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찬섭ㅣ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8월 13일 나라재정절약간담회에서 대통령이 신청주의는 잔인한 제도라고 하면서 자동지급제로의 전환을 거론하였다.1 자동지급제 전환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대통령은 ① 신청을 안 했다고 안주면 지원을 못 받아서 죽는 경우도 있다(부정적 결과), ② 정부가 지출할 때 이미 대상자가 정해지는데 굳이 신청을 하게 할 필요가 없다(행정적 낭비), ③ 과거 선별적 복지가 있을 때는 조사와 선별이 필요해 신청이 불가피했지만 지금은 보편복지로 전환된 만큼 달라져야 한다(패러다임 전환)는 것을 제시했다. 결국 보편복지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으므로 신청주의에서 이제는 자동지급제로 전환하자는 것이 대통령의 기본취지인 것이다. 하지만 짚어보아야 할 점도 많다.
보편복지의 개념: 체제 vs. 제도
먼저 보편복지의 개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10년대 초 우리 사회는 무상급식논쟁을 계기로 복지국가논쟁을 경험했고 이때 논쟁의 구도는 보편복지 대 선별복지였다. 그런데 여기서 ‘보편 대 선별’의 대립구도는 두 가지 층위가 혼재된 것이었다. 첫째 층위는 ‘체제’로서의 보편복지다. 무상급식논쟁 당시 체제로서의 보편복지는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용어로 표현되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보편적 복지국가의 의미가 분명히 합의된 것은 아니나, 대체로 소득이나 재산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보편성) 그들이 삶 속에서 직면하는 모든 위험에 대해(포괄성) 적어도 기본생활을 보장해주는 혜택을 제공하는(적절성) 국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층위는 ‘제도’로서의 보편복지다. 복지제도에는 보편적 제도도 있고 선별적 제도도 있다. 간단히 구분하면 자산조사를 통해 가난한 사람만 선별하여 그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선별적 복지제도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제도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이하 “기초보장”) 제도가 있다. 반면 그런 자산조사 없이 통상 인구학적 기준(주로 연령기준)만 충족하면 누구에게나 혜택을 주는 것이 보편적 복지제도인데 아동수당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체제로서의 보편적 복지국가로 전환된다고 해도 그 국가가 운영하는 현실의 복지제도가 전부 보편적 복지제도로 전환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보편복지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체제로서의 보편적 복지국가로의 전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보편복지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해도 기초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는 형태나 운영방식에서 다소간의 변화가 있을지라도 기본적으로 계속 존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청주의가 과연 문제의 본질적 원인인가?: 본질과 증상의 혼동
대통령은 정부가 복지급여를 지급하기로 하면 대상자가 자동으로 정해지는데 왜 굳이 신청을 하게 하는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과 달리 복지급여의 대상자는 ‘자동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정부는 복지급여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자격요건을 정할 뿐이다. 복지제도는 자격요건을 설정한다고 해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중 구체적으로 누가 그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알아야 작동된다. 따라서 실제 누가 그 요건에 해당하는지 알려면 소정의 행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통령은 요건설정과 요건해당여부를 섞어 이야기한 셈인데 그 둘은 차원이 다른 사안이다.
아동수당과 같은 보편복지제도는 자격요건에 누가 해당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간단하다. 아동수당은 8세 미만의 자녀가 있으면 소득이나 재산에 관계없이 지급되므로 자산조사가 필요없고, 8세 미만 자녀 유무 및 몇 명인지만 확인하면 된다. 보편복지제도는 이처럼 자격요건 자체가 간단하고 요건해당여부의 판단도 매우 쉽다. 그래서 아동수당은 병원에서의 자동출생신고 등 약간의 제도보완만 하면 자동지급제 실시에 큰 어려움이 없다. 실제로 노르웨이의 아동수당과 캐나다의 기초연금은 행정데이터와 연동하여 자동등록을 통해 자동지급을 실시하고 있다.
사회보험에서도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은 자동지급제를 실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수 있다. 기여금 납부이력(국민연금과 건강보험)과 연금수급연령 도달 여부(국민연금) 등만 확인하면 요건해당여부가 곧바로 판단되므로 자동지급제를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사회보험이라도 노인장기요양보험과 산재보험, 고용보험은 요건해당여부 판단에 기여금 납부이력 확인 외에 요양등급, 산재판정, 실업인정 등 추가절차가 필요하다. 이들은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에 비해 요건설정과 요건해당여부 판단 간의 거리가 조금 더 먼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제도보완이 좀 더 필요해서 그렇지, 자동지급제를 하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요건설정과 요건해당여부 판단 간의 거리가 매우 먼 복지제도도 있다. 기초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가 대표적이다. 공공부조는 ‘가난한 사람만 골라내서 그들에게만’ 급여를 주고자 하는 전형적인 선별복지제도다. 공공부조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가 가난하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작동되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는 누가 그 10%에 해당하는지를 알아야 작동된다. 가장 중요한 대상자 자격요건은 가난해야 한다는 것이고 요건해당여부 판단은 자산조사를 통해 어디에 사는 누가 가난한 지를 특정하여 골라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가 공공부조대상 요건해당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모든 국민의 소득과 재산을 상시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공공부조는 어느 나라나 그로부터 급여를 받고자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청을 하게 한다. 신청주의는 공공부조 제도가 작동하도록 시동을 거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또 신청주의는 공공부조에 따르는 낙인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권리의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도 있으므로 그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신청주의라는 것의 층위 내지 지위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신청주의는 그 단어에 ‘주의’라는 용어가 붙어 있지만 이것은 무슨 ‘이즘’(ism)과는 거리가 먼 것이며, 보편주의나 선별주의와 비교해도 그보다 훨씬 구체적인 수준에 위치한 것으로 복지업무의 실행에 적용되는 실무적 원칙이다. 그래서 그것은 그보다 높은 층위의 원칙이 어떤 내용을 가지는가에 따라 현실에서의 작동이 결정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복지제도의 원칙이나 지향성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복지급여를 받기 위해 역시 신청절차를 거치게 하지만 아동수당을 신청함에 있어서는 아무런 낙인도 따르지 않고 또 신청절차가 복잡해서 신청자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까다로움과 복잡함이 야기되지도 않는다.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아동수당은 모두에게 지급되는 보편주의 원리를 따르는 관계로 수급자격요건 부합여부를 신청자가 입증할 필요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급여를 받음에 있어서도 퇴직자로 하여금 신청을 하게 하지만 그 신청에 낙인이 따르지도 않으며 복잡한 신청절차로 인한 낙담이나 포기가 따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수급자격에 부합하는지를 엄격히 따지고 그에 따라 자격요건 부합여부의 입증책임이 신청자 본인에게 부과되며 담당공무원에게는 그에 관한 사실확인을 엄격히 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는 공공부조에서는 신청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낙인을 초래한다. 이런 점에서 자동지급제를 통해 신청 절차를 제거하는 것이 복지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탈신청주의라고 옹호하는 것은2 증상을 본질이라고 잘못 이야기하는 것이다.
같은 신청주의라도 그것이 어떤 제도에 적용되느냐에 따라, 즉 신청주의라는 실무원칙보다 상위의 원칙이 어떠한가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내게 되는 것이다. 만일 국민연금에 대해서도 매우 까다로운 수급자격요건을 만들어놓고 이 요건에 부합하는지를 신청자로 하여금 입증하게 하고, 담당공무원에게는 이를 일일이 확인하게 하고 만일 사실과 다를 경우 담당공무원에게 엄한 징계 등이 가해진다면 그 경우 신청절차는 매우 까다롭고 관료적으로 진행되고 그에 따라 여러 사각지대가 발생할 것이다. 이것을 두고 신청주의가 문제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실무원칙을 규율하는 보다 상위의 원칙을 놔둔 채 실무원칙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잘못 진단하는 것이다. 탈신청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복지는 신청이 아니라 권리라고 말하여3 마치 신청절차가 권리성 여부를 결정짓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신청절차가 있으면 복지급여가 권리가 아니게 되고, 신청절차가 없으면 권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아동수당도 신청을 하게 하므로 권리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공공부조에서 낙인이 따르는 것은 신청주의 때문이 아니라 공공부조 제도 자체가 신청자로 하여금 가난을 증명케 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가난증명이 늘 낙인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학금 수혜자 결정에서도 가난증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이 공공부조만큼의 낙인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복지급여 대상자가 약자의 지위에 있고 그 약자의 지위에 있음을 증명하는데 본인의 행위가 개입되는 경우 낙인이 따르게 된다. 그리고 약자증명을 위해 신청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는 과도한 관료주의가 지배할 경우 낙인은 매우 커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대상자 자격요건도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복지를 낭비로 보고 시장적 해결책을 찬양하며 복지수급자를 잠재적 부정수급자로 의심하는 사회일수록 공공부조의 대상자 요건도 까다롭게 설정하고 요건해당여부 판단 과정에서 신청자에게 과도한 입증책임을 부과한다. 또 이런 사회일수록 복지지출을 어떻게든 줄여야 안심을 한다. 복지지출을 줄이려고 하니 자격요건을 까다롭게 만들고 신청을 어렵게 만들고, 그렇게 어렵게 만들기 위해 약자입증책임을 신청자 본인에게 과도하게 지우는 것이다. 보편복지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고 하지만 복지를 억제하려는 기조는 우리 사회에 매우 강고하게 남아 있다. 대통령은 ‘잔인한 신청주의’라고 했으나 실제 문제의 본질은 그렇지 않아도 낙인이 따르는 선별복지제도에 약자입증책임을 신청자에게 과도하게 지우는 관료주의와 그런 관료주의를 조장하는 복지억제적 기조에 있다. 신청주의가 잔인한 것이 아니라 ‘복지지출을 어떻게든 줄이려는 복지억제적 기조에 의해 제도화된 과도한 관료주의’와 ‘그것에 지배된 선별주의’, 즉 ‘과도한 잔여주의’가 잔인한 것이다. 자동지급제가 현 정부의 복지비전을 밝힌다거나 복지제도의 전향적인 개편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라 ‘재정절감’ 간담회에서 나왔다는 것이 우연일까?
복지지출을 기어코 줄이려는 사회는 공공부조를 실제 운영하는 일선 정부조직에 많은 재정을 배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자격요건을 만들어 공공부조에 함부로 신청하지 못할 환경을 만들어둔다. 또 그런 사회는 공공부조 운영을 담당하는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 요건해당여부 판단에 재량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일수록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가난한 사람들을 매일 만나는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는 그들이 사회복지적 이념과 정신에 입각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대할 재량을 온갖 지침과 규정으로 막아둔다. 그래서 사회복지공무원들은 사회복지적 이념을 현장에서 펼치는 ‘사회복지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보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지침과 규정에 따라 가난한 사람이 대상요건에 해당하는지를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수급자격판단 공무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업무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격요건과 요건해당여부 판단 간의 거리가 먼 공공부조에서 그 거리는 더 멀어진다. 신청주의가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자주 거론하지만 ‘송파 세 모녀’가 기초보장 수급자 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사실이 있다는 점은4 말하지 않는다. 이런 사건의 희생자들 대부분 일생을 살면서 공공부조 신청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 신청했지만 탈락한 경험들이 있고, 그런 경험은 사망에 이를 정도로 고단하던 시기에도 신청을 미루게 한다.
자동지급제가 문제 해결의 올바른 길인가
신청을 못하거나 하지 않아서 복지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흔히 사각지대로 개념화된다. 그런데 이 사각지대의 원인을 신청주의에서 찾게 되면 선별복지제도가 갖는 특성과 신청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고, 또 복지억제적 기조에 의해 관료적 잔여주의로 왜곡된 복지제도와 신청주의가 갖는 권리보장적 성격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신청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문제의 본질이라고 진단하면 이른바 ‘발굴주의’라는 것을 대안으로 내세우게 되고 사각지대의 실제 원인을 놓치게 된다.
일각에서는 탈신청주의를 옹호하면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전통적인 방법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말한다. 즉,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전통적인 대응 방식은 시민의 권리의식을 높여 신청률을 제고하고, 선정기준을 완화해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또한 신청 절차를 단순화해 신청 부담과 낙인감을 줄이고, 공동체와 사회복지 담당자의 개입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청주의를 전제로 한 개혁의 성과는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5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정말로 여기서 말하는 전통적인 접근을 해왔는가? 시민의 권리의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는가? 그 반대다. 우리 사회는 공공부조 수급자를 잠재적 부정수급자로 낙인화하고 부정수급 색출을 위해 공공부조 행정의 전산화를 가속화해왔다. 선정기준을 완화해 문턱을 낮추는 노력을 해왔는가?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근로능력심사와 장애심사를 점점 더 엄격화하는 한편, 기준중위소득의 현실화를 지속적으로 미루어와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와 반대방향으로 선정기준을 엄격히 해온 것도 사실이다. 또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된 것이 아니라 금액이 상향조정된 것이어서 현장에서는 예외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을 상시적인 확인 절차처럼 운영하는 사례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제는 반드시 현장실무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가진 복지억제기조와 부정수급 의심기조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고 봐야 한다. 또 신청 절차를 단순화해 신청 부담과 낙인감을 줄여왔는가? 공동체와 사회복지 담당자의 개입을 강화해 왔는가? 신청 절차는 점점 더 복잡해졌고 사회복지공무원의 재량을 점점 더 줄여왔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접근을 위한 노력보다는 사회복지공무원의 규모를 어떻게든 늘리지 않으려 하고 공공부조에 투입되는 자원을 어떻게든 줄이려 하고 공공부조 수급자들을 부정수급자로 의심하여 부정수급을 차단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아왔다. 즉, 오프라인 전달체계를 늘리는 노력에 대해서는 대단히 인색한 정책기조를 펴왔고 그 공백을 온라인 전달체계와 전산화로 메우는데 온갖 노력을 경주해온 것이다. 온라인 전달체계의 전형적인 예가 바로 빅데이터에 기초하여 사각지대 위험대상자를 찾아내려는 시도이다.
한국 정부는 47종에 달하는 각종 정보를 활용하여 사각지대 위험대상자를 선정한 다음 이 사각지대 위험대상자 정보를 전국의 해당 시·군·구에 뿌려주어 그 대상자를 ‘찾아가게’ 한다. 정부는 이것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찾아가는 복지’(outreach service)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찾아가는 복지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사각지대 위험대상자 정보를 마치 헬리콥터에서 해당 시·군·구에 삐라 뿌리듯이 뿌려주는 ‘헬리콥터 복지행정’이다. 이 헬리콥터 복지행정은 2014년 2월에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한 이른 바 ‘송파 세 모녀 법’ 중 하나로 제정된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이하 “사회보장급여법”)에 의해 도입된 것으로 이른바 ‘발굴주의’에 기초하였다. 사회보장급여법이 처음 시행되던 2015년 당시 복지부가 활용한 정보는 23종이었지만 지금은 무려 47종으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그렇게 늘어난 정보를 활용하여 사각지대 위험대상자를 선정해도 그것이 실제 급여수급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매우 낮다. 실제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52만명이 위기가구로 발굴되었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연결된 경우는 2.4%, 긴급복지로 연결된 경우는 1.3%에 불과하다.6 사회보장급여법에 의한 발굴은 사실상 신청절차를 제거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이 가져온 효과는 매우 저조한 것이고 따라서 빅데이터에 기초한 전산화의 결과는 매우 초라하다고 할 수 있다. 헬리콥터 복지행정에 의한 전산화 발굴을 하여 사실상 신청 절차를 ‘제거’해도, 까다로운 수급자격요건을 ‘제거’하지 않으면 발굴은 단순히 발굴에 그치고 말 것이다. 즉, 제거되어야 할 것은 복지억제기조에 의해 만들어진 까다로운 수급자격요건과 과도한 잔여주의인데, 이것은 그대로 둔채 신청 절차만 ‘제거’하는 것은 문제해결이 아닌 것이다.
신청주의를 권리보장적 신청주의로 발전시키는 데는 관심이 없고 복지지출을 줄이는 데만 관심이 있는 사회는 신청주의를 과도한 약자입증책임제도로 변질시킨다. 그리고는 문제의 원인이 신청주의에 있다고 외친다. 그리고 과도한 약자입증책임은 그대로 둔 채 신청주의를 자동지급제로 바꾸자고 하고 정보화에 의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논의는 신청주의냐 자동지급이냐의 구도로 나타나게 되고, 복지억제적 기조와 그것을 자양분으로 한 과도한 약자입증책임 부과라는 관료주의는 의제화하지 못한다. 게다가 자동지급에 관한 논의도 편향된다. 예컨대, 신청 절차를 제거한 자동적 복지급여가 비수급(non-take up) 문제를 줄이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유로파운드는 자동지급이 가져올 문제도 함께 말한다.7 즉, 신청절차를 없애고 자동지급을 하는 것은 수급자의 개인정보보호 문제 및 데이터베이스와 관련한 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한 자동지급은 복지급여의 수급자격요건을 수급자의 욕구에 맞추기보다 자동화에 용이한 것으로 맞추게 할 위험이 있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 나아가 수급자격 요건을 단순화하고 신청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등이 중요하다는 언급도 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자동지급제 논의는 그것이 초래할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나아가 인공지능(AI)에 기초한 자동지급까지 말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억제적 기조에 의해 만들어진 까다롭고 복잡한 대상자 요건과 과도한 약자입증책임을 그대로 둔 채 AI에 기초한 정보화를 바탕으로 자동지급제로 나아가는 것은 문제를 다른 방향으로 키울 것이다. AI는 인간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을 매우 필요로 한다. 첨단지능정보화기술에 기초한 자동지급제는 그 ‘자동’이라는 것이 정말로 자격있는 자를 정확히 선별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인간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또 자동지급제는 그 이면에 자동탈락제를 전제한다. 왜냐하면 까다로운 수급자격요건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신청절차만 ‘제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탈락할 경우 그 민원은 누가 응대할 것이며 그와 관련된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이미 발굴주의에 기초한 헬리콥터 복지행정에서 오탐과 중복발굴(과탐), 미발굴(미탐)사례가 많고, 제대로 발굴한 경우(정탐)에도 줄 것이 없는 사례도 많다(지원미연계). AI에 의한 자동지급제를 추진할 경우 이와 같은 오탐, 과탐, 미탐, 지원미연계와 관련하여 인간, 즉 사회복지공무원의 업무는 이 문제들을 조정하고 보완하는 데이터 주석노동으로 조각화될 수도 있다. 사회복지공무원의 업무가 인간대상의 업무가 아니라 AI의 발전을 위한 데이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올바른 문제해결을 위하여
증상과 본질을 혼동하고 증상을 본질로 진단하면 잘못된 질문을 하게 되고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해결책으로 이어진다. 이미 발굴주의 자체가 그러하다. 복지억제적 기조는 공공부조 예산을 억압하고 공공부조에 투입될 사회복지공무원 인력을 억제한다. 예산과 사회복지공무원을 충분히 투입하여 사회복지공무원으로 하여금 신청주의를 권리보장적 신청주의로 발전시켜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 ‘끈’과 ‘연줄’이 되게 하는 것이 찾아가는 복지의 본질이지만, 그럴 재정과 재량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찾아가는 복지를 발굴주의로 축소 왜곡한다. 찾아가는 복지에 필요한 재정과 재량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오프라인 전달체계를 만들지 않고 이를 모두 온라인 전달체계로 해결하려 하며 그 온라인 전달체계의 끝판왕이 ‘헬리콥터 복지행정’인 것이다.
증상과 본질을 혼동한 또 하나의 예는 10여 년 전에 있었던 이른 바 ‘맞춤형 개별급여’로의 개편이다. 맞춤형 개별급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수급자가 되면 모든 급여를 주는 통합급여 방식이고 반면 수급기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아무 급여도 주지 않는 이른바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급여방식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는 기초보장제도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진단이다. 기초보장제도는 수급자가 되면 그에게 최저생활에 필요한 모든 급여를 주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우리 사회가 합의하여 만든 제도이다. 즉, 우리 사회가 통합급여를 하라고 임무를 부여하여 만든 제도가 기초보장제도이다. 따라서 기초보장제도가 통합급여를 하는 것은 원래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기초보장제도의 수급자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필요한 급여를 제공하는 것은 기초보장제도가 아니라 다른 복지제도가 할 일이다.
우리 사회는 다른 복지제도를 만들지 않았으면서 수급자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줄 급여를 없게 해놓고 그 책임을 엉뚱하게도 전부 기초보장제도에 전가했다. 복지억제기조에 의해 기초보장 수급자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저소득층에게 뭔가를 줄 복지제도를 만들지 않은 것이 문제의 본질인데, 그것을 기초보장제도가 통합급여를 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처럼 프레임화했던 것이다. 맞춤형 개별급여로 개편된 지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 통합급여는 그대로 존재한다. 생계급여 수급자에게는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가 통합적으로 전부 제공되는 것이다. 다만 그 선정기준이 낮아졌을 뿐이고, 통합급여의 작동수준이 낮아졌을 뿐이다. 결국 이른바 맞춤형 개별급여에서 선정기준은 그 이전의 기초보장제도와 별반 다르지 않아 맞춤형 개별급여는 사실상 실패했다. 그리하여 빈곤단체에서는 이러한 맞춤형 급여를 두고 ‘다리 아픈 환자의 목에 깁스를 채운 격’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8
대통령은 신청을 안 했다고 복지혜택을 안 주면 죽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지만 복지혜택을 받지 못해 죽는 경우까지 가는 일은 아동수당 같은 보편복지제도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말하는 극단적인 경우는 전부 공공부조 대상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대상자가 되지 못해 발생한다. 그런데 자동지급제는 보편복지제도에서는 매우 쉽게 될 수 있지만 지원을 못 받아 죽는 일까지 발생하는 공공부조에서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고, 설사 어찌어찌 가능하다 해도 그렇게 하려면 매우 많은 제도보완이 필요하여 대통령이 의도한 혹은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재정절감’이 안될 수도 있다. AI에 의한 자동지급제는 자동지급복지의 계급화, 디지털복지의 계급화로 이어질 수 있다.
본질과 증상을 혼동한 정책대안은 잘못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본질과 증상을 혼동하고 증상으로 본질을 해결하려는 접근은 전형적인 실용적 접근이자 기술결정론적 접근이다. 실무차원의 원칙인 신청주의에 주목하여 탈신청주의를 외치는 것 역시 기술결정론적 접근이다. 이것은 기초보장의 본래적 목적, 즉 최저생활보장 목적의 실현을 위한 제도 개선이라는 본질을 놓치게 할 우려가 있다. 증상으로 본질을 해결하려는 기술결정론적 자동지급제는 자칫 ‘다리 아픈 환자 목에 자동으로 두르는 깁스를 주는 것’과 유사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을 다시 던지고 해법을 다시 모색해야 한다.
| 미주 |
- 연합뉴스, 2025.08.13., “李대통령 “‘복지 신청주의’ 잔인”…‘자동지급 전환’ 검토 지시”.
↩︎ - 최현수, 2025, “대통령이 쏘아올린 잔인한 신청주의 폐지 논쟁과 실현방안: 새로운 데이터 거버넌스와 AI 에이전트 활용 기반으로 어떻게 신청주의를 폐지할 것인가?” 「복지신청주의에서 보편적 복지체계로: 복지패러다임 전환 긴급 국회토론회」, 김선민 의원실; 노대명, 2025.09.15., “이재명 대통령이 쏘아 올린 탈신청주의, 보편복지 활짝 열까,” <소셜코리아>; 노대명, 2025.10.13., “신청주의는 여전히 잔인…복지는 신청 아닌 권리다,” <소셜코리아>. ↩︎
- 노대명, 2025.10.13., “신청주의는 여전히 잔인…복지는 신청 아닌 권리다,” <소셜코리아>. ↩︎
- 정성철, 2024, “송파 세모녀 법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송파 세모녀 법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송파 세 모녀 10주기 좌담회」, 기초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3대 적폐 폐지 공동행동, 2월 26일, 2~9쪽. ↩︎
- 노대명, 2025.10.13., “신청주의는 여전히 잔인…복지는 신청 아닌 권리다”. ↩︎
- 정성철, 2024, “송파 세모녀 법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
- Eurofound, 2024, Social protection 2.0: Unemployment and minimum income benefits, Publications Office of the European Union, Luxembourg. ↩︎
- 장성철, 2024, “송파 세모녀 법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
월간<복지동향> 2025년 11월호(제3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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