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4-08   26448

[복지톡]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

김진석·남기철·장숙랑ㅣ<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 저자
인터뷰 및 정리ㅣ 전은경·이성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활동가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어느 순간, 돌봄이 절실해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모두가 돌봄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 우리 사회는 돌봄의 문제에 절박하게 대응하고 있나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서는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 돌봄을 이야기하는 만남 <봄봄클럽>을 진행합니다. 함께 책과 영화를 보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면서 돌봄이 기본권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지혜를 모으려고 합니다. 그 첫 순서로 지난 3월 25일,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의 저자 김진석, 남기철, 장숙랑 교수와 함께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 돌봄의 절박함을 외면해 온 한국 사회를 돌아보고, 일상 속에서 누구나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공공 중심 커뮤니티 케어’를 제안하는 저자들과의 만남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각자 소개를 부탁드리고, 책에서 어떤 분야를 담당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진석 안녕하세요.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진석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여덟 명의 공저인데요. 저는 돌봄당사자, 돌봄책임자, 돌봄제공자 등 돌봄관계자들 모두가 불행한 현실과 그 이유에 대해, 돌봄의 부담이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실을 젠더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한국판 커뮤니티 케어의 종합적인 상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작성했습니다.

남기철 반갑습니다.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근무하는 남기철이라고 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 현재 돌봄의 일그러진 풍경에 관해 기술했고, 통합돌봄과 주거 관련된 부분을 맡았습니다.

장숙랑 안녕하세요. 중앙대학교 간호학과 장숙랑입니다. 저는 주로 ‘3장 돌봄의 카르텔 깨기’ 부분을 담당했는데요. 집으로 의사와 간호사가 찾아올 수 없는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을 고발하고, 보건의료 분야의 새판 짜기에 대한 대안을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으나 외면하고 싶은 돌봄의 절박함을 사회적으로 복원시키고자 하는 기획에서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이 책을 공동 집필한 저자 여덟 분이 커뮤니티 케어와 관련하여 함께 작업하시면서 공감대를 쌓으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책을 쓰게 되신 배경이나 과정에 대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장숙랑 제가 공동 집필을 하신 여덟 분을 만난 게 2014년 무렵이었어요. 서울시에서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보건과 복지가 어떻게 함께 시민의 삶으로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었고, 그동안 행정적인 일로만 여겼던 동 주민센터가 복지의 최전방에서 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사업을 기획하는 데 저도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돼서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 사업 처음에 디자인할 때도 그때 멤버들이 보건과 복지가 어떻게 하면 함께 갈까에 대한 고민을 함께했고요. 같이 공부하고, 각자의 생각도 발표하면서 정말 많은 논의를 했고, 이게 휘발되는 것보다 우리가 고민한 것을 모아서 책으로 엮어보자고 해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1장은 우리 사회의 돌봄 현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저는 ‘죽는 것보다 늙는 것이 두렵다’란 소제목이 무척 와닿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돌봄의 현실은 어떠한지, 진단부터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남기철 실제로 인터뷰를 해보면 죽는다는 것보다 죽는 과정을 더 두려워하시는 경우들이 많이 있어요. 예전에 인터뷰할 때 어떤 분이 주셨던 말씀을 그대로 표현한다면 “젊을 때는 있어서 이로운 사람이었는데 조금 지나니까 있으나 마나 하는 사람이 됐고, 이제는 가족한테 있어서 해로운 사람이 되더라. 그게 너무 싫다”라고 하셨어요.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저희 아버님이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셔서 뇌 손상으로 치매도 생기고, 몸도 마음대로 못 움직이셨어요. 그래서 가족들이 돌봄을 분담했는데, 일주일에 사흘 밤이 비더라고요. 근데 장기요양 등급 판정을 받은 분들은 아실 겁니다. 사실상 요양보호사가 와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낮 시간이에요. 나머지는 가족이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죠. 저는 국가가 공인하는 사회복지사 1급이고, 심지어는 학교에서 사회복지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런 자원이나 제도를 일반인보다 좀 많이 아는 편인데도 결국 아버지가 원치 않으시더라도 요양병원에 모셔야 나머지 사람들의 생활이 유지가 되겠구나 싶었어요.

통합돌봄이 본격화된다고 해서 곧장 바뀌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족 중 누군가가 몸이 아프면 가족의 일상을 무너지고, 누군가가 희생해야 하는데 모든 나라가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우리나라가 유독 힘들어요. 그러다 보니 통계적으로 나타나는 게 요양병원 입원율, 사회적 입원율 같은 거예요. 사실 OECD 통계를 낼 때 한국을 빼고 통계를 내야 할 정도입니다. 한국 때문에 전체 평균값이 달라질 정도로 우리나라가 압도적이에요. 내가 몸이 불편해서 도움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큰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가족은 적절히 케어를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책에서는 ‘돌봄은 왜 가족의 문제로 남겨질까’에 대해 고민하고, 이에 대한 평가도 하고 계신데요.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요.

김진석 책에서 ‘돌봄은 왜 가족의 문제로 남겨질까’라고 질문했지만, 사실은 가족의 문제로 남겨진다기보다는 가족 내 ‘여성’의 문제로 남겨져 있었죠. ‘그게 왜 그랬을까’라고 하면 역사적 측면과 정치경제학적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먼저 자본주의 사회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돌봄은 가정 내에서 무급 돌봄노동에 의해서 운영되어 온 역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고, 그 기반 위에서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고요. 남자는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집에서 가사와 돌봄, 소위 우리가 재생산 노동이라고 하는 걸 책임지면서 그 체제를 유지해 온 역사가 굉장히 길게 있었던 거죠.

그런데 1960~70년대 자본주의가 위기를 겪으면서 더 이상 그게 작동하지 않게 된 거죠. 혼자 일을 하는 걸로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 오게 됐고, 그 과정에서 자본은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한 거죠. 결국 돌봄과 재생산의 문제가 해결돼야 노동자들이 시장으로 나오고, 직장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기들도 먹고살고, 노동자도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고민을 한 거죠. 그리고 그 고민이 벌어지는 한쪽에서 여성들은 여성들대로 자신의 역할과 불평등한 구조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고, ‘나도 내 자아를 집이 아니라 사회에서 실현할 기회가 필요해’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거죠. 근데 이게 단순히 여성의 자각과 자기실현의 욕구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자본이나 국가 역시 여성 노동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돌봄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된 측면도 있어요.

그리고 역사적으로 한편에서는 국가나 공공이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푼 사회나 국가가 있지만, 또 일부에서는 그걸 시장에서 풀도록 하는 국가가 있었던 거죠. 또 일부에서는 대부분의 가사와 돌봄을 여전히 여성에게 맡긴 국가들도 있었어요. 사실 몇 개의 예외적인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가가 그랬죠. 여성이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고 나서도 집에 돌아가면 여전히 가사 노동과 돌봄노동과 재생산 노동을 해야 하는 방식이 계속되었죠.

그렇다면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한국 사회가 돌봄 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선진적인 지역사회 돌봄 체계를 갖고 있는 국가들의 사례들을 한국 사회에 적용시킬 때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이고,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전 질문으로도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나 해외 모델이 궁금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김진석 돌봄의 사회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것을 민간과 시장 중심으로 진행해 온 역사가 우리나라의 특수성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돌봄 영역이 우리나라 정책의 영역에서 굉장히 중점적으로 떠오른 역사가 몇 번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IMF 지나고 나서 보육이 사회화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예전에 탁아소에서 그냥 하던 것을 법과 제도를 만들고, 어린이집을 만들어서 보육을 사회화하는 과정들이 있었어요. 스웨덴 같은 국가들은 그런 보육을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무원이 직접 수행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당시에 ‘국가가 앞으로 제도를 운용하기 위해서 재정을 풀 거니까 이거 하실 수 있는 분들은 손 들고 들어오세요’ 라는 방식으로 사업 설명회를 하고 다닌거죠. 그런데 2008년에 장기요양보험이 만들어질 때, 정말 똑같은 방식으로 실행을 한 겁니다. 장기요양보험을 만들어서 제도화하고, 사회보험을 통해 비용을 조달하는 방식이었지만 공급자는 보육보다 더 철저하게 시장에 맡기는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그게 우리나라에서 돌봄 문제와 관련해서 다양한 문제와 부작용을 낳는 하나의 주요한 배경이 되었고요.

남기철 사실은 다른 나라들도 돌봄 문제를 아주 모범적으로 잘 해결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어요. 대단히 뛰어난 나라라고 해도 어쨌건 격차가 존재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돌봄을 사회화시킬 때 ‘비용이 적게 들어야 한다’, ‘가족들이 돌봄 비용을 적게 지출해야 한다’라는 게 있어요. 돌봄노동을 최대한 싼 노동으로 만드는 거죠. 그래서 서울시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최저임금도 너무 비싸니까 최저임금이 적용 안 되게 하자고 했던 것이고요. 반면, 북유럽 같은 경우는 돌봄 일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공무원이거나 준공무원이면서 정규직이에요. 근데 우리는 비용을 낮춰야 하니까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거예요. 시장화시키되 그 사람들의 일자리나 노동권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싼 가격으로 이 시장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자고 하는 것이죠.

장숙랑 제가 해외 사례를 볼 때 부러운 눈으로 본 두 가지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는 이탈리아의 바자리아법(Basaglia Law)이에요. 바자리아라는 사람이 벽오지에 있는 정신병원에 갔는데, 그 현장이 너무 참혹했던 거죠. 폭력부터 시작해서 폐쇄된 시설에서의 다양한 문제들을 보면서 ‘이 병원을 내가 폐쇄하고야 말겠다’라고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근데 밖으로 나와서는 폐쇄를 못 시키니까 거기에서 같이 일하는 의료진들을 모아서 ‘우리 이 병원을 폐쇄시키자’라고 운동을 합니다. 결국은 그 병원을 폐쇄시켰어요. 그리고 다른 정신병원에 취업해서 또 그 병원을 폐쇄시켜요. 그리고 예술인들을 모아서 이 운동을 영화로 만든 거죠. 우리나라의 ‘도가니’ 영화처럼요. 그러면서 이탈리아 전 국민이 알게 되고, 정신병원은 없어져야 한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바자리아법’이 제정됩니다. 그런데 그 법을 만들고 10년 동안 시행을 못 했다고 해요. 정신병원을 없앤다는 건 정말 큰 일이고, 지역사회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역사회가 준비 안 된 채로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그래도 그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10년 동안 어떻게든 노력했고, 지금은 정신병원이 다 폐쇄되었어요.

두 번째는 네덜란드 사례인데요. 뷔르트조르흐(Buurtzorg)라고 우리나라 언론에도 몇 번 나왔어요. 네덜란드어로 ‘좋은 이웃’, ‘동네 돌봄’ 같은 느낌인데요. 우리 가까이에 편의점이 되게 많잖아요. 딱 편의점 수만큼 방문간호센터가 있는 거예요. 걸어서 20~30분이면 닿을 만한 곳에 방문간호센터가 있고, 10명 정도의 간호사가 근무하는 거죠. 그러면 병원에서 퇴원할 때 내 정보를 집 근처 방문간호센터로 보내고, 퇴원하자마자 간호사가 방문을 합니다. 사실 돌볼 가족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은데 간호사가 매주 와서 한 번씩 드레싱을 한다거나, 보호자들이 해야 할 일을 교육하는 거죠. 저는 이걸 실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게 진짜 너무 어렵더라고요. 보건의료 영역은 보이지 않는 직역 간의 위계 질서도 있고, 간호법 이슈에서도 보셨다시피 어떤 직역이 어떻게 권한과 책임을 가져가느냐에 대해서 너무 예민해요. 서비스에 대해서도 나의 밥그릇을 뺏어갈까에는 관심이 많은데,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이게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통합돌봄이라는 거대한 어떤 가치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버거운 느낌이 있어요. 앞으로 우리가 운동해야 한다면 이런 부분들의 위계를 조금 무너뜨리고, 수평적인 연대가 가능한 상황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이 책은 표지에도 적혀있듯이 ‘지역사회 공공 돌봄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새판 짜기’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남기철 번역하면 ‘지역사회 돌봄’이죠. 당장 입원해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시설이나 병원에 너무 오래 입원해 있도록 하거나, 나이 먹으면 요양원에 가거나, 이런 식으로 만들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돌봐야 한다는 의미에서 커뮤니티와 케어를 붙였어요. 또 다른 측면에서는 지역사회의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가 장소적 의미였다면 두 번째는 지역사회에 돌볼 수 있는 여러 시스템을 활용하고, 없으면 만들어서 지역사회 내의 자원을 통해서 돌봐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실 커뮤니티 케어를 따지기 전에 케어 자체가 거의 없었고, 여성한테만 맡겨져 있던 부분들이 있죠. 그래서 이제 사회화된 케어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제대로 된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위해서는 돌보는 의료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너무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느낌입니다. 전반적으로 통합돌봄 안에서 ‘보건의료 분야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라고 제안해 주실 과제는 무엇일까요?

장숙랑 통합돌봄에 함께하고자 하는, 예를 들어 방문 진료를 하시는 지역의료센터 의사나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이제서야 돌보는 의료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현실을 보자면, 환자가 퇴원할 때 집에 돌봐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지 않은 채 퇴원 설명을 하고, 약을 주고, 퇴원을 시키고 있어요. 보건소나 지역사회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여의도 면적의 30배가 넘는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에는 단 하나의 의원도 없어요. 거기에 보건진료소만 딱 하나 있고, 간호사 한 명이 근무합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조금만 건강이 안 좋아지면 요양원으로, 요양병원으로 가고 있어요. 만약 우리가 돌보는 의료를 한다라고 생각하면 그런 곳에 가서 개업할 수 있어야 하죠. 그런 곳에 내가 의사로서 가고, 간호사로서 갈 수 있어야 해요. 그런 곳에 병원이 없는 것에 대해 의료인으로서 마음이 불편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왜 가야 하나’가 되는 거죠. 거기서는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거든요. 이게 돌보는 의료를 하냐, 하지 않느냐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하지 않는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이유에요.

돌보는 의료를 하려면 의대, 간호대 교육도 다 바꿔야 해요. 사실 초중고부터 바꿔야 합니다. 돌봄에 대한 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초중고 때부터 해야 해요. 돌봄을 하는 사람들은 수평적으로 연대하는 게 맞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나도 돌봐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체계도 바꿔야 하고, 공공성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아져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 가지 희망은 아까 말씀드린 그 춘천시 사북면이에요. 의료가 없잖아요. 앞으로도 거긴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의료가 안 갈 거예요. 그래서 거기부터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아예 아무도 관심 없는 지역, 우리 농산어촌에서부터 의료가 어떻게 돌보는 의료로 거듭날 수 있을지에 대한 모형을 만들면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식의 새로운 가능성과 혁신을 지방에서부터 만들어내는 것이 보건의료에서 굉장히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씀드리면 현재 간호·간병 인력으로는 병원에서 돌봄이라는 건 턱도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병원에서 잘 돌보고, 잘 퇴원을 시켜주셔야 지역사회에서도 제대로 돌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지역사회 통합돌봄 안에 병원 돌봄이 없어요’ 라고 말하지 말고, 병원이나 요양원에서의 돌봄도 챙겨보고, 그다음에 지역사회와 잘 연결되는지를 챙겨서 지역사회 내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할 수 있도록 보건의료 영역에서 앞으로 인프라를 더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이용할 수 있는 의료, 요양, 복지 등의 다양한 서비스의 확대가 주거 정책과 결합되어야 제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텐데요. 책의 내용 중에 주택 개조 지원과 관련한 독일, 영국,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사례가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임차인이 주택 개조를 하려고 할 때 임대인이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주거 정책은 돌봄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남기철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주택이 가진 어떤 불편함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사는 것에 지장을 초래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딱 그 정도입니다. 근데 얼핏 생각하면 돌봄서비스가 없고, 의료 서비스가 없고, 뭐가 없는 게 문제지 집이 불편해서 못 살아서 통합돌봄이 안 되는 사람이 많을까 싶을 거예요. 근데 통계를 보면 생각보다 많습니다. 요양병원 들어가시는 분 중에 상당히 많은 분들이 자기가 원래 살던 집을 팔고 들어가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사실상 노인들이 요양병원 가실 때 ‘나는 죽으러 간다’고 생각을 하시거든요. 자식들도 간병비가 400~500만 원씩 하니까 어르신이 살던 집들을 많은 경우에 팔아버리고 요양병원에 입원시키세요. 문제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라는 게 너무 잘 돼서 이분들이 다 퇴원하신다고 해도, 고관절 수술을 받고 퇴원했는데 사는 집이 다가구 주택의 4층 꼭대기에 좁은 계단이면 집으로 못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분들의 이유를 따져보면 의료적 이유가 아니라 주택이라는 물리적 이유 때문이 많아요. 그런데 어르신들한테 조사를 해보면 서비스가 아주 좋은 요양원하고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집하고 어디서 죽을 때까지 살고 싶은지를 물어보면 다 집을 택하세요. 3년 전 조사하고 지금의 조사를 따져봐도 해가 갈수록 어르신들이 집을 더 선호하는 비율이 점점 더 높아져요.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이유가 주택 때문인 경우가 꽤 있거든요.

주택 개조에 대해 질문하셨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법적으로는 그게 가능해요. 그런데 그걸 집행을 안 하고 있는 거죠. 서구 국가는 실제로 임차인이 ‘내가 몸이 불편해져서 여기에 안전대가 필요해’, ‘계단을 좀 넓혀줘’ 같은 요구를 했을 때 이게 부당하고 사치스러운 요구가 아니라면 들어주는 게 맞다는 걸 지자체가 실제로 집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임차인하고 임대인하고 분쟁이 생기면 재판까지 가지 않더라도 곧장 판정도 해줍니다. 근데 우리는 그걸 못하고 있고, 최근 들어서 일부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집에서 살다가 나올 때 원상복구해야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대안으로는 장애인 주택 개조와 노인 주택 개조를 통합한다거나 공공임대주택에서의 원상복구 의무를 없앤다거나 아니면 새로 짓는 건물들은 소위 말해서 몸이 불편한 사람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있을 것 같아요. 기본 원칙은 집이라는 요소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사는 걸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제일 큰 관점일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커뮤니티 케어가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주요한 요소와 작동 원리를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용자 중심의 통합적 접근을 가운데에 두고 제도, 공급, 수요, 공간을 하나로 묶어 퍼즐을 완성하고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진석 제가 책에서 한국판 커뮤니티 케어라고 작성한 부분인데요. 퍼즐은 어떤 거 하나만 빠져도 완성이 안 되잖아요. 즉, 제도, 공급, 수요, 공간, 접근 5개의 퍼즐이 딱 맞아 떨어져야 커뮤니티 케어도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도는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의 문제인데요. 대부분의 주요 국가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정부가 하고 있어요. 돌봄이라고 하는 건 아주 구체적인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최대한 지역의 환경과 조건, 성격에 맞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지역이 하게 되어 있고, 이건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그다음 ‘공급’을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의 측면을 봐야 하는데요. 한국 사회에서는 경험적으로 지금까지 민간과 시장이 해왔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상 그것의 궁극적인 책임은 공공에 있어야 하는 거죠. 요양 시장도, 의료 시장도, 보육 시장도, 지금 전부 다 공급 과잉이라고 얘기하는데, 오히려 공급 과잉은 낫습니다. 문제는 경기 북부나, 강원도만 가더라도 도심 지역에는 문제가 없지만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절대량이 부족해요. 지역의 경우 민간은 답이 없고, 공급 자체가 없어요. 노인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필요한 서비스를 나눌 방법이 없는 거죠. 그렇다면 최소한 그 영역에서는 공공이 공급을 책임져야 합니다. 지역으로 내려가면 정말 필요한 돌봄의 영역도 굉장히 많은데, 대표적인 게 이동과 관련한 겁니다. 서울의 경우 대중교통이 너무 잘 돼 있지만 제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정읍만 하더라도 병원에 가거나 장 보러 나오시려고 하면 방법이 없어요. 결국은 택시를 불러야 합니다. 즉, 이런 역할들을 공공이 책임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수요’의 부분은 돌봄이 원칙적으로 모든 사람의 권리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보편적 수요가 권리를 기반으로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용자의 고용상 지위, 지불능력, 가족 구성 등 인구 사회경제적 특성과 무관하게 돌봄을 필요로 하는 누구나 이용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편적으로 보장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불 능력에 따라서 어느 정도 부담을 할 거냐고 고민해 볼 수 있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은 ‘공간’인데요. 이 이야기는 많이 할 필요도 없어요.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니까, 공간은 지역사회이죠.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익숙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마지막이 ‘접근’인데요. 접근이 가운데에 있는 이유는 이 4개의 퍼즐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굉장히 혁신적인 퍼즐의 한 조각이라는 거예요. 우리나라 돌봄서비스는 민간 중심이고, 공공의 영역에서도 부처별, 프로그램별 굉장히 분절화되어 있어요. 그렇다 보니 이용자들은 자기가 원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걸 쓰는 게 아니라 공급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 중에서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쓰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커뮤니티 케어는 기존 공급자 중심 전달 체계를 이용자 중심의 통합적 돌봄 전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자체가 책임을 지고, 지자체 안에서 지역의 형편과 조건 그리고 돌봄의 욕구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문가(공무원)들이 지역에서 주민을 직접 만나고, 그 사람에 대해서 사정을 하고, 사정에 기반해서 계획하고, 사례 관리까지도 책임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이 접근의 중요한 키포인트입니다.

당장 내일모레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시행될 텐데 안타깝게도 복지부가 준비한 것은 지자체에 전담팀을 만들고, 그 전담 조직에 전담 인력을 배치하는 것까지인 것 같아요. 결국 저 공급의 측면에서 굉장히 준비가 덜 돼 있고, 수요의 측면에서도 지금은 노인과 중증장애인까지만 대상이 되는 상황이라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3월 27일부터 커뮤니티 케어의 일환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전면 시행됩니다. 시행을 앞두고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나 인프라 문제 등 여러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요. 현재 정부의 준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장숙랑 보건의료 지역 간 격차가 이미 있는데 그 위에다가 사업을 얹어둔 거라서 1차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이라든지, 병원이 부족하고 의사 인력이 굉장히 부족한 지역에 있어서는 그 문제가 통합돌봄으로는 전혀 해결이 안 될 거예요. 특히, 보건의료 자원이 부족한 지역의 통합돌봄은 다 보건소에 얹어놨어요. 그래서 보건소가 재택의료센터도 해야 되고, 일차 의료도 해야 되고, 지역사회 재활사업도 해야 하는거죠. 통합돌봄에 필요한 보건의료의 모든 것을 보건소에 다 넣은 지역도 있어요. 일단은 이 돌봄 격차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격차를 메워주고, 형평성을 맞춰줄 수 있는 방식으로 예산 지원을 더 고민하고, 인력이나 인프라에 대한 고민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남기철 질문의 마지막 부분만 그대로 읽어보면 ‘현재 정부의 준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인대요. 저는 정말 안 좋게 평가합니다.(웃음) 우리가 이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을 2018년부터 했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 곧장 하기 어려우니까 1, 2, 3단계로 추진해서 2026년에 완전히 시스템을 갖추자고 했는데, 그런 시스템들을 전혀 안 갖춘 겁니다. 그리고 최근 복지부가 발표한 통합돌봄 로드맵을 보면 이제부터 1, 2, 3단계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는 수준이에요. 정부가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걸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있는 것이죠.
국토부가 홍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백령도에 큰 규모의 고령자복지주택을 지었다는 것인데요. 인접한 다른 지역에 수요가 더 높은 곳에는 짓지 못하고 섬 지역에 대규모의 고령자복지주택을 짓다보니 몇차례에 걸친 입주자모집에서도 희망노인이 많지 않아 계속 공실이 발생해왔죠. 왜냐하면 거기 가려면 백령도로 이사를 가야 되거든요. 정작 이런 지원주택이 많이 필요한 지역에는 안 짓고 있어요. 못 지으면 사기라도 해야 했는데 지난 8년간 정부는 하겠다고 말했지만 그걸 위해서 필요한 일들을 하기보다는 쉽게 할 수 있는 일까지만 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당장 내일모레 시행된다고 해서 실제로 필요한 것과 시민들이 원하는 것과의 간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실질적인 변화를 체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지자체별 재정 능력이나 의지에 따른 ‘돌봄 격차’ 문제도 우려되는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반드시 보완해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려요.

김진석 격차가 있어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지역별로 차이는 불가피하고, 지역 간 차이가 있는 게 나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슨 얘기냐면 아까 지방분권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이 말은 돌봄의 욕구를 해소하는 방식과 절차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그게 격차로 느껴진다는 것은 결국 주민의 삶이 나아지는 정도에서의 격차의 문제이니, 그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국가의 역할은 너무 명확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같이 재정과 관련해서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체제에서는 지자체가 제대로 된 돌봄을 지역에서 할 수 있도록 자원 배분에 집중해야 하겠죠. 또 지자체에 자원을 배분했으면 국가 입장에서도 이게 허투루 쓰이는 게 아니고, 제대로 쓰이고 있고, 정책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다는 확신을 줘야 되잖아요. 근데 지금까지 국가의 예산관리 방식을 살펴보면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도시락 배달 관련 예산을 보면 ‘2천 명의 어르신들에게 한 달에 5천 끼를 제공한다’라고 하고 있는데,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그 지역에 있는 노인들이 영양과 관련해서 문제가 없으면 되는 거죠. 즉, 어떤 방식으로 할 건지에 대해서는 다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서울이나 대도시는 도시락 배달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간편하지만, 지역에서는 어르신 한분 한분을 찾아가는 게 굉장히 큰일이 되는 거죠. 그렇다면 그걸 도시락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푸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커뮤니티 공동 주방이 되었든, 지역 경로당을 활용하든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거든요.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 뭘 제공하느냐가 아니라, 어르신들의 영양과 관련한 문제가 얼마나 해결됐느냐를 국가가 관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자체장의 역량과 의지 관련해서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지방정치를 충분히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돌봄의 문제가 지방정부의 주요한 의제가 되면 지금 역량이 없는 지방정부의 장도 ‘이거 안 하면 안 되는구나, 떨어지는구나, 다음 내 자리를 보장할 수 없구나’ 그런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어떻게든 달라붙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지방선거의 주요한 의제가 돌봄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시민들이 나서서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책의 말미에는 ‘돌봄사회를 위한 열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이 약속을 만든 이유와 실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열 가지 약속에 대해 간단히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장숙랑 책 내용에 기반해서 10가지 약속을 만들었는데, 일종의 돌봄 선언문 같은 거예요. 책을 쓰면서 ‘정말 이것만큼은 우리 마음속에 가져가자’라는 것을 꼽아봤어요. 이 책의 내용을 모두 다 녹였다, 이게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간단히 소개하면 “① 국가는 돌봄에 관계하는 모든 주체가 존중받는 돌봄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② 지방자치단체가 돌봄에 대해 최종 책임자가 되도록 정부 조직과 재정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③ 현대판 고려장을 조장하는 요양병원이 과잉 공급되는 카르텔을 깨야 한다 ④ 돌봄서비스 제공 관련 기관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⑤ 지역사회 돌봄을 위한 지역 보건의료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⑥ 돌봄 친화적 주거 환경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협력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⑦ 돌봄 관련 공공 재원의 통합적 운용을 위한 재정 구조결의 전면 개혁을 실행해야 한다 ⑧ 병원에서의 돌봄 걱정을 해소해야 한다 ⑨ 돌봄서비스 제공의 주체로 마을 공동체가 적극 나서도록 해야 한다 ⑩ 시민 모두 돌봄에 참여하고 돌봄 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할 일원임을 자각해야 한다” 입니다. 저는 이 중에 맨 마지막 약속이 제일 마음에 들고, 중요한 약속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돌봄이 모두의 책임이고,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서요.

마지막 질문드리겠습니다. 열 가지 약속의 9번은 “돌봄서비스 제공의 주체로 마을공동체가 적극 나서도록 해야 한다”이고, 10번은 “시민 모두 돌봄에 참여하고 돌봄 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할 일원임을 자각해야 한다”인데요. 마을공동체와 시민의 참여를 강조한 이 약속들은 인상적이지만, 자칫 이것이 “돌봄은 국가의 책임이어야 한다”는 주장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국가책임과 시민참여의 바람직한 균형은 무엇인지, 공동체 돌봄이 가족 책임의 또 다른 이름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균형이 필요할까요?

남기철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어느 지역에 공동체가 형성이 잘 안돼서 돌봄을 주고받는 것이 잘 안돼요. 그래서 실제로 돌봄 공백이 생긴다면 국가책임이라는 겁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국민이 적절한 돌봄을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 모든 게 국가의 의무라는 게 기본적인 전제이고요. 그런데 사람들한테 필요한 돌봄이 무조건 국가와 공무원에게 받는 게 최고는 아니거든요. 원래 돌봄이라는 말은 복지보다 더 넓습니다. 돌봄이라는 말 자체가 나오는 이유는 인간이 원래 취약하고 의존적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인간은 서로 간의 돌봄을 항상 교환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돌봄 정책도 이에 입각해서 만들어지는 거죠. 그런데 누군가를 돌보고, 이웃을 돌보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니 국가가 사회화를 시키는 것이에요. 만약에 우리가 동화처럼 예쁜 나라에 살고 있다면 ‘저 집이 어려우니 돌봐줘야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요즘처럼 2년에 한 번씩, 4년에 한 번씩 이사 다니는 아파트에서 돌봄공동체가 자연스럽게는 형성될 수 없죠. 그리고 공동체라는 것도 옛날처럼 자연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이런 것들이 잘 형성되고, 이 공동체를 통한 돌봄이, 돌봄을 받는 사람에게도 편하고 돌보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도록 국가나 공공의 의식적인 노력이나 자원의 투자가 필요해요.

서울시의 경우만 봐도 마을 공동체 활동이 활성화됐다가 죽었다가 이런 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거든요. 결국 이런 부분을 육성해야 하는 건 기본적으로 공공의 책임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공동체를 이야기하면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려고 떠넘기는 형태로 이 말들을 많이 썼는데요.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은 형태로 우리가 해보자는 취지에서 국가의 공공 책임이라는 걸 대전제로 마지막 부분에 이런 원칙들을 넣어봤습니다.

월간<복지동향> 2026년 4월호(제3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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