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10-01   10766

[기획2] 윤석열 정부 ‘의료개혁’의 실체

전진한ㅣ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의료대란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중증·응급 환자들이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전전하다 사망하거나 의식불명에 빠지는 일 등이 예사로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현실을 가리기 바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9월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민이 죽어 나간다’라는 건 ‘가짜뉴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더니 같은 날 구급대원들에게 언론 접촉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문제가 계속되자 정부는 ‘전부터 있던 일’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표출된 의료기관의 ‘진료 제한 메시지’는 전공의 파업이 시작된 2월에 전년 대비 6.3% 높았던 반면, 5월엔 28%, 8월 26일엔 52.2%로 증가하고 있다.1 ‘추석 연휴 의료공백이 없었다’라는 정부 주장과 달리 심정지 상태 30대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소방당국이 병원에 92차례 전화를 돌렸으나 이송 병원을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는데 정부는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고집불통 정부가 내세우는 유일한 명분은 ‘의료개혁’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고통스러운 개혁의 과정을 겪고 있다.”(한덕수 총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뒤로 돌아가면 개혁은 물거품이 되고, 국민이 원하는 개혁이 이뤄지지 못한다.”라며, “대다수 국민이 개혁 내용에 대해선 지지한다.”(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라고 한다.

정부가 ‘국민의 지지’ 운운할 수 있는 것은 의대 증원이 곧 ‘의료개혁’이라는 프레임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를 늘리는 것도 일종의 개혁인 것은 사실이다. 2020년 연 400명을 늘리겠다는 정부정책에 반발해 코로나19 시기에 벌인 의사들의 우파적 파업 때문에 시민들은 기득권 의사들을 억누르지 않고서는 한국의 의료문제를 개혁할 수 없다는 정당한 정서를 갖게 됐다.

그러나 의료공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의사 수를 늘려서 가능하지 않다. 예컨대 지금도 의사의 약 30%는 미용·성형 분야에서 일하고, 동네에는 의원 간판이 즐비하지만, 국내 최대규모 병원에는 간호사가 쓰러져도 수술할 의사가 없고 지역에선 수억 연봉을 줘도 의사를 구하지 못한다. 단순히 의사의 숫자만 늘려선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반복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사 노동의 성격을 좌우하는 의료시스템의 구조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의대 증원에 대한 시민의 열망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만 관심이 있어 단순히 숫자만 확 눈에 띄는 증원안을 발표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문제를 초래한 구조적 원인을 더 악화시키는 정책들을 편다. 윤석열 정부 ‘의료개혁’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간 논의의 초점이 되지 않았다. 정부와 의사들 간 강대강 대결 때문에 일종의 진영논리가 형성되어 ‘의대증원 찬성이냐, 반대냐’라는 단순 납작한 구도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의료대란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정부가 시민들의 고통은 ‘의료개혁을 위한 부수적 희생’으로 취급하는 지금, 그 개혁의 진짜 내용이 무엇인지를 짚는 일은 중요하다. 이 글은 정부 발표를 근거로 이를 따져보고자 한다. 정부는 2월 1일과 4일 <필수의료 패키지>2와 <건강보험 종합계획>3을 발표했다. 이는 2월 6일 발표된 의대 증원안의 정책적 토대다. 정부는 4월 25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고, 그 논의의 결과물로 8월 30일 <의료개혁 실행방안>4을 발표했다.

지역 ‘필수’ 의료공백의 원인

우선 한국에서 의료가 갈수록 붕괴되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첫째, 의료공급의 95%를 민간이 담당할 정도로 공공의료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OECD 국가들은 대부분 공공의료기관 위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인력도 국가가 책임지고 양성해서 배치하므로 한국과 같은 의료공백 문제가 대체로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민간 의료기관들은 수익성이 낮은 중증·응급·소아·분만 등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다.

특히 이런 부문에서 인건비를 아끼려 전문의를 충분히 고용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대형병원들은 수천 병상에 달하는 수도권 분원을 지을 만큼 막대한 이익을 거두면서도 값싼 전공의에게 의존해왔다. 노동자를 쥐어짜 몸집만 불리는 기업의 운영 원리와 유사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또 인구가 적은 지역에 민간병원은 아예 들어서지 않는다. 이런 지역에는 정부도 병원을 세우지 않으니 지역 의료현실은 점점 더 열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둘째,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아 비급여 시장이 만연하다. 이 나라의 의료시스템은 의사들이 큰 병원에서 환자를 살리기보다는 동네에서 의원을 차려 비급여를 이용, 수익성 높은 진료를 하는 것을 선호하게 만든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OECD 최저 수준이다. 2021년 기준 62%로 OECD 32개국 평균 76%에 한참 미달한다.5 비급여 시장이 큰 것이다. 부르는 게 값인 비급여의 폭넓은 존재는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높일 뿐 아니라, 더 많은 의사들을 손쉽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장으로 향하도록 떠밀어 온 원인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진단하며 ‘시장실패’라는 표현을 쓴다(건강보험 종합계획). 그렇다면 할 일은 분명하다. ‘시장실패’의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할 ‘공공의료’를 되돌려 놓고, 실손보험과 비급여를 통제하며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윤석열 정부의 개혁은 정확히 그 반대를 향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윤석열 ‘의료개혁’ 1 : 국민건강보험 보장 축소, 의료비 인상

윤석열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방향을 내세운 정부는 역대 최초다. 명분은 ‘필수의료 강화’다. 지금까지의 보장성 강화정책이 ‘환자의 과다의료 이용’을 유발해서 ‘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끼쳤고, ‘필수의료에 대한 미흡한 투자’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건강보험 종합계획). 그러나 한국은 환자들이 남용할 정도로 의료비 부담이 적은 나라가 아니다. 보장성이 OECD 최저이고, 재난적 의료비 지출 가구 비율이 미국보다도 높다. 의료 남용은 환자가 아니라 수익성만 추구하는 민간 의료기관과 민영보험이 부르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무상의료’로 환자 비용부담은 거의 없지만 한국 같은 과잉진료가 없다. 병원을 대부분 공공에서 운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부는 ‘필수의료’ 문제의 원인으로 건강보험 제도를 지목한다. 그 논리에 따라 환자 의료비를 올려서 의료이용을 자제시킨다는 것을 ‘의료개혁’으로 제시한다. 정부는 예를 들면 건강보험에 ‘전액 본인부담금(deductible)’ 제도를 둬서 일정기준금액까지는 본인이 100% 부담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만 보장하는 방식을 검토한다고 한다. 미국 민영보험사들이 하는 행태다. 또 납부한 건강보험료 일부를 본인이 미래에 사용할 의료비를 위해 적립하는 ‘의료저축계좌’를 운영하겠다고 한다(건강보험 종합계획). 의료비 문제를 각자도생에 넘기는 것이다. 건강보험제도는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지불하고 필요에 따라 보편 서비스를 보장하는 사회연대가 기본 원리이며, 정부와 기업이 재정을 나눠 분담하는 재분배 기능을 한다. 정부의 방향은 사회보험을 해체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경증환자 응급실 이용을 자제시킨다며 본인부담금을 90%로 올린 것도 환자를 부당하게 낙인찍고 책임을 전가한 사례다. 환자는 경증인지 중증인지 알지 못해 응급실에 간다. 가격장벽을 두는 것은 의료비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의 응급실 이용을 가로막을 뿐이다. 정부가 의료급여 환자들이 ‘과다 의료이용’을 한다고 비난하며 의료비 부담을 대폭 올리겠다고 발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가난해서 더 많이 아픈 사람들을 병원 밖으로 내몰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필수의료’ 프레임은 의료보장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다. 사실 미용 등 일부를 제외한 모든 의료서비스는 보편적으로 누구나 누려야 할 ‘필수적 재화’다. ‘필수의료’를 보편적 건강보장과 대립시키며 응급·중증·소아·분만 등으로 협소하게 규정하는 것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의 범위를 줄이려는 시도이다. 이런 정부 정책은 당연히 ‘필수의료’ 공백 문제를 더 심화시킨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악화시키면 비급여 영역이 크게 늘고 실손보험 시장도 확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비급여 시장으로 더 많이 이끌리게 된다.

윤석열 ‘의료개혁’ 2 : 민영보험 중심 미국식 의료민영화 추진

민간보험 가입률이 80%를 넘는 이유는 건강보험 보장성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렇게 휘청이는 건강보험을 약화하는 것부터가 위험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정부 ‘의료개혁’은 미국식 민영보험 체계로 향한다. 민영보험이 건강보험처럼 의료기관과 계약해 가격과 진료내용을 결정하며 보험금을 의료기관에 직접 지불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다(의료개혁 실행방안). 비급여를 통제하겠다는 명목으로 민영보험에 국민건강보험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보험사들의 오랜 염원이다. 2005년 유출된 삼성생명 내부보고서6는 건강보험을 대체하는 미국식 보험체계를 청사진으로 제시하는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의료기관과의 계약이다. 보험사가 의료기관과 연계한다는 것은 의료공급에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가 계약을 맺으면 보험사가 자본 규모가 크고 지불자이기 때문에 의료기관은 종속된다. 보험사는 의료공급에 관여하는 것을 넘어 통제하게 된다. 미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보험사는 의료기관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거나 직접 소유·운영하게 되었는데 이를 건강관리기구(HMO)라 한다. 미국 보험사들이 의료를 장악한 방식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 시스템을 도입한다며 ‘비급여 통제’를 명분으로 삼는 것도 미국의 경로를 따르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1970년대 보험사-병원 복합체인 HMO가 도입될 때 높은 의료비를 통제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보험사의 ‘비용 절감’은 냉혹하기 그지없는 결과로 나타났다. 생명을 위협받는 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라도 보험사가 승인을 거부하는 일이 흔히 일어나게 되었다. 또 환자들은 자신들이 가입한 보험사와 연계된 병원에서만 치료받을 수 있다. 아무리 응급환자라도 예외가 없다. 삼성생명도 ‘앞으로 미국처럼 환자들은 보험사가 지정한 병원에서만 진료받게 될 것’이라고 자신들의 청사진을 드러낸 바 있다.7

정부 ‘의료개혁’에는 건강보험공단에 쌓인 개인 질병정보를 민영보험사에 넘긴다는 내용도 있다(건강보험 종합계획). 의료 정보는 가장 민감한 정보다. ‘가명 정보’라고 하지만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재식별이 가능한데 개인의 동의도 없이 민영보험사들에 넘기려는 것이다. 이는 대다수 시민이 반대하지만8 정부는 강행하려 한다. 민간보험사 입장에선 건강보험과 경쟁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쌓인 방대한 정보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도 발표했다(의료개혁 실행방안). 전공의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조치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전면 시행이었을 정도로 정부의 큰 관심사다. 시민사회가 비대면 진료를 의료민영화라고 부르는 이유는 윤석열 정부가 영리 기업들에 중개를 맡기려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카카오택시가 없이는 택시 잡기가 어렵듯이 비대면 진료가 보편화되면 영리 플랫폼이 의료공급을 상당 부분 통제할 것이다. 또 지금은 중소플랫폼들이 전면에 섰지만 결국 대자본이 이를 영유할 것이다. 보험사는 가장 유력한 후보다. KB손해보험 자회사인 KB헬스케어가 최근 주요 비대면 플랫폼을 인수한 것은 상징적 사례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은 미국 체계를 본떠 의료공급을 통제하려는 민영보험의 목적을 지원하는 데 다방면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윤석열 ‘의료개혁’ 3 : 의료 기업 이윤을 위해 환자 안전 희생시키기

정부 ‘의료개혁’에는 의료기술에 대한 안전과 효과평가제도를 무력화해서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도입한다는 계획도 있다(건강보험 종합계획). 현대의학의 토대는 과학적 근거로 효과와 안전이 입증된 기술만을 진료에 사용한다는 데 있다. 물론 그런 검증은 늘 한계에 부딪힌다. 제약·의료기기 기업들이 과학적 연구에 영향을 미쳐 기업에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정부가 가능한 한 검증할 것으로 기대하고, 정부가 허가한 의료기술은 신뢰할 만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아예 검증 절차 자체를 파괴하는 데 나섰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타깃은 신의료기술평가제도다. 엄격한 검증을 수행하는 이 제도는 기업들에게 눈엣가시로 여겨져 왔다. 제대로 된 연구개발보다는 무분별한 시장 진입으로 돈벌이하고 단기 주가 차익으로 이윤을 얻으려는 기업들은 이 검증제도가 ‘혁신을 가로막는다’라며 마타도어를 해왔다. 정부는 ‘의료개혁’이라며 화답했다.

정부는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도입한 의료기술을 ‘실사용’하다가 “환자 사고 등 안전 문제 발생 시”에만 제품을 퇴출할 예정이다. 환자를 실험대상 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비급여를 대폭 늘리는 정책이기도 하다. 시장진입 후 3년간 비급여로 사용하다가 건강보험 보장 여부는 나중에 평가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비급여 통제’를 하겠다는 정부 주장은 거짓말인 것이다. 이 계획이 현실화한다면 안전한지 효과적인지도 알 수 없는 비급여가 무분별하게 의료 현장에 쏟아져 들어오게 될 것이다.

윤석열 ‘의료개혁’ 4 : 민간 대형병원 퍼주기

정부 의료개혁의 요체 중 하나는 건강보험 보장을 축소해 아낀 재정으로 ‘필수의료’ 수가를 인상한다는 것이다. 5년간 10조 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쓴다고 한다(필수의료 패키지, 건강보험 종합계획, 의료개혁 실행방안). 수가 인상은 누적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재정이 소요될 것이다. 민간의 공급이 부족한 ‘필수의료’ 분야의 시장 가격을 높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다. 병원 자본과 의사들이 제시해 온 답이다. 그러나 ‘시장실패’를 시장 논리로 해결할 수는 없다.

수가를 올려줘도 의료기관 수익만 늘어나지 그 부분에 인력을 충원하거나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일은 반복됐다. 예를 들면 2009년 흉부외과 수가를 2배 올려 줬지만, 흉부외과 분야 인력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늘어난 수익은 대부분 병원 수익으로만 쌓여왔다. 9중증·응급·분만 같은 부문의 보상을 아무리 늘려도 비급여가 많고 과다행위를 할 수 있는 부문이나 피부미용 시장만큼 수익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역의료도 마찬가지다. 분만할 산모가 거의 없는 지역은 아무리 수가를 올려줘도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을 것이다. 민간에 맡겨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보상을 늘려 민간의 역할을 끌어내려면 실로 막대한 비용이 든다. 팬데믹이 절정일 때 민간병원들은 기존 수익의 10배를 약속하고서야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시작했다. 그래도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에는 턱없이 못 미쳤다. 또 코로나19 환자를 돌볼 병상을 비워놓기만 해도 5배 수가를 줬는데, 환자는 받지 않고 보상만 챙긴 병원들이 많았다. 이런 방식은 완전히 사회적 낭비였다. 정부가 민간병원에 퍼준 돈이 4조 원이었는데, 이를 미리 공공병원에 투자했으면 400병상짜리 병원 스무 개는 지을 수 있었다. 재정 퍼주기는 이러한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 재정 낭비일 뿐이고 그 비용은 결국 보험료 등으로 시민들이 부담해야만 한다. 또 수가 인상은 의료비 인상으로도 직결된다. 지금도 정부가 이미 대형병원에 어마어마한 건강보험 재정을 퍼붓고 있다. ‘비상진료 체계 운영’을 명분으로 중증·응급 진료 등에 대한 수가 가산을 통해 월 2천억 원씩 무려 1조 2천억 원을 썼다. 이것은 별다른 효과도 없으면서 사실상 파업으로 인한 병원의 경영손실 보상에 쓰이고 있다.

중증·응급 수가 가산 등으로 상급종합병원을 중증 환자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 계획도 사태 장기화로 사실상 구조 전환이 불가피한 병원의 수익을 보전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일반병상을 축소하라는 ‘개혁’은 병원 구조조정을 정당화해 노동자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 간호법으로 병원은 이미 값싼 전공의를 전문의보다는 또 다른 값싼 인력인 진료지원(PA) 간호사 위주로 대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의료민영화 마중물로서의 의대 증원

이처럼 민간병원을 개혁해 의료공백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한계와 모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결국, 수익성과 무관하게 환자를 진료하는 공공의료 강화 없이 문제 해결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그 어느 정부보다 공공의료 말살에 앞장선다. 지역 공공병원 설립도 정부가 ‘경제성’이 낮다면서 무산시켰다. 예컨대 노인 환자들을 살려봤자 잔여 노동능력이 거의 없어 국가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식의 계산법을 동원했다. 10기존 지역 공공병원들의 예산도 삭감해 경영난을 유발했고 병원 노동자들은 임금체불로 내몰았다.

아무리 의사를 늘려도 지역에 일할 병원이 없다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또 의사도 국가가 책임지고 양성해 실제 필요한 곳에 배치해야 의미가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지역·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일할 것을 전제로 장학금을 주고 교육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 같은 이름으로 알려진 정책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정책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의대 증원의 목적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대통령은 그 속내를 몇 차례 드러낸 바 있다. 의대 증원 발표 다음 날 방영된 KBS 신년대담에서는 “의료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이나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를 키우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4월 1일 대국민담화에서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좀 더 자세히 이렇게 말했다. “전체적인 의사들의 소득은 지금보다 절대 줄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의료산업 발전에 따라 바이오, 신약, 의료기기 등 의사들을 필요로 하는 시장도 엄청나게 커질 것입니다. 의료서비스의 수출과 의료 바이오의 해외 시장 개척 과정에서 의사들에게 더 크고, 더 많은 기회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이 발언들의 의미는 지금까지 살핀 정부 ‘의료개혁’의 내용을 상기하면 더욱 분명하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축소하고 민영의료보험을 활성화하며, 비급여를 대폭 늘려 의료를 시장화하려는 정부가 배출하려는 의사는 건강과 의료를 소비자 개인의 상품으로 만드는 시장을 굴릴 의사다. 아마도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쏟아내는 개발자이거나 창업한 기업인 의사, 무분별한 과잉진료로 그 상품들의 수익을 실현할 의사가 필요하다. 또 민영보험이나 영리 기업들의 플랫폼하에서 그들의 이윤을 위해 일할 의사다.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의사를 늘린다면서도 결코 무의촌에서 눈물짓는 이들을 위해 병원을 짓거나 지역·공공의료로의 인력배치를 시행하지 않는 이유다.

마치며 : 윤석열의 가짜 ‘의료개혁’을 중단시켜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노연홍 위원장부터가 제약·의료기기 기업들이 설립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 의료민영화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할 때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을 지냈던 인물이고, 식약청장으로 효과가 의심스러운 치료제들을 허가해주다가 불과 얼마 전까지 의료 기업의 대변자 노릇을 한 전형적 회전문 인사다. 이런 위원회의 ‘개혁’이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없음은 당연하다. 무엇보다도 노연홍을 그 자리에 앉힌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시장 만능주의자로 정부의 의료개혁은 이 정부가 그토록 숭상하는 미국처럼 한국 의료를 더 시장화하려는 시도이다.

물론 이에 반대한다는 전공의들에게도 정당성이 없다. 그들은 의사를 시장주의적으로 늘려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늘리는 걸 거부한다. 이번에 너무 거칠고 과격하게 늘린 것이 더욱 불만을 키웠지만, 400명 늘리는 것에도 코로나 시기에 파업했고 당시에는 ‘공공의대’라는 개념에 가장 반대했다. 의사 노동력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고, 동네 의원 원장이 될 수도 있는 이들로서는 면허 소지자의 수를 줄이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윤석열의 가짜 ‘의료개혁’을 멈추는 것이다. 이 정부의 시도는 붕괴하는 한국 의료를 더 무너뜨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정부 의료개혁은 이기적 의사들도 더 많이 만들어낼 것이다. 오늘날 의사들의 윤리를 추락시킨 부패한 시장주의 의료를 정부는 더 심하게 썩게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와 의사들의 대치 속에 우리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는 답답한 현실이 7개월째 지속하고 있다. 그 돌파구는 진정한 의료개혁을 요구하며 시민들이 나서는 데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은 정부의 의료민영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고통에 무감각한 정부의 의료대란 대응은 그들이 추진하는 ‘의료개혁’의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 미주 |

  1. 김선민 의원실 ↩︎
  2. 보건복지부, 2024,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
  3. 보건복지부, 2024,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안)”. ↩︎
  4. 의료개혁특별위원회, 2024,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 ↩︎
  5. OECD, 2023, Health at a Glance 2023 , p.105. ↩︎
  6. 삼성생명, 2003,『 민영건강보험의 현황과 발전 방향』. ↩︎
  7. “보험사와 병원, 수상한 커넥션 포착”, 뉴스타파, 2014년 3월 21일, https://newstapa.org/article/pPs4n ↩︎
  8. 글로벌리서치,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 개방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2024. ↩︎
  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단국대학교 산학협력단, 2017, 『흉부외과•외과 전문의 수가가산제도 개선방안 연구』. ↩︎
  10. KDI, 2022, 『예비타당성조사 수행을 위한 세부지침 의료부문 연구』. ↩︎

월간 <복지동향> 2024년 10월호(제3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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