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10-01   9087

[기획3] 의료대란에서 외면받는 공공의료 문제

나백주ㅣ을지대 의대 교수

최근 그야말로 의료가 난리다. 특히 응급의료는 물론이고 암진료 등도 예약 잡기가 어렵다고 한다. 의료이용이 너무 힘든 상황이다. 환자들은 제때 가까운 응급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워서 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거나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이 과정에서 의사 인건비는 갈수록 올라가고 이에 비례하여 지방의 의료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너져가는 지방 의료를 살리기 위한 대책은 부족하고 수도권 대도시 중심의 대형병원 살리기에 건보재정 및 다양한 정책이 쏟아지고 있어 염려를 놓을 수 없다.

이번 사태의 표면적인 이유는 의대생 정원을 늘리는 문제이지만 실은 이를 둘러싸고 사실상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바로 한국 의료문제를 대하는 큰 관점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료를 돈을 버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관점과 돈을 쓰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관점이다. 다시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의료행위 자체가 수익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로 보는 시각과 지역사회 주민의 건강수준 향상을 위하는 사회제도로 보는 시각이 충돌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은연중에 의료가 돈벌이 수단이라는 시각을 일반화하고 있어서 건강수준 향상을 위하는 사회제도로 보는 관점을 ‘사회주의 의료’나 ‘이데올로기 의료’로 치부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영국이나 호주나 독일 같은 국가들은 자본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공공병원 중심의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물론 정부 주도의 공공의료가 가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세계 어느 국가도 공공의료와 시장 의료가 상호 견제도 하고 일부 협력도 하게 하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유난히도 시장 의료 일변도의 보건의료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사회 보건의료체계의 시장성을 보여주는 지표는 몇 가지가 있다. 공공병원 병상 비중이 전체 병상수 대비 10%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부분 민간병원인 요양병원의 인구대비 병상 수가 OECD 국가들 평균보다 2~3배 더 많은 것도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60% 중반을 넘나드는 낮은 수준이며 좀처럼 70%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도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실손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비급여 의료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고 개업 의사도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이러한 의료공급은 수도권 및 대도시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어 지방의 의료공급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도 한국이 가진 시장 의료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학병원의 분원이라는 형태를 가지고 대형병원이 늘어나는 경향도 역시 시장 의료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면을 통해 강조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의사수 정원에 관한 시장성 일변도 정책의 문제와 그 염증이 이번에 한꺼번에 2천명을 증원하겠다는 극단적인 시장성 정책을 발표하면서 곪아 터진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한국의 의사수 증원 문제가 왜 시장 의료의 상징성인가 하는 문제를 먼저 살펴보자. 한국 의료는 대부분을 민간 병·의원의 자유로운 개업제도로 유지되어 왔다. 다만 시장성이 미치지 않는 농촌과 의료 취약지는 공중보건의사와 보건진료원 제도라는 잔여적 공공의료 제도로 보완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취약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주류 보건의료제도는 시장에서 수요 공급이 결정되고 여기에 정부의 건강보험수가라는 가격정책으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시장 의료 제도로 작동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개업 등 민간부문 시장 의료에 의존하는 정책을 펼치는 정부는 의사수 정원을 시장에서의 수급정책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하려고 해 왔다. 하지만 공공보건의료부문 의료 등을 주요하게 육성하고 관리하는 정부는 재난 등 위기 상황 대처와 질병 문제 지역 간 의료자원 불균형 등을 해결하기 위한 공공의료 목표를 가지고 의사수 정원을 필요에 따라 가감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제까지 의사수 정원에 관한 정책을 거의 방기해 왔다. 특히 과거 2010년 무렵 이명박 정부 시기 적극적으로 추진되던 국방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통해 약 100명 정도의 의사수 증원 추진이 대한의사협회의 반대에 직면하여 좌절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부족한 장기군의관과 공중보건 분야 부족한 공무원으로서 의사충원을 목적으로 한 당시 국방의학전문대학원 추진은 의사협회가 그들도 결국 의무복무 기간이 끝나고 개업 시장으로 넘어온다는 논리를 들어 반대하여 좌절되었다. 결국, 정부는 정부가 필요로 하는 공공의료 영역에 대해 정책 추진 의지가 개업의 중심의 의사협회 반대에 부닥쳐 좌절되는 현상을 겪었다. 이는 아무리 살펴봐도 시장 중심의 의료에 정부 정책이 좌우된 것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의사 수의 많고 적음도 문제지만 지역마다 고르게 의료 공급이 이루어지려면 의료전달체계를 만들어 지역 주민이 사는 지역사회에서 간단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하고 생활거점 마다 필수 의료가 해결될 수 있는 거점 병원을 만들어 일차의료를 지원하고 지역 완결적 필수 의료공급체계를 만드는 것을 추진하여야 했으나 민간병원의 시장중심의료에 의존했던 정부는 의료기관간 경쟁으로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거의 방치하여 왔다. 최소한 거점이 되는 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종합병원화 하여 설치하고 수익 중심이 아니라 의료전달체계를 중심으로 협력과 연계 기능을 강화하도록 하여야 했으나, 역대 어느 정부도 이러한 개혁을 하려고 하지 않아 공공병원 숫자는 늘어나지 않았고, 그나마 있는 공공병원도 인력과 기능 수준이 낮은 상태로 방치하여 왔다.

그나마 취약지 의료와 지방 의료를 지탱해 왔던 공중보건의사도 점차 군대 대신 가는 인력도 줄어들고 그나마 일반병사와 복무기간 차이 때문에 일찍 병사로 군복무를 마치려는 의사들이 늘어나면서 지속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아지게 되었다. 이제 농촌 지역의 공중보건의사 한 명이 3~4개 면을 담당하는 순회 진료를 담당하고 있고 도서·산간 지역 공중보건의사는 상당수가 의과대학을 바로 졸업한 경우가 많고 원격지에 있어도 진료 자문 등 지원체계가 부족하여 취약지 주민이라도 응급의료가 필요할 때 공중보건의사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공공의료 영역의 의사수 증원문제는 방치하고 시장 의료에 개입하여 수요와 공급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시장 의료 질서를 형성하려는 극단적 처방문제는 이미 시장 의료에 익숙해 있고 공공의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의사집단과 정면으로 충돌하여 작금의 의료대란 사태를 결과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처럼 정부가 공공의료 영역을 방치하고 있어 시장 의료의 상업성이 극대화되는 현상은 잘 지적하지 않고 단지 의사수 증원과 관련하여 의사들과 정부의 대립 국면에만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역대 정부에서 놓치고 있었던 공공의료 확대와 의사의 공공의료 측면의 양성과 배출이라는 한국 사회에 시급한 과제를 소홀히 생각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불과 3~4년 전에 목격했던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공공병원이 뒷받침했던 위기 상황대처를 쉽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단지 숫자가 왜 이렇게 많게 증원되었는지 또는 의사나 의대생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의대생 증원정책이라는 비판에만 매몰되어 있지 국가의 시장중심의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정책전환을 요구하는 것은 거의 듣지 못했다.

이런 방식으로 의사증원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해도 한국사회의 의료의 공공성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한편 지금 이 상태로 의대증원을 동결한다 해도 전공의에 의존하는 수익 중심의 의료기관의 경영행태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면 의대생과 전공의 그리고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국가 보건의료정책의 기조를 이번 기회에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공공의대 신설과 공공병원의 획기적 확충 그리고 공공병원이 지역사회 건강수준 및 자체 완결적 필수 의료 공급을 위해 돈을 쓰는 병원이 되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충분히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는 공공병원 설립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공공병원의 인건비 지원을 포함한 불가피 경상비 적자에 대한 지원, 공공병원 회계에 성과목표 예산제 같은 총액예산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 특히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성과평가에 공공병원의 병상수나 자체 필수 의료에 대한 자체 완결 의료 기여도를 평가하여 광역지방자치단체가 공공병원 확충과 공공의료 운영에 대한 책임성을 높이도록 하는 것이 위의 제도적 장치에 포함되어야 한다. 최근 지방의 민간병원도 더는 지탱하기 어려워 문을 닫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심각한 저출산과 교통발달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지역 의료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폐업한 혹은 폐업을 앞둔 민간병원을 인수하여 공공병원을 만드는 노력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의사수 증원을 둘러싼 의료대란에서 정말 중요한 한국 의료제도의 근본문제가 묻히고 있다. 공공의료 부족이 결국 지금 이러한 의료대란을 초래한 것이란 사실을 시민들과 의사들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의대생 증원 문제보다 더 크고 심각한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정부와 의료계 시민단체의 만민공동회라도 열려야 한다.

월간 <복지동향> 2024년 10월호(제3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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