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4-08   26929

[동향3] 지역의사제, 공공의료의 ‘최후 보루’가 되려면

김진환ㅣ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시장 실패의 현장에 국가의 역할을 묻다

한밤중 아이의 열이 오른다. 서울 강남의 부모는 스마트폰으로 근처 소아과를 검색한다. 같은 시각, 전남의 한 군(郡)에 사는 부모는 한 시간을 달려 큰 병원 응급실로 차를 몬다. 하지만 그곳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2026년 대한민국 의료의 서글픈 민낯이다.
최근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과 그 하위법령이 제정되었다. 의대 정원의 일부를 지역의사 전형으로 선발하여 장학금을 지원하되, 면허 취득 후 10년간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복무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위반 시에는 면허를 취소하는 강력한 법적 구속력까지 갖췄다.
연봉 5억 원을 제시하고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일은 이제 예외가 아니다. 의료가 필요에 맞게 균등하게 제공되지 못하고, 시장 논리에 따라 수도권과 비급여 영역에 쏠려 제공되면서 빚어진 시장 실패의 결과다. 지역의사제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의사들을 필요한 전공과 지역에 배치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도다. 현재의 실패를 인정한 국가는 직접 공적 인력 양성과 배치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지역의 필요에 부응하는 의사들이 무럭무럭 자랄 거란 보장은 없다.

제도 안착을 위한 네 가지 핵심 과제

의료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를 들어 위헌을 주장하고, “결국 10년 뒤에는 모두 서울로 돌아올 것”이라며 실패를 예언한다. 이런 말들이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지 않으려면, 법 통과 이후의 세부 설계와 실행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그림 1).

지역의사의 경력 경로와 전 주기적 개입을 위한 네 가지 핵심 과제

① 선발의 정체성: 지역 밀착성이 높은 사람을 뽑자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길러내는 데 있어 적절한 사람을 뽑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능 고득점자에게 장학금을 미끼로 10년을 묶어두는 방식은 얼핏 합리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지속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근무하는 지역이 어쩔 수 없는 의무복무지일 뿐,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벗어나야 할 곳으로 여겨진다면, 그 의사가 10년간 일하는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줄어든다. 몸은 지역에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서울을 향하는 의사가 의욕을 내어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쌓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면 제공하는 의료의 질도 그 사람이 본래 갖춘 역량만큼 발휘되기 어려워진다.
일본 자치의과대학(自治医科大学)의 사례가 시사적이다. 1972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각 도도부현(광역지자체)에서 지역사회 기여 의지가 검증된 인재를 선발한다. 해당 지역 출신이거나, 농어촌 의료 현장에 대한 뚜렷한 동기를 가진 지원자를 입학사정 과정에서 정교하게 고른다. 졸업 후 9년간 출신 지자체가 지정한 의료기관에서 의무복무를 수행하며, 이행률은 85~90%에 이른다. 위약금을 내고 이탈하는 비율은 10~15% 정도다. 한국에 수입해 그대로 실행하면 되는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하지만, 반세기 가까이 유지되며 벽지 의료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자치의대가 내놓는 답은 지역과 소속감에 있다. 지역 출신 의사가 자신이 자란 곳에서 일하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지역과 호흡하는 것, 이는 곧 지역 밀착성의 다른 이름이다. 한국에서도 성공을 위한 조건이 크게 다르리라 생각하기 어렵다. 선발 단계에서부터 지역에 뚜렷한 소속감을 가진 이들을 뽑아 지역의 일을 맡기고, 주민들의 기대를 자긍심으로 여길 수 있게끔 돕는 일이 제도 성공의 첫 번째 분기점이다.


② 거버넌스: 지방정부가 지역의사를 끝까지 책임지게 하자

현재 의대 교육은 교육부에, 면허 관리와 수련·배치는 보건복지부에 맡겨져 있다. 지역의사제에서 이 분절은 치명적이다. 교육부가 “졸업”을, 복지부가 “배치”를 끝으로 손을 놔버리는 순간, 지역의사는 지역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따라서 입학부터 수련, 의무복무 10년, 복무 후 지역 정착까지 관통하는 전 주기적 관리 체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를 위해 국가와 지방정부가 지역의사의 경력 전체를 끝까지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제도적 책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제도가 길을 닦는 것이라면, 그 길을 계속 걷게 하는 동력은 결국 사람과 공동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 자치의대의 성공 뒤에는 대학을 중심으로 결속된 지역 의료 옹호자들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다. 한국 역시 지역의사가 부임지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도록 선배와 동료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방정부와 대학, 의료기관 역시 이를 위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지역의사를 어쩔 수 없이 묶어 둔 인력으로 취급하며 냉소하고 차별하는 시선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지역사회에 헌신하는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공유하는 동료가 필요하다. 그 동료가 반드시 의사일 이유 역시 없다. 결국 지역의사제의 성패는 국가가 만든 제도 위에 지역사회가 얼마나 단단한 지지 기반을 쌓아 올리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을 보내기 전에, 사람이 환영받고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미리 준비해 나가야 한다.


③ 인프라: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자

제도가 충실히 준비되었다고 해도, 일할 수 있는 현장이 준비되지 않아서는 곤란하다. 배치될 공공병원이나 보건의료기관의 시설이 낡고, 장비가 부족하며, 함께 일할 동료조차 없다면 아무리 사명감 넘치는 의사라 해도 제대로 된 진료를 하기는 어렵다. 법률상 배치 대상은 공공보건의료기관이지만, 정작 그곳이 의사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제도의 신뢰 자체가 무너진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지금 선발된 학생이 본과 실습에 나가기까지 약 4년, 실제 현장 배치까지는 10년이 채 남지 않았다. 이 골든타임 안에 지역 공공의료기관을 지역의사가 일할 만한 곳으로 바꿔 놓아야 한다. 호주의 지역 종합진료의(Rural Generalist) 모델은 구체적인 참조점을 제공한다. 2014년 <케언즈 합의문(Cairns Consensus Statement)>1으로 정리된 이 모델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지역의사에게 수술·마취·산과 등 술기를 체계적으로 훈련시킬 것. 둘째, 지역 내에서 독립적인 경력 경로를 보장할 것. 셋째, 도시 전문의와 동등한 전문직 지위를 인정할 것. 요컨대, 지역의사가 어쩔 수 없이 파견된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지역 의료를 이끄는 다른 종류의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무대가 준비되지 않은 곳에 사람을 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④ 정착 전략: 복무가 끝난 10년 이후를 설계하자

지역과 10년간 호흡을 맞춘 지역의사는 의무복무가 끝난 뒤에도 한국 사회의 귀중한 자원이다. 다만 10년을 지역에서 보낸 의사가 복무 종료와 동시에 서울로 가버린다면, 이 제도는 그저 지역에 의료 인력을 잠시 빌려주는 인력 임대가 되고 만다. 수도권 의사보다 높은 임금을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전문적인 연구와 교육을 이어갈 수 있는 학술적 기회, 자녀 교육과 주거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 안에서 전문가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역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높은 보수가 아니라 지역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조건, 이른바 역량(capability)의 보장이다. 수도권이라는 강력한 구심력에 맞서려면, 돈이 아닌 삶의 조건으로 비교우위를 만들어야 한다. 복무 기간의 경험이 경력 자산으로 축적되고, 복무 이후에도 그 자산을 활용할 경로가 열려 있을 때, 지역은 ‘남겨지는 곳’이 아니라 ‘계속 살아가고 싶은 곳’이 된다.

실패할 수 없는, 실패해서는 안 되는 과제

지역의사제를 둘러싼 회의론은 두 갈래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약하는 위헌적 제도라는 법리적 비판, 그리고 어차피 실패하고 정부는 책임을 회피할 것이라는 경험적 냉소. 의료계에서 이 제도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이가 정말로 몇 명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비관을 현실로 인정하며 바라보아야 하는 또 다른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의사 직종의 특수한 위치다. 의사 인력이 수도권과 고수익 비급여 영역으로 쏠리는 현상은 개별 의사의 합리적 선택을 넘어선다. 의료 전문직의 계급적 지위가 시장 논리와 결합하여 빚어낸 구조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지역의사제는 이 왜곡된 구조에 공적으로 개입하는, 현재로서는 사실상 유일한 정책이다. 제도의 성패가 곧 지역 주민의 건강권 보장 여부와 직결된다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의사제는 실패 가능성을 몰라서 시작하는 정책이 아니다. 더 이상 실패해서는 안 되기에 시작한 정책이며, 그래서 성공의 조건을 한층 촘촘하게 살피고 채워 나가야 한다. 선발의 기준을 공공성에 맞추고, 교육과 보건 사이, 중앙과 지자체 사이의 분절을 넘어서며, 현장의 인프라를 갖추고, 복무 이후의 삶까지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 어렵사리 열린 이 문이 ‘해봤자 안 된다’는 자포자기의 예언에 스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다.

| 미주 |

  1. Australian College of Rural and Remote Medicine. (2014). Cairns Consensus Statement on Rural Generalist Medicine: Improved health for rural communities through accessible, high quality healthcare. https://www.acrrm.org.au/docs/default-source/all-files/cairns-consensus-statement-final-3-nov-2014.pdf ↩︎

월간<복지동향>2026년 4월호(제330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