‘굴렁쇠’ 창립 멤버다. 2013년 첫발을 뗀 굴렁쇠는 매달 전국의 답사지를 누비면서 올해로 10년째 꾸준히 굴러가고 있다.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 지표면을 따라 끝없이 움직이는 굴렁쇠처럼 말이다. 김영미 회원을 만나 전국 곳곳의 숨은 역사와 이야기를 찾는 이유, 배우면서 사는 삶의 즐거움에 대해 들었다.

– 굴렁쇠는 자발적인 회원 모임이라고 들었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진 모임인가요?

2013년에 첫 모임을 했어요. 이명박 정부 때 뉴라이트 사관이 부상하고 박근혜 정부 때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는 등 역사 논쟁이 많았어요.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도 역사 관련 강의가 많았죠. 시민으로서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한데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역사를 배울 기회가 잘 없잖아요. 그래서 저도 역사 강의를 챙겨 들었어요. 1~2년쯤 지나니 비슷한 수업을 듣는 사람끼리 낯이 익잖아요. 관심 분야나 지향점이 비슷하다 보니 금방 친해지더라고요. 강의 마치고 뒤풀이하면서 “우리끼리 역사를 주제로 답사하는 모임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2013년에 저를 포함해서 5~6명이 모임을 시작했는데 점점 참여자가 늘어서 10여 명이 꾸준히 참가하는 모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나요?

매년 12월에 ‘다음 해에 답사가고 싶은 곳’을 회원들이 각자 생각해 와서 함께 회의하고 답사할 곳을 미리 정합니다. 중요한 건 그달의 답사를 책임지는 ‘담당자’예요. 모이는 장소·시간, 가는 방법 공지는 물론이고 답사지에 대해 조사하고 해설하는 것까지가 원래 역할이었어요. 처음 2년은 그렇게 운영했는데 각자 직업이 있으니까 공부해서 해설까지 하는 건 많이 버겁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역사를 잘 아는 회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담당자가 답사를 준비할 때 해설사를 찾아서 예약하는 방식으로 바꿨어요.

– 10년간 1달에 1곳씩 답사를 했으니 100여 곳을 다녀오셨겠어요. 기억에 남는 답사지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주 4·3 평화공원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굴렁쇠 회원 중에 제주가 고향이고 역사를 전공한 분이 직접 해설까지 하셨어요. 오랫동안 강제로 망각되어왔던 제주 4.3의 기억이 역사로 다시 기록된 평화공원 현장에 있으니 당시 제주도민들의 아픔을 깊이 느낄 수 있었어요. ‘가슴을 울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제가 담당했던 곳 중에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노근리에는 한국전쟁 당시 남진하는 북한군을 피해서 피난 가던 주민들이 경부선 아래 쌍굴다리에 몸을 숨겼다가 미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학살당한 현장이 있어요. 거기 가보면 벽면에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저희가 답사 갔을 때는 노근리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그 뒤에 결국 패소했어요. 기댈 곳은 아직 통과되지 않은 노근리 피해자 배상·보상 관련 특별법뿐인 것 같아요. 역사와 현재는 이어져 있고 분리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계속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답사할 때마다 매번 느껴요.

– 역사 답사를 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무심하게 지나치는 공간에 스며 있는 이야기와 역사를 알게 돼요. 그 전까지 서울 덕수궁을 둘러싼 정동길을 걸으면서 단풍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다면, 답사를 다녀온 뒤에는 덕수궁 중명전1에서 체결됐던 을사늑약을 떠올리게 돼요. 인왕산도 달리 보입니다. 겸재謙齋 정선이 인왕산을 수천 번 오르내리며 인왕제색도2를 그렸다고 해요. 답사를 다니다 보면 이처럼 평범했던 길과 평범했던 풍경이 새로워집니다. 답사를 준비하면서 《서울, 공간으로 본 역사》나 《민주주의를 걷다》 같은 책들을 참고하는데요. 초보자라면 이런 책들을 읽어보고 답사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아요.

– 각자 직장도 있고 가족 대소사도 발생하는데, 매달 답사를 준비하고 참여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1년의 스케줄을 잡아놓기 때문에 회원들이 답사 일정을 피해서 개인 일정을 잡을 수 있어요. 1박 2일 걸리는 답사도 휴일을 껴서 갈 수 있도록 미리 계획을 잡는 거죠. 답사 전날에 “못 간다”는 소리 안 나오게끔(웃음).

그리고 어린 자녀가 있는 회원들은 가족과 함께 참여하기도 해요. 초등학생·중고생·대학생이 함께한 적도 많아요. 서울 외 지역에 계시는 분들은 답사에 매달 참석하시지 못하지만 여건이 되는대로 오시고요. 최근에는 수원에 사는 회원이 수원 화성 지역을 직접 안내해주셨어요. 정조 대왕에 대한 지식은 물론 수원에 대한 지식이 방대한데다 만담꾼이어서 재미있고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 모임에 회장이 따로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10년간 잘 유지된 비결은 뭘까요.

관심사나 지향이 같아서 소통이 잘 된답니다. 모임에서 제가 ‘규율반장’ 역할을 맡고 있어요. 일정 공지가 조금 늦어질 때 “언제 주시나요?” “빨리 올려주세요”라고 ‘압력’을 넣으면 다들 금방금방 해주세요. 회원들이 저의 까칠한 성향을 잘 이해해 주고요. 10년 동안 월 1회 함께 여행을 다니다 보니 이제 어떤 면에서는 가족보다 더 편안한 사이가 된 것 같아요. 또 모임에 교사·공무원·출판인·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있다 보니 풍부한 대화를 하며 서로 배우는 점이 많은 것도 모임의 매력이에요.

아, 모임 초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등 답사를 위해 중국에 갔거든요. 항공권도 다 예매해놨는데 구성원 절반이 일정을 취소해서 그땐 힘들었어요. 그 뒤로 외국은 안 갑니다(웃음). 무리하지 않고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것도 모임 유지의 비결이 아닐까 싶어요.

– 굴렁쇠 모임은 아카데미느티나무 강의에서 시작됐어요. 아카데미느티나무의 장점이 있나요?

1년에 2학기로 나뉘어서 운영되는데, 매번 저에게 필요한 강의를 너무 잘 기획해주세요. 제가 그전에는 잘 모르다가 정치·경제·철학·인문학 등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어요. 그리고 여러 사람의 질문을 통해 함께 생각을 나누고 배울 수 있는 점들이 많아서 좋아요.

– 일만 하기도 바쁜 일상인데 돈과 시간을 들여 강의를 들으시는 이유는 뭔가요?

전 모르는 걸 배울 때가 제일 즐거워요. 역사나 민주주의 강의를 들으면 현안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이 생겨요. 잘 모를 때는 언론에서 하는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수용했다면 지금은 맥락을 읽고 판단하는 힘이 생겼어요.

김영미 회원
김영미 회원 ©박상환

– 아카데미느티나무 강의 외에도 배우는 게 있나요?

어릴 때부터 말 타면서 활 쏘는 게 꿈이었거든요. 처음에는 배울 곳을 못 찾아서 말만 꾸준히 탔어요. 그러다가 말 타면서 활을 쏘는 ‘기사 훈련’을 할 수 있는 한국전통마상무예학교를 알게 돼서 등록했어요. 막상 해보니 활쏘기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지난해 10월부터 국궁3장을 찾아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말타기로 다리근육을, 활쏘기로 팔근육을 단련시키면서 근육질의 몸매를 꿈꾸고 있습니다(웃음).

–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기후위기예요. 매일 체감하는 이상 날씨 덕분에 ‘지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해요. 재앙에 가까운 기후변화가 점점 심해질 텐데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고요. 그래서 가급적 플라스틱 쓰레기를 덜 배출하려고 노력해요. 최근에 키르기스스탄에서 열흘 동안 말을 타고 산을 넘으면서 유목민처럼 지내는 여행을 갔어요. 그런데 열흘 동안 작은 봉지 하나만큼의 쓰레기만 나오더라고요. 평소 하루 동안 배출하는 쓰레기보다 적었어요. ‘그동안 내가 너무 많이 버리고 살았구나’ 반성하게 됐어요. 이후부터 배달 음식 주문을 최대한 자제하고 텀블러를 항상 가지고 다니려고 노력해요.

– 참여연대 후원을 하신 지 12년이 되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참여연대를 후원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카데미느티나무 강의 수강을 계기로 참여연대를 알게 됐는데 민생 분야, 권력감시 분야 등 참여연대가 해온 일들이 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그동안 제가 퇴사하고 새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백수로 지내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단체 후원을 많이 중단했어요. 그중에서 마지막까지 후원을 중단하지 않은 곳이 바로 참여연대입니다.

– 참여연대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윤석열 정부를 겪으면서 ‘이러다 정말 망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필요한 분야의 예산들은 다 삭감하고, 외교를 할 때는 마치 대통령이 다른 정부(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여요. 이런 결과의 이유는 결국 양당제 때문이 아닌가 해요. 시민들이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게 선거제도가 개혁되면 좋겠어요. 양당을 찍지 않으면 내 한 표가 사표死票가 되는 지금의 정치 제도가 바뀔 수 있도록 참여연대가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까요?

– 회원님에게 참여연대란 무엇인가요?

제게 굴렁쇠는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활력소’이거든요. 굴렁쇠가 있게 해준 참여연대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소금 같은 존재예요.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참여연대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 덕수궁에서 고종의 임시 거처로 사용된 공간이다. 고종은 이곳에서 신료나 일본 관료를 접견했으며, 1905년 11월 을사늑약도 이곳에서 체결되었다.
2 1751년(영조 27년)에 화가 겸재 정선이 소나기가 지나간 뒤 비에 젖은 인왕산을 그린 진경산수화로 국보 제216호다.
3 활을 쏘아 표적을 맞혀 승부를 겨루는 우리나라의 전통 무술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수진 편집위원 
사진 박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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