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조금주 팔순 기념집에는 제 이야기만 실리면 절대 안 됩니다. 허필두 씨(참여연대 마라톤모임 초대 총무, 기념집 출간 담당)가 고생스럽더라도 더 많은 내용이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참여연대 소개란도 들어가고, 우리 모임 회원 중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김정규·김미희 님의 사업체 소개도 하고, 조계성 님이 관여하는 관악정다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준구 님의 부천요양병원, 홍관석 님의 미소담치과, 박명환 님 사업장 홍보도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참여연대 마라톤모임 회원들의 소개란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9월 1일 504쪽짜리 두툼한 책 한 권이 나왔다. 〈달림이 조금주 선배님 팔순 기념집〉. 참여연대 회원모임인 ‘마라톤모임’ 회원들이 조금주 회원의 팔순을 응원하고, 기념하기 위해 펴낸 책자다. 책자 들머리엔 조금주 회원이 마라톤모임을 생각하는 따뜻한 바람이 실려있다. ‘내 팔순보다, 우리 모임과 회원들을 기념하자.’
육사를 졸업하고 대령으로 군 생활을 마무리한 조금주 회원은 63세에 마라톤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가벼운 조깅이나 러닝 말고 마라톤. 시작한 지 2년 뒤인 2009년, 65세가 되던 해에 처음 풀코스에 도전했다. 4시간 15분. 그는 그 기록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기념책자가 나온 날이자 음력 여든 살 생일인 2024년 9월 1일, 조금주 회원은 참여연대 마라톤모임 회원들과 함께 10km를 달렸다. 해가 갈수록 조금씩 더 숨이 가빠온다. 그래도 함께 달리는 회원들과 페이스를 맞춰가며 목표한 10km를 완주했다. 그 뿌듯함은 어떤 느낌일까. 정년 이후, 새로운 ‘달림이’ 인생을 열고 있는 조금주 회원을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만났다.
처음에 마라톤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오래전에 비 오는 날 축구를 하다가 오른쪽 무릎을 다쳐서 무릎 인대가 파열되었어요. 증상은 완화되었지만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고 지냈는데, 마라톤에 계속 호기심이 생기더라구요. 전역 후 용기를 내서 예순셋이 되던 2007년에 마라톤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희한한 건, 마라톤을 하기 위해 달리기 훈련을 하면서부터 무릎 통증이 나아졌어요.
마라톤을 시작하고 풀코스에 출전하기까지는 얼마나 걸렸나요?
처음에는 10km 뛰기도 힘들었어요. 매일 꾸준히 연습한 것 같습니다. 2009년 5월에 10km 달리기에 먼저 도전한 뒤, 2009년 11월에 열리는 서울중앙마라톤대회 풀코스를 뛰기로 마음먹었어요. 풀코스 경기 석 달 전부터 훈련에 들어갔어요. 석 달 동안은 매일 4~5km 정도 뛰고 2~3일마다는 10km를 뛰고 주말에는 하프 코스(22km)를 뛰었어요. 그렇게 훈련해서 처음 뛴 마라톤 풀코스 기록이 제일 좋아요. 4시간 15분. 그때가 가장 젊기도 했죠. 그 뒤로 풀코스에 네 번 더 도전했는데, 기록 단축은 안 됐어요.
마라톤 생활에 위기는 없었나요?
2018년 9월에 김대중노벨평화마라톤대회 10km 달리기를 완주했어요. 그런데 끝나고 나서 스트레칭을 바로 해줘야 하는데, 같이 뛴 친구가 3~4km 떨어진 곳에서 식사를 하자고 해서 바로 식사 자리로 걸어서 이동했어요. 그랬더니 그 다음 날 고관절에 엄청난 통증이 왔어요. 병원을 이곳저곳 가봐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결국 마라톤을 쉬어야 했어요. 1년은 못 뛰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기초 운동이나 스트레칭 등을 잘 챙기려고 합니다.
마라톤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욕심을 내지 않고 천천히 뛰어야 해요. 처음에 천천히 힘을 남겨두고 뛰어야 40km 다 와 갈 때 스퍼트를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대부분 처음에 욕심내다가 35km, 40km 후반부에 더 못 뛰고 드러눕는 친구들도 많아요. 저도 욕심내면서 달릴 때는 후반부에 무릎 위아래 종아리 허벅지에서 쥐가 날 것 같아서 막 두드리면서 뛰었어요. 욕심부리며 빨리 뛰면 안 돼요. 인생과 비슷해요. 준비 없이 서두르면 탈이 납니다. 꼭.
보통 10km 달리기도 힘든데 매일, 매주 꾸준히 달리기란 정말 힘들 것 같아요. 어떤 마음으로 달리시나요?
사실 건강하게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달리기가 하나의 건강진단이거든요. 발목부터 무릎, 허리, 심장, 목 이런 데가 한 곳이라도 아프면 잘 못 뛰어요. 그러니까 건강진단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뜁니다.
그런데 내가 아직도 달릴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주는 기쁨도 있습니다. 누구보다 더 잘 달리겠다, 이런 생각은 안 해요. ‘내가 완주했다, 달렸다’는 그 사실이 주는 성취감이 있어요. 지난달에 10km 뛰었을 때도 뛰고 나서 며칠은 허리가 뻐근하고 힘들긴 했어요. 그런데 그 성취감이 저는 참 좋아요. ‘내가 이만큼 뛰었구나, 무언가를 이루었구나’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참여연대 마라톤모임은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2010년에 서울 반달마라톤에 참가했다가 뒤풀이 자리에서 허필두 씨를 만나게 됐어요. 이전 마라톤 모임 회원들과는 정치적 이념이나 생각이 달라서 힘들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면 늘 충돌이 있었어요. 그런데 허필두 씨는 저랑 정치적 지향이 매우 같더라구요. 허 회원 소개로 참여연대 마라톤모임의 번개모임에 처음 참석했다가 지금 15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마라톤모임 회원들과는 싸울 일이 없어서 좋습니다.
선생님의 정치 지향은 어떠신가요? 1940년대 태어나 군사 독재 정권 시기에 육사를 졸업하고 30여 년간 군 생활을 하신 삶의 이력을 보면 보수적 정치 지향을 가지는 게 생활하시기에 더 수월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했어요. 학생 시절에는 학교가 알려주는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만 알았거든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들을 알게 됐어요. 그 예로 1948년 벌어진 ‘여순반란사건’이 사실은 ‘양민 학살’이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됐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를 탄압했죠.
저는 전라남도 강진 출신이에요. 2000년대인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전라도 지역과 사람에 대해 ‘홍어’라거나 ‘빨갱이’ 같은 혐오와 차별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런 정서들이 다 박정희 군사 독재 시절에 더 강해져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고나서 보수적 정치 지향에서 진보적 정치 지향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내가 겪은 12·12 쿠데타’라는 주제로 참여연대 마라톤모임 회원들과 함께 역사 이야기도 나누셨어요. 최근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해인 배우가 맡은 역할의 모델이 되었던 김오랑 중령과 육사 동기라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어요. 서로 근무하는 데도 달랐고, 또 생도일 때도 다른 중대에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너무나도 훌륭한 친구더라고요. 당시 상황을 보면 김오랑 중령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던 상황도 아니었어요. 뻔히 알면서 저항하기로 결심을 했잖아요. 사관생도 생활신조 중에서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무척 힘들기 마련입니다. 진짜 큰 용기가 필요하고, 힘든 결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 마라톤모임에서 ‘몸자보’라는 걸 붙이기도 하잖아요. 몸자보를 붙이고 뛰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마라톤은 이기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다들 자신의 기록만 신경쓰면서 뛰느라 바쁘니까요. 그렇지만 ‘몸자보’를 붙임으로써 주변 인식도 바꾸고, 뛰는 우리도 더 의미를 찾고 힘을 내는 효과가 있죠.
가장 기억에 남는 몸자보는 뭐였나요?
촛불집회가 열리던 때, 박근혜가 하야한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때 촛불집회 무대에 마라톤모임이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하야가 웬 말이냐 구속수사가 필요하다는 구호를 제가 선창으로 외쳤어요. 그때 전후로 관련 문구를 몸자보로 붙였는데 그게 기억이 납니다.
참여연대 마라톤모임에서 제일 즐거운 게 있으시다면 어떤 걸까요?
제일 즐거운 건 마라톤 끝나고 그냥 막걸리 한 잔씩 하고 그게 좋죠.(웃음) 그런데 요즘은 많이 못 먹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회원님께 참여연대란 무엇일까요?
참여연대는 우리 사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죠. 정말 다양한 활동들을 해왔고, 큰 역할을 해줬습니다. 그래서 참여연대가 계속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앞으로 더 노력하고 싶어요.
글 박수진 편집위원 / 사진 박상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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