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5 2025-02-01   10015

[편집인의 글] 내란 사태는 공공의료를 소환하고 있다.

정형준 | 원진녹색병원 부원장, 원진녹색병원 재활의학과 의사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12.3 내란 사태는 정치 지도자의 수준뿐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 체제의 허약함을 보여줬다. 그런데 내란 사태가 2개월 정도 지속되는 현 상황은 더욱 충격적인데, 그간 극소수의 의견으로 치부되던 극우파가 그 세를 확대하고, 부정선거론을 기점으로 하는 민주적 체제에 대한 광범한 불신까지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이다. 이런 과정은 넓게 보면 1980년대 노동자 민중 투쟁의 결과인 대통령 직선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같은 제도적 민주주의에 대한 반발이고, 인적 구성으로 보면 1980년대 사회 변화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노력했던 다수에 대한 소수 지배엘리트들의 반발이다. 이들 소수 지배엘리트는 그간 개인의 영달과 자본의 이익을 위해 숨죽이며 기회를 엿보고 기다려왔지만, 윤석열 정부를 통해 커밍아웃을 한 듯 하다. 다시 말해 12.3 내란 사태는 대통령이 시도한 실패한 친위 쿠데타라는 단일 사건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다수의 이익을 우선시하려는 사회체제와 이데올로기 전반을 반동적으로 뒤집으려는 정치 투쟁이다.

사회복지 영역으로 보면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최대 성과 중 하나는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다. 선별적으로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만 대상으로 하던 직장 건강보험제도를 전국민 건강보험으로 바꾸는 것은 자동적이지 않았다. 점진적으로 사업장은 확대되었지만, 당시 군사정부는 농민과 자영업자, 일용직 등과 이들 가족에 대한 건강 보장은 외면했다. 1987년 전국민 건강보험 도입 당시에도 직장 가입자와 달리 지역 가입자는 정부가 보험료를 전액 가입자에게 부과할 계획을 보여 보험증을 태우는 식의 지역 가입자 저항으로 맞섰다. 어렵게 도입된 국민 건강보험은 이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회보장제도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런 건강보험에 대한 흠집 내기 혹은 축소 시도는 계속되어 왔고, 시민사회는 이를 저지하고 건강 보장제도를 내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민영보험 활성화를 위한 위원회를 가동하면서 낮은 수준의 국민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지 않고 민영보험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도입 7년도 안 되어 이중보험 구조를 공식화한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건강보험 통합운동과 보장성 강화 운동은 의약분업 시행과 단일 건강보험을 출범시키며 중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중심의 건강 보장을 이룰 토대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 보장성은 지불제도 개혁이 중단되고 혼합진료를 계속 허용하면서 답보상태였다. 이런 보장성 답보상태는 여러 틈을 보이고 말았는데, 영리 의료의 확대와 각종 의료민영화 시도가 범람하곤 했다. 그래도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보수 정부, 민주 정부 할 것 없이 대중적 열망을 따라 선별적이나마 각종 보장강화 정책도 도입되고 보장 범위가 점진적이나마 확대되었다.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이 이뤄낸 산정 특례제도, ‘4대 중증질환 국가 보장 100%’ 공약이 만든 보장성 강화 대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정리해 보면 1987년 노동자, 민중의 광범한 대중투쟁이 건설한 보편적 건강 보장제도는 더디고 문제가 많았지만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집권할 때까지는 발전시키고 강화해야 하는 제도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와는 전혀 다른 정책으로 이를 전환했다. 우선 건강 보장을 권리가 아니라 시혜적 가치로 전면 전환하려 했다. 경증 환자는 응급실 이용을 하면 본인부담금을 올렸고, 외래진료를 많이 받으면 환자 책임을 늘렸고, 병원에 안 가면 건강 바우처를 제공했다. 수익자부담 구조를 명확히 한 것이다. 부정수급자, 이주민을 부각해 건강보험제도가 포퓰리즘인 양 선전했다. 이를 위해 ‘필수의료’라는 프레임 전환도 시작했다. 건강보험의 모든 보장이 ‘필수’가 아니고 일부 의료만 ‘필수’이니 나머지는 개인이 책임지라는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다. 그 결과 2023년부터 가뜩이나 낮은 보장률은 65.7%에서 64.9%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실손의료보험을 제2의 건강보험으로 만들어 실손보험이 병원과 직계약을 하고 진료 내용을 평가하겠다는 미국식 경쟁형 보험 계획이 ‘제1차 의료개혁 실행계획’에 담겼다. 과거 정부가 지지부진하게 건강 보장 정책을 개혁하지 않고 일부만 손보는 걸로 생색을 냈다면 윤석열 정부는 노골적으로 건강 보장 제도가 ‘필수’도 아니고 ‘의무’도 아닌 것으로 변질시킨 셈이다.

만약 이번 내란 사태가 지속되면서 극우파와 결탁한 반복지 세력이 살아남는다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도 더 큰 위기에 놓일 게 자명하다. 다만 아직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수 국민과 시민사회가 사회 대개혁을 주장하면서 민주적 가치와 복지 확대의 기회로 이번 사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곳곳에서 분투 중이다. 이를 위해 다시 한번 주요 선진국의 건강 보장 제도와 공공의료 제도의 변화와 추이를 확인하는 작업은 소중하다. 한국의 공공의료와 건강 보장이 OECD 국가 중 꼴등 수준이기 때문에 이런 여러 나라들의 변화를 확인해야 시행착오 없이 긍정적 변화를 추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이번 호 복지동향은 일본, 미국, 이탈리아, 영국의 사례를 추적한다. 특히 버밍엄대학의 마틴 파월 교수가 특별히 학술논문의 활용에 동의해 주셨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요한 교수는 한국 의료와 일본 의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면서 일본의 국가 재정기여도가 훨씬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고령화와 재택의료를 위한 공적 돌봄서비스와 지역포괄지원센터 등의 역할과 그 의미도 보고한다. 공공의료와 의사 양성을 위한 지역정원제도 다루고 있다. 이런 분석을 통해 포괄적 서비스로의 변화를 위한 다양한 시사점을 도출하고 있다. 

정혜주 교수는 민영 의료체계인 미국의 의료체계 위기에 대해서 최근 상황을 토대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 고령 공보험인 메디케어, 저소득장애인 공공부조 형식의 메디케이드를 통해 분절화되고 높은 행정비용이 동반된 체계의 문제점을 정리해 주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 2기 시기의 미국 보건 체계의 변화를 예측하고 한국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분석하고 있다. 미국 의료의 현재 현황에 대해 개괄적 이해를 위해 이보다 좋은 글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문정주 전문의는 이탈리아 국영 의료의 역사적 도입과정, 정부와 지방분권 속 의료 공급의 위치에 대해서 보고한다. 무엇보다 전국민 주치의제도의 장점을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탈정신병원 운동의 상징인 ‘민주적 정신의학’의 역사적 배경과 경과를 설명하면서 지역사회 의료 연계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끝으로 코로나 시기 롬바르디아주의 비극적 결과를 보면서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마틴 파월 교수는 전 세계 국영 의료체계의 상징 같은 영국 NHS의 현재 위기 상황을 요약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꼭 전문을 꼼꼼히 읽어보길 권유한다.

한국의 의료체계는 이번 호 기획 글 모두에서 지적하듯이 일본, 이탈리아, 영국보다 못하다. 미국보단 낫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미국보다 엉망인 제도와 보장 범위의 문제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경상 의료비의 최근 추이를 보면 한국의 의료체계가 점차 미국화된다는 공포를 지울 수 없다. 결국 자동적으로 공공의료를 확대하는 상황으로 갈 토대는 소실된 상황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내란 사태가 불러일으킨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사회복지 영역, 그중에서도 건강 보장 영역도 비켜나 있을 수 없다. 한국은 이미 의사 집단의 소자본주의적 집단 저항으로 여러 차례 개혁이 좌초되고 의사 수를 늘리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의 민영 공급 체계가 고착화된 국가다. 공공의료를 복원해 영리 의료와 민영 보험의 영향력을 줄이지 못한다면 보건 위기와 의료 재난은 더 심화할 공산도 크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호 기획 글들은 중대한 기로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독자들의 열독을 기대한다.

월간 <복지동향> 2025년 2월호(제3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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