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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5K 구입 관련 외압 규명과 선정 철회를 촉구하기 위해 2002년 봄 안국동 참여연대 사무실 건물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 배경과 문제의식 ┃

 

F-X란 Fighter X의 줄임말로 2000년대 초 한국 공군이 추진한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의 프로젝트 명이었다. 2000년대부터 약 100여개의 전투기가 도태될 것을 예상한 공군이 약 500대의 전투기 수를 유지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F-X사업이었다. 당시 F-X 사업은 율곡비리로 널리 알려진 한국형 전투기 사업(KFP)이 사실상 실패한 후 10년 만에 추진된 차세대전투기 구매 사업이라는 점과 5조원이상이 투입되는, 단일 거래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도입 사업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풀리지 않는 의혹들과 문제점들이 제기되었다. 가장 큰 의혹은 바로 기종 선정과정에서 미국의 외압 시비와 평가기준 조작 시비로 인한 형평성 문제였다. 미국 보잉사의 F-15K 전투기가 다른 기종들보다 성능과 가격에서 뒤지고 있음에도 미국이 F-15K를 구매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맑은사회만들기본부)가 처음부터 F-X 사업에 깊은 주의를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국방부의 배타성과 기밀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차원에서 F-X 사업에 관심을 가졌으나, 1999년 국방부의 형식적인 공개설명회에 실망하고, 이후 기사 모니터 수준의 관심만을 유지했다. 하지만 2002년 1월 초, 국방부의 F-X 기종 평가 방식 발표 이후 국방부가 F-X사업 진행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미국편을 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참여연대는 다시 F-X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본격적인 활동은 2002년 3월초 F-X 사업 평가팀장으로 지냈던 조주형 대령의 양심선언 이후부터였다. 조주형 대령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F-15K를 구입하지 않으면 미군이 철수할 수도 있다”, “F-15K의 결함부분은 국회 보고에서 제외하라”는 등 윗선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했고, 이로 인해 F-X 사업에 대한 국민적 불신 여론이 들끓었다. 참여연대는 공익제보자 보호 차원에서 그리고 대규모 전력증강사업에 대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활동을 재개했다.

 

 

┃ 주요 활동 경과 ┃

 

숨막히는 48시간-공군 조주형 대형의 인터뷰·연행·접견

 

조주형 대령의 양심선언을 방영했던 MBC와 KBS는 방영 당시 조주형 대령의 인터뷰를 모자이크와 익명으로 처리하였지만 그의 신원을 곧 추적당했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은 즉각 제보자와 접촉을 시도했다. 당시 군 내부에서 공익제보를 ‘기밀누설’의 혐의로 연행하는 것은 입막음을 위한 주요 수법이었기 때문에, 참여연대는 다급하게 MBC 기자를 만나 제보자의 연락처를 파악하고 재빨리 제보자 가족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제보자가 공군의 F-X 시험평가팀장을 역임한 조주형 대령이라는 것이 드러났고, 조주형 대령이 문규현 신부의 매부라는 것도 확인되었다.

 

조주형 대령을 접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주형 대령의 급작스러운 연행으로 그 가족들과 변호사 접견권에 대해 합의하는 것이 다소 어려운 상황이었고, 조주형 대령 또한 가족에게 ‘나는 괜찮다’, ‘변호사 접견은 필요 없다’고 밝힌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남매 지간인 문정현, 문규현 신부의 협조로 조 대령 부인 문 씨를 설득할 수 있었고 결국 ‘조 대령의 요청 여부와 상관없이 가족과 함께 변호사 접견 시도’ 합의를 받았다. 수소문 끝에 조주형 대형이 기무사에 의해 서울로 이송된 것을 확인한 참여연대는 장유식 변호사, 안병희 변호사 등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내정하고, 3월 6일 부인 문 씨가 상경하는 대로 함께 기무사에 접견을 요청하기로 했다.

 

참여연대는 공익제보와 국가기밀이 상충할 경우 공익제보가 우선한다는 입장에 따라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대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영장 없이 48시간 이상 구금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조주형 대령을 3월 6일 자정까지 석방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기무사는 결국 7일이 되어서야 조주형 대령을 석방했고, 곧바로 조 대령과 변호인단의 본격적인 면담이 시작되었다. 당시 첫 면담에는 문규현 신부, 이덕우, 장유식 변호사 그리고 당시 참여연대 정책실장이었던 이태호 사무처장이 함께 했다.

 

변호인단, 조대령의 육성증언 공개하다

 

조주형 대령과의 면담을 통해 변호인단은 조주형 대령이 F-X기종평가에 참여하는 동료로부터 F-15K가 선정되도록 하라는 각종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하소연을 들었다고 했다. 결국 공군의 숙원사업을 망칠 것으로 판단한 조 대령이 군 기밀 누설의 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던 것이다. 조 대령의 설명이 진행되는 동안 이태호 정책실장과 문규현 신부는 F-X 사업의 전모를 자세히 파악하기 위한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고, 그 사이 장유식 변호사와 이덕우 변호사는 조 대령에게 청구될 구속 영장에 대응하기 위해 영장실질심사와 관련한 변론문을 작성하였다.

 

증인의 진술이 명백함에도 조 대령의 변호는 쉽지 않은 과정의 연속이었다. 조주형 대령이 기무사에 처음 연행되었을 당시 군 수사기관의 먼지털이식 유도심문으로 인해 프랑스 전투기 라팔측 대리인인 이 씨로부터 용돈 명목의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조 대령은 이 씨가 라팔 측 대변인이 되기 이전부터 서로 용돈 명목으로 돈을 주고 받아온 절친한 관계였기 때문에 자녀 교육에 보태라는 돈을 뿌리치기 어려웠다고 했다. 다만 군사기밀이나 협상정보 제공을 대가로 받은 금품수수라는 군 수사기관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 다음날 아침, 조주형 대령은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군 검찰에 의해 구속되었다. 사업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받은 돈은 아니었으나, 이미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한 이상 군 검찰의 기소에 대해 ‘공익제보에 따른 보복 수사’로 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은 F-X사업 외압의혹은 금품수수와 상관없이 진상규명되어야 한다고 판단, 계속 조주형 대령을 지원하기로 활동 방향을 결정하였고 본격적인 법적 대응을 시작했다.

 

3월 13일, 이덕우, 장유식, 안병희 등 6인의 변호인단은 조 대령 부인 문 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F-15K로 도입기종을 선정하라는 외압이 있었다는 조 대령의 증언이 담긴 1차 육성 테이프를 공개하였다. 그리고 조 대령의 금품 수수를 명목으로 F-15K사업의 의혹을 덮으려는 기무사와 국방부의 시도에는 법적으로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의 본격적인 반격

 

시민단체들의 연대활동도 시작되었다. 3월 20일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여성단체연합,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국YMCA전국연맹, 자주평화통일협의회 총 9개 단체는 F-X사업 외압의혹과 평가기준 적용의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F-X 사업 연기를 주장했고, 국방부 장관과 각 당 대표자 면담을 제안했다.

 

국방부 장관과의 면담을 위해 근거 있는 반박자료도 필요했다. 다른 8개 단체들로부터 F-X사업의 쟁점 정리를 위임받은 참여연대는 약 1주일간 밤을 꼬박 새며 국방부 장관에 대한 1차 공개 질의서를 완성하여 3월 25일 국방부에 공식 질의를 하였다. 질의서를 완성하기 위해 조주형 대령이 남긴 4시간 분량의 녹취와 지난 3년간의 주간.월간지 기사들, 무기 마니아 사이트의 글들을 수차례에 걸쳐 확인했다. 군사

 

평론가와 이전에 있었던 무기도입비리 제보자의 자문을 받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F-X사업의 4대 의혹에 대한 48개 질의가 국방부에 전달되었고 질의서 자체가 시민단체 내부에서 F-X사업의 의혹을 이해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시민사회의 문제제기에도 국방부는 “F-X사업에 외압설은 근거가 없으며, 이에 추가 조사는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는”라는 답변만 되풀이 했다. F-X 사업의 부당성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집회 또한 여기저기에서 열렸다. 2002년 3월 25일, 국방부의 형식적 F-X사업 설명회가 진행되는 동안 국방부 민원실,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종교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의 공동 집회가 열렸다. 당시 집회에 참석한 시민단체 회원들은 “세금 먹는 하마, 의혹투성이 F-X사업 연기하라”, “국민은 분노한다 F-X사업 의혹을 즉각 규명하라”등의 구호를 외치며, 고물전투기 입속에 돈뭉치를 집어넣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국민들의 지지 속에 지속된 F-X사업 의혹 진상규명 운동

 

국방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항의에도 국방부는 F-X사업을 강행했다. 3월 27일 국방부는 1차 기종 평가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부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최동진 국방부 획득실장은 “종합평가결과 F-15K(미국 보잉사)와 라팔(프랑스 다소)의 오차범위가 3% 이내로 나왔다. 따라서 국방부는 이와 관련한 2단계 평가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참여연대와 8개 시민단체들은 조주형 2차 육성증언 공개를 통해 F-X사업 1단계 평가 결과 조작가능성을 제기했다. 조주형 대령은 육성고백을 통해 “애초 가격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F-15K에 유리한 평가를 내리기 위해 가격부문에 가중치를 두었던 국방부는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프랑스 다소사의 전투기 라팔이 41억 달러로 미국 보잉사의 F-15K(45억 달러)보다 낮은 입찰가격을 제시한 것에 당황했다. 이에 국방부가 ‘군운용적합성’ 항목에서 “F-15K와 라팔 사이를 2% 벌려 놓으라고 평가단에 압력을 넣었다”고 폭로했다.

 

이 날 국방부 사이트의 ‘열린 게시판’은 네티즌들의 쏟아지는 항의글로 마비되고 말았다. 조주형 대령은 1단계 평가발표 후 옥중진술을 통해 ”국방부의 압력을 받은 공군시험평가단이 데이터를 조작하지 않는 한 두 기종간 평가결과가 3%의 오차범위 이내로 좁혀지는 결과는 절대로 나올 수 없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조주형 대령의 제보에도 불구하고 1단계 평가에 대한 객관적 검증없이 2단계 평가를 강행할 태세였다.

 

시민단체의 대응이 변화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참여연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민족화해자주평화통일협의회 등 10개 단체들은 이후 전국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를 호소하였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02년 4월 3일, 279개 단체에 이르는 “F-X 외압의혹 진상규명과 F-15K 내정철회를 위한 공동행동”(약칭 F-X 공동행동)을 선포하게 되었다. F-X 공동행동은 F-X 사업 평가 내역 공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미국 F-15 기종 도입 내정 철회 등 촉구했다. 온오프라인에서의 시민행동도 본격화했다. 3월 27일 참여연대에서 진행한 ‘F-15K 내정 철회와 조작의혹 규명’을 요구한 사이버 서명 운동에 하루만에 3천명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결국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F-X 공동행동은 총 4만 3천개의 국민서명을 가지고 4월 12일 감사원에 F-X사업에 대한 특별 감사를 청구했다. 5월 중순에는 시민서명이 8만 명에 이르렀다. 다수시민들의 지지와 참여 속에서 F-15K 내정철회를 위한 사이버 항의행동, 광화문 앞 릴레이 1인 시위, 만민공동회 등 시민행동이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4월 19일 국방부는 2단계 평가결과를 발표하면서 ‘예정대로’ F-X사업의 기종으로 F-15K를 선정했다.

 

F-X 공동행동은 국방부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국민들을 무시한 F-15K선정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즈음 김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걸 씨와 최규선 씨 등 권력핵심부 인사들이 F-15K 선정을 위한 불법 로비에 간여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어 정부의 F-15K 구매 강행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참여연대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몇몇 단체들은 국방부장관을 고발하기도 했다. 김동신 당시 국방부 장관이 최규선씨의 F-X 불법로비에 연루되었고 국방부 수뇌로서 직권을 남용하여 특정 업체를 편든 의혹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참여연대와 시민단체들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들이 목소리를 외면한 채 국방부의 F-15K 구매를 최종 재가하고 말았다.

 

 

┃ 성과와 의미 ┃

 

이후 감사원 감사결과를 통해 F-X사업 평가기준이 업체에 공개된 이후 사후 변경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불법로비 역시 사실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압력과 한국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의한 기종선정을 번복되지 않았다.

 

K-1 전차 부품비리 사건이 이른바 자주국방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방만한 방위산업과 ‘국산무기 개발’이라는 구호아래 이루어져온 부정부패와 유착구조를 드러내 주는 사건이라면, F-X 평가조작 사건은 해외무기구매, 특히 미국에 종속된 우리 군의 해외무기도입이 지닌 구조적 문제점과 부도덕한 유착구조를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F-15K구매 반대운동은 공정성을 잃은 대규모 무기도입사업에 대한 사실상 최초의 대중적인 반대운동임과 동시에 한반도 안보공약을 내세워 미국이 강요해온 일방적이고 종속적인 관계에 대한 대중적 항의운동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F-15K를 강매한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관범위한 비판여론은 이후 2002년 하반기 주한미군의 전차에 의한 두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해 주한미군 법정이 무죄평결을 내린 사건과 연결되면서 사상초유의 거대한 촛불행동으로 발전하였다.

 

부당한 절차와 방법으로 강행된 한국 국방부의 F-15K 구매결정은 12년이 지난 오늘날 국방부의 석연치 않은 미국산 F-35 구매 시도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2013년 타결된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 전시작전권 이양 문제, 한국의 美MD참여 논란 등은 한국정부가, 자발적이든 강요된 것이든, 여전히 군사동맹의 하위파트너로서 종속적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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