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3 2023-08-01   386

[복지톡] 함께 잘 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김명학, 천성호 | 노들야학 공동교장

인터뷰 및 정리 | 김지원, 조희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우리는 함께 노동하고 공부하며 세상을 바꿔나갑니다. 조금씩 조금씩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 노들장애인야학의 홈페이지에 걸린 소개글이다. 배우고 자립하고 욕망하며 거리로 나오는 장애인의 상을 보다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한 노들야학의 역사는 ‘함께 잘 사는’ 사회로 향하는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다짐으로 질서를 무너뜨림으로써 더 나은 질서를 만들고, 때론 멈춤과 머무름으로 조금 더 나아간 사회를 만드는 노들장애인야학의 김명학, 천성호 공동 교장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천성호(이하 ‘천’) : 안녕하세요. 저는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야학’) 공동 교장을 맡고 있는 교장 천성호입니다.

김명학(이하 ‘김’) : 함께 공동 교장을 하고 있는 김명학입니다.

노들야학은 어떤 곳인가요? 노들야학을 소개해주세요!

김: 노들야학은 93년 8월 8일에 개교했어요. 당시 전국장애인운동청년연합이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처음 야학을 시작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지금처럼 대학로에서 시작하지는 않았고, 처음에는 광진구 아차산에 자리잡고 있던 정립회관의 탁구장을 사용했죠. 낮에는 탁구를 치고 밤에는 교실을 만들어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위한 수업을 진행했어요. 

천: 당시 장애인의 초등학교 졸업 비율이 45%였다고 해요. 노들야학은 이렇게 배움의 기회가 없던 장애인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이후 2000년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화하면서 노들야학에서도 이동권 투쟁과 같이 장애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운동에 함께하고 있어요. 물론 배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 어떤 계기로 노들야학에서 일하기를 결심하셨나요?

김: 1989년 삼성전자가 정립회관과 손을 잡고 국내 최초의 장애인 기업이자 장애인근로사업장이던 정립전자를 개업했어요. 당시 한국사회에는 장애인을 위한 기업이 하나도 없었는데, 사회적으로 88올림픽을 거치기도 했던 때이니만큼 홍보효과도 얻기 위해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곳에 처음 입사했어요. 3개월 쯤 뒤 직장동료에게 야학이라는 게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었던 터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저는 바로 야학으로 향했고, 열심히 공부해 초등부터 고등 검정고시까지 다 통과할 수 있었어요. 지금도 야학을 통해 공부를 하고 있고요. 그때를 계기로 아직까지 노들야학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천: 1994년부터 비장애인 야학에서 꾸준히 일했어요. 잠시 일을 쉬던 중 책을 쓴다고 노들야학 전임 교장선생님을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죠. 육아를 하느라 잠시 쉬고 있을 때 와서 수업 좀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010년부터 2년 정도 자원활동을 했어요. 대학원 가느라 자원활동을 그만두었는데, 상근해보겠냐는 제안이 왔어요. 처음에는 반상근을 할까도 고민했는데 노들야학이 반상근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거든요. 그래서 그냥 상근을 하자! 결심하고 2018년부터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교장까지 맡게 되셨는지도 궁금해요.

김: 전임교장이던 박경석 선생님의 임기가 끝나 제의가 들어왔어요. 교장이라는 자리에 앉아있다는 게 또 하나의 짐으로 남아있기는 합니다(웃음).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어요.

천: 전임교장선생님 임기가 18년이었어요. 교장이 정말 힘든 자리거든요. 데모도 해야하고 학생들을 포함해서 노들야학을 만들어가는 모두를 챙겨야하고요. 여러차례 교장을 바꿔보려 했는데 사람이 없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이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고, 공동교장을 하는 것으로 결정해 지금 3년째 공동교장을 맡고 있습니다. 

노들야학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나요?

천: 본래 노들야학은 저녁시간을 활용해 운영되고 있었는데, 2015년부터는 낮시간까지 활용해 장애인 자립생활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2020년부터 ‘서울형 권리중심 최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을 시작하게 됐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언가 재화를 생산해야 노동자의 몫이 돌아오게 되지만 중증장애인 관점에서는 권리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예요. 노들야학도 그러한 목표 아래 춤과 노래, 그림을 배우는 문화예술일자리 프로그램과, 장애인 이동권이나 접근권을 모니터링 하고 인권위에 진정을 넣는 등의 활동을 하는 권익옹호 프로그램, 인권강사 양성 교육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30명의 노동자가 나뉘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고, 이 프로그램은 서울시의 방침에 따라 급여를 제공받아요. 주 20시간 참여하면 100만 원 내외, 주 15시간 참여하면 80만 원 내외가 지급됩니다. 낮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수업을 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거죠. 지금 야학은 공부를 비롯한 이동권과 장애인 권리예산 투쟁, 거기에 노동까지 포함된 크게 세 가지의 흐름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어요.

수업시간표를 보니까 수업이 되게 다양하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장애학’이 눈에 띄었는데 어떤 수업이고 언제부터 교육과정에 포함되었나요? 자립을 위한 실용적인 학문뿐만 아니라 ‘장애’ 자체에 대한 수업을 포함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 장애학 수업은 2008년 ‘연구공간수유+너머’의 공동대표 고병권 선생님이 노들야학에 와서 장애학과 인문학을 가르친 것이 시작이었어요. 역사 속에서 과거의 장애인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를 학생들에게 가르쳤었죠. 

천: 당시 한국사회가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폭력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을 필요없는 인간, 쓸 데 없는 인간으로 여겼었죠. 장애학, 저희는 통틀어서 인문학 수업이라고 부르는데 이 수업을 통해 장애인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인문학을 통해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또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이 수업을 정규화 해서 장애학이라는 과목이 만들어졌어요. 함께 니체의 철학을 공부하기도 하고,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어떤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투쟁해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수업입니다. 국어, 영어, 수학도 중요하지만 우리를 탐구하고, 저항하고, 조직하는 힘을 만드는 공부를 장애학 수업을 통해 하고 있어요.

노들야학의 수업 중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수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김: 장애학을 배우며 많은 분노를 느꼈어요. 장애인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멸시한 역사를 배웠고, 특히나 영국에서 생겨난 우생학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어처구니가 없었죠.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우생학을 말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존경받아온 철학자라는 사실이요. 한심스럽더라고요. 

천: 저는 야학에서 문해교육을 주로 가르쳤는데요. 우리는 보통 글을 ‘읽는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발달장애인 학생들에게는 읽고 쓰는 개념의 문해교육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 사람들이 글 말고 무엇으로 세상을 알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다가 글자체계 수업 대신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살아나가야 할지를 이야기하는 등의 수업을 진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노들야학만의 특징적인 수업이 있을까요?

천: 노들야학에는 현장수업이라는 게 있어요. 장애인의 권리를 말할 수 있는 집회나 기자회견이 있다면 현장에 참여해 수업을 진행해요. 물론 출석으로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전국장애인대회(3/26), 장애인차별철폐의 날(4/20), 장애등급제진짜폐지 전동행진(7/1), 세계장애인의 날(12/3) 등의 현장에 참여하고 있고 때때로 메이데이나 노동자대회, 홈리스추모제 등 연대의 현장에도 갑니다. 다른 야학이나 학교에는 없는 현장수업 형식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장애인차별철폐 관련한 직접행동도 많이 참여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지난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관심갖지 않았고,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 아직 산적해있는 문제들을 없애기 위한 활동들을 요즘 언론이나 일부 시민이 비난하고 악마화하기도 하잖아요.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서도 어떻게 계속 활동을 이어갈 용기를 얻으시는 건가요? 

김: 이동권 투쟁을 22년 동안 했어요. 이동권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거든요. 엘리베이터, 저상버스 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에요. 투쟁의 역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죠. 결국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저상버스가 생기면서 국민 모두가 편하고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됐어요. 투쟁 끝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리프트를 없애고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진 후, 엘리베이터를 지켜본 적이 있어요. 장애인보다 비장애인들이 더 많이 타고 다니더라고요.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이동권을 위해 지금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데 사회는, 국민들은 우리를 무시해요. 물론 그렇다고 투쟁을 멈출 생각은 없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고요. 지금은 많이 힘들지만, 언젠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엘리베이터처럼 변화의 희망이 보일 것이라 믿어요.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건 사실 모든 문제는 다 예산으로 통한다는 거예요. 시나 국가에 무언가 요구하면 돈이 없다고 이야기하죠. 우리나라는 돈이 없지 않아요. 장애인에게 쓸 돈이 없는 거죠. 이윤이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충분한 예산을 편성하고, 이동권 확보를 위한 의지만 있으면 이미 해결되고도 남았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동권뿐만 아니라 자립생활교육 등에도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아무런 기반도 갖춰주지 않았으면서 장애인들이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죠.

천: 장애인들의 예산요구를 다 들어주면 나라 망한다고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황당한 일이죠.

김: 나라 절대 안 망하거든요. 아직까지 장애인 권리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거죠.

천: 지하철 투쟁 나갔을 때 바로 옆에서 어떤 시민이 나가죽으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너무 화가 났어요.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는 것을 기본 권리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건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에요. 장애인의, 소수자의 권리를 짓밟으며 만들어진 특권이죠. 그 권리 아래에는 희생된 사람들의 인권과, 차별과 배제가 있어요. 지하철, 버스를 탈 수 있는 ‘특권’을 ‘모두의 권리’로 만들어 가는 일이 이동권 투쟁인 것 같아요. 아직은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할만한 수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겠죠.

노들야학이 한국사회 불평등 타파/장애인 권리 증진에 미친 영향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김: 노들야학은 사회의 약자들과 연대하며 이 사회의 불합리에 대응해 함께 싸우고 있어요. 

천: 예전에는 장애인 운동이 개인적이고 고립분산적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시대적 모순에 대응하는 운동을 주로 했었죠. 분산되어있던 운동이 2001년 이동권 연대회의를 통해 모이게 되었고, 적극적인 운동에 나설 수 있게 됐어요. 이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2007년에 만들어 졌고요. 노들야학 또한 투쟁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요. 노들야학의 연표를 보면 우리나라 장애해방운동 역사와 거의 궤적을 같이 해요. 노들야학을 빼놓고 장애운동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죠. 특히 권리 중심 일자리 문제는 노들야학이 가장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가장 많은 대안적 직무의 형태를 고민하고 있어요. 노들야학이 한국 사회 장애해방운동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2000년대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IL센터(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많이 생겼는데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을 끌어가는 한 축을 만들기도 했어요.

30년 동안 노들야학이 이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많은 후원자들과 전장연 동지들의 덕입니다.

천: 한국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장애인 운동의 동력이 됩니다(웃음). 노들야학은 장애인 운동의 저수지 같아요. 투사로 나가기도 하고, 당사자들이 투쟁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이 역할이 노들야학을 이어가는데 큰 힘이 됩니다. 

노들야학의 최종 목표나 비전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김: 장애해방. 노동해방. 인간해방.

천: 한 문장으로 그냥 “함께 잘 살자”. 그게 목표입니다.

당사자성이 없어도 활동에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천: 노들야학에 교사로 지원해주시면 됩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자원활동을 해주시면 좋습니다. 이것도 어려우시다면 후원회원으로 함께해주세요. 이것도 안 되겠다 하면 아침 8시에 진행하는 지하철 투쟁에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노들야학의 역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복지동향도 곧 300호를 맞이하는데요. 복지동향 구독자분들께도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 지금은 너무나 비장애인 위주 사회입니다. 장애인도 함께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장애인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되면 비장애인도 편하게 함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천: 노들야학 30주년을 맞아 노들방탄기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억압하는 세력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시점입니다. 노들야학 운영에 필요한 임대료도 내야하고 보증금도 오르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노들야학을 지키기 위한 기금을 모금하고 있으니 많이 관심가져주시고, 함께해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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