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부정해야 하는 정치인,
자기를 보여줘야 하는 정치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
자신을 부정해야 이기는 박근혜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을 당한 뒤 4월 총선을 앞두고 그 후폭풍이 거세게 불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은 텃밭인 영남에서조차 일부 의석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비관적이었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박근혜였다.
박근혜 대표는 차떼기 당, 탄핵 정당의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기존의 당을 부정해야 했다. 최병렬 대표 등 과거 핵심 인물들을 축출하고, 여의도에 천막당사를 친 뒤, 과거를 반성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120석을 얻어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정권 교체가 기정사실화된 2007년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다. 당원과 대의원들로 구성된 지지층 즉 당심黨心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이겼지만, 일반 국민들의 여론조사 즉 민심民心은 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이 패배가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박근혜가 그동안 노무현 정부와 각을 세우며 보여준 성과는 오로지 특정 정파의 수장으로서의 파괴적인 전투력뿐이었다. 이로써 소수 지지층 결집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명실상부한 국가 지도자로 인정받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이명박이라는 대체재가 나타나자 곧바로 외면당한 것이다.
정치인 박근혜는 그 뒤 국가 지도자로 인정받기 위해 또 다시 자신과 당을 철저히 부정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4대강 개발 등 핵심 정책에 소극적 반대를 했고, 대선 기간 보수의 핵심 의제인 경제성장 노선을 버리고 진보 의제인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취했다. 김종인·이상돈·안대희 등 합리적 보수 인사들을 영입하고 인혁당 관련자들에게 사과하는 등 자신의 이미지를 일신했다. 그 결과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대통령 박근혜가 지난 1년 간 보여준 모습은 반대 세력과 파괴적 투쟁을 하는 박근혜, 과거 지향적이고 극우 편향적인 본래의 박근혜로 급속히 회귀한 것이다. 과거의 인물들이 신속히 복귀하고, 박정희 시절 권력의 중추 기관이었던 국가정보기관이 국정을 농단했다. 국민들 사이의 갈등과 분열은 극심해졌지만 언론에서는 대통령 찬사만 나부끼고 있다. 여당은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느라 정신없고, 야당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실종되고, 거짓과 공포의 정치만 춤을 추고 있다.
자신을 부정해서 몰락한 노무현
박근혜와 달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최고의 지위에 오른 정치인이 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정치인 노무현은 3당 합당 시절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며 YS를 거부했고, 서울 종로 대신 부산을 택해 잇따라 낙선함으로써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 대선 기간에는 처가를 빌미 삼은 한나라당의 색깔 공세에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라며 정면 돌파했고,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때는 “반미면 어떻습니까?”라며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노무현도 대통령이 된 뒤 스스로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갔다. 당선 직후 YS를 찾아 ‘03시계’를 보여주며 자랑하고,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한나라당을 상대로 대연정을 하자고 조바심을 냄으로써 지지층의 이반을 겪었다. 특히 삼성에 발목을 잡히고 한미FTA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을 지속하는 등 소위 “왼쪽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사면초가에 놓였다.
집권 2년차 박근혜의 선택은?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선거에서 이길 수 없는 정치인이라면 정말 불행하다. 그런데 더욱 불행한 건 자신을 공개적으로 부정한 정치인의 가식에 속아 권력을 넘겨준 국민들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박근혜가 선거에서 연승을 거둔 것은 천막당사로 상징되는 박근혜의 자기부정에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의 승리도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이 대표하듯이 지속적인 자기부정에 있었다.
이제 박근혜 정부 2년차를 맞고 있다. 대통령 박근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또 다시 자신을 부인할 것인가, 아니면 본래의 모습을 유지할 것인가. 지금까지 행태로 짐작컨대 이미 최고의 지위에 오른 대통령 박근혜가 또 다시 자신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여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으름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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