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12-01   14514

[기획4] 문밖에 선 이주민: 사회적 배제와 이민 윤리

한준성ㅣ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

꿈속의 낙원(樂園) 

1970년대 철거민의 비참과 불평등한 현실을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줄여서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1942~2022) 은 2009년 1월 21일, 전날 용산에서 벌어진 참사에 무너지는 마음에도 병든 몸을 이끌고 현장을 찾았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미래가 아름답기를, 그리고 슬프지 않기를, 모든 것이 평화롭고, ‘평등’이라는 말까지, 거기에다 ‘민주주의’라는 말까지, 그래서 고통이 어느 한쪽으로만 집중이 되는 걸 막을 생각으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글을 썼던 것이 난쏘공입니다. … 지금 2001년 새 세기가 박정희 때부터 시작된 그 군부 치하에서 ‘낙원(樂園)’으로 설정이 되어있던 땅입니다. 제가 늙어서 도착한 곳이 낙원이어야 되는데 제가 듣는 이야기는, 이 세계 천몇백 인종 이백여 나라 그 많은 국가 중에서 제일 미개하고, 제일 흉하고, 제일 폭력적인 그 힘에 의해서 이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생명 여섯이 희생을 당한다는, 그 앞에서 어떻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1 

21세기 들어서도 ‘낙원’으로 설정이 되어 있던 그 땅은 없었다. 고통의 쏠림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그 기울어진 터전 위에 이제는 이주노동자들이 고통의 무게를 함께 견뎌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2003년 11월 15일, 명동성당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380여 일간의 장기 투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정부의 합동단속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불법 체류자’로 낙인찍힌 자들의 추방을 각오한 ‘존재 선언’이었다. 당시 농성단의 공동 대표로 결국 강제 추방을 당한 서머르 타파(Samar Thapa)는 당시를 회상하며 참가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이미 ‘불법체류자’니 우리가 ‘합법화’될지 안 될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제 새로 오는 후배들한테는 좋은 자리 만들어서 그렇게 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선배의 역할이 하는 것처럼 우리의 책임이 그렇게 될 수 있으니, 그래서 우리가 끝까지 그냥 나락으로 가는 거 아니라 그래도 한번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권리’를 목소리 내면서 끝까지 싸우자는 이런 [다짐을] 했었습니다.”2

과연 20년 전 농성단원들의 바람은 오늘날 이주민의 현실과 얼마나 가까운가? 조세희 작가와 서머르 타파가 품었던 바람은 꿈속에서 걸어 나와 얼마나 현실이 되었는가? 

이주민의 사회적 배제와 보더(border) 문제 

앞선 질문 앞에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변하기는커녕 질적으로 더 나빠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책과 제도 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찾아볼 수도 있으나 이주민의 ‘인간’으로서 가지는 당연한 욕구에 대한 이해와 ‘시민’으로서의 평등의 관점이 여전히 박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몇 가지 점들을 짚어 보면,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E-9)은 정부가 인정하는 예외적 상황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한 사업장 이동을 할 수 없다. ‘사직할 자유’마저 박탈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추방 공포 속에서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기 위해 불평등한 고용관계를 감수해야 한다. 노사관계에서 심히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심지어 과도한 사업장 이동 규제가 오히려 작업장 이탈, 즉 ‘불법화’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결국, 국가의 시선에서 이들은 ‘경제적 도구’ 내지는 ‘치안의 대상’일 뿐이었고, 그로 인한 무기력과 고립, 그리고 절망은 때로 이주노동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인도적 체류자’는 ‘난민 불인정자’이지만 모국으로 되돌려 보낼 시 박해의 위협이 있어 비호를 제공받는 사람들에 대한 법적 호명이다. 이들은 ‘난민 아닌 난민’으로 살아가면서 사회적 주변화를 겪는다. 체류의 불안정성은 물론 가족 결합, 교육, 취업, 사회보장 등 여러 면에서 격차와 소외를 경험한다. 심적인 상처가 큰 사람들은 고단한 한국살이를 등지고 다른 국가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국내 유학생들은 어떠한가. 이들 다수는 자비 유학생이다. 그렇기에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필수다. 하지만 시간제 취업 신고를 위한 절차와 요건이 복잡해 적지 않은 유학생들이 ‘비합법 노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이들이 취약한 위치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대학은 점점 더 정부의 체류관리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런 탓인지 지난해 말 모 대학에서는 부설 어학당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집단 출국시킨 일이 발생하기까지 했다. 이에 더하여 한국의 이주민 정책에서는 ‘가족’에 대한 고려가 박약한 편이다. 가족은 자연스러운 사회적 단위이기에 가족과의 삶은 인간의 기본권에 해당한다. 국제인권법은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경우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체류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고투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글로 옮긴 현실은 빙산의 일각이다. 이주민에게 사회적 배제는 더 다양한 모습으로, 때로는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도 그 얼굴을 드러내 보인다. 그렇지만 앞서 설명한 내용을 포함해 그처럼 다양한 패턴으로 전개되는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배제가 심층적으로는 ‘보더(border) 현상’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의 기반을 갖는다. 

그렇다면 국가가 보더 관리에 그토록 힘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주민이 자율적인 방식으로 집단적 삶을 조직해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있지 않을까. 법적 영역을 벗어나서 혹은 국가의 규제를 우회하여 자신들만의 문법과 패턴으로 이주와 정착, 그리고 거주국과 모국을 횡단하는 삶을 이어가는 것을 기성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왕왕 국가가 이주민의 ‘자율성’에 ‘불법’이라는 표지를 덧씌우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보더에 관한 질서관을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주민이 이주의 전 과정에서 체험하고 기억하는 국경과 경계의 작용, 즉 보더 현상에 대해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이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한 한 연구자가 아래와 같이 밝힌 것처럼 말이다. 

“인류는 무슨 연유에서 보더를 짓게 되는 걸까요? 어째서 우리는 여전히 (국가의) 보더라는 홉스식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요?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간에 경계와 위계의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타고난 본성에 따른 걸까요? 아니면 단지 전략적인 선택인 걸까요? 특정한 땅을 우리의 영토라 부르고, 그러한 영토적 소유를 구획 짓고, 그래서 여기를 우리의 소유지로 저기를 그들의 소유지로 하고서, 우리의 영토를 … 타자들로부터 수호하려는 인간의 이 집요해 보이는 동기를 추동하는 정확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인류에게 공간 사회적인 실체와 정체성의 구성에 대한 … 이 열망은 필연적이거나 피할 수 없는 걸 까요? 공간을 선으로 구획하는 이러한 자기충족적인 기하학적 환상은 일상에서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보탬이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처럼 구성된 공간 사회적 질서에서 권력과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더의 존재 이유는 정확히 무엇입니까?3 

이민 행정의 윤리적 선회 – ‘체류자격’과 ‘체류권’ 

‘보더’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이민 윤리’에 관한 논의로 이어지는데, 그 핵심에는 ‘체류자격(legal status)’과 ‘체류권(right to stay)’의 문제가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스티븐 카슬(Stephen Castles) 교수(1944~2022)는 이민정책에 관한 연구와 실천의 핵심이 ‘법적 지위’와 ‘실제 삶’의 간극을 문제시하고 이를 건설적인 방식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에 있다고 역설했다.4 절제된 국가주권의 행사, 즉 이민행정의 ‘윤리적 선회’를 주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것은 이민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가 이민 정책과 이민 행정의 지속가능성과 민주적 합리성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논리다. 

이런 맥락에서 미등록 이주민의 체류권에 관한 조셉 캐런스(Joseph Carens)의 논의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자신의 저서 『이민 윤리(The Ethics of Immigration)』에서 체류권 문제가 주권국가의 배타적 권한이거나 거주국의 시혜나 온정주의 사안이 아닌, 인격체로서 한 개인이 갖는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5 논쟁적일지언정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의 논의가 체류자격 제도와 체류권의 간극에 관한 인식의 결핍(이 결핍은 이주민의 사회적 배제의 핵심 요인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을 메울 수 있는 담론 자원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그의 논지를 설명하면 이렇다. 거주국 사회에서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민 행정에서는 ‘불법 체류’로 불리는 미등록 신분은 점차 그 의미를 잃는다. ‘시간의 경과’가 머무를 권리에 대한 이주민 당사자의 정당한 도덕적 요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가정에서 핵심은 시간의 경과 자체에 있지 않다. 그것이 함축한 의미, 즉 ‘사회적 성원권 (social membership)’이 핵심이다. 국민/비국민 구분이 국적법을 비롯한 실정법적 구분이라면, 사회적 성원권에서 핵심은 당사자의 구체적인 삶의 행적과 현재의 모습에 있다. 

물론 사회적 성원권에 대한 법적 인정을 위한 기준이 되는 체류 기간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는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이미 ‘정착’한 이주민을 공식 체류 허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추방(deport)하는 것은 전혀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언제라도 추방될 수 있는(deportable) 불안정한 상태는 취약성과 착취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이민 행정의 시선에서는 ‘시간의 경과’가 함축한 의미가 좀처럼 적극적인 고려 사항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불법체류’ 기간이 길면 길수록 강제퇴거 집행이 더욱 정당하다는 사고가 힘을 얻는다. ‘법과 질서’의 논리가 대당 논리인 ‘법치’에 앞서는 모양새인 것이다. 하지만 ‘불법체류’를 억제하고 소거하려는 시도가 ‘법과 질서’를 비롯해 그 어떤 좋은 명분에 따른 것일지라도 이민 윤리의 관점에서 이미 사회적 성원이 된 자를 추방한다면 잘못된 행정 처분임이 분명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국가의 강제퇴거 권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미등록 신분 내지는 ‘불법체류’라는 이유만으로 무소불위의 퇴거 권한을 행사할 수 없도록 이민 행정에 제한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민 체류 관리에 있어서 공권력 행사는 ‘절제’되어야 한다. 

여기서 절제는 소극적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절제’는 ‘공생’의 시작점이다. 국가는 합당하게 설정한 기준에 따라 사회적 성원으로 인정된 자에게 출국 유예나 임시 비자 수준을 넘어 정주 자격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사면’이 아닌 ‘정착’의 논리에 따른 조치다. 당사자 이주민이 사회적 성원으로서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정주권을 개인의 권리로 보는 것이다. 

고인이 된 어느 청년의 생애가 던지는 물음 

이러한 이민 윤리의 시선에서 이주 배경을 가진 한 청년의 생애를 지면에 조심스럽게 옮겨 본다.6 그는 1998년 다섯 살에 엄마를 따라 한국에 입국했다. 엄마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던 그의 신분은 역시 ‘미등록’이었다. 결코, 본인이 선택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의 본격적인 한국살이는 ‘격리’로 시작했다. 엄마가 일터에 있는 동안 그는 문이 잠긴 집 안에 홀로 머물러야만 했다. 직접 돌볼 수 없어 차라리 문을 걸어 잠그고 일터로 향해야 했던 엄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이는 엄마가 일터에 있는 동안 문이 잠겨진 집에서 TV를 보며 한국어를 배웠다. 이후 학습권 보장 차원에서 초, 중, 고교를 졸업할 수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유예된 추방’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면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늘 눈치를 봐야 했고 정당한 분노마저 삭여야만 했다. 무력해진 그의 삶은 이내 그의 성격까지 내성적으로 바꿔 놓았다. 2011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체류자격 문제로 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런 그는 점점 멀게만 느껴지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일찍부터 취업 전선에 나섰다. 아르바이트와 공장 일을 이어가면서 그제야 엄마가 보여준 고단한 표정들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새 자신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어 일터로 향하던 엄마의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불안 없이 한국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싶었던 그에게 ‘합법’ 체류자격을 가지고 머무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출국 후 자신이 태어났을 뿐 타향이나 매한가지인 몽골로 돌아가 ‘외국인’으로 재입국하는 것이었다. 무척 까다롭고 조마조마한 시간이었을 출국과 재입국의 과정을 거쳐 그는 마침내 ‘유학생(D-2)’이 되었다.  

그렇게 ‘합법’ 체류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건강 보험에 가입하고,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실명 핸드폰을 개설하고,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삶을 개척했다는 성취가 주는 기쁨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간 겪어야 했던 고된 순간들과 정주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들을 생각하면 그을린 것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맛’도 알게 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공 관련 산업 분야에서 체류자격 걱정이 없는 내국인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좌절했다. 그런데도 그는 다시 힘을 냈고 가까스로 구직 비자(D 10)를 취득한 뒤 지역특화형 비자(F-2-R) 해당 지자체에 소재한 한 기업에 연구원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그도, 엄마도, 어린 시절부터 그의 곁을 가족처럼 지켜준 활동가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눈물 어리게 기뻤을 것이고, 다른 한편 또 한고비를 넘었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안도와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의 삶은 형언할 수 없는 모습으로 귀착되고 말았다. 그의 고단한 삶의 끝이 가닿아야 할 곳은 희망과 사랑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도 어른이 되었을 때도 변함없이 냉혹한 현실은 산재로 이어져 이내 그의 목숨까지 앗아가 버렸다.  

그의 이름은 강태완이다. 그는 불의의 산재로 고인이 되었고 그의 가족과 지인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형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생애가 알려지면서 그의 존재는 외려 더욱 강렬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빛은 그처럼 불안정한 체류 상태에 있는 수천의, 수만의 아동과 청소년의 삶과 체류권에 관한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공명은 이 사회가 그간 인습적으로 따랐던 보더의 질서관과 그것에서 파생한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배제에 대한 날 선 물음이기도 한데, 그 근저에는 하나의 두려움이 있는 듯하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주민이 법적 영역을 벗어나거나 국가의 규제를 우회하여 자율적으로 공동체적 삶을 조직해 나갈 때 그것을 개선된 법의 테두리 안으로 수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기보다는 우선 기성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벽’을 치려는 경향이다. 그렇지만 두려움이 쌓아 올린 그 벽이 ‘방벽’이 아니라 외려 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을 막고 서있는 ‘차단막’이 아닌지 되묻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더 흐르고 이주 배경을 가진 인구의 비율이 더욱 높아져 있고 이주민과의 일상적 접촉면이 더 커져 있을 그리 멀어 보이지 않은 미래를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갈등이야 있겠지만 이주민과 공존하고 어울림이 일상이 되어 있을 그 때의 시점에서 오늘을 돌아보면, 지금 이주민의 사회적 배제와 고립은 어울림의 가치를 간과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의 증표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미주

  1. 조세희 작가의 발언은 다음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자막) 2009년 1월 21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조세희 선생님 연대 발언.” 1월 21일, 2009. 13:33. https://www.youtube.com/watch?v=NWGNKSfCUv4. ↩︎
  2. 서머르 타파의 발언은 다음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기록. “서머르 타파/네팔.” 11월 24일, 2023. 8:55. https://www.youtube.com/watch?v=1bRpHT4JaRE.
    2003~2004년 미등록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오마이뉴스에‘ 이주노동자 존재 선언’의 주제로 연재된 기고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general_list.aspx?SRS_CD=0000017366 ↩︎
  3. Henk van Houtum. 2005.“ The Geopolitics of Borders and Boundaries.” Geopolitics 10. pp. 676-677. ↩︎
  4. 이것은 2019년 11월 22일 이민정책연구원 10주년 기념행사에서 그가 축하 영상을 통해 전한 메시지를 필자가 기억한 것이다. ↩︎
  5.  Joseph Carens. 2013. The Ethics of Immigra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
  6. 이하에 기술된 이야기는 한겨레 이문영 기자가 그를 취재하며 작성한 연재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출처: 이문영, “외국인으로 돌아왔다…한국인 소멸지역서 신분 증명하며‘ 보통의 삶’” 한겨레, 2024년 7월 6일. ,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1147955?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content=20241202. ↩︎

월간 <복지동향> 2024년 12월호(제3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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