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비상한 선거인데도, 주요 후보들은 사전투표일 직전에야 공약집을 내놓았다. 이는 유권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 침해에 해당한다. 공약집은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민생경제 회복, 복합적 위기 극복을 위한 국정 비전과 철학, 정책 방향을 담는 유권자 선택의 근거가 되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무분별하게 부자감세를 추진한 결과, 세수가 크게 줄고 국가 재정은 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다. 새정부에 떠넘긴 세수 감소 효과만 해도 80조 원에 달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새정부로 넘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조세재정 정책은 어떤 후보가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지키고 민생을 회복할 의지가 있는지를 가늠할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각 후보들은 재정 위기를 극복할 구체적 해법을 내놓지 않은 채, 한편으로는 감세를,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 확대를 공허하게 약속할 뿐이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은 부자감세를 되돌리는 세제 개편과 재원 마련 방안 같은 핵심 과제가 빠져 있다는 점이 아쉽다. 김문수 후보의 공약은 윤석열 정부의 기조를 그대로 계승해, 법인세 인하, 상속세 전면 개편,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 부자감세 일변도의 공약으로, 세수 부족과 불평등 심화를 재생산할 위험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즉각 폐기해야 할 수준이다. 이준석 후보 역시 윤석열 정부의 기조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가장 부실한 공약을 내놓았다. 반면, 권영국 후보의 공약은 일부 보완이 필요하지만, 방향과 내용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결국, 후보자 대부분의 조세재정 공약은 부실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윤석열 정부로 인해 취약해진 재정을 보완할 구체적 개선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를 철회하겠다고 공약했지만, 나머지 세 후보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는 조세지출 조정과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33% ⇒ 20%) 축소 등을 통해 재정을 마련한다고 밝혔지만 제한적인 접근이다.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는 ‘새는 돈을 막겠다’,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식의 막연한 주장만 반복하며, 이미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긴축재정 기조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윤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로 지출 조정이 추진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접근만으로는 재정을 안정화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층 더 문제적이다.
둘째, 재정의 취약한 현실을 무시한 채 감세 공약이 쏟아졌다. 윤석열 정부가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 전방위적으로 감세를 추진한 결과, 세수 부족과 세수 결손이 발생했고 이는 복지 축소와 국채 증가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김문수 후보는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을 그대로 계승해 ▲법인세율 인하(24%→ 21%), ▲상속세 개편(배우자 상속세 전면 폐지, 유산취득세 전환, 공제 확대, 최고세율 인하, 최대주주 할증과세 폐지),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상향, ▲종합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 광범위한 감세 공약을 발표했다. 이는 재정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불평등을 확대할 위험한 발상으로, 김문수 후보가 정부 재정과 우리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준석 후보도 생애주기에 맞춘 주택 세금 감면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재명 후보 또한 감세 공약을 일부 제시했지만, 상속세, 법인세, 소득세 등 세수입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항목은 포함하지 않았다.
셋째, 재원 마련 방안 없는 복지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 저출생·고령화, 기후 위기 등으로 복지 재정의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미 정부 예산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증가해, 2024년 54%에서 2028년 57%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후보들이 제시한 다양한 복지 공약을 실현하려면, 필요한 재원과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지속가능한 복지와 재정 안정화를 위한 실질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내놓은 후보가 거의 없다.
넷째, 불평등 해소와 조세정의 구현 의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가구의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간 연소득 격차는 사상 처음으로 2억 원을 넘어섰고, 부동산 등 자산 격차도 15억 원 이상으로 벌어졌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조세재정 정책을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관련 공약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김문수 후보는 부자감세 공약을 앞세워 오히려 불평등 심화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결국, 후보자들이 내놓은 공약은 재정 위기와 불평등이라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과제에 비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감세와 복지 확대를 동시에 말하면서도 정작 재원 마련 방안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고, 조세재정 정책에 대해 책임있게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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