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4년 02월 2014-02-07   1932

[역사] 불행한 국민행복시대

참여사회 2014-02월호@atopy

불행한 국민행복시대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우리 국민 모두가 또 한 번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힘을 합쳐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들어갑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렇게 국민행복시대를 언급했다. ‘희망의 국민행복시대를 열다’, 새누리당에서 내놓은 제19대 대통령선거 백서의 제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세워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겠다’며 거듭 국민행복시대를 강조했다. 2014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을 돌아보며 국민행복시대란 말의 진의를 음미해본다.    

 

인민 대신 국민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2조이다. 1948년 제헌헌법을 만들 당시 유진오가 만든 헌법 초안에는 ‘국가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서 나온다’고 되어 있었다. 인민이 국민으로 바뀐 사연은 간명하다. 인민은 좌파와 공산주의자가 즐겨 쓰는 개념이라 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유진오는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인민을 의미하므로, 국가우월의 냄새를 풍기어 국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반드시 적절하지 못하다. 결국 우리는 좋은 단어 하나를 공산주의자에게 빼앗긴 셈이다

 

이렇게 우리가 즐겨 쓰는 국민은 인민을 대신한 개념으로 반공과 반북의 함의를 담고 있다. 인민은 남한에선 축출 당했지만, 북한에서는 여전히 살아 숨쉬는 개념이다. 뿐만 아니다. 중국도 인민을 애용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 속한다’, 중국헌법 제2조다. 일본 사회주의자들에게 인민은 피지배적 상태에 있는 계급적 존재를 의미한다. 이렇듯 인민은 물론 제헌헌법에서 그를 대체했던 국민 역시 냉전이 낳은 이념성이 짙게 배인 말인 것이다.  

 

국가 행복이 곧 국민 행복

 

미국독립선언서에 ‘정부가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침해할 경우, 인민은 새로운 정부를 세울 수 있다’는 요지의 문구가 있다. 정부가 인민의 ‘안전과 행복Safety and Happiness’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이 독립선언서 내용을 가장 먼저 주목한 이는 1866년 ‘happiness’를 행복이라 번역했던 일본 근대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였다. 그의 눈에 행복은 곧 문명을 의미했고, 그 행복을 누리는 주체는 국민이었다. 그렇다면 메이지 정부가 문명화를 주도하고 있으니, 국가가 행복하면 국민도 행복하다는, 즉 미국 독립선언서의 논리를 완전히 뒤집은 주장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실제 천황의 나라, ‘황국’의 등장이야말로 백성의 행복이라는 주장을 개진하는 흐름이 등장했다. 천황의 나라에서 국가 행복이 곧 국민 행복이라 강조할 때, 국민은 온전한 주권자가 아니라 신민에 가까운 존재였다. 메이지 정부는 천황제를 강화하면서 신민이란 어휘를 강조하고 내세웠다. 그런 점에서 그 시절 일본에선 인민, 국민 둘 다 신민과 상당한 긴장 관계에 놓이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이지 정부가 인민, 혹은 국민의 이름으로 의회 개설을 요구하고 있던 자유민권운동을 제압하기 위해 1887년에 만든 보안조례에서 탄압 명분으로 내세운 것도 바로 ‘신민의 행복 보호’였다. 

 

국민불행시대

 

박근혜 정부 1년 동안 우린 반공과 반북의 길에 동참해야 국민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또한, 국가의 행복이 곧 국민의 행복이라 여기고 국가에 충성하는 신민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받았다. 여기서 국가는 다름 아닌 ‘대통령’을 의미했다. 취임식에서 동반을 약속하고 호소했으나, 순종을 강요한 ‘국민행복시대’였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국가와 국민이 동반의 길을 함께 걷고,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이 선순환의 구조를 이루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그 길을 성공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이 서로를 믿고 신뢰하면서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국민행복은 국민에게 있지 않고, 국민행복기금, 국민행복주택 등 각종 정책의 이름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와 달리 세계는 국가 목표로 행복을 내걸거나 국민 행복 지수를 개발하는 등 국민의 행복‘감’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2010년 간 나오토 수상이 내각부에 행복도에 관한 연구회를 설치한 뒤 행복감 측정을 위한 지표로 경제 사회 상황, 심신 건강, 관계성 등을 설정하고 일본인의 행복에는 어떤 내용과 요소가 포함되는지를 조사 연구하고 있다.

 

국민, 국민행복, 국민행복시대, 어느 걸 들추어 보아도 빈 수레뿐인 ‘지금 여기’ 대한민국은 그래서 불행하다.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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