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2년 04월 2022-04-03   1770

[이슈] 유럽은 지금 울고 싶다?

유럽은 지금 울고 싶다? 

박은하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화석연료로 회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3월 21일(현지 시간) 한 말은 최근 세계 각국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위기감을 보여준다. 유럽은 특히 화석연료에 대한 신규 투자를 줄여온 기존 방침을 뒤집을 태세다. 유럽 정책 당국자들은 미국과 중동 등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늘려 신재생에너지가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때까지 ‘단기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천연가스 대체 공급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진행되고 새로운 거래선이 만들어지면 이들 인프라는 유럽 기후정책을 뒤흐드는 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8일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탈피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올해 말까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 물량의 3분의 2를 줄이고 2030년 이전까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독립’을 이루겠다는 내용이다. 

 

유럽은 지난해 10월 기준 석유의 26.9%, 천연가스의 41.1%, 석탄의 46.7%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2019년 기준 유럽의 에너지 생산에서 각 발전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석유(36.3%), 천연가스(22.3%), 재생에너지(15.5%), 원자력(13.1%), 석탄(12.7%) 순이다. 전체 에너지의 4분의 1가량을 러시아산 화석연료에 의존해온 셈이다. 

 

당장 올겨울에 사용할 에너지 확보에 불이 떨어졌다. 감당하기 어려운 가스가격으로 비료 공장들과 다른 공장들이 문을 닫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영국에서 가정집 에너지비용 지출은 50% 상승했다.

 

독일 “에너지 공급 안보가 가장 최우선 과제”

 

2050년을 목표로 한 탈탄소 전환 중장기 계획도 어그러졌다. 유럽 각국은 당초 천연가스 비중은 늘려갈 계획이었다. 석유와 석탄을 먼저 퇴출시키되 재생에너지가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때까지 석유와 석탄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은 천연가스를 징검다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구상이 위협받게 된 것이다.

 

EU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 용량을 2030년까지 지금의 3배 이상으로 늘리는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기로 했지만 재생에너지로 당장의 가스 공백을 메우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기존 석탄화력, 원자력 발전소의 퇴출 계획마저 흔들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EU는 우선 가스 대체수입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EU집행위원회는 27개 회원국을 대표해 러시아 외 생산국을 상대로 가스·수소·LNG를 공동구매하기로 했다. 올 10월까지 25%밖에 남지 않은 가스비축분을 80~90% 수준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미국, 카타르,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 이집트 등이 대체 수입국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올해만 미국의 LNG를 유럽에 150억㎥ 추가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유럽은 한국, 일본 등 미국의 LNG 수입 국가들에게 남는 물량을 유럽으로 돌릴 수 있는지도 타진하고 있다. 러시아 가스 파이프라인은 1970년대부터 설비가 갖춰져 있지만 미국 등 해외에서 LNG를 수입하려면 별도의 설비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은 최근 LNG 수입을 위해 연간 80억㎥(8bcm)의 생산능력을 지닌 터미널 2곳 건설을 승인했다. 탈탄소를 이유로 지난 수년간 가스 기반시설투자를 주저했던 것과 상반되는 행보다. 독일 정부는 전력공급을 중단한 석탄화력들을 전력 부족 사태를 대비해 예비 전력원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비상시 발전소 전원을 다시 켜겠다는 계획이다. 로버트 하벡 독일 에너지경제부 장관은 “에너지 공급 안보가 가장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독일 지방정부도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 뮌헨 정부는 최근 석탄화력 발전소 한 곳의 수명을 연장하기로 했다. 내년 상반기부터 천연가스로 연료원을 교체한다는 계획을 뒤집은 것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앞서 러시아에서 독일 북동부까지 연결할 예정이던 110억 달러 규모의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승인을 중단했다. 독일은 유럽 내 에너지 시장의 가장 큰 손이자 재생에너지 전환의 중심에 서 있던 국가여서 이 같은 변화가 주목을 끌고 있다. 

 

월간 참여사회 2022년 4월호 (통권 294호)

자료 Eurostat (2021.10 기준)

 

다시 증가하고 있는 유럽 각국의 화석연료

 

폴란드에서는 ‘탈석탄 저항’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석탄발전비율이 70%에 육박하는 폴란드는 기후 아젠다를 두고 늘 EU와 충돌했다. 폴란드는 유럽 그린딜 정책에 발맞춰 2049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하고 유럽 최대 석탄화력발전소인 베우하토프 발전소를 2036년까지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 역시 유럽 내에서는 늦은 조치라 비판받았으나 에너지 전환 반대론자들은 에너지 부족 사태가 터지자 성급한 탄광 폐쇄가 실수였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실레지아 지역의 도미니크 콜로즈 연대노동조합장은 “소위 EU의 기후정책은 심각한 경제적 위기로 이어지게 했으며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유럽 전역에서 단계적 퇴출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석탄 역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콜롬비아 등에서 대체 공급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벨기에는 탈원전 일정을 연장했다. 2025년까지 모든 원자력 발전을 중단하기로 했으나 지난 3월 18일 2035년까지 발전을 연장하기로 했다. 탈원전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벨기에 녹색당도 원전 연장 방안에 동의했다. 원전을 계획대로 닫았다가는 가스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반 데르 스타텐 벨기에 에너지 장관은 “에너지 계획에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의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벨기에와 폴란드 역시 전쟁 이후 LNG 터미널을 증설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유럽 전역 10곳의 LNG 터미널이 증설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시추를 중단한 북해 유전 추가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영국 사이먼 클라크 재무장관은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지 않도록 추가 유전과 가스전을 승인하는 방안을 당국이 검토하고 있다”며 “가스와 석유 등의 비중이 확대된 새 에너지 계획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약 15%에서 25%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유럽 각국에서 다시 증가하는 화석연료 사용이 ‘원래 당분간 사용하기로 했던’ 러시아 천연가스를 대체하기만 하고 재생에너지 투자가 기존 속도대로 이어지면 ‘산술적으로’는 향후 기후대응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새로 만드는 LNG 터미널이나 석유시추시설을 탈탄소를 위해 몇 년 만에 다시 폐기시키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탈석탄이나 탈원전 과정에서 보이듯 에너지 전환은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일이다. 전쟁을 통해 LNG 위주의 에너지 소비구조가 만들어지면서 관련 기업이나 관료 등 이해관계 집단이 형성되면 탈탄소 전망은 더욱 어둡게 될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냉전 시대에 만들어진 소련과 유럽 간 가스관이 가스 위주의 에너지 소비구조를 형성시켜 탈화석연료 발걸음을 늦췄다고 지적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국장은 “우리의 기후 목표가 러시아의 또 다른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Issue 에너지 패권과 에너지 전환

1. 우크라이나 사태와 에너지 패권 경쟁  이태동

2. 유럽은 지금 울고 싶다? 박은하

3. 급변하는 국제 에너지 정세, 뒤처지는 국내 상황  이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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