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영 |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AI시대의 사회계약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에서나 “AI”에 묶여 있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말했던 ‘쇠사슬’은 당대의 사회적 제약을 비유한 것이었지만, 오늘날 그 맥락을 AI로 바꿔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물리적 구속이 아닌, 보이지 않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개인의 선택과 행동은 기록되고 분류되며 해석된다. 삶의 궤적은 점차 수치와 패턴으로 정리되고, 사회정책 역시 이러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구조로 서서히 재편되어 가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계약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시나브로 ‘AI와 함께 작동하는 계약’의 방식으로 사유될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AI)은 산업이나 기술의 영역을 넘어 국가 운영과 사회정책 전반을 관통하는 기반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복지 영역에서도 변화의 징후는 가시적이다.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탐색하며, 개인별 상황에 맞는 서비스를 설계하려는 시도들이 점차 제도화되려는 노력에 더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신청주의나 사후 대응 중심의 복지체계는 조금씩 균열을 보이며, 데이터 기반의 선제적 접근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기술이 추가되는 수준을 넘어, 복지국가가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식 자체가 이동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국가 차원의 AI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산업 경쟁력 중심의 논의에 머물던 AI는 이제 공공행정, 돌봄, 교육, 고용과 같은 생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정책 언어 속에서도 ‘데이터’, ‘예측’, ‘연계’와 같은 단어들이 점점 더 자주 등장한다. AI를 생산성의 도구로 보는 시선과 더불어, 그것을 공공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시도 역시 함께 나타난다. 다만 이 전환이 어떤 방향으로 정착될지는 아직 충분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
두 가지 길
하지만 AI는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 서로 다른 두 갈래의 길 사이를 맴도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인간의 인지 능력을 확장하며 과학적 발견을 가속하는 도구로서, 2024년 노벨상으로 상징되는 수준의 성취를 만들어 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 관계조차 흔들리며,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는 불완전한 체계로 드러나기도 한다. 정교함과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이 이중성은, AI를 둘러싼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증폭시키고 있다.
이러한 간극과 긴장은 데이터의 성격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있다. 자연과학의 데이터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통제 속에서 반복과 검증을 통해 축적된다면, 사회과학의 데이터는 맥락에 의존하고, 관계 속에서 의미가 달라지며, 때로는 측정되지 않는 영역을 더 많이 포함한다. 불평등, 돌봄, 정체성과 인정, 감정노동, 정치적 갈등과 같은 문제는 수치로 환원되는 순간 그 부분의 논의만 남고, 나머지는 주변부로 밀려난다. AI가 학습하는 세계 역시 결국 이러한 데이터의 조건 위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특히, 사회과학에서- 또한 함께 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김윤영, 2025).
이 지점에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에서 발간한 초안에서 사용되었던 ‘정밀복지’라는 표현이 “AI 기반 복지”로 완화된 것은 단순한 용어 수정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6). 복지 대상자를 세밀하게 식별하고 선별하는 기술적 가능성이 곧 정책적 정당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인식, 또한 과도한 선별이 오히려 배제와 낙인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최소한 사회정책에서는 AI 가 더 정교한 선별의 도구라기보다, 보편적 체계를 보완하고 연결하는 인프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인식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AI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손길
결국 AI는 만능의 해법도, 무용한 기술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도록 설계되고 어떻게 사용되는가이다. 이 지점에서 기술의 문제는 다시 사회적 선택과 판단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이에 몇 가지 질문이 뒤따른다. 알고리즘이 포착한 사회적 위험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 그 결과는 어떤 과정을 통해 정책 판단으로 이어지는가. 데이터가 드러내는 패턴과 현장의 경험 사이의 간극은 어떻게 조정되어야 하는가. 무엇보다 의사결정이 알고리즘에 더 의존하게 될 때, 그 책임은 어디에 남는가. 복지정책이 효율성을 넘어 삶의 조건과 존엄을 다루는 영역임을 고려하면, 이러한 질문은 쉽게 환원되지 않는다.
서술한 바와 같이,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복잡한 관계 속에서 패턴을 식별하며, 인간이 놓치기 쉬운 신호를 포착하는 데 강점을 지닌다. 그러나 그것이 곧 사회를 ‘이해한다’라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지점이 남아 있는 것이다. 개인의 삶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맥락과 관계 속에서 구성되며, 정책 또한 그러한 맥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특히 딥러닝 기반 모델의 높은 성능은 설명하기 어려운 ‘블랙박스’ 구조와 맞물려, 정책 판단의 근거를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남긴다.
이 때문에 AI는 판단을 대체하기보다 판단이 이루어지는 조건을 재구성하는 존재에 가깝다. 예측은 -데이터의 전제조건에 따라- 정교해질 수 있지만, 그 예측을 해석하고 개입으로 연결하는 과정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일선 공무원과 사회복지 실천가의 경험,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 윤리적 기준은 여전히 복지정책 과정의 핵심 축으로 작동한다. ‘Human-in-the-Loop’라는 개념은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AI 시대 복지의 재구성 : 연결과 조정의 사회계약
한편, 이러한 변화는 복지 전달체계의 재구성과도 맞물린다. 신청을 기다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통해 위험을 선제적으로 감지하고, 다양한 정보를 결합해 서비스를 연계하는 구조는 기존 행정과 다른 작동 방식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중앙과 지방, 공공과 민간, 데이터와 현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조정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므로 복지 전달체계는 단일한 체계가 아니라, 다양한 주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을 비롯한 데이터 통합기관,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고용노동부와 고용정보원, 통계청 및 각종 행정·금융 데이터 기관들이 각기 다른 기능을 매개로 맞물려 작동할 수 있다. 여기에 민간 플랫폼과 지역사회 조직까지 더해지면서, 복지는 점차 분산된 데이터와 다양한 판단이 상호작용하는 구조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김윤영, 2026). 이러한 과정에서 데이터 통합기관은 단순한 정보 관리자를 넘어, 정책과 현장을 잇는 조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의 설계와 지역의 집행, 데이터와 현장과 경험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는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이다. 결국 문제는 기술의 정교함에만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정보와 판단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의 삶과 존엄을 어떻게 놓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함께 제기되는 것이다.
결국 AI는 사회정책을 대체하기보다는 그 경계를 다시 그리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한다. 무엇을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되었는가와 동시에, 무엇을 여전히 판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함께 남는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정책의 언어로 깊이 스며들수록 그 바깥에 놓인 것들-맥락, 책임, 해석-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사회계약이 근본적으로 다시 쓰이고 있는 흐름일 것이다. 다만 그 계약은 더 이상 단일한 주체들 사이의 약속이 아니라, 인간과 기술, 데이터와 제도, 중앙과 지역이 함께 엮이며 형성되는 다층적 합의에 가까울 것이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이 계약은, 결국 AI 시대에 우리가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참고문헌
·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6,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 인공지능 기본계획(2026–2028).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 김윤영, 2026,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AI 기본사회 기반 사회정책 전환과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역할.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이슈 & 트렌드, 2026(2).
· 김윤영, 2025, AI와 사회과학방법론: 증거, 인과, 예측의 패러다임 전환, 비판사회정책. 89 p.433-461.
월간<복지동향>2026년 4월호(제330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