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4년 04월 2024-03-27   2723

[여는글] 기억, 공간, 그리고 미래

ⓒ Anthony Melone, Unsplash

사람은 살아가면서 고통과 기쁨을 느낀다. 그 감정은 일회성 사건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사건은 기억으로 깊숙이 저장되어 어떤 계기를 만나면 재생된다. 우리 의식의 영사기는 기억하기 싫은 과거와 추억하고 싶은 과거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오래된 필름을 끊임없이 재생한다. 기억은 고통의 뿌리인 동시에 기쁨의 동력이다.

매우 강력한 고통의 기억은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 기억은 하나의 렌즈가 되어 삶을 굴절, 왜곡시킨다. 무의식의 심층 의식과 일상의 표층 의식이 뒤엉켜 삶 전체를 소외와 압박의 블랙홀로 몰아넣으며 지배하기도 한다. 기억은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윤회가 아닌, 현재의 고통이 반복되는 금생의 윤회가 된다. 그러니 기억은 한 개인이 잘 극복하고 잘 연결해야 할 날 선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집단의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세대별로 경험한 역사적 사건의 집단 기억을 가진다. 1962년에 출생한 나는 유년 시절 부모님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1920년대 출생한 부친은 일제에 의해 일본에서 탄광 징용자로 살았으며 한국전쟁을 겪었다. 부친은 어린 나에게 마치 어제 겪은 일처럼 당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내겐 먼 이야기 같은 사건들을 왜 그토록 자주 들추어 말씀하셨는지 나이가 드니 이해가 된다. 나에게는 20년이 지난 과거의 이야기였지만, 부모님께는 늘 생생한 현재였던 것이다. 기억의 재생이고 연결이다.

나 역시 오래된 기억의 현재형을 가지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나는 광주에 있었다. 당시 광주 시민들이 겪은 일은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지금도 생생한 집단 기억이다. 어떤 시공간에서 집단이 함께 겪은 사건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집단의 기억으로 연결되고 재생된다. 사건은 기억으로 저장되고, 저장된 기억은 곧 역사가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국가나 민족의 구성원은 과거를 망각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성찰하여 잘 극복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미래를 펼치자는 의미일 것이다. 과거를 왜곡하고 숨긴다면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결코 건강한 현재와 미래는 없다.

기억을 호출해서 승화하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 사건을 공정하게 수록하고 평가하는 일, 즉 기록문화유산이 그것이다. 각종 저술과 평론으로 기억을 왜곡 없이 보존하고 현재의 역사로 잘 연결해야 한다. 아울러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예술 작품 창작도 기억의 보존과 계승의 측면에서 중요하다. 무엇보다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고 상징하는 공간의 건립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역사가 남긴 기억을 지우고 왜곡시키려는 비열한 시도는 여전히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과 부를 독점하려는 자들은 과거 기억을 교묘하게 악용해 대중을 혼란스럽게 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적 기록물을 은폐, 축소하고 자의적인 해석으로 진실을 왜곡한다. 대중의 기억을 불순하게 연결시켜 이익을 얻고자 함이다. 대중은 집단 기억을 조종하려는 저들의 기획과 의도를 영민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불순한 자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징이나 기념 공간 건립 또한 방해한다. 대중의 기억을 지우려 함이다. 우리는 독일이 나치 시절의 역사적 범죄와 오류를 기억하기 위해 각종 상징물과 공간을 만들어 반성하는 모습에 주목해야 한다.

기억과 공간, 미래는 늘 함께한다. 기억을 재생하고 연결하기 위해서는 공간과 상징이 필요하다. 상징을 품은 공간은 미래로 이어진다.

어김없이 또 봄이 왔다. 소담하고 화려한 꽃들이 봄을 알린다. 그러나 꽃봉오리를 보면서도 춘래불사춘1春來不似春의 시절을 맞는 사람들이 있다. 4.16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그날의 기억으로 이 봄날 피어난 꽃이 그저 아픈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 큰 아픔은 “이제는 잊을 때도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 기억 속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찌르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그날을 상징하는 기억들을 보듬고 연결할 공간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는 무도한 자본과 국가가 존엄한 생명을 해친 역사적 사건임을 기억하도록 제대로 된 상징과 공간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미래를 잃지 않기 위해 진심으로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1. 중국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전한前漢 원제元帝 때 흉노와 함께 이국으로 떠난 왕소군의 슬픔과 외로움을 두고 지은 ‘소군원昭君怨’에서 유래한 말. 봄이 와도 봄처럼 느끼지 못한다는 뜻으로 슬픔과 절망에 빠져 좋은 일도 즐겁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마음 상태를 이른다. ↩︎

글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중이며 지은 책으로 인문에세이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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