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3-10-21   1285

<권은정의 일상만상> 장애아 ‘용미’ 이야기

[##_1L|kwoneunjung2.jpg|width=”150″ height=”2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며칠 전 한 입양원의 행사에 다녀왔다. 큰 도움은 못주고 있지만 늘 마음이 가는 곳이다. 가을볕이 좋은 오전, 늘 고즈넉하기만 하던 입양원의 마당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마당 이쪽에서는 구수한 음식냄새가 퍼지고 있고 저쪽에 설치한 무대에서는 음악소리가 요란하다. 여기저기 걸린 풍선이며 꽃들이 온통 잔치마당이다. 무대 전면에는 ‘자원봉사자 축제와 장애아동 시설건립기금 바자회’라는 제목이 보였다.

참석한 이들 중 대부분은 엄마나 아빠였다. 모두 아기들의 손을 잡고 있거나 업고 있거나 안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엄마나 아빠의 얼굴로 한 자리에 모여서인지 모두의 얼굴을 밝고 평화스러워 보였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허리춤 아래에서 이리저리 길을 만들어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 입양원은 ‘우리아기 우리 손으로’라는 자세로 국내입양만을 시작한지 15년째 된다. 이 일 시작할 당시만해도 입양이라면 모두 해외입양으로만 알았던 시기다. 국내입양은 멀고먼 길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직 해외입양의 수치를 넘지는 못하고 있지만 국내입양은 어느 정도 활성화되었다. 낳아준 부모와 살수 없게 된 갓난아기들에게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나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날 행사는 입양 그 자체만을 알리기 위한 행사가 아니었다. 장애아동 입양에 대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입양원에 살고 있는 아기들 중에 장애를 가진 아기들은 입양이 ‘보류’된다. 용미도 그런 경우다.

용미는 11월이 되면 만4살이 된다. 용미는 뇌성마비 장애아이다. 그래서 아직 새엄마아빠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보통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일 경우 입양이 더 쉽게 이뤄진다. 더구나 용미는 똑똑하고 예쁘기 때문에 장애아만 아니었다면 다른 아기보다 일찍 ‘엄마’에게로 갔을 것이다. 용미는 미숙아로 태어나면서 산소부족으로 뇌성마비가 되고 말았다. 하지강직이 심해 아직도 용미는 걸음을 걷지 못한다. 그러나 아주 어릴 적부터 재활구두를 신기 시작하여 꾸준하게 진행하는 물리치료 덕분에 최근에는 혼자 버티고 서 있을 만큼 좋아졌다. 용미가 신고 있는 분홍색 재활구두는 이번에 다시 맞춰 신은 것이다. 용미의 발이 쑥쑥 커가기 때문이다.

감자 칩을 좋아하는 용미는 똑똑하기로 치면 또래보다 앞선다. 지난 부활절 때 입양원에 공연하러온 대학생 오빠가 인사로 ‘다음에 또 올께’ 하며 떠나려 하자 “언제?” 라고 눈을 또롱또롱한 채 물었다. ‘다음에’라는 말의 기약 없음을 벌써 알아차린 용미가 안쓰럽고 기특했다. 요즘은 목소리도 크게 해서 자기의사를 분명하게 말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고 노래도 아주 잘 부른다. 참, 피아노도 잘 친다.

용미에 대한 입양원의 정성은 헤아릴 수가 없다. 물리치료와 무용치료, 음악치료와 일반유아교육, 양육에 쏟는 손길은 용미와 같은 아기를 하나만 키워도 벅찬 일일텐데 이곳사람들은 모두 당연한 일로 여긴다. 용미와 같은 아이들에게는 조기치료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절실하다. 이날 바자회 수익금은 그런 치료와 시설을 위한 건물 마련의 첫 단추를 채우기 위한 것이다.

장애아 입양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이 나라에서는. 이동권을 얻기 위해 장애인들이 몸에 사슬을 감고 철로 위에 누워도 될까 말까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취업은 물론 교육에서도 평등은 요원한 상태다. 사실 그것은 아기가 자라고 나서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보다 더 일찍 장애아를 바라보는 이웃의 눈길은?

이런 가운데 장애아기를 데리고 가서 키우라는 것은 참으로 힘든 요구이며 부탁이다. 다만 좋은 사람들의 선한 마음에 의지하는 일이 아닐까? “그렇지만 누군가 시작해야할 일이지 않겠습니까?” 원장수녀님이 힘주어 말한다. 그는 국내입양도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덧붙인다. 다들 어렵고 힘든 일이라 비켜 가면 그 길을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 시작에 나섰던 사람들 덕분에 현재 1년에 10여명 정도의 장애아기들이 ‘집’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미미한 숫자라고 하지만 어찌 그 의미가 작을 수 있겠는가.

한쪽 다리에는 의족을 끼운 채 공을 던지던 해외입양아 아담 킹. 무엇보다 그 아이의 밝은 표정이 부러웠다. 용미도 그렇게 밝은 얼굴로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수녀’엄마’, 자원봉사자 ‘엄마’…. 너무 많은 엄마보다 단 한 사람의 엄마를 기다리며 오늘도 용미는 쑥쑥 커가고 있다.

권은정 (인터뷰 전문기자, 번역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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