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3 2023-07-01   459

[복지칼럼] 기다림 끝에 마주한 현 정부의 복지국가 구상, 짧은 기대와 긴 실망

김진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출범 1년을 훌쩍 넘긴 지난 5월 31일 윤석열 정부가 드디어 우리사회 복지국가와 관련한 정부의 구상을 정리하여 제시했다. 정부 출범 시점부터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복지국가 청사진이었기에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소위 ‘사회보장 전략회의’ 회의 자료를 읽어내려갔지만 그 기대가 실망을 넘어, 참담함으로 바뀌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포함한 주민 모두의 고단한 삶의 문제에 대응하는 정부의 대응책이 제시되어야 할 문서에 응당 등장할 법한 국가 책임의 강조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복지 관련 예산의 확충과 관련 재정의 확보를 위한 계획 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불평등과 양극화의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나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수준인 저출생과 고령화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 재생산의 위기와 그 원인에 대한 정부의 진단과 그에 기반한 개입 방안 역시 보이지 않았다.

지난 5월 31일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는 ‘사회보장 전략회의’였다. 하지만 그 내용만 놓고 보면, 그리고 언론에 보도된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듣다 보면 그 회의를 ‘사회보장 시장화 전략회의’나 ‘사회보장 산업화 전략회의’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하나씩 꼼꼼히 살펴보자.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복지국가의 계획은 ‘약자부터 촘촘하게 지원하는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라는 비전에 요약되어 있다. ‘약자’에 대한 강조는 결국 이 정부가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열망을 외면하고 선별적, 잔여적 복지로의 퇴행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요한 국민’을 우선시하여 ‘더 촘촘하고’ ‘더 두텁게’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지만 이는 복지에 대한 전형적인 선별적 접근에 다름 아니며, 주민 모두의 권리로서의 복지가 아닌 잔여적 접근이다.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국가의 ‘책임’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강조도 같은 맥락에서 우려스럽다.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주민 모두의 존엄한 삶 보장을 위한 국가의 제도적 책임이 전제되지 않은 채 사회보장제도가 지속가능성과 건정성에 의해 과잉 규정되었을 때 불평등과 주민 삶의 피폐함이 오히려 심화되는 결과를 우리 사회의 과거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다른 나라의 경험으로부터 생생하게 목격한 바 있기에 우려스러운 것이다.

이와 같은 비전의 현실화를 위한 전략으로 ‘약자 복지’와 ‘서비스 복지’, 그리고 ‘복지 재정 혁신’을 내세우고 있다. 약자 복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작 누가 약자인지, 이 약자들의 삶이 무엇을 통해, 얼마나 더 촘촘하고 두텁게 보호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나마 긴급 지원을 내실화하고 강화하겠다는 점이 눈에 띄지만 긴급한 지원의 필요성에 이르기 전에 주민 삶의 일상성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서비스 복지’의 내용은 더욱 심각하다. 돌봄을 포함한 사회서비스의 품질 저하의 원인을 경쟁의 부재에서 찾고 있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대체 이 정부 아래에서 주민의 삶이 어디까지 추락할지 두려울 지경이다. ILO의 2018년 보고서를 비롯해 유수한 국제기구들이 돌봄과 사회서비스의 개선을 위한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젠더와 노동의 문제는 단 한마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서비스와 돌봄의 열악한 질, 그리고 결과적인 돌봄의 공백 문제가 사실상 돌봄과 돌봄 노동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부재, 그리고 이와 깊이 얽혀있는 성역할과 젠더 불평등의 문제에 있음을 인식하지 않은 채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리 없다. 적정 자부담 활용을 통한 서비스 대상의 확대, 민간공급자 확대와 경쟁 체제의 도입, 이를 위한 각종 규제의 완화 등으로 요약되는 이 정부의 사회서비스 고도화 전략은 복지부가 주관하는 사회보장정책이 아니라 사실상 기재부가 기획하는 산업전략에 다름없다. 복지를, 주민의 삶을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장으로 밀어내고, 산업과 경제의 영역에 내맡기자는 무책임의 끝판을 보여주고 있다.

‘복지 재정 혁신’은 전혀 새롭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복지국가의 확대를 반대하는 보수 정부가 반복적으로 꺼내들었던 구태의연한 대안이다. 책임성보다는 지속가능성과 재정 건정성을, 정책 목표의 실현을 위한 효과성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보다는 비용 절감을 통한 재정적 효율성 강화를 우선시하는 대책인 것이다. 소위 세대 간 공정성 구현을 구실로 지금 당장 피폐한 주민의 삶을 회복하기 위한 대책을 조용히 폐기하거나 축소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사회보장제도의 통합 관리, 유사-중복 축소를 통한 사회보장제도의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주민 삶을 책임지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노력과 시도들은 정부가 만들어놓은 높은 문턱에 직면하여 주민들을 만나기도 전에 외면되고 좌절될 것이다.

필자는 이 정부가 성공한 정부로 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부가 실패하는 경우,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 그 피해를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가장 나중까지 견디어내야 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 가장 약자들이며,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직 4년 남았다. 방향을 재정비하고 성공한 정부로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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