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6년 01-02월 2025-12-31   1864802

[인터뷰] 이제는 헌법을 바꿀 시간 –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

글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 / 사진 차종관 공익저널 기자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의 모습. 인터뷰를 진행한 책방에서 책을 펼쳐서 읽고 있는 모습.
ⓒ차종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단, 이미 권력을 가진 자들 사이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나타났을 때만 그렇다. 아주 특수하고 비상한 시국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기간도 그리 길지 않다. 나라 걱정에, 일상을 뒤로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를 쏟아낸다. 민심이라는 파도가 어떠한 배를 뒤집을지 결정을 하고 나면 권력자들 사이에서 패권 다툼이 정리되고 ‘권력 나눠먹기’의 질서가 잡힌다. 해방 공간이었던 광장은 목소리를 잃고 ‘국민’은 다시 주권에서 배제된 일상으로 밀려난다. 민주주의의 틀을 취하고 있지만 철저하게 국민의 의사가 대리인들에게 가로막힌 구조다.

그러면 한국사회는 헌법 1조2항에 나온 국민주권 원리를 언제 체감했을까. 2016년 하반기부터 진행된 ‘촛불혁명’과 2024년 12월부터 진행된 ‘응원봉 집회’를 들 수 있다.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해가며 권력을 휘둘러 헌법재판소에서 탄핵당했고 당시 유력한 야당 지도자가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시민들은 2016~2017년과 2024~2025년 겨울, 추운 거리로 나와 다양한 이야기를 했지만 헌재를 향해 헌정질서를 훼손한 대통령에 대한 파면 요구 정도만 제도권에 반영됐다.

참여연대는 1987년 현행 헌법의 한계 탓이라고 진단하고 지난 2018년 2월 직접민주주의 제도화 등을 강조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입법 청원했다. 촛불혁명을 완수하는 개헌을 만들고자 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개헌에 성공하지 못한 채 정권교체를 당했다. 그렇게 탄생한 윤석열 정부가 다시 대통령 파면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고,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 1호로 개헌을 내걸었다. 참여연대는 약 7년반 전에 내놨던 헌법개정안을 수정·보완해 2025년 11월27일 입법 청원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여연대의 헌법 개정 입법청원안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대표 소개 의원)·김남근·김남희·송재봉·이주희 의원,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 진보당 전종덕 의원 등 7명 이름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이번 헌법 개정안은 △내란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개헌 △분권과 자치에 입각한 개헌 △정치개혁과 함께 하는 개헌 △기본 인권 및 사회적 기본권을 강화하는 개헌 △시대 변화에 조응하는 개헌 △직접민주제를 제도화하는 개헌 △시민들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개헌 등을 기본 원칙으로 정했다.

또한 △권한 분산과 민주적 통제 강화 △지방분권과 자치 강화 △기본권 확대 강화를 개헌의 방향으로 제안했다. 두 차례 헌법 개정안을 만드는데 참여한 헌법학자,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건국대 로스쿨 명예교수)를 만났다.


참여연대 단독 개헌안을 낸 이유와 주요 내용을 간략히 설명해달라.

지금까지 개헌안이 많이 나와 있다. 참여연대 개헌안의 특이한 점은 전면적이고 포괄적이다. 대부분의 조문을 손을 봤는데 특히 시민됨, 즉 단순히 통치대상으로서 국민이 아니라 자기 일상의 주체로서 시민을 구성하고 시민의 역량을 대폭 강화하는데 중점을 뒀다. 그러다 보니 통치기구 편에 대한 개정보다는 기본권을 강화하고 헌법의 기본적 방향성을 ‘연대’, ‘참여’에 중점을 두는 형태로 바꿔낸 점이 다른 개헌안과 큰 차이라고 본다.

참여연대 개헌 TF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 헌법학자로서 총괄하는 역할을 했을 것 같은데.

TF팀의 구성원으로서 N분의 1이었다. 사실 2018년에 개헌안을 먼저 만들어 입법 청원을 했고 이번에는 그 안을 업그레이드하는 형식이어서 그때만큼 큰 노력을 한 건 아니다. 그때는 정책위원장을 맡아서 저 나름대로 개헌의 토대가 되는 자료를 제공하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18년 개헌안과 전체적으로는 비슷해 보인다. 어떤 차이가 있나?

일부 자구字句를 수정했고,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돌봄 기본권은 2018년 당시에는 생소했지만 지금은 아주 중요한 기본권으로 등장해서 이런 부분을 반영했다. 기후위기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차세대 국민들의 기본권, 지속 가능한 생태환경을 강조한 부분도 그때와 다른 대목이다. 권력구조에서는 대통령 임기를 바꿨다. 그때는 5년 단임, 현상유지를 주장했지만 이번에는 4년 중임제로 바꿨다. 권력구조 개편은 크게 비중을 둘 문제는 아니라고 봤지만 윤석열의 내란 시도를 거치면서 시대적 요구도 있어 강조점이 달라졌다. 특히 대통령제에서 책임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겠다는 문제의식에 임기 부분을 바꿨다.

인간이 아닌 자연에도 법적으로 권리를 부여한 나라도 있던데?

에콰도르 헌법에서는 자연에 대해서도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한다. 라틴 아메리카는 ‘대지신’ 개념이 있어 자연에 기본권이 침해될 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는데 사실 그 자연을 기반으로 사는 공동체를 보호하는 우회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정도까지 나아가진 못했고, 일단 사람이라도 보호하자는 취지다. 아직 ‘기후위기’가 헌법에 들어온 사례는 없지만 후세대의 권리를 보장하며 헌법 안에서 다음 세대와 연대성을 강조하는 규정을 둘 필요는 있다고 본다.

인터뷰 중 답변을 하고 있는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의 모습.
참여사회와 인터뷰 하고 있는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 ⓒ차종관

2016년 촛불혁명으로 시민들이 처음으로 부당한 권력자를 끌어내렸고 당시의 경험을 반영해 개헌안을 만들었을 텐데, 당시 어떤 마음이었나?

그때 문제의식은 간단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박근혜 정부를 내치고 당시 광장의 구호처럼 ‘나는 내가 대표한다’는 것이었다. 87년 헌법 체제가 가졌던 문제점, 철저한 대의제 체제에서 국민들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구성하고 어떠한 헌법적 권한도 부여하지 않았던 것을 고치고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헌법을 만들자는 게 주된 관심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고, 87년 헌법 체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윤석열 정부에 와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정치권에서는 국정 동력이 빠지면 집권 세력이 개헌을 끌고 나오거나 소위 ‘올드보이’라고 할 만한 정치인들이 정치생명 연장의 도구로서 개헌을 주장해 온 역사가 있다. ‘개헌’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어서 동력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닐까?

우리 헌정사를 보면 헌법은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이루어진 자기들만의 타협의 결과였다. 그걸 우리 시민의 것으로 가져오자는 게 이번 개헌안의 주요 관심사다. 2018년에도 ‘국민개헌넷’이라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를 만들어 추진했지만 잘 안됐다. 이 자체가 87년 헌법 체제의 한계다. 비상계엄의 원인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이전에 검찰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고, 시행령 통치 등에 대해 국민들이 막아낼 수 있는 틀이 있었어야 했다. 시민들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정치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개헌을 대선에 주요 공약으로 이끌어냈고 대통령의 제1호 국정과제로 만들어냈다. 최근 국무총리 산하에 사회대개혁위원회가 출범했다. 시민사회가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긴 하다. 지금의 헌법 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비상계엄 직후 헌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았다. 헌재에서 탄핵을 기다렸지만 파면 이후엔 대선 국면으로 넘어갔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에게 관심이 집중됐고 다시 헌법이 멀어졌다.

바로 이런 현상이 지배 집단의 통치 전략이다. 필요할 때는 국민들에게 헌법을 이야기하게 했다가 권력을 잡고 나면 헌법을 지워버리고 마치 자신들이 시혜를 베푸는 방식이다. 내란전담재판부를 도입하려 하니 사법부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헌법을 끌고 오고, 노란봉투법·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자고 하니 지배 권력이 헌법을 가져온다.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때 기득권 집단은 예외 없이 헌법을 이용해 개혁을 저지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헌법은 호명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시민들이 헌법을 이용해야 하고, 시민의 목소리가 담긴 헌법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헌법이 호명되고 있지만 시민들이 호명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헌재에서 윤석열 파면을 기다리면서 답답함이 있었다. 결정문을 보면 만장일치의 형식을 보이느라 오래 걸렸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문형배 전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스타가 되기도 했다. 헌재의 결정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형배 전 대행이 스타가 된 것도 상징적이다. 사실 윤석열 탄핵 이후 스타가 돼야 하는 건 우리 시민이다. 시민들이 스타가 되고 시민들 목소리가 세상에 충만해져야 하는데 문형배라는 사법관료 개인이 주목을 받고 마치 그들 힘으로 탄핵을 한 것 같은 분위기는 잘못됐다. 탄핵 결정문에 비상계엄 해제를 이끈 가장 큰 힘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써있다.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남태령에서 한남동을 거쳐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몸으로 싸웠는데 그 싸움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결정문에는 ‘시민들의 저항’ 딱 6글자 뿐이다. 지금도 윤석열을 처벌하기 위해 국민들은 지귀연 재판부 입만 쳐다봐야 한다.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보나?

사법적 진상규명만 이루어지고 있다. 행정적, 정치적, 사회적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나도 며칠 전에 알았는데 비상계엄 선포 직후 시민들이 ATM에서 현금을 다 뽑았다고 하고, 광주에서는 인근 지역으로 피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택시를 잡아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공적인 차원에서 이런 기록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다. 한국 사회가 어떤 구조였고 왜 이런 사태가 나타났는지,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교훈으로 남아야 하는지 공적인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재명 정부 초반,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 현실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조항은?

과거보다는 개헌을 위한 환경이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최소주의적 개헌을 할 수 있을 텐데 ‘국민발안권’ 정도는 우선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나. 물론 참여연대가 만든 개헌안을 실제 헌법으로 만들면 좋겠지만, 참여연대안은 21세기 시민사회단체라면 제기할 수 있는 헌법 의제들을 총망라한 것으로 앞으로 개헌 논의를 마련해나갈 수 있는 토대 내지 소재를 제공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제도로 의미는 있지만 국민발안제도에 대해 우려도 있지 않나? 참여연대 개헌안을 보면 국민발안 조건으로 국회의원 선거권자 1% 이상(약 40만 명 이상) 동의로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하도록 규정했다.

한국 사회에서 그 정도 인원을 모을 수 있는 단체는 일부 기독교 종파란 점에서 국민발안제 도입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나쁜 방향으로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발안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시민들 수준이라면 발의된 법안에 대해 얼마든지 통제하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5년 11월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참여연대 헌법 개정안 입법 청원 기자회견의 모습.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25년 11월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참여연대가 헌법개정안입법청원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여연대

개헌안 입법 청원을 하면서 정치권과 소통을 했을 텐데, 참여연대 개헌안에 관심이 얼마나 있었나? 사실 정치권에선 권력구조 개편 말고는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했던 5.18의 헌법전문 수록 정도만 호응이 있는 것 같다.

제일 아쉬운 게 민주당 의원들의 태도다. 개헌은 단순히 체제를 바꾸거나 정비하는 것을 넘어 현 시대를 담아내는 ‘플랫폼’이다. 개헌 과정이 사회대개혁의 출발인데 이 부분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다. 소수 정당에서는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더라. 5.18을 전문에 넣자는 것도 겉으로만 보면 4.19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5.18 당시 시민들이 무장했다는 차이가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2조에 나온 ‘무기소지권’의 연장선으로, 경우에 따라 시민들이 국가에 저항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남태령 집회도 중요한데 농민들이 트랙터를 가져와 저항했고 시민들이 연대했다. 개헌은 이러한 시민적 역량을 헌법에서 인정하는 일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개헌을 말한다.

국회의장에게 아쉬운 게 있다. 개헌을 하자며 국회의원들에게 매달리고 있는데 의장 권한으로 시민들에게 열어주면 된다. 개헌하자면 공적 영역에 뛰어들고자 하는 수많은 시민과 단체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 개정하면 된다. 바꿔 말하면 정치적으로 국민을 배제하고 있다. 상당히 많은 국가에서 개헌의 주도권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헌법을 ‘플랫폼’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달라.

과거엔 헌법에 아주 실체적인 내용들, 권력을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분배되는가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제 헌법은 다양한 사회적 요구들을 담아내는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 수많은 국가들이 헌법 개정을 할 때 기본적 방향으로 연대성을 강조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거나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개헌안에서 시민의회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같이 삼권분립 바깥에 존재하는 국가기구를 만들 여지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에 한 가지 삶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형태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존중하고 이를 보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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