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5년 01월 2005-01-01   975

백가지 친구 이야기

나는 혼자일 때 편하지만, 외롭다. 자신을 그저 ‘인간’으로만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자신을 자연 속 생명으로 바라볼 때는 외롭다는 말 자체를 잊는다.

내게는 석 달이 조금 지난 아기가 있다. 물론 아기를 낳고 키우고 그 미소를 보는 기쁨이야 비할 데가 없지만, 그것과 별도로 외롭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더랬다. ‘살아가는 일’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아팠다. 아이 키우느라 종종대며 힘들 때, 아무에게도 전화가 걸려오지 않을 때, 아니 전화 걸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그리고 내게 다시 일할 기회가 남아 있기나 한지 걱정스러울 때, 도대체 이렇게 어설픈 내가 아이에게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수 있을지 두려울 때 그럴 때 외로웠다. 아기와 놀 때는 나도 방긋방긋 웃다가 아이가 잠들면 근심에 잠기곤 했다.

어제 턱을 괴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예전에 친구가 선물해준 책 한 권을 집었다. 『백 한 가지 친구 이야기』였다. “친구가 많기도 하구나.”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부럽다. 누군가의 힘이 되는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백 한 명이나 되는 착하고 진실한 친구들이 있다면….

책 속에는 나처럼 외롭고 보잘것없지만, 그러나 결국엔 위대한 존재들이 누구누구와 친하고 재미나게 살아가는지가 끝말잇기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인간’들보다 먼저 생명을 키워온 식물과 새와 물고기들, 그 ‘선배’들의 이야기가 한 묶음의 그림엽서 속에 펼쳐졌다. 책장마다 저자가 직접 그린 엽서만한 그림, 하이쿠 같은 짧은 메모들이 여운 넘쳤다.

그림을 그리고 쓴 이와타 켄자부로는 일본의 시골마을에서 판화를 그리며 살고 있는 화가로, 그의 스케치에는 대개가 돌멩이, 개구리, 도토리, 여뀌처럼 자연 속 작은 생명들이 숨쉬고 있다. 그가 나를 감동시킨 것은 이 책뿐만이 아니다. 삼십 여 년 동안 ‘재잘재잘 통신’이란 소식지를 만들어 친구와 지인들에게 직접 건네주는 일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 멋지다! 오랜 세월 그가 사랑하고 의지해온 자연 속 친구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니 그는 외로울 틈도 없었겠다. 언제나 귓가에서 재잘재잘 재미나게 떠들어주었을 테니.

‘전봇대의 친구는 참새.

참새의 친구는 붉은 여뀌.

여뀌의 친구는 소꿉놀이할 때 쓰는 나뭇잎 접시.’

그는 사람들이 모두 이 별에서 함께 살고 있는 벌레나 꽃이나 새나 물고기와 서로 친구가 된다면 좋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든, 더 깊숙한 의미를 위해서든 어쨌든….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지인들로부터, 내 일로부터, 사회로부터 멀어져가는 나를 돌아보며, 이런 외로움과 두려움을 더는 길은 자신을 ‘인간’이라는 틀 속에 가두지 않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인간’이지만, ‘인간’만은 아닌 것이다.

‘이제 조금은 더 편안하고 고요한 밤을 보내자. 나는 누구에게든 귀한 친구. 내 수많은 친구들을 생각하며 외롭지 말자.’

원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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