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에너지 착취 구조를 넘어, 지소지산으로

이재명 대통령은 작년 7월 31일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에너지고속도로가 수도권 일극주의로 불리는 불균형 성장전략이라는 오해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면서 “에너지고속도로는 서울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 추진되는 계획은 누가 봐도 수도권 중심의 정책이다. 이 상황을 보며 2023년, 에너지 정책에 대해 경기도 청년들이 주최한 포럼에 패널로 참여한 기억이 떠올랐다. 포럼의 취지는 진보와 보수를 넘어 어떤 기후 정치가 가능할지 논의해 보자는 것이었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오가는 중, 나는 모든 에너지의 생산 과정에서 직접적인 에너지 생산 비용 이외에도 ‘위험’과 ‘오염’이라는 비용도 함께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포럼에는 패널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당시 ‘국민의힘’ 광명시을당협위원장으로, 이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김용태 현 국회의원이었다. 김용태 위원장은 보수에서는 드물게 기후위기 대응에 진심인 인물이지만, 핵발전의 ‘위험’과 기술을 인식하는 태도가 달랐고, 이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역불평등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거의 마지막 즈음, 한 참가자의 질문에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질문의 요지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외진 지역을 선정해서 그런 위험하고 오염을 배출하는 시설들을 몰아놓고, 지역 주민들은 이주시키면 안되냐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그 아이디어는 이미 여러 지역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에너지 생산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였음에도 몇 가지 지점에서 충격적으로 다왔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어느 한 지역을 희생시키자는 이야기가 금기시되어 있었는데 그 금기를 깼다는 점, 수도권 사람들이 얼마나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지 보여주었다는 점, 대규모 강제 이주라는 방식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이다. 뿐만 아니라 위험한 시설들만 몰아놓고 사람은 살지 않는 곳을 만들자는 구상은 그 자체로 대규모 발전시설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과 지역사회에 의해 굴러가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후부不정의와 외부화 사회
기후정의climate justice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러한 인식은 전지구적인 기후부정의와 매우 닮아있다. 사회학자 슈테판 레세니히Stephan Lessenich는 대가를 먼 곳으로 전가하여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선진국 사회의 ‘풍요’를 위해 불가결하다며, 이를 ‘외부화 사회’로 부르며 비판했다(사이토 고헤이, 2019). 이러한 구조적 착취는 국가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다양한 규모의 공간적 착취 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브뤼노 라투르와 니콜라이 슐츠는 지구-사회 계급geo-social class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슬라보예 지젝, 2020). 지젝은 이를 소개하며 ‘대다수는 생산수단의 소유자들을 위해 일한다는 뜻을 담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노동자처럼 착취당하지 않’으며, ‘수도와 깨끗한 공기의 보급, 건강, 안전같이 자신들이 스스로의 삶의 물질적 조건들과 맺는 관계의 측면에서 ‘착취당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지방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역이 산업화된 농산물이나 거대한 탄광산업의 수출창구로 쓰일 때’, ‘자신들의 지역을 지역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는 방식’으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고속도로’ 정책으로 촉발된 에너지 식민지 논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브뤼노 라투르 & 니콜라이 슐츠(2022)는 구조적 착취 과정에서 대부분의 지역이 거주불가능한 땅이 되고, 우리 모두는 한정된 ‘거주가능한 땅habitable land’을 두고 투쟁하게 되었다고 정리했는데, 이 틀을 지금의 상황에 적용해 보면 수도권은 엘리트들에 의해 점유된 거주가능한 땅인 동시에 타인의 공간을 약탈하고, 다른 지역들을 착취하여 거주불가능한 땅으로 만드는 원흉으로도 볼 수 있다.
에너지 식민지 구조를 타파하려면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서 에너지의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는 지역에서 소비)라는 구호가 자주 들려온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불편한 진실이 빠져있다. 애초에 호남 등 재생에너지 생산 시설이 몰린 지역은 에너지 소비량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생산 시설이 건설되었다. 즉, 그 지역에서 쓸 전기가 아니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다. 애초에 에너지 소비가 과다한 수도권이 지소지산(지역에서 소비할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했다면, 건설할 필요가 없는 시설이었다는 것이다. 지소지산이라는 원칙 아래 강한 전력자립도 목표가 전제가 있었다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규 대규모 산단 계획을 배제하더라도 수도권-지방의 에너지 소비-생산 불균형 문제는 이미 심각한 상태이다. 서울의 전력자립도는 2023년 기준 10.4%에 불과한 반면, 경북(216%), 충남(214%), 강원(213%), 전남(198%), 인천(186%), 부산(174%) 등은 전력자립도 150% 이상(에너지경제연구원, 2025)으로 전기 생산과정에서의 위험부담과 환경오염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지역들이다. 송전탑 건설 등 에너지 식민지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지금 과잉 생산되고 있는 전기를 지역에서 쓰기 위해 산업단지를 유치하자는 주장 이전에 수도권에서 소비하고 있는 전기를 어떻게 자체적으로 생산하게 만들 것인가가 먼저 이야기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구조는 서울 등 수도권의 부담을 외부화하고 전가시켜, 에너지 생산의 오염과 위험을 전혀 질 필요가 없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가 시행 예정에 있지만, 이 제도가 원래의 의도대로 에너지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전력생산을 외부화하는 만큼의 페널티로 작동할지는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불평등을 인식할 필요조차 없다는 데에 있다. 몇 년간 소송을 거친 수서역 태양광사업은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준다.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가 추진하던 이 사업은 강남구청의 사업반려에 대해 소송을 걸었지만, 최종심에서 대법원이 빛 반사, 주거생활 방해 등 피해가능성을 인정하며 끝내 좌절되었다(에너지경제신문, 2022). 발전 시설에 수반되는 위험이나 오염을 피하고 전기의 편리성만 누릴 수 있다면 다들 그 길을 선택할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는 ‘지대地代, rent’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재생에너지 사업을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사업자도 싼 땅을 찾아 농촌으로, 습지로 갈 수 밖에 없고, 비싼 땅값이 떨어질까 두려운 서울 시민들은 자신들이 다른 지역을 착취하건 말건 남의 일이니(타자화) 태양광 설치를 반대할 것이다. 에너지 식민지 구조를 벗어나려면 지소지산의 원칙이 기본으로 세워져야 하는 이유다.
한계에 대한 인식
최근의 에너지고속도로, AI 및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흐름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매우 크다. 기후위기에 대해 모두가 이야기하지만, 정작 기후위기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산업 정책은 마치 기후위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의 지산지소를 이야기하며 함께 대안으로 제시 된 반도체 산업 호남권 이전 주장에는 반도체 산업의 근본적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다. 현실적으로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은 반도체 산업의 두 축인 전기와 물 중에 전기에 대한 논의는 치열하지만 물 공급방안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도체 웨이퍼 한 장을 세척하기 위해서는 초순수 약1톤이 필요하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건설 중인 두 개의 산단에서 필요로 하는 공업용수 수요량은 광주와 전남 전체의 생활용수/공업용수 사용량을 합친 것 보다 크다(이현정, 2025).
지소지산의 미덕은 타지를 착취하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도 자연스럽게 지역별 한계를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에도 있다. 사실 제국주의나 식민화는 자국 자연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오래된 전략이다. 나카무라 오사무(2000)는 리카도와 멜서스의 무역론을 비교하며, 리카도가 본인의 저서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에서 영국이란 한 나라에 한정된 자연으로는 경제가 궁극적으로는 정체상태에 머문다는 것을 논증하였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자유무역을 주장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주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으면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지역별로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 내에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갈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필연적이지만, 재생에너지라고 해서 아무 지역이나 무한정 건설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전환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함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 마련, 수요관리와 효율 향상이 함께 추진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에너지고속도로가 불평등 심화와 기후위기 가속화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되지 않으려면, 성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우리의 소비와 타자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참고 문헌
· 《경제학은 왜 자연의 무한함을 전제로 했는가》, 나카무라 오사무, 한울, 2000.
· 《녹색계급의 출현》, 브뤼노 라투르 & 니콜라이 슐츠, 이음, 2022.
·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사이토 고헤이, 다다서재, 2021.
· 《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 북하우스, 2020.
· ‘수서역 태양광사업, 결국 무산…”도심 설치도 어려워졌다”’, 이원희, 에너지 경제신문, 2022.11.8.
· 《2024 지역에너지통계연보》, 에너지경제연구원, 2025.
· ‘李대통령 “에너지고속도로, 서울로 가는 길 아니다”’, 이상복, 이투뉴스, 2025.8.1.
· ‘용인반도체 산단 문제, 진보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 – 기후생태환경 지불하는 반도체 산업’, 이현정, 2025.11.18.

글 이현정 녹색정치Lab 그레 소장
도시유역 구조에 대한 논문으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후, 진보정당에서 정책위원부터 다양한 당직을 거쳐 정의당에서 기후/녹색을 전면에 내 걸고 부대표로 활동했으며,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녹색과 진보정치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녹색정치Lab 그레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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