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8월 1999-08-01   823

나의 노래가 작은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수 권진원

삶에 도움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노래를 하고 싶다는 가수 권진원.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고대한다고 말한다.

몇해전인가 건국대 정종섭 교수는 참여연대의 기금마련을 위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법학자가 주인공인 만큼 참석자들도 비슷한 무리들이었다. 변호사, 법학자, 법학도 등등. 깔끔한 흰 와이셔츠에 울긋불긋 넥타이, 반짝반짝 윤이 나는 구두들. 하나같이 안경을 쓰고, 점잖게 자리하고 있었다. 헛기침조차 자유롭지 않은 고요하고 지리한 분위기…. 이를 반전하기 위해 참석한 손님이 있으니, 그가 가수 권진원이었다.

붉은 카펫이 깔린 강단 아래로 검회색 양복들이 강의실 형으로 줄지어 앉은 곳. 가수 권진원은 강단 한켠에 서서 노래했다. 마치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요청에 따라 노래하는 학생처럼. 그런 가수에게 환호는 못할망정 박수는 아끼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그녀에게 시원스런 박수조차 보내지 못했다. 그나마 맨 뒤에서 약간의 여흥구를 살린 젊은 활동가들이 없었다면 더욱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됐을 것이다.

그로부터 몇년, 지난 12월 참여연대로 기쁜 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혜화동 학전블루에서 콘서트하던 그가 ‘공짜’로 참여연대 활동가들을 초대한 것이다. 성명서, 보도자료, 회의, 집회에 지친 활동가들에게 권진원 콘서트 티켓은 구미당기는 문화적 은전이었다. 추운 겨울, 좀 귀찮아할 법도 한데 활동가들은 일을 접고 혜화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혜화동 학전블루. 객석의 불빛이 꺼지고 조명이 무대를 반사했다. 긴 커트머리의 권진원은 여러 빛깔의 화려한 음색으로 청중을 압도했다. 출판기념회장에서 머쓱해하던 그가 아니었다. 역시 가수는 출판기념회장이 아니라 무대에 서야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녀는 청중들과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맘속에 그려져 있던 출판기념회장의 밋밋한 권진원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그리고 학전블루에서의 색깔있는 권진원을 다시 그려넣었다.

멜로디로 이해할 수 있는 노래 만들고파

올봄, 운전을 하며 창경궁을 지나고 있는데 상큼한 노래 한곡이 흘러나온다.

권진원의‘Happy Birthday to You’

이슬비가 내리는 오늘은 사랑하는 그대의 생일날

온종일 난 그대를 생각하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했죠

난 가까운 책방에 들러서 예쁜 시집에 내 맘 담았죠

그 다음엔 근처 꽃집으로 가서 빨간 장미 한송이 샀죠

내려오는 비를 맞으며 그대에게 가는 길 너무 상쾌해

품속에는 장미 한 송이 책 한권과 그댈 위한 깊은 내 사랑

아름다운 그대를 만난 건 하느님께 감사드릴 우연

작은 내 맘 알아주는 그대가 있기에 이 세상이 난 행복해

있을 법한 생활 속 이야기를 잔잔한 리듬에 맞춰 경쾌하게 만든 그 노랫말이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곤 이번에는 그녀를 꼭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절은 땅이 파이도록 주룩주룩 비가 퍼붓는 장마여야 하는데 햇볕은 쨍,하고 모른체한다. 건조할대로 건조해진 서울엔 흙바람 먼지만 무심히 일어나고, 사람들의 불쾌지수는 하늘을 찌른다. 강남 뉴코아백화점 5층 커피숍, 예쁘장한 사람이 하나 들어온다. 작고 마른 체구, 빨간 티셔츠에 하얀 면바지, 검정 워커. 콘서트장에서 보던 그와 또다른 이미지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이웃사촌같은 느낌, 권진원이 내게 준 세번째 인상이다.

가수 권진원 씨는 올해로 11년째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다. 85년 강변가요제에서 ‘지난 여름밤의 이야기’로 은상을 수상했고, 87년에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로도 활약했다. 그동안 여덟 번의 공연을 가졌으며 4집까지 음반을 냈다. 대표곡으로는 ‘저 평등의 땅에’ ‘어느날’ ‘살다보면’이 있는데 뭐니뭐니해도 사람들은 95년에 나온 ‘살다보면’으로 그를 가장 많이 기억해준다. 출시 이후로 7만 장이 팔린 ‘살다보면’은 노래방의 히트송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권진원 노래는 쉬울 것같은데 막상 부르면 어렵다고들 하시더라구요. 노래를 쉽게 만들어야 할텐데 작곡자로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녀는 싱어송라이터다. 주로 지나치는 일상생활에서 떠오르는 악상을 멜로디로 풀고 노랫말을 붙여 완성된 작품으로 내놓는다. 공연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드는 느낌, 영화를 보고난 느낌, 책을 읽고 난 다음에의 감상, 친구얘기, 본인얘기 등등이 주된 그녀의 소재들이다.

“가사없이 들어도 멜로디가 주는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기억될 수 있을 것같아요. 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를 하고 싶어요.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노래, 삶에 도움되는 노래 하고 싶어요.”

최신곡 ‘Happy Birthday to You’도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노랫말을 붙인 경우란다. 최근 방송에서 생일축하곡으로 자주 다루지만 사실 이 노래는 가난한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라는 것. “뮤직비디오 봤어요? 이 노래는 산동네에 사는 한 가난한 청년이 예쁜 화분을 사들고 사랑하는 애인에게 생일선물을 주러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거예요. 그런데 내용이 와전돼 생일축하곡인양 다뤄져서 좀 그렇습니다.”

시대에 맞는 문법으로 노래해야

노래를 오락이나 유희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가수 권진원 씨가 생각하는 노래는 삶에 도움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도구다. 따라서 장르를 따지지 않고 슬픔을 표현할 때는 발라드로, 자유와 희망을 말할 때는 록으로 사람사는 세상의 희노애락을 그려낸다. 80년대처럼 노래를 무기로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삶의 작은 부분을 추동시켜 좀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데 그녀가 일조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물론 87년 6월 시청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가는 잘 알고 있단다. 그러나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언어로 노래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녀의 주장은 ‘노래는 시대에 맞는 문법이 따로 있다’는 것.

권진원 씨는 기름값 정도의 적은 출연료를 받으면서도 각종 사회단체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북한어린이돕기 행사를 비롯 양심수 시와 노래의 밤, 각종 시민단체 행사 등 통일, 인권관련 행사에는 가능하면 모두 참석하고자 노력한다. 사회단체 행사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가면 반가워해주는 청중이 있고, 좋은 대접을 받기 때문이라고. 돈으로만 거래되는 상업적 행사와 다른 푸근한 인간적 정이 흐르는 차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노래가 힘이 된다면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가수 권진원. 자연인으로서 그는 우리사회에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점차 심화되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평등한 사회만들기 참 어려운 것같아요.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내가 노력한 만큼의 희망을 느낄 수 없잖아요. IMF이후 더 절망하게 되고, 좌절하게 되고. 그래서 저는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람 개개인이 의식의 전환을 통해 대충대충 빨리빨리 은근슬쩍하는 습성을 없애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해요.”

나이들어서도 그녀는 60년대말부터 미국에서 활동해온 가수 캐롤 킹(Kerol King)처럼 늘 노래하면서 후배들에게 좋은 곡을 선사하는 음악인으로 남고 싶단다. 여건이 허락돼 공부를 더 할 수 있다면 뮤지컬도 만들고 싶다고. 지금은 새음반 홍보를 위해 TV 라디오 등에 열심히 출연하고 있고, 9월초 예정인 콘서트 준비에 바쁘다며 총총히 사라졌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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