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8-10   3573

여성건강, 무엇이 문제인가

의학 관련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건강 개념도 많이 변화하였다. 이제 건강은 단순히 질환이 없음이 아니라 보다 질적인 삶이라는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 건강권은 의료이용 접근성의 용이함을 넘어서 행복한 삶의 추구를 위한 인간의 기본권리, 인권으로 해석된다. 건강을 인권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건강이 한 개인의 개별적인 추구 행위만이 아니라 법적, 제도적 추구행위로 전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생물학적 성을 이유로 가정과 사회에서 경제적, 정치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성적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해 왔으며, 건강관리 차원에서도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여성건강'에 대한 접근법은 '건강'에 대한 접근법은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 없고, 허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 상태'라는 WHO의 정의를 넘어서, 여성건강은 한 사회 안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치, 여성의 지위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지표로 인식되고, 여성건강문제는 단순히 생식기 중심의 병리적 문제라기보다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경험과 그와 관련된 불편함(dis-ease)을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

본고에서는 많은 제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계 자료를 중심으로 우리 나라 여성 건강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긴 평균수명과 짧은 건강수명

우리 나라 평균수명을 보면 남성은 70.56세, 여성은 78.12세로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에 비하여 더 길다. 그러나 건강수명을 비교하여 보면, 남성은 50.7세, 여성은 49.9세로 남성보다 오히려 짧다. 여성은 남성보다 8년 정도 더 오래 살기 때문에 결국 여성은 생애의 약 1/3을 만성질환 등 어떤 형태이든지 불편감과 고통으로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높은 수진률과 만성질환 유병률, 낮은 건강검진 수진율

우리 나라 외래환자 수진률과 만성질환 이환율을 보면 여성이 더 높고, 여성들 중에서도 읍·면 지역거주자가 동 지역거주자 보다 더 높다. 유병일수(활동부자유 지속기간)도 여성이 더 길다. 반면 와병일수(질병으로 누워 있었던 평균일수)는 여성이 더 짧다. 이는 여성의 질환이 상대적으로 경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으나, 여성이 질병이 있어도 누워 쉴 수 있는 기간이 짧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정신질환 유병률 특히 신경성 장애, 정신적 요인에서 발생하는 생리적 기능장애 등의 유병률이 남성에 비해 여성에서 비해 월등히 높다.

질병예방 건강행위는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하는 건강검진 여부를 보면, 15-19세에서는 학교에서 단체로 검진을 받았기 때문에 비슷하지만, 그러나 전체적으로 건강검진 수진율은 여성이 낮고, 특히 취업율이 낮은 20대 이후에는 훨씬 더 낮다.

높은 인공임신중절률과 제왕절개분만률

우리 나라 가임기 결혼여성의 인공임신중절 실태를 보면, 1980년대부터 거의 20여년 동안 50%대의 인공임신중절 경험율을 보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피임실천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임신중절이 많은 것은 피임 실패에도 원인이 있으나, 원하지 않는 태아 성별에 기인하는 부분이 상당한 수를 차지 할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한 근거는 출생한 아기의 성비이다. 올해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출생 여아 100명당 남아는 109.6명으로 자연적인 출생성비에 다가섰다고는 하나, 셋째 아이의 출생성비는 143.1로, 여전히 여아는 태어날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나라의 제왕절개분만율은 세계 1위로, 이는 선진국 중에서 제왕절개분만율이 가장 높은 미국보다 배 이상 높은 것이며, WHO가 권장하는 제왕절개분만율(10-15%)보다 훨씬 높다. 제왕절개술의 증가 추세는 1989년 국민의료 보험 실시 후에 분만 보험 수가와 관련하여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확인되지 않는 혼전 임신률, 미혼모 발생률

10대를 포함한 혼전 임신건수와 이로 인한 인공임신중절 혹은 미혼모 발생률은 '문제'로 지적되긴 하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것도 어렵고, 일부의 자료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1997년의 경우 우리 나라에서 인공임신중절자 중 기혼이 81.5%(257만건), 미혼이 18.5% (59만건)이며, 미혼 중 10대의 비율이 50%정도로 추정된다. 이는 해당 연령인구(187만명)의 16%에 달하는 숫자로 매일 820명 이상의 10대가 임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혼모는 근년에 들어와서 점차 증가하며 1978년의 3,700명에 비해 1988년에는 10,121명으로 10년간 약 3배나 증가했다. 1997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의하면 한해에 3,500명 정도의 입양 대상 아동들이 발생하는데 이들 중 80% 이상이 미혼모의 자녀일 것으로 추산된다. 미혼모의 약 25%는 10대이며, 20∼24세는 약 60%이다.

보건의료 접근의 어려움, 주목받지 못하는 건강문제들

여성건강과 관련하여 의료체제는 주로 자궁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예, 산과, 부인과) 여성의 욕구에 대한 전체적인 접근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특히 중년의 여성들은 증가된 건강 요구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보건의료를 받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들의 건강문제는 주로 만성적이기 때문에 현 의료체계 하에서는 충분히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예방관리가 부족한 현 체계는 재정적인 문제가 많은 여성들에게 증후들이 급성화되기 전에 도움을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건강위험을 초래케 한다.

빈곤한 여성들은 불량한 영양 섭취, 주거와 주변환경의 열악한 환경적 요인, 예방적 건강관리의 부족으로 인하여 불건강이 초래되며 이로 인하여 불안, 우울 같은 정서적 장애, 고혈압 등의 신체적 기능장애 등이 나타난다. 그리고 의료체제에 쉽게 접근할 수 없어서 적절한 건강관리를 제공받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취약 계층 여성의 외래이용도는 전체적으로는 낮지 않지만, 의료기관 유형별로 보면 소득수준이 낮고 농어촌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종합병원 등의 상급의료기관 이용이 적은 반면, 보건소 이용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특유의 건강문제 중에서도 여성들에게는 큰 고통이나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생리통을 포함한 월경증후군이다. 생리가 시작되고 폐경에 이르기까지 약 40여년간 많은 여성들이 생리통으로 인하여 진통제를 습관적으로 복용하고 있고, 그 증상의 정도에 따라 개인차가 크기는 하나 생리중인 여성의 약 10%가 최소한 월 평균 1∼2일간 평상의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은 생활과 노동 현장에서는 물론 의료현장에서도 종종 무시된다.

과다한 약물 사용과 출산의 의료화, 낮은 모유수유률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구강 피임제, 에스트로겐, 진통제 등 더 많은 약물을 소비하며, 또 그렇게 하도록 권장된다. 이러한 약물복용으로 이루어지는 간단한 해결방법은 여성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발견하는 데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계속적으로 의존하도록 만들어 약물남용의 높은 발생을 초래한다.

우리 나라의 병원 분만율을 보면 1975년에 57.2%이던 것이 1997년에는 99%로 거의 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초음파술, 전자태아감시기 등 여러 복잡한 기술이 거의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또 자궁절제술은 여성들에게 가장 흔히 행하여지는 수술이 되었다. 반면 병원 분만율의 증가와 함께(완전한 인과적인 관계라고 볼 수는 없지만) 모유수유률은 14%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만연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상품화

우리 나라 성폭력 발생률은 세계적 수준으로 한국 여성들은 전쟁시와 유사한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여성 피해자의 수 역시 세계적인 지표와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건강의 중대한 위협요소이며, 특히 관련 특별법의 제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피해자 유발론은 여성들의 정신 건강을 크게 위협하는 수준이다.

여성의 성상품화의 전형적인 형태인 매매춘은 심각한 도덕적 문제로 취급되긴 하지만 여성의 건강문제로 취급되어지지는 않는다. 일부 업소의 여성에게 행해지는 검사는 여성 당사자를 보호한다기보다는 상대하는 남성에게 전염시킬 것을 방지하는 수준에 머문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노동력의 일부 혹은 결혼의 조건으로 이용하는 현실에서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은 획일화된 미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필수요건이 되어 여성의 신체적인 건강은 물론 정신적인 건강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우리 나라 여성의 건강과 관련한 지표들을 보면 그것이 여성들 특유의 해부생리학적 조건만이 아니라, 여성들의 사회, 경제, 정치적 지위와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으로 여성으로서는 태어날 기회조차도 박탈당하고, 태어나서 노인이 되도록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위협에 노출된다. 또 취업과 결혼을 위해 날씬해지고, 예뻐지기 위해 굶거나 수술하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남성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되는 여성특유의 건강문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의학적 문제로 취급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의료기관에 가더라도 환자로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 또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오래 살면서, 더 오래 질병으로 고통받는다.

우리 나라 여성의 건강 문제는 본격적으로 국가적인 정책 과제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 건강권이 인간의 기본 권리이며, 이를 보장하려는 노력은 단순히 개인의 실천이나 관리를 넘어선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여성건강에 접근함에 있어서 단지 '건강'이 아닌 '여성건강'이라는 관점, 즉 우리 나라 여성들의 삶의 맥락에 근거한 건강 정책이 요구된다.

이은주 / 한국여성단체연합 건강분과위원, 제주여민회 공동대표, 제주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8월호(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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