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 | 영남대 휴먼서비스학과 교수
대한민국은 올해 노인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공식적으로 진입했다.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맞물려 돌봄의 수요는 폭증하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와 같은 가족 해체 현상은 전통적인 가족돌봄 기반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시설화 수준은 매우 심각한 상태다. 건강기능 상태가 집에서 살 수 있는 노인 10명 중 6명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장기 입원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시설 입소가 건강과 생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김윤, 2023).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한 노인들 중 2년 이내에 4명 중 1명이 사망하고, 5명 중 1명은 건강기능 상태가 악화되어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반면 집에서 생활하는 노인의 경우 사망률과 건강상태가 악화되는 비율은 7%에 불과하다.
이처럼 과도한 시설화와 가족에게 전가되는 돌봄 부담은 많은 국민들에게 죽음보다 더 두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2024년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죽음과 질병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응답자의 87%가 ‘질병 등으로 가족, 지인에게 폐를 끼칠까 두렵다’라고 답했다.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조력사 제도에 대한 긍정적 응답이 84%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는 자기결정권에 대한 욕구도 있지만, 의도치 않게 타인의 부양을 받게 됨으로써 경제적, 정신적으로 부담을 주는 문제에 대한 깊은 우려를 반영한다(이동휘, 2024).
이러한 돌봄 위기에 대응하고자 2018년부터 이른바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가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 방향으로 등장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 16개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이 추진되었고, 2023년에는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2024년 3월에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이하 지역돌봄통합지원법)이 제정되어 2026년부터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수년간의 노력이 무산될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내년 전면적인 법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현재 드러나고 있는 현 정부의 시행 방향이 지역 중심의 통합돌봄이라는 본래의 취지와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돌봄정책에 대한 이해와 배경 아래 현 정부의 시행 방식의 한계를 살펴보고, 진정한 지역 중심 돌봄을 회복하기 위한 방향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커뮤니티 케어의 본질을 살리면서 돌봄의 위기에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지,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형해화를 막고 원래의 취지를 회복하기 위한 성찰 지점과 대안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돌봄 정책의 이해: 돌봄서비스의 본질적 특성
돌봄 위기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돌봄서비스가 갖는 특수한 성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회보장기본법상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크게 소득보장과 서비스보장으로 구분된다. 이 중 돌봄은 서비스보장의 핵심을 이루는 영역이다. 소득보장 제도는 주로 소득이 중단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한다. 질병, 실업, 산재, 고령과 같은 상황에서 소득 상실을 보전하기 위해 건강보험(상병수당)1,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이 1차 안전망을 형성하고, 이러한 안전망에서도 빈곤으로 추락한 경우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제도가 최후의 안전망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공공부조제도의 목적은 빈곤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탈빈곤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돌봄서비스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태에 대응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일상생활을 스스로 영위할 수 없는 최중증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성장과 사회화 과정을 위해서는 이를 위한 돌봄이 필요하다. 또한, 생애 후반기에는 노쇠로 인해, 그리고 언제든 질환과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여 아동보육, 장기요양보험, 장애인활동지원과 같은 돌봄서비스가 있는 것이다. 돌봄에 대한 최후의 수단으로 시설보호도 존재하지만, 이는 생활이 아닌 수용의 공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대 복지국가에서는 탈시설을 지향하고 있다.
돌봄서비스 급여는 소득보장급여와 여러 측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소득보장급여는 주로 현금급여 형태로, 대상 기준이 소득액, 재산액 등 계량화된 지표로 명확하게 설정되며, 급여 내용과 수준 역시 금액으로 명확하게 산정될 수 있다. 따라서 최저생계비나 중위소득과 같은 객관적 기준과 비교하여 급여의 적정성을 평가하기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반면 돌봄서비스 급여는 개별적 특수성이 강하고, 객관적 측정이 어려우며, 지역적 특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동일한 진단이나 장애등급을 가진 사람이라도 개인의 신체·인지·정서 상태, 가족 구성, 비공식 돌봄 네트워크 유무에 따라 필요한 돌봄서비스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일상생활 수행능력(ADL)과 같은 계량적 지표만으로는 실제 돌봄 필요도를 온전히 반영하기 어렵고, 정서적 지지나 존엄성 유지와 같은 돌봄의 질적 측면은 수치화하기 곤란하다. 더불어 도시와 농촌의 서비스 접근성 차이, 지역 내 가용 돌봄 인프라, 주거환경 등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동일한 상태의 사람이라도 필요한 돌봄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돌봄서비스의 특성은 보장성 측면에서도 소득보장급여와 다른 접근을 요구한다. 소득보장의 경우 권리성이나 보장 수준은 정치적 과정을 통해 예산과 급여 수준 등으로 제도적으로 결정되어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돌봄서비스의 경우, 일정 수준의 예산이나 제도가 보편적으로 적용이 된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 개개인의 구체적인 돌봄 보장 수준으로 직접 연결되기는 어렵다. 같은 예산이나 제도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개개인이 체감하는 보장 수준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돌봄서비스 전달체계에 이중적 과제를 부여한다. 돌봄급여는 개별적인 돌봄급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권리 보장과 재정관리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객관적이고 통일적인 기준 설정이 어렵기 때문에, 지역 현장에서 개개인의 욕구와 상황에 대한 판단을 통해 이러한 균형점이 모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제도와 전달체계가 구성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개개인의 돌봄 수준이 권리보장이 더 우선시 될 수도 있고, 재정관리가 더 우선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달체계의 책임회피 구조에 의한 제도의 한계와 개혁의 실패
그런데 우리나라의 돌봄제도는 철저히 권리보장은 무시되고 재정관리에 편중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간단히 말해, 누구에게 어떤 돌봄의 욕구나 문제가 있어도 공공 주체 누구도 책임질 수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권리보장에 대한 책임성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책임성은 수직적 책임회피 구조와 수평적 책임회피 구조로 나타난다.
수직적 책임회피 구조는 중앙과 지역 사이의 상호 책임회피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돌봄 관련 급여는 주로 중앙의 전달체계와 지침 등으로 통제되고 이 때문에 일선 지자체는 주민의 돌봄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중앙정부에게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개개인의 돌봄 문제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앙집중적으로 분절과 파편화된 돌봄은 중앙과 지방사이에 이중적 상호 회피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수평적 책임회피 구조는 지역 차원에서 나타난다. 노인돌봄이나 장애인돌봄의 핵심급여가 욕구조사와 판정, 서비스 제공 체계가 분절되어 있어, 제대로 된 돌봄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공단과 지자체가 서로 회피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나머지 급여 역시 위탁기관과 수행기관으로 전달체계가 분절되어 있으니 개개인에게 필요한 돌봄을 포괄적으로 구성해야 할 때 아무도 이를 책임 있게 연계하고 조정할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책임회피 구조로 인해 돌봄제도는 권리보장보다 재정관리 중심으로 운영되며, 신청자가 자신의 욕구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전가된다. 이로 인해 서비스 과정에서 상호 불신과 비효율이 발생하고, 공적 제도 안의 모든 행위자가 단순 집행자의 역할에만 한정되어 제도개혁의 정치적 동인도 부재하다.
우리나라 돌봄제도의 문제는 핵심 제도인 장기요양보험과 장애등급제 폐지의 사례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장기요양보험은 노인복지가 아닌 ‘부양부담 경감제도’로 설계되어 재가 우선 원칙이 무색한 급여구조를 갖고 있다(김태일 외, 2018). 또한, 중앙집중적 조직인 건강보험공단에 의한 제도 운영으로 권리보장책임과 재정관리책임 사이의 균형은 출발부터 편중되었다. 재정관리자인 건보공단이 조사와 등급판정까지 독점함으로써 재정관리 중심의 제도 운영이 구조화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장기요양보험의 등급 통제 경향에서도 드러난다. 2010년 약 537만 명이었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23년 약 944만 명으로 약 407만 명(75.8%) 증가했고, 이에 대응하여 노인인구대비 장기요양보험인정자 수도 5%에서 11.6%로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그림 1] 참고). 하지만 이러한 증가는 주로 낮은 등급을 추가하면서 이루어진 것이고 최상위 1, 2등급자 수만 보면 다른 추이가 나타난다. 노인 1000명당 1등급 인정자 수는 2010년 5.8명에서 2011년 7.5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점차 감소하여 2023년에는 5.6명 수준으로 2010년보다도 감소했다. 노인 1000명당 2등급 인정자 수도 2010년 11.9명에서 2011년 13.2명으로 증가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3년에는 10.4명 수준까지 감소했다. 노인 인구 대비 최상위 등급 인정자 비율이 오히려 감소하거나 정체 상태라는 것은 등급판정 기준 자체보다는 다른 요인에 의해 인정자 수가 일정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장애등급제 폐지 역시 유사한 한계를 보여준다. 2012년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으로 처음 제시된 장애등급제 폐지는 한국 장애인복지 정책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장애계에서는 의료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장애등급제가 욕구 중심의 서비스를 가로막는 핵심 문제라고 판단하고 폐지를 숙원해왔다. 장애등급제 폐지가 추진되면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총 3차에 걸친 시범사업을 실시했고, 특히 장애인 맞춤형 전달체계의 읍면동-시군구 협업모델이 높은 서비스 연계율과 추가자원 발굴 등 높은 성과를 보였다(김동기 외, 2017). 그러나 장애등급제 폐지와 함께 이용자 중심 전달체계 구축을 위한 본 사업은 예산 미배정으로 형해화되었고, 결국 욕구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를 기대했던 장애등급제 폐지는 경중증 체계와 장애인서비스지원종합조사 도입 정도로 귀결되었다(김경란, 2020).
커뮤니티 케어 정책의 추진과 한계
커뮤니티 케어 정책은 2018년 복지부 대통령 연두 업무보고에서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가 복지정책 방향으로 공식화되고, 2019년부터 2022년까지는 전국 16개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이 추진되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2023년에는 사업명이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으로 변경되었고, 75세 이상 고위험군에 초점을 맞춰 장기요양, 노인맞춤돌봄, 퇴원환자 등을 중심으로 재택의료, 통합재가, 노인맞춤돌봄 등의 통합적 지원에 중점을 두었다. 마침내 2024년 3월에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이하 돌봄통합지원법)이 제정되어 2026년부터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커뮤니티 케어 정책은 기존 돌봄제도의 전면적 개혁 없이 별도의 사업으로 추진된 한계가 있었다. 장기요양보험, 장애인활동지원제도 등 핵심 돌봄제도의 개혁을 포함하지 않은 채 예산지원사업 형태로 진행되어, 많은 지역에서 방향성에 혼란을 겪었다. 사업 대상도 시설 입소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보다는 상대적으로 욕구수준이 낮은 대상자 중심으로 접근되는 경향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커뮤니티 케어라기보다는 기존의 선별적 복지사업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했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에서는 사업 예산이 150억 원대에서 30억 원대로 대폭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도사업과 시범사업은 지자체 중심 돌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주목할 만한 성과는 정부 지정 사업 지역 외에도 70여 개의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통합돌봄 사업을 추진하는 등 돌봄 정책의 지역 확산으로 이어진 점이다. 이는 획일적 중앙집권적 제도 운영의 한계를 넘어 지역 특성과 필요에 맞는 돌봄 체계 구축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돌봄통합지원법은 여전히 장기요양보험이나 장애인활동지원과 같은 핵심 돌봄제도의 개혁을 외면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자체 중심의 돌봄 추진을 공식화하고, 통합돌봄 추진 의지가 있는 지자체에 법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법은 보건의료, 건강관리, 장기요양, 일상생활돌봄, 주거 등을 통합지원의 범위로 설정하고, 노쇠, 장애, 질병, 사고 등으로 일상생활 유지에 어려움이 있어 복합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는 노인,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지자체장에게 돌봄 책임,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 등의 책임과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지역 단위에서의 통합적 돌봄 체계 구축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법에는 독소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25조의 전문기관 지정 조항과 제29조의 권한 위임 및 업무 위탁 조항은 지자체장의 핵심 업무인 종합판정부터 외부위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법 전체의 취지를 왜곡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였다. 이는 지자체장의 돌봄 책임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키고, 욕구 파악과 서비스 계획 수립 등 핵심 업무를 외부화함으로써 지자체는 단순히 행정 절차만 담당하는 역할로 축소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커뮤니티 케어의 무력화: 건보공단 단독 통합판정의 문제
현재 상황은 이러한 우려 수준을 넘어, 커뮤니티 케어 정책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2025년 돌봄통합지원 시범사업 지침(보건복지부, 2025)을 통해 기존에 건강보험공단 지사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진행하던 심화평가를 돌연 건보공단 단독 통합판정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돌봄이 필요한 주민의 욕구를 진단하는 과정에서 지자체를 배제함으로써, 지자체 중심의 통합돌봄이라는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심각한 결정이다.
건보공단은 장기요양보험 운영기관에 불과하며, 보건의료, 건강관리, 일상생활, 주거 등 포괄적인 돌봄지원을 통합할 수 있는 주체는 지자체가 될 수밖에 없다. 법에서도 종합적인 개인별 지원계획을 지자체가 세우도록 하고 있으나, 정작 지자체는 이 계획이 필요한 주민에 대한 욕구조사에서 배제되고 건보공단의 조사내용을 통보만 받아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만약 지자체가 별도로 조사를 시행한다면, 주민은 같은 내용의 욕구조사를 중복해서 받게 되는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통합판정체계의 본질적 성격이다. 2021년 모의적용부터 시작된 통합판정체계는 본래 과도한 요양병원 입소를 억제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요양병원, 장기요양급여, 예방적 돌봄 필요를 선별하기 위한 통제적 성격이 강하다. 이는 지역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통합적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돌봄통합지원법의 취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돌봄통합지원법 제12조에 명시된 종합판정은 “의료적 필요도와 요양·돌봄 필요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정하고 통합지원 대상자의 욕구 및 필요도를 반영한 판정”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추진 중인 통합판정은 이러한 종합적 욕구 파악보다는 단순히 대상자를 선별하고 비용을 통제하는 도구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또한, 2026년 본사업을 앞두고 있음에도 지자체에 대한 예산 배정 소식은 없는 반면, 건보공단 인력 200명 증원이 추진되고 있어 지자체가 아닌 건보 조직 보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지자체 주도적인 통합돌봄 추진이라는 원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현실적으로도 건보공단이 통합판정의 보안성을 이유로 공무원과의 공동조사 불가 입장을 고수 하고 있어, 제대로 된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을 위해서는 통합지원 대상자 선별을 위한 사전조사, 지자체의 자체 욕구조사, 서비스별 조사 등 3~4중의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그림 2] 참조). 더욱이 통합지원 연계 대상 급여들은 사실 통합지원 없이도 개별적 신청과 선정절차가 있어, 결국 통합지원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지역중심 돌봄회복을 위한 대안 모색과 성찰 : 선량한 분절주의자의 문제
돌봄통합지원법의 의의는 그나마 통합돌봄에 대한 추진 의지가 있는 지자체에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현재 복지부의 돌봄통합지원 추진 방식은 오히려 통합돌봄을 잘하던 지자체에조차 재앙이 되고 있으며, 돌봄보장보다는 돌봄통제 정책으로 변질되고 있다. 게다가 전국 지자체 가운데 통합돌봄 전담 조직을 갖춘 시군구는 8.7%에 불과한 실정이다(박소정, 2025). 이런 상황에서 법을 그대로 시행할 경우, 2019년부터 추진되어 온 통합돌봄 정책이 오히려 무산되는 역설적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돌봄통합지원법 전면 시행을 유예하고, 시범사업에서 지자체와 공단의 공동조사를 복원하며, 지역의 경험을 중심으로 시행방안을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지금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이를 계기로 돌봄 문제는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인 만큼, 기존 돌봄제도의 개혁, 분권화된 지역 중심의 돌봄, 돌봄 인력의 처우개선 등에 대한 대안들이 활발히 논의되어야 한다. 특히 초고령사회 진입을 코앞에 둔 지금, 가족의 부담 없이 존엄한 돌봄을 보장하는 포괄적 정책 대안이 제시되어야 할 시점이다. 인구고령화, 가족구조 변화, 돌봄 인력 부족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파편적이고 분절적인 현행 돌봄체계로는 더 이상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다. 따라서 대선국면에서는 단순한 급여 확대나 단기적 대응을 넘어, 돌봄체계의 근본적 개혁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돌봄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의도치 않게 분절을 강화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많은 정책 결정자, 연구자, 현장 전문가들이 말로는 지역 중심의 돌봄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선호에 따라 또 다른 분절을 초래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권에서는 지금과 같은 선거 때마다 가시성과 선명성이 강한 별도의 급여, 제도, 센터 등을 공약으로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학계에서는 전체적 시각이 결여된 채 전공에 대한 협소한 접근을 보이며, 자기 영역에 대한 독자적인 법제도와 전달체계를 선호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현장에서는 운동성이나 선명성을 위한 가시적 대안을 선호하고, 전통적인 복지 비주류 의식으로 인해 별도 공간 확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마치 자신이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의도치 않게 차별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2019)처럼, 자신은 원칙적으로 지역중심의 통합적인 돌봄에 동의한다면서도 현실론을 제기하며 사실은 분절을 심화시키는 ‘선량한 분절주의자’들이 많다. 겉으로는 통합을 외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분절을 강화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인식과 성찰 없이는, 지역 중심 돌봄의 진정한 실현이 어려울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선량한 분절주의자’들이 자주 제기하는 현실론적 질문들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래도 건보공단이 전문성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하지만 건보공단의 인정조사는 ‘선별’조사였을 뿐 돌봄을 위한 포괄적 욕구파악이 아니었다. 건강보험공단이 그동안 수행해 왔던 것은 장기요양보험 급여의 적격성을 판단하는 제한적 조사로, 개인의 다양한 돌봄 욕구를 파악하는 전문성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 번째, 지자체 중심의 돌봄을 하기에 지자체의 역량이 충분하냐는 물음이다. 분권이 이루어지고 책임성이 부여되기 전에는 지자체는 역량을 키울 동기와 계기가 없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역량을 갖추기 전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할 수 없다는 주장은 그냥 하지 말자는 주장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최근 선도사업과 시범사업, 그리고 통합돌봄 사업의 자발적 확산과정에서 제도적인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기 전부터 이미 상당한 지자체들이 변화를 시작했다. 이러한 역량의 성장과 확산은 제도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오히려 현재의 중앙집권적 제도가 이러한 지역에서의 혁신과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지자체 역량 핑계를 댈 시기는 이미 지났다.
또한, 이와 함께 제기되는 질문은 공무원은 순환보직제 때문에 전문성을 가질 수 없다거나, 기준인건비제 때문에 별도의 인력과 조직이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이다. 하지만 급여를 통합적으로 연계하고 판정할 수 있는 행정권한을 가진 것은 공무원이다. 지자체의 읍면동이나 본청이 아닌 별도 조직이나 센터를 만드는 것은 책임을 외주화 또는 외청화, 외곽화하는 또 다른 분절성을 만들 뿐이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할 수 없도록 주류 행정체계 내에서 조사-설계-판정 등 돌봄의 핵심 기능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오히려 기준인건비제를 보완하고, 전문직위제나 별도의 직류체계를 통해 돌봄업무에 대한 일정한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방분권이 이루어지면 지역 격차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 전국적 획일적 제도 때문에 지역 형평성이 보장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 상황에 따른 지역 격차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같은 등급, 같은 판정 기준을 적용받더라도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돌봄 환경과 자원은 크게 다르다. 지역의 특성과 필요에 맞게 돌봄서비스를 구성하고 제공할 수 있는 유연성을 부여하는 것이 실질적인 형평성을 높이는 길이다. 중앙에서 획일적 기준만을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지역 간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개선의 가능성을 막고 있는 것이다.
맺으며: 지역 중심 돌봄을 위한 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돌봄서비스는 본질적으로 개별적 특수성이 강하고, 객관적 측정이 어려우며, 지역적 특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런 돌봄의 특성상, 중앙집권적이고 획일적인 제도 운영으로는 개인의 다양한 욕구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제대로 된 돌봄의 보장은 결국 지역 현장에서 권리보장과 재정관리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균형은 중앙 기관의 일방적 기준이 아닌, 주민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지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거버넌스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지자체는 주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민주적 통제 아래, 지역 주민의 필요와 상황에 맞는 돌봄서비스를 설계하고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주체이다.
지역 중심 돌봄은 단순히 행정적 효율성이나 예산 절감의 차원을 넘어, 모든 시민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권의 문제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돌봄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핵심 과제이며, 초고령사회를 앞둔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패러다임 전환이다.
결국, 돌봄 위기의 해법은 지역의 현장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시민이 가족의 부담 없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존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겉으로만 커뮤니티 케어를 표방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지역 중심 돌봄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근본적 변화이다. 이것이 껍데기만 남은 커뮤니티 케어가 아닌, 실질적인 돌봄 보장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 미주 |
-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아직 의료비용을 보전해주는 역할에 그치고 있고 질병으로 인한 소득상실을 보전하는 상병수당은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다. ↩︎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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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2025, 2025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 안내: 예산지원형,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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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복지동향> 2025년 05월호(제3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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