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4월 2009-04-01   1315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_사법부 파동: 불량 하이브리드 법원조직의 비참




불량 하이브리드 법원조직의 비참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지난 몇 주간 조야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신영철 대법관사태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로 하여금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 원리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곱씹게 만들 것 같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를 시작으로 법관징계위원회와 행정소송까지 기나긴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재판개입이냐 사법행정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법률가들의 끝없는 입씨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영철 대법관은 공정성을 잃고도 오기를 부리는 실패한 판사의 상징으로 각인될 가능성이 많다.



헌법이 말하는 ‘법관의 독립’의 현실적 의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과 같은 사정이 없는 한, 대법관의 임기가 종료되기 전에 그를 대법관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본인이 스스로 사임하지 않는다면, 이처럼 데면데면하게 기나긴 법적 절차를 감내하며 가는 수밖에 없다. 대법원에 올라가는 상고장에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서류가 첨부되기 시작하고, 대법원 청사 앞에 조속한 사퇴를 바라는 젊은 법학도들의 촛불이 모이더라도, 본인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그냥 가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헌법이 말하는 ‘법관의 독립’의 현실적 의미이다. 누군가를 판사로 임용했다면, 설혹 그가 판사로서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해도, 탄핵과 같은 사정이 없는 한, 그에게서 판사의 직위를 박탈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헌법에 규정한 ‘법관의 독립’의 의미인 것이다.

이런 뜻에서 우리가 이제 반드시 마주해야 할 것은 “이렇게 엄청난 독립성을 보장받는 판사직을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운영해왔는가?” 하는 물음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도대체 누구에게 판사직을 맡겨왔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충원해왔는가? 동료 판사들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은 신영철 대법관의 행적에 관하여 “재판개입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른 법관의 재판에 개입하는 인물은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에 의하여 판사, 그것도 대법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인가?

단언컨대, 신영철 대법관사태의 배후에는 지난 60년 동안 누적되어온 대한민국 법원조직의 구조적 문제점이 작용하고 있다. 흔히 대한민국의 법원조직을 영미식 법조일원시스템에 비교하여 대륙식 커리어시스템, 즉 관료적 직업법관체제라고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대한민국 법원조직의 본질에 부합하는 설명이 아니다. 대한민국 법원조직은 영미식 법조일원시스템이나 대륙식 커리어시스템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의 잡종, 그것도 양자의 우수한 점들이 아니라 양자의 취약한 점들만을 모아놓은 일종의 불량 하이브리드 체제이기 때문이다.



커리어시스템과 법조일원시스템의 기괴한 결합

1945년 10월말 150여 명의 조선인 개업변호사들은 미군정에 의해 각급 법원의 판사로 임명을 받아 8·15 해방 이후 사실상 기능이 마비되었던 일제의 법원조직을 장악했다.

이들에게 8·15 해방은 일본인 판검사-변호사집단의 주변에 기생하던 남루한 인생들을 하루아침에 신생국가의 사법부 구성원들로 바꾸어놓은 개벽이자 혁명이었다.

미군정은 모든 법률가에게 일단 개업변호사로서의 직업적 자기정체성을 가지게 한 뒤, 그들 가운데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판사를 임용하는 영미식 법조시스템을 이식하려 했다. 이 방식을 따를 경우 새로운 국가의 법원조직은 자연스럽게 심급제도 상의 상하위에 상관없이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법관들의 네트워크로 구성될 것이었다.

그러나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를 비롯한 당시의 조선인 판사들은 영미식 법조일원시스템을 거부한 채 한사코 대륙식 커리어시스템을 고집했다. 이들에게는 일제치하에서 겪어본 것인만큼, 판사를 개업변호사와 분리하여 양성한 뒤 아예 따로 임용하고, 법률가인생을 마칠 때까지 판사면 판사, 개업변호사면 개업변호사의 직업적 자기정체성을 고집하는 커리어시스템이 상당히 익숙한 측면이 있었다. 아울러 조선인 판사들은 미군정의 간섭이나 체제전복세력의 도전으로부터 법원은 물론 자신들의 집단적인 이해관계를 보호하는데도 커리어시스템이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실제의 재판 경험이 없는 식민지 개업변호사 출신들로 법원을 운영해야 하는 법원수뇌부로서는 법원조직 내부에서 판사양성과 도제식 재판훈련을 겸할 수 있는 커리어시스템의 관료제적 조직구조가 매력적인 것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법원조직의 초기 지도자들, 특히 가인 김병로의 경우에는 한 번 판사면 죽을 때까지도 판사라는 이 커리어시스템의 장점을 끝까지 수호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있다. 사실 당사자들의 사적 이익을 대변하는 개업변호사의 정체성과 국가를 대표하여 공적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판사의 정체성은 법률가의 인생에서 수시로 바꾸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인 김병로는 강직하고 청렴하며 지조와 절개를 갖춘 판사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대륙식 커리어시스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대한민국 법원조직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려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가인 김병로의 충정은 이후 대한민국 법원조직의 형성과정에서 철저하게 배반당했다. 대한민국 법원조직은 커리어시스템의 단점이라 할 관료제적 조직구조를 강고하게 제도화하면서도, 공적 이익의 수호자들로서 법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커리어시스템의 장점을 너무도 신속하게 포기했다. 원래 개업변호사 출신이던 초기의 판사들은 현직에서 물러난 뒤 개업변호사로 돌아갔다. 그 뒤를 이어 고등고시 사법과나 사법시험을 통해 배출된 새로운 판사들 역시 판사로서 어느 정도 커리어가 쌓이면 판사직을 사임하고 변호사로 개업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심지어는 동기생들 중에 법원장급이 배출되면 다른 판사들은 조직의 안정을 위해 용퇴하고 변호사로 개업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정치권력 쪽에서는 이를 역이용하여 발탁인사를 통해 법원조직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판사로서 법률가직을 시작한 사람이 중도에 직업을 바꾸어 개업변호사로 변신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프랑스, 독일, 일본 등 대륙식 커리어시스템에 입각하여 법원조직을 형성한 대표적인 국가들 중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한 현상이다. 사실상 개업변호사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으로 판사직을 이용한다는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법원조직은 대륙식 커리어시스템의 왜곡된 변형인 동시에, 판사직이 아니라 변호사직을 법조일원화의 귀착점으로 삼는다는 의미에서 영미식 법조일원시스템의 기형적 수용이다.



관료제적 성격의 강화와 전관예우의 만연

대한민국 법원조직이 불량 하이브리드 체제로 기형적인 형성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피라미드 형태의 관료제적 조직구조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구조적인 폐해를 배태하기 시작했다. 피라미드식 관료제적 승진구조에서 물러난 전관 개업변호사들에게 단기간에 사건을 몰아주는 소위 전관예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전관예우에 의해 뒤늦게 개업변호사직에 ‘돌아온’ 전직 판사들은 그동안 거두지 못했던 개업변호사로서의 수익을 단기간에 보전(refund)받을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전관예우로 대표되는 불량 하이브리드 법원조직의 폐해는 법원조직의 관료제적 성격과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전관예우를 가능케 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커니즘이 사건배당권한이나 인사평정권한 등을 활용하여 법원조직 내부에서 상급자의 지도나 압력을 하급자에게 관철시킬 수 있게 만드는 관료제적 구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법원조직의 역사에서 관료제적 성격의 강화와 전관예우의 만연, 그리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상징되는 사법불신의 대중적 심화가 동시에 진행되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 법원조직의 관료제적 성격은 여러 요인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법원을 손쉽게 장악하고자 했던 독재권력의 정치적 의도,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일사불란한 조직구조를 갖추려고 했던 법원 내부의 필요, 갈수록 증폭되는 재판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법원조직의 효율화 요구, 기수별로 판사를 배출하는 사법연수원체제의 자동적인 속성, 대법원장 1인에게 사실상 모든 법관의 인사권한을 집중시키고 있는 최근 헌법의 태도 등.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① 10여 단계에 이르는 피라미드식 승진구조, ② 승진구조를 운영하기 위해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인사평정권한, ③ 법원 전체를 지배하기 위한 강대한 법원행정처의 존재, ④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법원조직 내부의 지배엘리트그룹 등 다른 나라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관료제적 법원조직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상의 설명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대한민국 법원조직의 기괴한 모습이다. 법원조직과 개업변호사집단은 조직적으로는 대륙식 커리어시스템처럼 분리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관예우와 같은 독특한 메커니즘에 의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연결방식이다. 영미식이 개업변호사 중에서 판사를 임용하는 방식이라면, 한국식은 정반대로 판사들 중에서 개업변호사가 탄생하는 방식이다.



내부 투쟁으로 비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법원조직

이런 기괴한 체제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법률가들은 관료제적 법원조직의 상층부와 개업변호사집단의 노블 클래스(noble class)를 오갈 수 있는 엘리트들이다. 이른 나이에 좋은 성적으로 판사가 된 뒤, 관료제적 법원조직 내부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용퇴하여 전관예우의 혜택을 만끽하고, 종내는 사회적 명성과 정치적 네트워크에 힘입어 법원조직의 수장으로 취임하는 것 정도가 대한민국에서 법률가가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커리어일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용훈 대법원장 그 자신은 바로 이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커리어를 몸소 실현한 대한민국 법원조직의 대표적인 히어로이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그와 같은 승자의 길을 염원하는 엘리트들이 즐비하다.

이에 비해 지금 내부고발자들로 찍혀 있는 일단의 소장 판사들은 아마도 이 기괴한 체제의 패자들이거나 거의 패자들이 되어가는 상태일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사법시험에 몇 번 떨어져서 늦은 나이에 판사가 되었거나, 판사가 되었더라도 비교적 낮은 성적으로 되었거나, 그 연수원성적의 굴레 때문에 승진도 늦고 가끔씩 인사평정권자의 눈총도 받는 처지이거나, 차라리 집어치우고 개업하자고 해도 전관예우를 기대할 수도 없고, 대형로펌에 가기도 어렵고, 재벌의 법무팀에도 끼기 어려운 상태이거나, 동료 판사들 이외에는 만나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사회적 명성이나 정치적 네트워크는 아예 상상할 수도 없는 판사들일 것이다. 그저 밤늦게까지 재판기록과 싸우고, 밀린 숙제하듯이 판결문쓰기에 매달리는, 그러면서도 때가 되면 가라는 대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고, 어쩌다가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끼리 모여 폭탄주나 한 잔씩 돌리는 이름 없는 판사들일 것이다.

과문한 탓에 자신할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에 신영철 대법관 사태의 본질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불량 하이브리드 법원조직 내부에서 오래도록 승자들의 간섭과 지시에 시달리던 일군의 패자들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작년 여름 이후의 몇 가지 사건들을 계기로 마음을 모아 아우성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도 판사다. 헌법의 보장하는 법관의 독립을 법원 수뇌부는 보장하라!”

지금 이 승자와 패자들의 투쟁으로 인해 대한민국 법원조직의 내부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하지만 내게 그 소란은 이 기괴한 체제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짜증 섞인 신음소리로 들린다.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불량 하이브리드 법원조직이 그 내부의 투쟁으로 인하여 비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민주적 방식으로 판사 임용하는 사법민주화 길로 나아가야

불량 하이브리드 법원조직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면,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그 방향에 관해서는 궁극적으로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선택을 생각하기 어렵다. 하나는 대륙식 커리어시스템으로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미식 법조일원시스템으로 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전자의 길, 즉 가인 김병로의 배반당한 이상은 재현하기에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엇보다 법원조직을 이제껏 지배해온 저 승자들의 식견과 역량 그리고 도덕성이 역부족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미 노블 클래스의 지위가 보장된 이 승자들이 무엇이 아쉬워서 석궁테러 이후 드러난 한국사회의 저 지독한 사법불신에 맞서서 강직하고 청렴하며 헌신적인 엘리트 판사집단을 염원했던 가인 김병로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몸을 던지려고 할 것인가?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지금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 원리를 화두로 삼아 해묵은 문제들을 공론장에 던져놓기 시작한 저 패자들의 개혁의지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뿐이다. 심급제도 상의 상하위에 상관없이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법관들의 네트워크로 법원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종래와 같은 관료제적 조직구조는 근본적으로 포기하는 것이 옳다. 그 대신 모든 법률가에게 일단 개업변호사로서의 직업적 자기정체성을 가지게 한 뒤, 그들 가운데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판사를 임용하는 사법민주화의 길로 차근차근 나아가야만 한다.



촛불 1년 기념 토론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촛불 1년에 즈음하여 2008 촛불이 남긴 성찰과 문제의식이 한국 사회운동에 어떻게 수용되고 발현되었는지 모색해보는 공론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일 시 4월 25일(토) 오후 3시
장소를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추후 참여연대 홈페이지
(peoplepower21.org)를 통해 안내하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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