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8월 1999-08-01   1132

대통령을 만난 시민운동가들

참여사회는 김대중정부집권 1년반간 대통령을 만난 130여 명의 시민운동가들을 대상으로 대통령과 어떤 대화를 나눴으며 그에 대한 인상은 무엇인지 인터뷰가 가능한 8명으로부터 들었다.

최영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표

– “인권대통령, 실속은 없다”

최영도 변호사는 98년 2월 2일 김승훈 신부, 이명남 목사 등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찾아가 1시간 가량 면담했다. 그때 대화내용은 새정부 인권정책 전반에 관한 것들. 양심수를 조건없이 전원 석방하라,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명실상부한 국가인권위원회 만들라 등. 이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답변은 “내가 가진 인권소신엔 변함이 없다. 인권을 존중하고, 그것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임기중에 추진하겠다. 그러나 너무 성급히 서두르지 말라. 저항세력이 있다. 나를 믿고 기다려라”였다는 것.

그 후 최 변호사는 98년 5월 1일 법의 날, 두 번째로 대통령을 만났다. “그때 당신의 인권정책은 시민단체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8?5때 대폭 석방하라. 국가인권위 문제도 해결하라 등등 인권관련 사안을 모두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대통령은 양심수 석방에 대해서는 준법서약서로 받아치고, 국가인권위에 대해서는 OK하더군요. 결국 배신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98년 가을 68개 시민사회단체대표자 만남에서 국가인권위원회 문제가 언급됐는데, 대통령은 “어디 내놔도 부끄럼없는 인권기구를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그 역시 감감무소식이다. 세 차례 대통령을 만난 최영도 변호사는 역대 대통령 중 김대중 대통령이 누구보다 인권문제에 관심있는 것은 사실이나 지금까지도 속시원히 해결되는 정책이 없는 걸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고 토로한다. 그것이 자민련, 한나라당 등의 반발세력으로 인한 힘의 한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런 반발세력을 의식해서는 개혁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창복 민주개혁국민연합 상임의장

– “여론수렴창구 제대로 작동시켜야”

대통령 주변에서 가장 잦은 만남을 가졌을 법한 이창복 의장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 후 98년 9월 민화협 대표들과 함께, 그리고 11월 유가협 민가협 간부들과 특별법 문제로, 금년 봄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과의 만남 때 대통령을 만났다.

“대개는 각 단체 대표자들이 오니까 해당 분야에서 개혁되지 않는 부분을 얘기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는 것들이죠. 제가 대통령을 만났을 때 했던 얘기들은 미국의 스크린쿼터 축소문제, 민주노총 지하철파업사태, 조계사에서 농성하고 있는 한총련 학생들의 수배해제 등에 대한 해결입니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답신은 이랬다고. 스크린쿼터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미국과 합의된 바 없고 영화인들과 협의해 처리하겠다, 이른바 옷로비, 진형구 공안검사 파업유도 발언 등에 대해서는 특검제를 통해 해결해보는 것으로 검토하겠다, 한총련 간부 수배해제 문제는 자료제출을 해달라, 선처하겠다는 것.

대통령이 공언한 바 약속여부에 대해 이 의장은 “스크린쿼터제는 현상태로 유지되고 있고, 특검제 부분은 받게된 것 아닌가 싶어요. 학생들의 수배해제 문제는 곧 조치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창복 의장은 이전에 대통령을 만났을 때와 달리 러시아 몽골방문 후(DJ정부의 수세국면) 비교적 재야시민사회단체 의견을 많이 들으려는 모습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 6월 19일 20명 가량의 시민운동가들을 만나면서는 대통령이 대체로 모든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분위기였다고 전달했다. 그러나 이 의장은 앞으로도 정부가 시민사회의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려면 왜곡됨없이 정보전달되도록 여론수렴창구가 분명한 제 몫을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장원 녹색연합 총장

– “DJ는 유식 달변형”

YS집권 시절에도 1년에 한차례씩 대통령을 만났던 장원 총장은 김대중정부 출범후 지금까지 두차례 대통령을 만났다. 처음은 후퇴하는 환경정책에 대한 대책을, 두번째는 제2건국운동의 문제점과 시골 분교의 폐교위기 등을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과 만난 시민운동가들을 두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국정운영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꼬집는 형과 두루뭉실 정부를 칭찬하는 형. 그는 역대 대통령을 택시운전사에 비유하며 김대중 대통령의 청취스타일을 설명하기도 했다. “전두환 총알택시, 노태우 초보, YS 무면허, DJ 음주운전자. 특히 YS와 DJ를 비교하면 YS는 근본적으로 대통령 할 자질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YS때 청와대에 가서 환경문제 언급하면, ‘나는 민주산악회시절 쓰레기 안 버렸다’는둥 엉뚱한 소리만 하고 그랬어요. 그러나 DJ는 그와 달라요. 환경영향평가문제, 그린벨트 등 너무 많이 알아요. 그래서 오히려 전문가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사실 대통령은 여러 사람, 특히 환경사안일 경우 전문가의 의견을 잘 들어야 하잖아요.”

장원 총장이 보기에 DJ는 한마디로 ‘유식한 달변형’이다. 처음에는 대통령 스스로 자신에 대한 확신이 너무 커 스스로 개혁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현정부의 치적이 있음에도 홍보가 잘 안돼 섭섭해 하는 눈치였다는 것. 그러나 지난 늦봄에 만난 대통령은 상당히 피곤해 보였고, 심지어는 눈을 감고 있어 졸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고.

지은희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 “여성할당제, 잊지는 않으셨겠죠?”

국정운영이 위기를 맞고 있는 긴박한 상황, 총체적 개혁이 필요한 시기엔 대통령에게도 대화의 파트너가 필요한 법이다. 지은희 여연 공동대표는 김대중정부의 개혁이 자칫 좌초할 수도 있는 위기에 봉착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부패방지법의 제정, GO와 NGO와의 관계정립, 제2건국운동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고 한다.

“제2건국추진위원회를 설립할 당시, 자율성을 생명으로 알고 한국사회의 개혁을 위해 일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을 제2건추라는 하나의 조직으로 묶으려 하는 의도와 발상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죠. 정부가 진정으로 시민단체를 도와주려면 차라리 세제혜택, 우편료 삭감 등 간접지원 형태의 현실적 도움을 해주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데서 생각한 겁니다.”

이뿐 아니라 지은희 여연 공동대표는 정당법에 여성을 30% 할당하도록 여성계와 대통령이 약속했고, 이는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이 약속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해 문제제기했다고 한다. 물론 여성할당제 추진 입법안에는 ‘정당법상, 비례대표제 중 30%는 여성에게 할당한다’는 안이 명시돼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질화되지 않고 있고, 법조문만으로 남는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치개혁법안 자체가 국회에서 표류 중이기 때문에 여성할당제가 어떻게 될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사실상 정부가 국무위원 중 3∼4명의 여성 장관을 두겠다고 약속한 것도 사실상 지켜지지 않는 공약(空約)에 불과하다는 것. 따라서 올 정기국회 때까지 현정부의 태도를 잘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자 녹색소비자연대 대표

– “정부는 법제도로 시민운동 지원해야”

“ㄱ에서는 아무개, ㅂ에서는 박원순, ㅅ에서는 서영훈, 여성은 이정자….” 시민사회단체대표자와 대통령의 만남에서 청와대가 지정한 발언권들이다. 지난 6월 19일 이정자 녹색소비자연대 대표는 그 자리에서 시민운동가들의 양성과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민운동가들은 다른 기관에 비해 사회적 신분(교육, 급여 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시민운동진영에 남아 있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법제를 마련해 시민운동가를 육성하고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정부가 시민단체지원법을 마련해 법제화하겠다”고 화답했다고. 올 정기국회를 지켜볼 일이다. 대통령 당선 후 이정자 대표는 DJ와 너덧차례 만나왔다. 그때마다 드는 느낌은 대통령에게 통하는 ‘언로’가 제한적이라는 것이었다.

“비서진이 대통령에게 무언가를 제안하는데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면 비서진 스스로 제한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든가. 그런 모습에서 저는 대통령과 비서진이 서로 의견을 규합하고 그 의견을 국정에 반영하는 게 좋겠다고 봤는데,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대표는 YS와 DJ를 비교하기도 했다. “YS는 본인이 정책을 갖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니까 DJ와의 만남 때보다 더 꽉 짜여진 틀의 만남이 이뤄졌겠죠. 그리고 YS는 무슨 얘기를 하면 구체적 답변은 하지 않고, ‘수렴’하겠다는 정도로 말할 뿐이었죠. 그러나 DJ는 묻는 말에 즉각즉각 답변을 하고, 본인의 의사표시를 확실히 했어요. 해결한다, 못한다는 답도 분명히 하고. 그런 과정에서 DJ는 비교적 투명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 “개혁 성패, 대통령 의지에 달려”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대통령과 네 번 만났다. 작년 가을 그는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던졌단다.

“감옥에서 나는 <수양제와 당태종>이란 일본책을 읽었다. 수양제는 국민의 의견을 잘 경청하는 훌륭한 임금이고, 당태종은 폭군이다.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면 좋아지고, 나쁜 사람을 많이 만나면 나빠지는 법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주변엔 맘에 안드는 사람들이 많다. 또 대통령은 IMF위기에서 경제를 살린다면서 환경정책을 죽이고 있다. 동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다. 그런데 여기에 댐을 지으려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냐. 대통령이 그러시더군요. 나도 환경문제에 관심 많다. 동강댐말고 물부족 문제는 평화의 댐을 통해 해결해보는 것으로 재검토하겠다. 그런데 뭐, 금년 들어서는 또 여러가지 말을 하고 그랬죠.”

출범 초 대통령은 시민운동가들에게 “나는 개혁을 하기 위해 대통령이 됐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단다. 그러나 실제 귀기울여 듣는지 몰라도 정책화 입법화에는 소극적인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에 대한 최열 총장의 느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자기 얘기가 너무 많지. 대통령 앞에서 ‘아, 이게 아닙니다’ 소리가 안 나온다구. 특히 권력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더 하겠죠. 대통령의 카리스마는 대단한 것 같았어요. 그런 걸 지켜볼 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개혁은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겠다는 거였어요.”

최열 총장은 지금껏 시민단체가 주장해온 일련의 개혁조치들이 입법화, 정책화하는 마지노선을 오는 8월 15일까지로 정했다고 말했다. “만일 그때까지 개혁정책이 입법화되지 않는다면 이 정부의 개혁은 끝이다, 난 그렇게 생각해요.”

유종성 경실련 사무총장

– “청와대 비서진 개혁인사로 바꾸자”

유종성 경실련 사무총장은 작년 가을, 올초 두어차례 대통령을 만났다. 가장 최근 만난 것은 올봄 청와대 정무수석 조찬이었다. 김정길 정무수석, 김한길 수석이 동석한 가운데 여러 시민운동가들이 함께 모여 김대중 대통령에게 “개혁세력 전면배치로 개혁을 가속화하고, 청와대 비서진도 개혁적 인사로 개편하라”고 건의했다.

그날 주장의 핵심요지는 특검제 도입, 재벌의 소유지배구조개선 등의 실속있는 재벌개혁추진,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 금융소득종합과세 부활 등의 세정세제개혁추진, 그린벨트 전면해제에 대한 문제제기 등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개혁정책 중 햇볕정책은 일관되게 노력해온 바 그 공로는 인정하고,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일관성있게 밀어달라고 당부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고.

이에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설명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NGO의 적극적 지지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단다. 시민운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특검제에 대해 “미국도 여러 폐단 때문에 문닫은 특검제를 우리가 계속 밀어가야 하느냐”고 반문했으며, 그린벨트 전면해제 문제는 지금 정부의 안대신 어떤 대안이 있겠냐고 역으로 묻기도 했다고 한다.

유 총장은 몇차례에 걸쳐 대통령을 만난 느낌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전달했다.

“지난 가을에 만났을 때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개혁의 성과를 열심히 설명했던 반면 상대적으로 이번에 봤을 때는 그런 얘기하는 기간이 길지 않았어요. 아마도 당시의 민심이반(옷로비정국, 진형구 검사 파업유도 발언파문 등) 상황 속에서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어쨌든 그런 태도가 좋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 “남북.외교만큼 내치도 중요하다”

“김 대통령은 행운아입니다. IMF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대통령을 하게 됐으니 그야말로 제대로 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상황이 아닙니까. 지금의 개혁속도는 너무 느리니 힘있는 개혁을 해주십시오.”

“동지 섣달 그믐에 시집온 사람이 다음날 시어머니로부터 아가야, 너는 시집온 지 2년째인데 왜 아직 애가 없냐, 그래서 소박 맞았다는 얘기 있지요. 개혁을 너무 빨리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조절해서 개혁을 하겠습니다.”

그때 박 처장은 대통령의 개혁의지에 대해 의심했단다. 그후 지난 6월 19일 시민사회단체대표자 만남에서 대통령 옆의 옆 자리에 앉아 그는 자연스레 대통령을 관찰하게 됐다고. 대통령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시민운동가들의 발언을 예쁜 글씨로 메모하고, 필기하더라는 것.

“참 인터그러티(Integrity)하달까, 그 나이에도 사물을 바라보는 판단력이나 장악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면 너무 진지해서 좀 그렇더라구요. 그런 자리에서는 대통령이 좀 웃기기도 하고 그래야지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경직된 느낌을 받게 하면 좀 그렇잖아요? 물론 진지함과 유머러스라는 양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모임은 대통령이 여유있고 부드러운 모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되더라구요.”

박 처장이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 느낀 바는 이렇다. “서해교전사태가 있은 직후에 만나서 그런지 햇볕정책의 중요성을 굉장히 심도있게 설명하더라구요. 남북외교문제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남북외교를 위시한 외치를 아무리 잘 해도 내치에서 결정적으로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부패사건이 터지면 수포로 돌아가는 거다. 따라서 외치만큼 내치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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