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는 면책, 국회는 책임방기, 부실투자 책임은 오롯이 국민에게
어제(3/9) 국회 대미투자특별법처리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대미 투자 체계와 재원, 국회 심의 방안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대미투자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법안 논의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대미투자가 미칠 영향평가조차 없이 국회는 오로지 미국이 제시한 일정에 쫓겨 제기된 위험과 우려를 해소하지 못한 ‘여야합의’를 도출했다. 여야가 합의한 법안의 요점은 분명하다.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 등 중대한 변경이 발생하거나 대미투자의 상업적 합리성이 실질적으로 변경된 경우”에도 국회가 투자의 지속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했다. 국회에게 결정권을 주는 조항을 두면 ‘통상마찰’이 우려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다던 MOU에 국회마저 손발이 묶인 꼴이다. 한편, 국고를 포함한 재원으로 3500억불을 투자한 것에 따른 책임은 사실상 아무도 지지 않도록 수많은 예외와 면책조항을 두었다. 조선업의 경우 ‘투자지원’으로 인한 책임은 정부가, 대미투자로 인한 이익은 온전히 조선업체가 가져가도록 했다. 이 법안의 통과로 유일하게 무한책임을 지게 된 것은 납세자들이다.
‘상업적 합리성’ 없어도 대미투자 합법화
대안으로 통과된 대미투자특별법안 제4조 제3항에 따르면 ‘국가안보 또는 공급망 안정 등 불가피한 사유’로 상업적 합리성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에도 정부는 대미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이때에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재정경제기획위원회 및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다. 정부가 미국와의 안보 협력 갈등, 미국 고율 관세로 인한 대미 수출 감소 우려를 이유로 ‘상업적 합리성’을 포기한 대미투자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항을 법에 버젓이 명시한 것 자체가 협상 상대방인 미국에 한국이 대미투자에 ‘레드라인’이 없다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리스크 큰 사업들을 투자대상 사업으로 들이밀었을 때 국회의 심의와 반대를 명분 삼아 상업적 합리성을 높이는 협상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조항이 국회의 책임있는 결정을 발목잡을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제13조에 따르면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 등 중대한 변경이 발생하거나 대미투자의 상업적 합리성이 실질적으로 변경된 경우”, 정부는 “대미투자 금액의 조달 여부 등에 대해 미국과 협의”할 수 있고, 국회 소관상임위는 “대미투자 추진 방향에 관하여 정부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정부는 “신속히 그 의견에 대한 검토 결과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만 하면 되도록 하고 있어 미측의 국내 사정이나 일방적 통보로 인한 변경에도 국회가 이를 통제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
사실상 국고출연 기금인데도 국가재정법 규율받지 않도록 변칙 설계
이처럼 상업적 합리성 확보 여부가 불확실한 대미 투자에 어떤 돈이 재원으로 쓰이게 되는지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대미 투자 관리·운용을 담당하는 한미전략투자공사는 정부 출연금으로 만들어지는 공사 기금에 더해 한국은행 또는 국가재정법 상 기금의 관리주체들로부터 위탁받은 자산, 한미전략투자채권, 정부차입금 등을 대미 투자 재원으로 삼는다. 특히 국가재정법 상 기금에는 국민연금을 포함해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각종 연금기금과 국민건강증진기금, 고용보험기금 등이 포괄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사회보장성 기금이 전체 기금 규모의 대부분을 차지해 국민 생활에 밀접히 연결된 재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리스크 대책도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대미 투자에 이해관계자인 국민 동의도 없이 해당 기금을 위탁받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법안검토보고서도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한미전략투자기금은 정부가 한미전략투자공사,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기금에 출자·출연한 재원을 각 기관이 다시 기금에 재출연하는 구조로, 기금운용계획안 제출 등 정부가 기금에 직접 출연하였으면 받아야 할 「국가재정법」상 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눈속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검토보고서는 “한미전략투자기금을 국가재정법 상 기금으로 설치할 경우 국회의 통제 절차가 국회의 예결산 심의·확정으로 대체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회에 ‘대미투자’사전동의권도 없어
한미전략투자공사의 손실을 정부가 보전하도록 하고 있고(법안 제39조 제2항), 한미전략투자채권을 정부 보증채로 발행한다면(법안 제41조 제3항), 결국 한미전략투자공사의 모든 계약행위와 그에 따른 투자 손실은 실질적으로는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헌법 제58조는 예산외의 국가의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하려고 할 때에는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한미전략투자채권에 대한 정부의 보증에 대해서만 국회 동의를 받고(법안 제41조 제3항) 대미 투자 자체는 한미전략투자공사의 계약행위로 하여 헌법 제58조의 적용을 피하려고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법안 합의 이전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대미투자에 대해서는 매 사업별로 국회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제안했으나, 여야는 정부위원회인 한미전략투자운영위원회가 심의의결한 대미투자 후보사업에 대해 소관 상임위원회에 사전보고하도록 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런데 과연, 정부 위원회가 심의의결한 후에 ‘사전보고’의 형식을 취하는 것만으로 과연 국회가 ‘상업적 합리성’이나 이 투자가 국내에 미칠 영향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설사 문제를 느낀다한들, 국회가 가지고 있는 수단이 있기는 한 것인가. 법안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국회가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를 국회 스스로 포기해야하는 이유는, 이같은 장치를 입법화할 경우 한미간 MOU의 범위를 넘어서는 ‘의무부과’로 해석되어 “한미간 통상마찰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약이나 협정에도 미치지 못하는 법적구속력 없는 MOU에 대해, 미국 행정부가 그 정신을 위반하여 국가와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야기되는 경우에 대해서조차 ‘통상마찰’이 두려워 국회가 제동을 걸 권한과 책무를 포기한 셈이다. 반면, 대미투자에 따른 영향평가에 대해서는 매 투자후보사업별로 사전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1년에 한번 국회에 정기 보고토록 했다. 기금의 전체적인 운용계획을 사전에 보고받는 것이 아니라 사후보고한다는 것이다. 나무도 제대로 못보고 숲조차도 다 훼손된 후에 나중에서야 보게 만들겠다는 거다. 과연 어느나라의 국회의 입법이냐고 묻는 건 과한 것일까.
‘중대한 상황변화’ 시에도 국회에 대미 투자 중단 결정 권한 없어
또한 법안에는 정부가 대미투자 후보사업 등에 대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사전 보고하도록 하는데, 개별 상임위원회로 나누어 보고를 받고 심의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개별 상임위로 쪼개서 심의할 경우 대미 투자 진행의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고 대외 투자의 특수성이란 측면에서의 전문성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가안보와 기업경영 활동상 비밀에 해당하는 것은 비공개하고 ‘해당 상임위’가 의결로 자료를 요구할 경우에도 ‘해당 위원회’에 한해 ‘열람’만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국회의 정보접근권과 심의권을 명백히 제한할 것이다. 정부는 개별 국회의원들에게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자료묶음을 ‘보여주고’ 가져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열람한 자료의 누출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전제하고 있어 국회 내부의 의사소통조차 철저히 분절화될 것이 틀림없다. 국회가 이런 방식의 한계를 모를리 없다. 이런 경우를 한두번 경험한 일이 아니지 않는가. 이로써 국회는 사실상 정부가 비밀로 하기로 한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실질적으로 포기한 셈이다.
이렇게 법안을 전체적으로 느슨하고 모호하게 만든 데 더해 제51조를 통해 공무원들과 공공기관등의 임직원들에 대해 “「감사원법」 및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징계 요구 또는 문책 요구 등 책임을 묻지 아니한다”는 면책조항을 명문화 한 것도 문제다. 그동안 우리는 정부가 대외투자라는 명목으로 국민세금을 사업성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사업에 쏟아부은 일들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자원외교라는 이름으로 이명박 정부가 해외 투자에 40조원 넘게 쓰고도 제대로 된 성과 하나 얻지 못한 일, 가장 최근에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 등의 사례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강한 드라이브 하에 사업의 타당성이나 경제성 보다 추진 실적에만 급급해 세금을 낭비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번에 3,500억불, 약 500조원을 해외에 투자하면서 사업의 엄정함과 공정성을 책임져야 하는 공무원들과 관련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관련 법률에 따라 제대로 업무를 처리했는지 검증할 장치는 두지 않으면서 면책 조항만을 두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3년 남았으나, 대미투자특별법은 20년 동안 존속된다. 어제 국회를 통과한 대미투자특별법안은 대미투자의 ‘상업적 합리성’을 지킬 수도, 기금의 조성과 운용으로 인해 국민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국회가 제대로 감독하고 통제할수도 없게 만드는 졸속입법이다. 국가와 국민에게 심각한 재정적 영향을 미치면서도 어느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오롯이 아무 것도 공유받지 못한 국민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무책임한 입법이다. 이대로 본회의에 통과되어서는 안된다. 법사위는 국회의 헌법적 책무에서 벗어난 이 법의 독소조항들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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