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정당의 실종
느리고 지겹지만 꼭 이끌어내야 하는 새누리당의 변화 이준석
민주당, 버리는 게 답인가? 이철희
민주당을 대체하려는 신당의 꿈과 현실 이대근
시민정치와 고민을 함께하는 진보정당을 향하여 김만권
민주당, 버리는 게 답인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지질한 민주당
126 그리고 21. 민주당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숫자로 표현하면 이 숫자만큼 정확한 게 있을까? 10년의 집권과 한국 현대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배출한 정당이라고 하기엔 지금의 민주당, 너무 초라하고 무능하다. 지역구-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는 선거제도 덕분에 누리는 이점, 양당제에서 제1야당이 누리는 반대의 독점이라는 혜택 등을 배제하고 민주당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더 처참하다.
126은 민주당이 지닌 국회의원 의석수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야당으로서 이처럼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의석이다.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126명을 거느린 민주당은 큰 야당이다. 덩치는 큰데, 역할은 미미하다.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출범 이후 민주당은 계속 끌려 다녔다. NLL 문제에다 정상회담 대화록, 그리고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까지 국면을 주도한 적이 거의 없었다. 정상회담 대화록의 전문이 공개된 이후 형성된 여론의 우위를 국가기록원 원본 공개라는 ‘뻘짓’으로 잃어버렸다. 우연히 주어진 계기도 주도권 확보의 모멘텀으로 사용하지 못한 셈이다.
사실 민주당 국회의원의 개인적 역량은 떨어지지 않는다. 개중에는 아주 뛰어난 사람도 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당정의 요직에서 일한 사람도 적지 않다. 민주화 운동의 화려한 이력을 지난 사람은 숱하게 많다. 1997년과 2002년의 기적과 같은 대선 승리에 기여한 전략가나 정치 고수도 제법 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민주당이란 집단적 프레임으로 보면 무능하기 짝이 없다. 입법정치에서 의미 있는 법안으로 대중적 신망을 얻고 있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5공 청문회 때 ‘전두환’을 향해 명패를 던지는 국회의원 노무현의 결기가 느껴지는 강단 있는 인물은 사라진 듯하다. 비례대표 출신의 장하나 의원이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한 바 있는데, 누가 제격이었는지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화 운동의 주역을 자처하는 486 정치인 중 누군가 감당해야 할 항거였다.
21은 한국갤럽이 1월 둘째 주 조사에서 기록한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다. 이 갤럽 조사는 이른바 안철수 신당을 넣지 않고 하는 조사라 그나마 21%이지 다른 조사처럼 안철수 신당을 넣으면 민주당 지지율은 9~10%에 불과하다. 새누리당은 싫고 민주당은 못 미더우니, 새로운 대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안철수 신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난 것이라 하더라도 너무 턱없이 낮은 지지율이다. 젊은 세대들은 대체로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있으니 청년층에서의 열세는 그러려니 하지만 전통적인 텃밭 호남에서의 참담한 고전은 민주당에게 귀책되는 사유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의석 점유율 42%에 정당 지지율 21%는 민주당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수치다.
야당의 정치는 국회의원 중심으로 돌아간다.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에게는 위기의식이 없어 보인다. 어떤 이의 말처럼 민주당에겐 이미 닥쳐있는 오래된 위기보다 위기의식이 없는 게 더 큰 문제다. 국회의원 선거가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13일이 20대 총선이니 지금부터 그때까지의 26개월이란 세월이 민주당 국회의원을 위기에 둔감하게 만드는 환각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안철수 신당이라는 것도 그리 두려운 일은 아니다. 자신들은 현역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고, 안철수 바람이 그때까지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든 그때 가서 선택하면 된다는 생각이 민주당을 한심 무인지경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니 계파별로, 심지어 의원 개인별로 따로 움직이는 까닭에 “민주당은 구심점을 갖지 못하고 각 의원이 1인 정당 역할을 하는 프랜차이즈 정당”(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이란 소리까지 듣는다.
그럼에도 민주당?
민주당이 보여주는 실력이나 행태, 결기 등을 보면 아예 없애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비유하자면, 코나 입이 못나서 못마땅한 게 아니라 아예 사람이 싫은 수준이다. 남녀 사이에서도 이쯤 되면 갈라서는 게 맞듯이 국민으로선 민주당이 없어지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점이 있다. 민주당이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03년 열린우리당이 창당하고, 뒤 이은 총선에서 탄핵 반대 열풍에 힘입어 152석을 얻는 대승리를 이루지만 잔류 민주당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그 이후 선거에서는 잔류 민주당에게 패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민주당을 ‘발본색원’할 수 없다면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재활용 또는 한시적 활용이 불가피하다.
총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2016년까지면 2017년에 대선이 있으니 박근혜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은 부득불 지금의 야당 국회의원들이 감당해야 한다. 2014년과 2015년의 일상정치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2016년과 2017년의 선거정치 결과가 결정된다. 당분간 야권의 재구성도 쉽지 않다. 연대를 명분으로 혁신을 외면하는 기득권 정치에 대중적 불신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선거가 아닌 일상 정치에서 연대의 필요성을 손에 잡히게 보여주지 못했기에 선거 때 힘을 합치는 것이 정략으로 비쳐질 수 있는 측면도 다분하다. 그렇다면 126명을 거느린 야당을 당분간은 활용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야권의 재구성에만 매몰돼 일상 정치에서 민주당이 감당해야 할 역할마저 폄훼하거나 무시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경제적 약자의 몫이다.
리더십과 프레임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
사실 민주당이 부진한 이유는 개개인의 역량보다 리더십의 문제이고, 프레임의 문제다. 지금 민주당의 리더십은 취약하다. 계파주의가 작동하는데다, 지금의 지도부가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어서 구조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게다가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인물들은 당 지도부에 빠져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대선주자의 전면 등장(당권 장악)은 아니다. 오히려 중립적 지도부 하에서 새로운 리더가 출현할 수 있는 리더십 경쟁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선거를 겨냥한 대권주자의 대권 게임이 아니라 일상정치와 시대 담론의 제시 측면에서 리더십을 보여주는 경쟁을 펼쳐야 한다.
프레임의 문제는 민주당이 정치·도덕적 이슈를 놓고 여야 다투는 구도에서 벗어나 먹고 사는 문제의 사회·경제적 프레임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냐 반민주냐 하는 구도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질, 즉 어떤 민주주의냐 하는 구도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부자를 비롯해 소수의 강자가 득세하는 ‘가난한 민주주의poor democracy’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통해 다수가 사회적 시민권을 보장받는 ‘행복한 민주주의happy democracy’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당이 정치의 주제를 민생으로 바꾸고, 그 민생의 주역들인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확장·보장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일상 정치를 잘 할 수 있도록 압박하고, 계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당, 아직은 버릴 때가 아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정치를 바꿔야 모두의 삶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갖고, 교통방송에서 ‘퇴근길 이철희입니다’를 매일 저녁 6~8시 진행하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작은 기여라도 하기를 희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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